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7월 29일 로동신문
공화국의 기치따라 승리와 번영의 70년 절세위인들의 손길아래 전변의 새 모습 펼친 력사의 땅 서해곡창 황해남도를 돌아보고
당의 현명한 령도밑에 나라의 농업생산에서 기둥이 되여 공화국의 갈피마다에 영광의 자욱을 긍지높이 아로새긴 황해남도.예로부터 곡창지대로 불리웠어도 나라잃은 그 세월에는 농민들의 피눈물이 마를새 없었던 황남땅이 로동당시대에 천지개벽하였다. 《황해남도는 우리 나라의 알곡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곡창지대입니다.》 우리는 절세위인들의 은혜로운 손길아래 전변의 새 모습이 펼쳐진 황남땅의 자랑스러운 력사를 온 나라에 전하기 위해 기행길에 올랐다.
사랑의 생명수 흐르는 물길을 따라
푸른 벼바다 설레이는 전야들과 피줄처럼 쭉쭉 뻗어나간 물길들을 차창밖으로 지나보내며 수양산기슭에 모셔진 《황해남도에서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농사에 큰 힘을 넣어야 합니다 한자한자 새겨볼수록 황해남도가 인민들의 먹는 문제, 식량문제해결에서 큰 몫을 맡아 수행할것을 바라시는 명제비앞에서 쉬이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우리에게 도농촌경리위원회일군은 황해남도의 농사를 하루빨리 추켜세우기 위하여 바쳐오신 이 땅에 새겨진 그리움의 7월과 더불어 끝간데없이 아득히 펼쳐진 전야마다에 철철 넘쳐 흘러드는 사랑의 생명수, 뜨락또르를 비롯한 각종 농기계들을 다루며 당면한 영농전투에 전력을 다하는 농장원들, 즐비하게 늘어선 아담한 농촌문화주택들. 바라볼수록 연백벌에서 벼 정보당 10t을 내면 꼭 다시 오겠다고 하시던 우리 이 땅에 펼쳐진 천지개벽의 력사를 더듬어볼 때마다 흰쌀이 끝없이 쏟아져나오는 벌이라고 하여 연백벌,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이 불러온 그 이름을 과연 어제와 오늘에 나란히 놓을수 있단 말인가. 문득 한장의 그림이 떠오른다.메말라 터진 벌, 볕에 탄 땀흐르는 잔등에 바줄을 감고 가대기를 끄는 농민… 해방전 이 땅의 현실을 그대로 옮긴 그림이다. 연백벌에서도 조상대대로 전해져온 농민들의 소원중의 소원은 물을 마음껏 쓰며 농사를 지어보았으면 하는것이였다.하기에 《용드레벌》과 같이 물때문에 생겨난 가슴아픈 사연들을 담은 지명들은 그 얼마이던가. 우리는 지난 수십년간 광활한 연백벌에 막대한 량의 물을 보내준 구암호로 향하였다. 눈뿌리 아득히 펼쳐진 대인공호수는 바다를 련상시켰다.이곳 일군의 말에 의하면 구암호에서 뻗어나간 물길들의 총연장길이는 연 수십km나 된다고 한다. 가슴에 그들먹이 차오르는 그의 이야기를 듣느라니 구암호를 찾으시여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던 1950년대 한t의 강재, 한푼의 자금이 귀중하던 그때 당중앙위원회는 《모든것을 황해남도에로!》라는 구호를 들었다고, 우리가 도를 도와주자고 달라붙은 이상 다 해결해주자고 하시며 자금과 자재, 로력문제까지 풀어주신 우리 그 크나큰 은정속에 여러개의 관개체계를 형성하는 크고작은 물길들이 생겨나고 대동강과 례성강의 물까지 흘러들어 연백벌을 적시는 하나의 거대한 륜환식관개체계가 생겨나지 않았던가. 