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7월 6일 로동신문

 

온 겨레가 안긴 민족단합의 위대한

 

온 겨레의 가슴속에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의 정이 더욱 뜨겁게 굽이치는 7월이다.

지금 우리 인민들은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분렬된 강토, 갈라진 겨레를 두고 그리도 마음쓰시며 민족의 단합과 조국통일을 위해 온갖 심혈을 기울여오신 어버이수령님의 자애로운 영상을 가슴뜨겁게 되새겨보고있다.언제나 민족을 우위에 놓으시고 민족적량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과거를 탓하지 않으시며 한없이 넓은 품에 안아 믿음과 사랑을 주시고 조국통일을 위한 애국의 길에 내세워주신 절세의 위인이 바로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조국애와 민족자주정신을 민족적단결의 기초로 삼으시고 사상과 리념, 정견과 신앙의 차이를 초월하여 모든것을 조국통일위업에 복종시키는것을 민족대단결의 원칙으로 내세우시였으며 넓은 도량과 아량있는 포옹력으로 통일을 지향하는 모든 사람들을 과거를 불문하고 통일애국의 길에 나서도록 이끌어주시였다.》

돌이켜보면 어버이수령님의 위대한 인덕정치, 광폭정치에 매혹된 해내외의 수많은 동포들이 잘못된 과거와 결별하고 그이의 품에 안겨 조국과 민족을 위한 재생의 길을 걸으며 영생의 삶을 지니게 되였다.그들중에는 지난날 동족대결의 일선에 섰던 사람들도 있고 자산가나 종교인도 있다.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당파와 정견, 신앙의 차이, 과거여하를 전부 불문에 붙이시고 그들을 사랑의 넓은 품에 안아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민족대단결사상과 광폭정치를 받들어 불미스러운 과거와 결별하고 진정으로 민족을 위한 길에 나선 수많은 동포들가운데는 최덕신선생도 있다.

최덕신으로 말하면 남조선에서 군단장을 거쳐 외무부 장관까지 한 사람이였다.그런 그가 늦게나마 평양을 방문하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최덕신이 조국에 오면 먼저 아버지생각을 할것이라고 하시면서 아버지의 묘부터 찾아가보도록 하시였다.

최덕신선생은 소나무가 우거진 명당자리에 아버지의 묘가 자리잡고있는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그는 생전에 천도교인이였고 민족주의자였던 자기 아버지에게 이처럼 높은 영예를 주고 내세워주신 어버이수령님의 크나큰 사랑과 은정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최덕신선생을 만나주신 자리에서 부친인 최동오선생은 《화성의숙》 숙장으로서 독립운동도 하고 해방후에는 평화통일을 위해 공헌한분이였다고 하시면서 《화성의숙》시절에 숙장선생댁에 종종 찾아가시였다고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최덕신은 지울수 없는 죄의식으로 하여 민족앞에 머리를 들수 없고 주석님을 대할 면목이 없다고 말씀을 올리였다.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과거는 어디까지나 과거이라고 하시면서 우리와 손을 잡고 통일을 위하여 한몫하여야 하겠다고 고무해주시였다.

한없이 넓은 도량과 포옹력, 고매한 덕망으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그 누구와도 손잡고나가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뜻에 이끌린 최덕신선생은 통일애국의 길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칠 결심을 다지였다.사회주의조국의 품에 안긴 최덕신선생은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위원장으로 사업하면서 조국통일위업에 마지막까지 헌신하였다.

어찌 그뿐이랴.곡절많은 운명의 길을 걸어온 최홍희선생도 위대한 수령님의 애국의 의지를 받들어 민족단합의 대하에 뛰여든 인사이다.

주체68(1979)년 5월 12일은 최홍희선생에게 있어서 세상에 두번다시 태여난 영원히 잊을수 없는 날이였다.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일에 그처럼 바쁘신 가운데서도 조국을 방문하고있던 최홍희선생을 몸소 만나주시였다.

현관에까지 나와 기다리고계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선생이 멀리 해외에서 조국을 찾아온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열렬히 환영한다고 하시면서 우리 민족자체의 힘으로 조국을 통일해야 한다는데 대해 강조하시고 해외의 민주인사들이 조국통일3대원칙을 고수하기 위한 투쟁에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최홍희선생은 남조선군부의 요직에서 활약하며 민족을 반대하는 역류에 몸을 실었던 자기를 믿어주고 조국통일의 성스러운 길에 내세워주시는 수령님의 하해같은 사랑과 믿음에 솟구치는 감격을 금치 못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조국을 방문하는 최홍희선생과 그의 부인을 거듭 만나주시고 민족적량심과 애국적재능, 태권도로 우리 민족의 존엄을 떨치고 나라의 통일에 기여하려는 그의 마음을 누구보다 귀중히 여기시며 선생의 사업을 적극 뒤받침해주고 떠밀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그 자애로운 손길에 떠받들려 최홍희선생은 태권도로 민족의 기상을 떨치며 통일애국의 길에 뚜렷한 생의 흔적을 남길수 있었다.

재미교포 김성락목사도 사상과 리념, 정견과 신앙의 차이를 뛰여넘어 애국을 지향하는 각계각층의 모든 동포들을 대하같은 넓은 품에 안아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인덕정치에 매혹되여 민족을 위한 참된 길에 들어섰다.

주체70(1981)년 7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양을 방문한 김성락목사를 만나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선생과 같은 애국지사를 만난것이 기쁘다고 하시며 그가 다니던 평양숭실중학교에 애국심이 높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그때 평양숭실중학교출신들이 반일운동에 많이 참가하였다고 회고하시였다.계속하시여 그이께서는 해외에서 그가 벌리고있는 애국적활동에 대하여 분에 넘치는 평가를 주시면서 조국통일문제의 절박성과 우리 당의 조국통일방도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주시였다.

목사는 애국애족의 의지가 뜨겁게 흘러넘치는 어버이수령님의 교시와 그이의 한없이 넓은 도량, 고매한 인품에 탄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를 위하여 친히 오찬을 마련해주시고 평생을 지켜온 신자의 도리를 어겨서야 되겠는가고 하시면서 식사전에 기도를 드리도록 은정깊은 사랑을 안겨주시였다.

민족의 어버이의 위인적풍모에 접하고 격정을 금할수 없었던 김성락목사는 여생을 수령님의 위대한 통일애국의 뜻을 따르는 길에 아낌없이 바칠 굳은 결의를 다지였다.

지난날 인생의 옳바른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어버이수령님의 품에 안겨 진정한 애국을 깨닫고 민족대단결의 거세찬 흐름에 뛰여든 사람들을 다 꼽자면 끝이 없다.정녕 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위한 위대한 수령님의 인덕정치, 광폭정치가 있었기에 해내외의 각계각층 동포들이 통일애국의 성스러운 길에 나설수 있었으며 조국통일의 주체는 날로 더욱 강화될수 있었다.

민족대단결과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 쌓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업적은 우리 민족사와 더불어 영원토록 빛을 뿌릴것이다.

최진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