주체107(2018)년 7월 21일 로동신문
공화국의 발전행로에 빛나는 우리 인민의 영웅적투쟁(5) 일심단결의 장엄한 대하가 세차게 굽이쳐흐른 영광의 년대 새로운 기적들과 영웅적인 사변들을 수놓은 1980년대를 더듬어보며
우리 조국력사에 영원히 잊을수 없는 사변들과 승리들을 기록한 1980년대! 《당의 부름이라면 한마음한뜻으로 떨쳐일어나 산도 옮기고 바다도 메우는 기적을 끊임없이 창조해나가는것은 우리 인민의 투쟁전통이며 기질입니다.》 주체69(1980)년 10월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는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가 열리였다. 《우리가 건설의 삽을 처음 들었을 때는 사실 이 날바다에 갑문을 세울수 있다고 믿은 사람들이 얼마 없었습니다.하지만 당은 우리를 믿고 대담하게 결심하였으며 우리는 당이 결심하면 한다는 절대성, 무조건성의 정신으로 20리 날바다를 길들였습니다.당과 인민의 단결을 떠나서는 정말 우리의 그 어떤 승리에 대해서도 말할수 없습니다.》 이것은 서해갑문을 건설하던 나날이 그리워 이곳에 자주 들리군 한다는 한 건설자의 말이다.수십m깊이의 20리 날바다에, 그것도 밀썰물의 차이가 대단히 크고 물살이 빠른 서해에 갑문을 일떠세운다는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였다.하지만 조국의 부강번영과 후손만대의 행복을 위하여 간고분투해서라도 갑문을 건설하자는것이 우리 당의 결심이였고 그 뜻을 실천으로 받든 우리 군인건설자들과 인민들이였다. 주체70(1981)년 5월 22일, 오랜 시간 달리는 배우에 계시며 갑문위치를 확정해주신 《5월 22일》, 건설자들은 자기들의 기발에 그 날자를 박아넣었다.그 기발은 갈매기 울어예는 바다기슭에 건설의 첫삽을 박던 때부터 건설자들의 머리우에서 나붓겼다.기발은 언제나 대오의 앞장에서 휘날렸다. 일터도 낯설고 경험도 없었지만 공사 첫날부터 건설자들은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확고한 신념과 백절불굴의 정신력으로 영웅적투쟁을 벌리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리수복영웅은 당과 건설자들은 바로 이런 신념, 이런 의지를 안고 세찬 물속에 뛰여들어 고층아빠트와 같은 수천t 함형부재의 터진 물구멍을 몸으로 막고 《앞으로!》의 구령을 웨치며 부재를 전진시켰다. 몇분동안의 밀썰물의 멈춤시간을 리용하여 최종마감막이 대형함형부재를 내려앉히는 긴장한 시각에 함형부재의 한쪽 물구멍이 터지지 않았을 때에는 끊어진 도폭선을 서로서로의 두팔로 이어 폭파를 보장하여 부재를 가라앉혔다. 건설자들의 용감한 투쟁에 감동되여 처녀방송원도 《설레이는 바다여! 용맹한 전사여! 월미도의 영웅들같은 갑문건설용사들이여!》 하고 웨치다가 수십t 콩크리트부재에 작은 어깨를 들이밀었다는 여기 전투장에는 영웅이 따로 없었다.건설자들모두가 사나운 바다를 정복하는 어려운 전쟁에서 위훈을 세우고 승리한 영웅들이였다. 지금은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지만 깊이가 수십m 되는 20리 날바다를 가로막은 그 하나하나의 구조물에는 《당과 건설자들만이 아니였다. 건설의 나날에 전국각지의 청년들과 사무원들, 일군들과 과학자, 기술자들, 대학생들과 가정부인들, 이름도 주소도 모르고 나이와 직업도 각각인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 전투장을 찾아 창조의 구슬땀을 흘리였으며 지성어린 편지들과 지원물자들을 보내였다. 