물에 대한 연백벌농민들의 세기적인 숙망은 로동당시대에 와서 풀렸다. 하기에 배천군 수원리의 조금옥로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는 물고생이란 말이 옛말로 되였습니다.우리 어디 이뿐인가.당의 웅대한 대자연개조구상에 의해 최근에는 황해남도물길 1단계공사가 성과적으로 완공되여 장수호로부터 해주시, 벽성군, 옹진군에 이르는 대규모자연흐름식물길이 생겨나 1만 수천정보의 드넓은 땅에서 높고 안전한 수확을 거둘수 있는 또 하나의 밝은 전망이 열리게 되였다.오늘은 황해남도물길 2단계공사가 힘있게 벌어지고있다. 우리는 흥분된 마음을 안고 김제원농민영웅이 배출된 재령군으로 향하였다. 두벌농사포전들이였다.지난날같으면 밭이 아닌 논판에서 밀보리가 설레이고 감자꽃이 필수 있다고 그 누가 상상이나 해보았겠는가. 《봄과 가을이 동시에 펼쳐진 이런 희한한 현실은 우리 만나는 사람마다 하는 말이다.무연한 논판에서 모를 내는 봄과 누렇게 익은 밀보리를 거두어들이는 가을이 함께 있으며 대홍단에 피던 감자꽃이 하얗게 피고 벼포기들이 푸른 주단을 펼쳐놓는것이 오늘날 재령벌만이 아닌 황남땅의 현실이였다. 우리는 이 땅에 또다시 펼쳐질 풍요한 가을을 눈앞에 그려보며 전국의 본보기농장의 하나로 자랑높은 재령군 삼지강협동농장으로 향하였다. 농장원모두가 《농사박사》로 자라난것이 농장의 큰 자랑이라고 하는 이곳 사람들의 기쁨에 넘친 이야기는 또 얼마나 깊은 여운을 남기는것인가. 그전날 보탑을 잡을줄 아는것을 큰 재간으로 여겼던 사람들, 처음 본 뜨락또르앞에 풀단을 놓았다는 사람들의 자손들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체계와 농업과학기술보급실, 작업반들에 생겨난 농업과학기술선전실의 덕으로 현대농업과학기술을 소유하고 농기계들을 능숙하게 다룰줄 아는 농업기술인재로 자라났다. 농촌핵심대렬이 점점 줄어든다는 안달수영웅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인민군대에서 단련된 핵심을 농촌에 보내야 한다고, 청년핵심들이 앞장서서 농촌의 사상, 기술, 문화혁명을 힘있게 내밀어야 한다고 간곡히 가르쳐주신 우리 정녕 황남땅의 모든 벌들이 천지개벽되였다. 해방전까지만 해도 20여개의 저수지, 관개면적은 4만여정보밖에 안되던 황해남도에 오늘은 연백호를 비롯한 근 300개의 대인공호수와 저수지들이 생겨나 수십만정보의 포전들에 생명수가 흘러들고있다. 진정 이 땅의 협동전야마다 피줄처럼 뻗어간 물길을 따라 흐르는 관개수는
만복이 꽃펴나는 사회주의대지
황남땅에 펼쳐진 변혁의 력사를 론의할 때 도안의 인민들이 오늘도 감회깊이 추억하는 대규모토지정리를 떼여놓고 말할수 없다. 우리의 기행길은 그 옛날 물우에 뜬 쪽박과도 같은 오막살이집들이 논판가운데 널려있던 이곳에 오늘은 문화주택들이 키돋움하며 일떠섰고 종합적인 편의시설을 갖춘 오국원과 상점, 탁아소와 유치원, 병원과 학교가 즐비하게 늘어서서 그대로 도시를 방불케 하였다. 어러리벌에 펼쳐진 전경은 또 얼마나 장쾌한가. 