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7월 18일 로동신문

 

전화의 나날에 남녘땅을 진감한 공화국의 예술폭풍

1950년 여름의 격동적인 나날들을 더듬으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20세기의 가장 걸출한 수령이시며 절세의 위인이시다.》

우리 공화국의 력사에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인 1950년 여름 남녘땅을 진감한 공연열풍에 대한 이야기가 새겨져있다.

1950년 6월 28일 리승만괴뢰역도의 학정밑에 신음하던 서울시민들은 침략자들에 대한 즉시적인 반공격을 개시한 인민군대에 의하여 진정한 해방의 날을 맞이하게 되였다.이와 더불어 서울에서는 세계 그 어느 전쟁사에도 없는 력사적인 화폭들이 펼쳐지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서울이 해방된것과 관련하여 력사적인 축하문 《서울시 해방에 즈음하여 전국인민들과 인민군대와 서울시민들에게 보내는 축하문》을 발표하시여 인민군장병들과 북과 남의 인민들의 가슴속에 승리의 환희를 한껏 분출시켜주시였다.남녘인민들은 서울해방전투를 인민들의 생명재산에 대한 피해를 최대한 줄일수 있도록 치밀하게 조직해주신 이야기를 비롯하여 우리 수령님에 대한 존경과 신뢰의 정이 담긴 이야기를 나누며 오래간만에 마음껏 웃었고 거리를 활보하였다.

마치도 1945년 8월에 김일성장군환영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서울역광장에 구름처럼 모여 어버이수령님의 조국개선을 기다리던 그날의 광경이 다시 펼쳐진것만 같았다.이러한 민심을 반영하여 남녘의 예술인들은 소규모의 공연을 진행하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 서울시민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파견해주신 조선인민군협주단을 비롯한 군복입은 예술인들을 만나는 경사를 맞이하게 되였다.하나같이 름름한 군복입은 예술인들을 맞이한 서울시내는 활기에 넘치였으며 공연관람열기는 여름날의 더위처럼 달아올랐다.

공연의 첫막이 오르던 그날 무대에 나선 소개자의 인사말은 온 관람석을 격동시키였다.

《서울시민 여러분!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였습니까.우리들은 지난 5년간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장군님을 높이 모시고 새 조선을 일떠세우는 보람찬 투쟁을 벌리면서 어느 한시도 여러분들을 잊은적이 없었습니다.…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해방된 서울시민 여러분들을 위한 경축공연을 진행하라고 우리들을 보내주시였습니다.》

순간 장내에는 폭풍같은 환호성이 터져올랐으며 오래도록 박수소리가 울려퍼지였다.공연은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로 시작되였다.배우들도 관람자들도 뜨거운 눈물속에 혁명송가를 불렀다.이날 공연은 관중들의 아낌없는 절찬을 받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공화국남반부에서 제일 크다는 어느 한 교향악단의 성원은 50명정도였고 다른 예술단체들은 훨씬 더 적었다.그런 예술단의 공연만 보아온 서울시민들은 100여명의 군복입은 예술인들이 출연하는 공연을 보고 찬탄과 부러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출연자들과 관람자들이 한형제처럼 어울려 시간가는줄 모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때 남녘의 한 연주가는 협주단의 애젊은 트럼베트연주가의 손을 부여잡으며 쏘련의 어느 학교에서 누구한테 배웠는가고 물었다.

그때 협주단의 연주가는 《쏘련이라니요? 저는 인민군협주단에서 예술을 배웠습니다.》라고 대답하여 장내에 화기에 넘친 웃음판을 펼치기도 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파견해주신 군복입은 예술인들의 공연은 남녘땅을 뒤흔들었으며 우리 예술인들의 모습은 서울시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였다.

1950년 여름은 진정 해방된 서울시민들에게 새라새로운 기쁨을 안겨준 잊을수 없는 낮과 밤이였다.서울이 해방되여 얼마후 시내에는 큰 규모의 서울시해방경축방문단이 도착하였다는 소문이 나래가 돋친듯 파다하게 퍼져나갔다.

이 방문단에는 해방전부터 북과 남의 인민들속에 잘 알려져있는 예술인들과 남녘땅에 고향을 둔 예술인들이 있는것으로 하여 인민들의 각별한 관심을 모았다.하기에 서울시해방경축방문단의 공연과정에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류다른 화폭들이 펼쳐지였다.그중에는 남쪽에서 오래동안 연극활동을 하다가 해방후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긴 한 연극인과 그의 어머니와의 극적인 상봉도 있었다.극장무대에서 어머니와 상봉하게 된 연극인은 관람석에 있는 친우들과 인민들을 향해 《우리 장군님께서는 오랜 세월 억눌리고 짓밟히며 살아온 남녘동포들에게 참된 인민의 예술을 보여주시기 위해 이렇게 우리 경축방문단을 이곳으로 보내주시였습니다.》라고 절절히 말하였다.