세 자식을 갑문건설장에 보낸것만으로도 성차지 않아 60이 넘은 나이에 전투장에 찾아와서 몇년을 하루처럼 건설자들의 뒤바라지를 해주고 식당일을 도와준 《삼지연 3형제》의 아버지, 어머니와 수십마리의 돼지를 길러 건설자들에게 보내준 《평원의 어머니》… 진정 새로운 진군속도-80년대속도를 창조하며 세계적인 대건설공사를 우리의 설계, 우리의 기술, 우리의 설비와 자재, 우리의 힘으로 짧은 기간에 성과적으로 완공한 갑문건설자들의 영웅적투쟁은 당의 현명한 령도를 받는 우리 인민의 무궁무진한 창조력과 우리 나라 자립적민족경제의 거대한 잠재력을 힘있게 시위하였으며 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 새로운 앙양을 일으키기 위하여 떨쳐나선 전국의 근로자들에게 승리의 신심과 무한한 용기를 안겨주었다. 전후 천리마대고조를 일으켰던 그 기세, 그 기백으로 80년대속도를 창조할것을 결의하고 전국의 로동계급에게 호소한 김철의 로동계급은 강철증산으로 우리 당을 받들 억척의 신념과 의지를 안고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강철직장의 용해공들은 땀을 흘린것만큼 강철이 더 나온다고 하면서 증산의 예비를 전로의 수명을 연장하고 로의 만부하, 만가동을 보장하며 출강회수를 늘이는데서 찾았다. 《영광스러운 당중앙은 지금 우리를 80년대속도창조의 앞장에 내세워주고있습니다.우리는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기존공식에 매달릴것이 아니라 우리 당의 정책을 자로 하여 모든것을 재여보고 판단해야 합니다.강철이 많아야 나라가 흥성거리고 당 제6차대회에서 제시된 과업도 수행할수 있습니다.》 《우리 강철로동계급의 보람이야 강철을 더 많이 뽑아내는데 있고 우리의 영예와 위훈도 거기에서 빛나는것이 아닙니까.》 용해공들의 심장에서 우러나온 이 목소리에는 강철로 당을 받들던 전후 천리마대고조시기처럼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 당만을 따르려는 김철로동계급의 신념이 비껴있었다. 용해공들은 전로의 수명을 늘이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리면서 로조작을 과학기술적으로 하고 설비관리, 기술관리를 알뜰히 하면서 용해시간을 최대한으로 줄여 출강회수를 종전보다 3~4회 더 늘임으로써 매일 계획을 1.2배이상으로, 최고 1.5배까지 넘쳐하는 자랑찬 성과를 이룩하였다. 용광로와 전로들, 압연기들에서 이전의 기준을 뛰여넘는 새로운 기록들이 창조되는 속에 김철의 로동계급은 1985년 한해동안에만도 6만t에 달하는 연료를 절약하면서 전해보다 3만 수천t의 선철, 4만t의 강철, 4만 천여t의 압연강재를 더 생산하였다. 온 나라가 공화국창건 35돐을 맞으며 드높은 정치적열의로 들끓고있던 때 굴지의 유색금속광물생산기지 검덕에서는 대규모의 제3선광장을 불과 1년사이에 일떠세우는 눈부신 기적을 창조하였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5~10년이상 걸려야 한다는것을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건설한 검덕의 제3선광장은 우리 당이 펼친 80년대속도창조운동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힘있게 과시하였다. 건설자들의 위훈에 대하여 당시 《로동신문》에는 이렇게 실렸다. 《…1년! 이것은 이곳 선광장건설자들이 보통 말하는 건설기간이다.그런데 이 건설기간을 들여다보면 여기에는 시운전기간, 수만㎡의 구내정리와 수㎞의 고지대의 도로확장공사기간 등이 다 포함되여있다. 이렇게 놓고보면 이곳 건설자들이 수만㎡의 건평을 가진 우람찬 선광장건물들을 일떠세우고 수천대의 기계설비들을 조립하여 오늘과 같은 대선광기지를 건설한 순 공사기간은 8~10개월밖에 안된다.동서고금의 설계력사를 더듬어보면 제3선광장과 같은 규모와 능력을 가진 건설물을 일떠세우자면 설계만 해도 최대한 빨리 하는것으로 보아서 1년이상 걸리는것으로 알려져있다.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있는 큰 선광장들의 건설래력을 들춰보아도 다 그렇다.