눈뿌리 아득히 펼쳐진 푸른 벼바다, 일매지게 반듯한 논벌과 자를 대고 그은듯 직선직각으로 지은 논두렁들과 물길들, 잘 정리된 포전도로를 따라 달리는 뜨락또르들과 전야를 누벼가는 농기계들은 볼수록 감탄을 자아냈다. 이 땅이 생겨 수수천년이 흘러갔지만 그 언제 이런 희한한 풍치가 펼쳐진 일이 있었던가. 여기 사람들이 옛날 지주들이 와서 자기 땅을 찾으려고 해도 찾지 못할거라고 말한다는 한 일군의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찾지 못하지, 찾지 못할거요라고 하시며 뙈기논이 얼마나 많았으면 삿갓밑에 논 한배미가 가리워져있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생겨났다는 황남땅, 호미농사, 가대기농사의 력사에 종지부를 찍고 기계로 마음껏 농사를 지을수 있도록 이 땅에 대규모기계화군단을 보내주신 우리 여기에 이런 수자가 있다. 짧은 기간에 10만여정보의 황해남도토지정리 결속. 이 가슴벅찬 사실에는 이 땅에 천지개벽의 새 력사를 안아오시기 위해 바치신 우리 그 애국헌신의 길이 있어 로동당시대에 사회주의땅답게 변모된 드넓은 규격포전들에서 우리의 발걸음은 예로부터 계수나무가 있는 남쪽동네라고 불리웠다는 계남, 막바지인생들이 자기들도 잘살게 해달라고 빌었다는 가슴아픈 전설을 안고있는 이곳이 언제부터 온 나라 인민이 다 아는 정다운 고장으로 되였던가. 정말 볼만 하였다.드넓은 부지에 규모있게 들어앉은 축산분장들이며 계단식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집짐승우리들과 훌륭하게 건설된 젖가공공장들, 푸른 숲을 배경으로 산기슭에 아담하게 일떠선 문화주택들은 황홀한 한폭의 그림같았다. 고난의 행군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 풀죽을 먹으면서도 인적없는 산골에 수십km의 방목길을 닦고 드넓은 풀판을 조성하여 요란한 목장을 건설한 황남땅인민들의 헌신의 자욱을 더듬어보느라니 한걸음한걸음이 서슴어졌다. 온 도가 떨쳐나 해제낀 목장건설, 이것은 단순한 건설이 아니라 황해남도사람들의 사상정신과 투쟁기풍을 완전히 새롭게 변화시킨 전투였다. 계남목장만이 아니였다. 당의 축산정책의 정당성을 뚜렷한 축산물생산성과로 확증해가는 자랑찬 현실을 은천군 량담리를 비롯한 도안의 농촌마다에서 목격할수 있었다. 어찌 축산자랑뿐이겠는가. 황남땅은 사람도 산천도 천지개벽하였다.
과일향기, 바다향기 넘치는 곳에서
과일군, 스치는 바람결도 절세위인들의 크나큰 은덕을 전해주는 사연깊은 력사의 고장을 밟으니 감회도 새로왔다. 과일군혁명사적관의 홀에 모셔진 한상의 영상사진문헌앞에 서니 쉬이 발걸음을 옮길수 없었다. 가지마다 탐스런 사과열매 주렁진 포전에 서시여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는 그리도 무한한 행복속에 잠겨계시던 우리 끔찍이도 많이 달렸다고, 이것이야말로 나라가 흥할 징조라고, 지금껏 쌓였던 피로가 씻은듯이 사라진다고 하시며 우리 열매는 저절로 무르익지 않는다. 과일군의 사과가 그리도 빨갛고 탐스러운것이 어찌 자연의 혜택이라고만 하겠는가. 