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8월 14일 로동신문
론평 언제까지 《평화》간판으로 세계를 기만하려는가
해마다 패망일을 맞는 일본의 감정은 괴로울것이다. 1945년 8월의 패전이래 73년간 하루같이 파쑈전범국의 흉상을 털어버리고 이른바 《평화국가》, 《정상국가》의 새로운 신분을 얻어보려고 모지름을 써온 일본이다. 이로부터 전후 일본에 대외정치적으로 가장 많이 소요된것이 있다면 《평화》라는 용어일것이다. 《평화헌법》, 《평화의 시대》, 《평화적발전》, 《적극적평화주의》, 《평화성취》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무성하다. 정의와 도덕, 평화를 문명과 발전의 기준으로 삼는 현세기의 흐름까지 도용하여 더욱더 《평화주의》를 고창하며 《선량한 국가》의 행적을 광고하고있다. 희대의 정치만화로 력사에 기재된 《선한 일본인》상은 일본의 이러한 영상개변광증의 집중적산물이다. 1980년대에 이르러 일본의 한 신문사는 세계적인 정치만화가를 초청하여 일본인의 새로운 초상을 그리게 하고 착한 맏아들을 상징하는 《다로상》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지난날 게다짝에 버덩이가 드러난 우습고 못난 모습으로 국제사회의 경멸을 받던 일본인의 상을 세계적인 정치만화가의 손을 빌어 일약 아름답게 만들려 하였던것이다. 이후 일본정객들은 《다로상》을 바탕으로 자국에 《선량한 국가》, 《평화국가》의 면사포를 씌우며 세계를 기만하여왔다. 일본집권자는 패망 60년을 맞으며 발표한 담화에서 《평화》라는 말을 무려 12번이나 해가면서 일본의 전후력사는 전쟁에 대한 반성을 행동으로 보여준 《평화》의 60년이였다고 떠벌이였다. 정책자문기관이 명시한 《21세기 일본의 국가상》의 대외정치표어도 《아름다운 나라》건설과 《적극적평화주의》였다. 수상 아베는 《적극적평화주의는 새로운 일본의 자화상이며 앞으로 일본을 대표하고 이끌어나갈 하나의 기치》이라고 력설하였다. 일본이 패망후 《평화국가》로서 전쟁부정의 맹세를 견지해왔으며 앞으로도 세계의 평화와 안전에 적극 기여할것이라고 한 아베의 태평양전쟁패전 70년 담화는 더욱 요망스럽다. 집권자가 《전후 70여년 일본의 평화행보에 긍지를 느낀다.》고 공언할 정도로 일본은 미화분식에 여념이 없다. 과연 일본이 평화국가다운 성숙의 길을 걸어왔단 말인가. 아니다.패망과 함께 《천황》제를 보존한 일본은 평화의 막뒤에서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외교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군국주의부활의 일로를 걸어왔다. 그 량면성과 교묘성은 정치행보에서 뚜렷이 로출되였다. 《다로상》의 정치만화를 출현시킨 나까소네가 바로 《전후정치총결산》을 운운하며 군국주의부활을 노린 《평화헌법》페기의 실제적발단을 터놓은자이다. 지금도 일본정계에서 《평화헌법》개정주장이 비일비재로 일어나고있으며 국민의 반수이상이 《평화헌법》개정에 손을 들어주고있는것이 현 일본사회의 실상이다. 21세기에 맞는 일본의 《새로운 모습》의 골자는 일본이 《자신을 스스로 학대》하여왔다는 패전국의 심리에서 벗어나 세계정복야망을 실현하여야 한다는데 있다. 변함없는 침략야망으로 살기충천한 일본의 현 모습은 분명 피묻은 군기인 《히노마루》를 쳐들고 《황군》이 부르던 소름끼치는 《기미가요》까지 웨쳐대며 해외팽창의 길로 뛰쳐나가고있는 파쑈광의 흉상이다. 지난 세기 얼토당토않게도 《평화》를 국가년호로 삼고 《동양평화》를 제창하며 조선침략과 청일전쟁, 로일전쟁, 태평양전쟁을 감행한 일본이 오늘 또다시 《평화》의 간판을 들고 《새로운 자태》를 운운하는데 대해 혐오감을 금할수 없다. 오늘날 일본의 정치적영상은 진정한 평화를 바란적도, 말과 행동이 일치한적도 없는 전범국의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남아있다. 세기가 지나도록 과거범죄를 청산하지 않고있는 정치난쟁이,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엄중히 위협하는 전쟁세력, 돈밖에 모르는 경제동물식사유국가를 대하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차갑다. 일본은 전후 70여년간 《평화》를 침략적대외정책의 위장간판으로 삼아온 량면적처신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있다. 조선반도와 지역의 정세는 대화와 긴장완화에로 지향되고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평등과 호혜, 미래를 위한 전면적인 관계조정과 발전의 길을 택하고있다. 이러한 때에 일본의 이중적행태는 세계평화흐름을 좌우하는 조선반도문제에 대한 립장에서 그 본색을 드러낼수밖에 없다. 년초부터 수상을 비롯한 고위정객들이 뻔질나게 《북의 미소외교에 넘어가지 말라.》, 《제재압박의 결과이다.》라고 리간질을 일삼으며 대화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러다가 정작 력사적인 판문점수뇌상봉에 이어 싱가포르조미수뇌회담이 성사되자 코가 납작해지게 되였다. 이를 두고 미국의 CNN방송이 《아베정권은 북조선을 믿지 말라고 충고해왔지만 미국과 남조선이 대화에 나섬으로써 무시당했다.》고 보도하는 등 아베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 수많은 언론들이 야유하였다. 《내가 먹으려다 먹지 못하는 포도에 흙을 던진다.》는 이소프우화의 여우마냥 케케묵은 《제재압박일변도》에 매달리다가 평화의 대흐름에서 배제된 소외현실은 일본의 《평화주의》의 기만성과 지난 세계대전의 패전국이라는 수치만을 강조해주고있다. 이 계기에 일본은 모든것에 진정성이 없는 정치적기질로 하여 주변나라들과의 《린근외교》에서 실패하여온 력사의 교훈을 되새겨보는것도 괜찮을것이다. 지역의 평화보장을 위한 대화마당에서 강아지취급이나 받고있는것이야말로 그들의 자업자득이라고 할수 있다. 불안해난 일본이 탈출구를 찾아보려고 약삭바른 속구구를 하지만 문제는 근본에 걸려있다고 본다. 세계평화와 안정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는 조선반도문제를 대하는데서 관건은 세계적인 전략국가인 우리 공화국의 실체를 똑바로 보고 대외정책적립장을 조률하는것이다. 일본에 있어서 평화에 대한 진정성은 과거청산에 있다. 《일본인구의 80%가 전후세대로서 그들에게 사죄를 계속할 숙명을 지워서는 안된다.》는 아베의 발언이 일본의 본심이라면 누가 그런 나라를 평화지향국가라고 하겠는가. 실천이 없는 《평화》치장은 세계에 대한 기만이고 우롱일뿐이다. 일본이 진정 국제적인정을 원한다면 달라진 세계를 납득시킬수 있는 성숙된 정치도덕적면모부터 갖추는것이 좋다. 그래야 일본의 좌절은 비로소 끝나게 될것이다. 일본연구소 연구원 리명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