그런데 우리 건설자들은 설계만 하자고 하여도 빳빳한 바로 이 기간에 세계적규모의 대선광장을 건설하고 시운전을 보장하였으며 당장에 정광을 생산할수 있게, 완전무결하게 건설공사를 해제꼈다.》 이런 기적이 어찌 검덕땅에서만 창조되였겠는가. 룡성의 로동계급은 1만t프레스를 제작하였고 락원의 로동계급은 현대적인 대형산소분리기생산에서 성공하여 대형산소분리기생산과정에는 락원의 로동계급이 당정책을 관철하는 길에서 쉬운 길이 아니라 어려운 길을 자진하여 선택하고 자력갱생, 간고분투한 이야기가 특별한 자랑으로 빛나고있다. 락원의 로동계급앞에는 두 길이 놓여있었다.하나는 우에서 막대한 자재를 해결받고 일부 자재를 남에게 의존하는 길이였고 다른 하나는 우에다 손을 내밀거나 남에게 의존함이 없이 우리에게 있는것을 가지고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산소분리기를 만들어내는 길이였다. 현대공업기술의 첨단에로 비약하는 중요한 과제였으므로 락원이 첫번째 길을 택했다고 하여 나무랄 사람은 없었다.사실 그 길을 권고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그때 락원의 로동계급의 심장속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쉬운 길이 빠른 길이 아니라 힘들더라도 자력갱생, 간고분투하는 길이 빠른 길이다.난관이 두려워 제힘으로 당의 로선과 정책을 관철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무슨 락원의 로동계급이겠는가.쉼없이 전진하고 천가지, 만가지 난관이 앞을 가로막아도 우리 당의 로선과 정책을 우리 힘으로, 우리 식대로 관철하는것이 락원로동계급의 본때이다.》 락원의 로동계급과 기술자들, 일군들은 이런 불같은 심정으로 쉽게 명예와 꽃다발이 차례질수 있는 길이 아니라 모든것을 자체로 해결하면서 난관을 뚫고나가는 어려운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한번에 안되면 열번, 열번 해서 안되면 백번, 천번을 거듭하는 결사의 투쟁을 벌렸다. 락원의 로동계급이 자체로 산소분리기를 만들어내는 길을 개척하였을 때 우리의 청년전위들은 수수천년 백두의 장설과 원시림의 해묵은 이끼에 파묻혀 태고의 정적을 간직해오던 이 나라 북변의 험산준령들, 너무도 산세험하여 좀체로 기차길을 열어주려고 하지 않던 천만산악들에 차굴을 뚫고 철다리를 이어 조국의 새 동맥으로 개통렬차가 지나가게 하였다. 청년돌격대원들과 철도건설자들은 인민의 행복과 후손만대의 번영을 위한 우리 당의 원대한 구상을 하루빨리 실현하려는 혁명적열정으로 강추위와 무더위, 세차게 쏟아지는 눈비를 용감하게 이겨내고 3년 남짓한 기간에 250여리 철길에 수십개의 차굴과 철다리, 수백개의 구조물, 산간지대의 특성에 맞는 다양하고 아담한 10여개의 역사들을 훌륭히 건설하였다. 북부철길건설자들이 북부산악지대에 천지개벽의 력사를 펼치였다면 수도건설자들은 광복거리와 5월1일경기장을 비롯한 260여개 중요대상건설에서 주체조선의 국력과 우리 인민의 불굴의 정신력을 힘있게 과시하고 제2의 평양속도를 창조하였다. 참으로 1980년대는 우리 당의 령도밑에 그 폭과 규모, 내용과 형식, 질과 속도에서 동서고금의 그 어느 력사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대건설의 전성기가 펼쳐진 자랑스러운 년대였다. 당과 《모두다 80년대의 김혁, 차광수가 되자!》, 우리 당이 높이 추켜든 이 혁명적인 구호밑에 일찌기 우리 혁명의 려명기에 심한 병으로 몸을 가누기조차 어려운 조건에서도 당에서 준 과업을 기어이 관철할 결심을 품고 강기슭에 천막을 치고 다리건설전투를 지휘한 강계시의 한 당일군, 위급한 시각에 한몸 서슴없이 내대여 귀중한 혁명동지들과 채탄장을 구원한 안주지구탄광련합기업소 신리탄광 채탄소대장이였던 전재봉동무… 진정 1980년대는 참으로 우리 실생활체험을 통하여 우리 본사기자 김진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