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7월 16일 로동신문

 

반드시 파헤쳐야 할 《형제복지원》사건

 

남조선에서 《형제복지원》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날로 높아가고있다.

사건피해자들은 지난해 12월부터 《국회》앞에서 진상재조사를 위한 《특별법》제정을 요구하여 롱성투쟁을 벌리고있다.

언론들은 《아직도 진상이 드러나지 않은 부산형제복지원사건》, 《유태인대학살을 떠올리는 사건》 등으로 《형제복지원》사건에 대해 상세히 보도하고있다.

《형제복지원》사건은 1970년대 중반기 박정희역도일당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다.

남조선의 《KBS》방송은 《형제복지원》사건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1970년대 중반기에 부산에 수용시설이 하나 들어섰다.거리를 떠돌던 부랑인들을 수용하려고 만든 《형제복지원》이다.

그러나 실상은 《복지원》이라는 이름과는 정반대였다.

불법감금, 무자비한 폭행, 강제로동, 약물강제투약, 성폭력까지 만연하였다.

《형제복지원》에서 12년동안 사망한것으로 알려진 사람만도 513명이나 된다.

1975년부터 《형제복지원》에 끌려간 사람은 모두 2만여명이다.누가 얼마만큼 인권유린을 당했는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은 그래서 필요하다.

당시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온 최승우는 《전두환정권은 올림픽을 앞두고 길거리환경정화정책을 내놓았다.그 방법은 부랑인을 가두는것이였다.》고 하면서 가방에 있는 빵이 화근이 되여 《빵도적》으로 몰리워 경찰에 의해 《복지원》으로 끌려가 수년동안 륜간을 당하였다고 성토하였다.

부산진역에서 오빠를 기다리다 붙잡혀간 박순이도 《5시간동안 거꾸로 매달려있었다.떨어지면 짓밟아주었다.》고 증언하였다.

당시 《형제복지원》사건의 참혹한 실상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신민당》소속 《국회》의원은 조사보고서에 이렇게 썼다.

구타와 구금, 암매장에 대해 유령처럼 떠도는 소문은 유태인대학살을 떠올렸다.

급하게 조사단을 꾸려 《복지원》을 찾아갔다.성벽같은 《복지원》담장너머에 있는 원생들의 모습은 참혹하였다.울부짖는 모습이 사람의 모습이 아니였다.막사들이 한 20개정도 있었는데 람루하기 짝이 없었다.

재조사를 벌리기로 하였지만 전두환《정권》이 추가조사를 막았다.

집이 없고 가난하거나 육체적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쓸모없는 인간》, 《2등시민》으로 락인하고 그들에 대한 감금과 사회적격리를 통치방법으로 삼은 《형제복지원》사건은 군사깡패도당의 반인민적죄행을 만천하에 폭로하고있다.

특히 전두환파쑈도당은 광주인민봉기와 반《정부》투쟁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된 애국적인 주민들과 청년들을 《죽음의 수용소》로 알려진 《형제복지원》에 가두어놓고 갖은 고문을 다하였다.

《형제복지원》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주모자를 처벌하는것은 력대 보수《정권》의 적페를 청산하고 민중이 주인된 새 사회를 일떠세우기 위해 투쟁하는 남조선인민들의 응당한 요구이다.

【조선중앙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