바로 그 한알한알에 인민을 위해 바치신 전쟁이 한창인 때 승리할 조국의 래일을 내다보시고 과수원조성사업을 미룰수 없는 중대사로 내세우신 우리 과일군, 그 지명자체가 우리 연구소복도에 인공지구위성이 그려져있는것을 보시며 왜 저 그림을 그렸는가고 물으신 우리 조국의 국력의 상징이기때문에 그려놓았다는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국력의 상징이라.내 생각에는 저 그림대신 한그루에 사과 300알 달린 나무를 그려놓았으면 더 좋을것 같소.그게 핵폭탄보다 더 위력하지 않소.… 사과 300알과 핵폭탄! 정녕 그래서였다. 우리 우리는 그야말로 장쾌한 광경이 펼쳐졌다.굴지의 100리청춘과원이 그대로 한가슴에 안겨오는듯 끝없이 줄지어 늘어선 과일나무들, 룡수포해수욕장, 멋진 울타리에 감싸여 솟아오를듯이 맵시나게 서있는 농촌문화주택들… 눈가에 어려오는 《내 나라 제일로 좋아!》라는 글발처럼 봄이면 과일꽃향기 넘치고 가을에는 오곡백과 주렁지는 예가 바로 사회주의무릉도원이 아니랴. 과일군을 떠난 우리가 부포바다가에 이른것은 석양노을이 물면을 가벼이 어루쓸던 저녁녘이였다.눈뿌리 아득히 펼쳐진 수백정보의 양식장을 배경으로 전마선들을 거느린 발동선들이 련속 포구로 들어서고있었다. 5개월 남짓한 기간에 년간계획수행의 강행돌파를 위해 이곳 일군들과 로동계급이 바다우에서 벌렸던 증산돌격전의 화폭은 볼수 없다.하지만 마치도 무수한 돌격전을 치른 함선들처럼 다스러진 전마선들의 배전들과 노들, 해볕과 해풍에 검실검실해진 양식공들의 강인한 모습은 그 나날의 모든것을 다 말해주고있었다. 사업소지배인 여만현동무의 이야기가 남긴 여운은 깊었다. 전후 이곳에 다시마종자를 보내주시고 우리 나라의 특성에 맞는 양식방법을 찾아내도록 세심히 이끌어주시여 다시마가 서해에 널리 퍼져 인민생활향상에 이바지하도록 하여주신 그 은혜로운 사랑의 손길아래 해방직후만 해도 양식장이란 말조차 없었던 이곳에 대규모양식기지가 일떠서 오늘은 바다나물이 쏟아져나오고있으니 어찌 자랑인들 크지 않으랴. 다수확의 기쁨 한껏 넘친 바다가양식장과 현대적인 고기배들로 들어찬 수산사업소들을 볼수 있고 《바다 만풍가》의 노래속에 인민들에게 기쁨을 더해주는 사회주의바다향기를 도안의 어느 바다기슭에 가보아도 느낄수 있다. 인민의 기쁨, 행복의 웃음소리가 가득 차넘치고 한생토록 떠나고싶지 않은 사랑의 대지, 영원한 삶의 보금자리가 바로 우리 조국의 한부분-꽃피는 황남땅이였다.
끝없이 이어진 기행길을 마치고 수양산마루에 오르니 해주애육원과 육아원, 해주초등학원과 중등학원, 바다물을 리용하는 해주시야외물놀이장, 해주가방공장 등 도소재지안의 모든것이 아름다운 바다경치와 한데 어울려 안겨왔다.저 멀리 재령벌과 연백벌, 피줄처럼 뻗어나간 대륜환선관개체계, 사회주의조선의 땅답게 변모된 기계화포전들, 100리청춘과원, 바다가양식장들과 룡매도간석지건설장이 못 잊을 수많은 사연을 안고 한눈에 비껴들었다. 진정 그 어디를 둘러보아도 절세위인들의 현명한 령도의 자욱자욱이 뜨겁게 어려있는 력사의 땅. 공화국의 70년력사와 더불어 천지개벽된 황남땅은 나라의 믿음직한 알곡생산기지로, 더욱 살기 좋은 고장으로 그 이름 길이 전해갈것이다. 글 본사기자 전명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