이들은 여러편의 극작품들을 무대에 올리였으며 예술영화 《내 고향》과 기록영화들을 상영하였다.

희망을 잃고 살던 서울시민들은 이를 통하여 동포애의 뜨거운 정을 받아안았으며 앞날에 대한 신심을 가다듬게 되였다.

해방된 서울시민들을 위하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사랑과 정은 끝이 없었다.어버이수령님께서는 대외공연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두고 조국으로 돌아온 조선예술단도 서울에 파견해주시였다.중앙예술단체들의 재능있는 성악가들과 연주가, 무용가들로 구성된 100여명의 예술단은 서울에서 본격적인 공연활동을 벌리였다.이들은 공장지구에서도, 인민군후방병원의 야외무대에서도 공연을 진행하였다.

서울시민들은 외국을 방문했던 예술단이 해방지역에 나와 인민들을 찾아다니며 공연하는 모습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국가를 대표하는 예술인들을 그것도 포연이 채 가셔지지 않은 서울에서 직접 만나고 그들의 공연을 보게 된것은 시민들로서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행운이고 기쁨이였다.그들은 나라가 생겨 처음으로 자체의 민족예술단을 꾸려가지고 대외에 나가 조선의 예술을 크게 떨치였다는 소식도 감격스러운데 그런 예술단이 서울에 왔으니 이것이야말로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께서 남녘인민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잘 보여준다고 흥분된 심정을 토로하였다.서울에서 공연한 예술인들은 비단 이들만이 아니였다.

서울에서 진행한 우리 예술인들의 공연활동은 인민군군인들에게 커다란 힘을 주었다.해방된 남녘땅인민들은 자기들의 고장에도 공화국북반부의 예술인들이 올수 있다며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인민군군인들과 남녘인민들의 마음을 헤아리시여 우리 예술인들을 공화국남반부의 각지에 파견하도록 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전쟁을 체험해보아야 진짜예술, 싸우는 조선의 예술을 창조할수 있다고 창작가, 예술인들을 고무해주시였으며 그들의 활동방향도 가르쳐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기대를 안고 예술인들은 공화국남반부의 곳곳으로 달려나갔다.어느 한 소편대는 행군길에서 극작품을 창작형상하여 인민군군인들앞에서 공연을 진행하였으며 또 어느 한 소편대는 토지를 분여받은 남녘의 농민들앞에서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힘차게 불러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였다.

남녘의 그 어디서나 인민들은 불멸의 혁명송가를 합창하였으며 남녘인민들에게 공화국북반부인민들과 꼭같은 참된 삶을 안겨주시는 어버이수령님께 삼가 고마움의 인사를 드리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파견해주신 우리 예술인들의 공연에서 또 그들의 높은 정신세계에서 누구보다도 커다란 충격을 받은것이 남녘의 창작가, 예술인들이였다.

하기에 공연활동이 진행되는 과정에 남녘의 창작가, 예술인들속에서는 인민군대입대를 탄원하는 성원들이 계속 늘어나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남녘의 예술인들의 지향과 열망을 귀중히 여기시여 그들에게 참된 삶의 길을 열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는 남녘의 예술인들이 진정으로 조국과 인민에게 복무하는 예술인으로 영예로운 길을 걸을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들에게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하여 1950년 여름 서울에서는 남녘의 애국적인 예술인들이 인민군대에 입대하는 감격스러운 화폭이 펼쳐지였다.그들은 그후 전쟁승리를 위하여 불비쏟아지는 전선에서 예술활동을 진행하였으며 그 나날에 정신육체적으로 성장하고 단련되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의 품에 안긴 예술인들은 그후 주체문학예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보람찬 투쟁에서 창조적재능을 활짝 꽃피웠다.

그들가운데서는 높은 국가수훈자도 배출되였고 인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창작가, 예술인들도 나왔다.

1950년 여름은 우리 공화국의 력사에서 순간과도 같다.허나 그 나날은 어버이수령님의 대해같은 민족애를 길이 전하는 잊을수 없는 여름으로 영원히 전해지게 되리라.

본사기자 차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