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7월 22일 로동신문

 

만민을 경탄시킨 절세위인의 고결한 인품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력사와 인류앞에 거대한 공적을 쌓으신 위인중의 위인이실뿐아니라 이 세상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고결한 인품을 지니신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혁명가적풍모에 있어서나 인간적풍모에 있어서나 그 누구도 견줄수 없는 위인중의 위인이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평생 수많은 외국의 벗들과 우의를 두터이하시고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그들속에는 유명한 정치가, 뛰여난 군사가, 저명한 작가 등 이름을 남긴 사람들도 있고 평범한 사람들도 있다.

벌가리아의 와씰까 니끼포로바녀성도 그들중의 한사람이다.그가 우리 나라와 인연을 맺게 된것은 조선전쟁때부터였다.

당시 벌가리아인민은 창건된지 얼마 안되는 우리 공화국이 제국주의련합세력과 전쟁을 치르고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인민을 물심량면으로 지원하였다.그때 벌가리아의 수도 쏘피아의 어느 한 구역에서 녀성일군으로 사업하던 니끼포로바는 살림이 넉넉치 못한 형편이였지만 결혼식때에 장만하였던 옷까지 서슴없이 팔아 우리 나라에 보낼 원호물자를 마련하였다.그는 우리 나라의 전재고아들을 맡아키우는 사업에서 누구보다 헌신적이였다.

어린 나이에 전쟁의 참화로 부모들을 잃고 산설고 물설은 이국땅에 온 조선의 어린이들을 친혈육의 정으로 키우려고 밤낮없이 뛰여다니였으며 그들에게 아낌없는 정성을 기울이였다.어려서부터 제국주의자들때문에 험난한 인생의 고초와 설음을 겪어야 했던 유년시절의 추억이, 파쑈의 발굽밑에서 전쟁의 불행과 고통을 강요당한 벌가리아녀성들의 피눈물나는 인생체험이 그로 하여금 우리 나라 어린이들에게 남다른 사랑과 열정을 쏟아붓게 하였다.또한 그는 전선에서 소환되여 자기 나라에 온 우리 류학생들을 성심성의로 돌봐주었다.우리 나라 류학생들과 벌가리아사람들속에서 어머니로 정답게 불리울 때마다 그는 공산당원으로서, 녀성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뿐이라고 말하군 하였다.

이런 그를 내세워주신분은 위대한 수령님이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벌가리아를 방문하시였을 때 니끼포로바와 그의 가족을 친히 만나주시고 기념사진도 찍어주시며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사랑의 선물까지 안겨주시였다.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니끼포로바와 그의 가족은 우리 나라를 위하여 공로를 세운 사람들이라고, 우리들은 서로 다른 나라에서 살고있지만 사실상 한집안식구와 다름없다고 하시면서 조선을 방문할수 있도록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추억이 인생의 가장 소중한것으로 가슴속에 자리잡고있은 그였기에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일을 맞으며 도서 김일성조선과 더불어 60년》을 세상에 내놓았다.책에서 그는 위대한 수령님을 이 세상 그 누구도 견줄수 없는 고매한 덕망과 넓은 도량, 뜨거운 인간애를 지니신 대성인이시고 만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라고 높이 칭송하였다.

그는 도서의 마감에 이렇게 썼다.

《이 글을 여기서 마치려 하지 않는다.한것은 김일성주석은 진정 태양과 같은분이시여서 그이의 위인적인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나의 글이 너무도 미숙하기때문이다.나의 인생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내가 이제 한생의 인연을 맺은 김일성조선을 위하여 할수 있는 일은 내 운명의 구세주이신 김일성주석에 대하여 한자라도 더 써서 세상에 길이 전하는것이며 그것으로 하여 사회주의건설에 떨쳐나선 조선인민에게 조금이라도 고무적힘을 보태주는 그것뿐이다.》

그뿐이 아니다.

몽골 전 조선전재고아원 직원 오쏘르쑤렌긴 체르마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베풀어주신 뜨거운 사랑을 받아안은 평범한 사람이다.1952년에 조선의 전재고아들을 키우게 되면서부터 우리 나라와 인연을 맺게 된 그는 주체45(1956)년 7월 처음으로 위대한 수령님을 몸가까이 뵈옵고 그이의 자애로운 인품에 완전히 매혹되였다.

그때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에 대한 력사적인 방문에 이어 몽골을 국가방문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긴장한 일정과 겹쌓인 피로에도 불구하고 험한 초원길을 헤치시며 전재고아들이 있는 곳을 찾으시였다.전쟁의 불길속에서 떠나보내신 고아들이 보고싶으시여 그 멀고 외진 곳을 찾으신 그이께서는 울면서 달려와 옷자락에 매달리는 그들을 한품에 안으시고 잘 있었는가, 너희들이 아버지, 어머니생각을 할것 같아 내가 왔다고, 이제부터 내가 너희들의 아버지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그러시고는 아이들의 손목을 잡으신채 침실도 돌아보시고 식당에서 그들이 먹는 음식도 맛보아주시였으며 예술소품공연도 보아주시였다.헤여지실 때에는 그들을 두고 차마 걸음을 떼지 못하시며 조선의 간장과 된장을 먹고싶다는 그들의 소박한 소원을 들어주시겠다는 약속도 하시였다.

이 모든 광경을 목격한 체르마녀성은 위대한 수령님은 만물을 키우고 따사로움을 주는 태양과 같은분이시라는것을 절감하였다.그후 어버이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식료품 등을 받아안고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그는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더 잘 보살펴주리라 마음다지고 성심성의를 다하였다.

그때로부터 3년후인 주체48(1959)년 6월 다 자란 전재고아들을 인솔하고 우리 나라를 방문한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접견을 받고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주체77(1988)년 6월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다시 몽골을 친선방문하시였다.그때 한 일군으로부터 1950년대 조선전재고아들을 맡아키운 몽골녀성이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뵙고싶어한다는 보고를 받으신 그이께서는 매우 반가와하시며 긴장한 일정도 뒤로 미루시고 체르마녀성과 그의 딸을 친히 만나주시여 또다시 대를 두고 길이 전할 기념사진을 찍어주시였다.

주체77(1988)년 한해가 다 저물어가던 12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일군을 부르시여 자신께서 몽골을 방문하였을 때 전쟁시기 우리 나라의 전재고아들을 돌봐주던 오쏘르쑤렌긴 체르마와 그의 딸이 나를 찾아왔댔는데 시간이 없어서 오래 만나지 못했다고, 그래서 그때에 우리 나라에 와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한 일이 있다고 하시면서 새해 1월 1일을 앞두고 그를 딸과 함께 초청할데 대하여 이르시였다.

바로 이렇게 되여 우리 나라를 방문한 체르마녀성과 그의 딸은 어버이수령님의 세심한 은정속에 그이를 모시고 진행하는 예술공연을 관람하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그리고 우리 나라의 이름난 공장과 농촌, 학교를 비롯하여 여러 대상들도 참관하였다.

그러던 주체78(1989)년 1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그들모녀를 불러주시였다.그이께서는 해빛같이 환하신 웃음을 지으시고 그들을 한집안식구처럼 대해주며 기념사진도 찍어주시고 훌륭한 전우이라고 크나큰 믿음도 안겨주시였다.그러시고는 그들에게 우리 나라를 자기 집처럼 생각하고 자주 오라고, 우리에게 페를 끼친다는 생각은 하지 말고 자주 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이것은 인자하고 자애로운 인품을 지니신 우리의 어버이수령님께서만이 펼치실수 있는 감동적인 화폭이다.

정녕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태양같은 천출위인이시기에 오늘도 세계 진보적인민들은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업적과 고결한 인품에 대하여 가슴뜨겁게 추억하고있는것이다.

정원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