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8월 13일 로동신문
꾸바혁명의 승리적전진에 바쳐진 고귀한 생애
오늘은 꾸바혁명의 1926년 8월 13일 꾸바의 오리엔떼주에서 탄생한 그는 싼띠아고 데 꾸바시에서 중학교를 다니였으며 1945년에 아바나종합대학에 입학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의 자격을 받았다. 피델 까스뜨로 루쓰동지는 꾸바혁명을 개척하고 승리에로 이끌어온 꾸바인민의 탁월한 그는 1947년부터 1952년까지 국내외에서 독재정권을 반대하는 투쟁에 참가하였다. 1953년 7월 반독재사상을 가진 165명의 남녀청년학생들과 함께 싼띠아고 데 꾸바시에 있는 바띠스따독재정권의 군사요충지의 하나인 몬까다병영에 대한 습격전투를 진행하여 무장투쟁의 봉화를 지펴올렸다. 첫 무장봉기에서 실패한 그는 100여명의 무장투쟁성원들과 함께 적들에게 체포되여 감옥생활을 하였다. 그는 실패에 비관하거나 주저앉지 않았다.법정에서 《력사는 나에게 무죄를 선고할것이다.》고 웨치며 용감하게 투쟁하였다.석방된 후에는 《7월26일운동》을 조직하였으며 1955년 7월 전우들과 함께 메히꼬에 망명하여 유격투쟁을 준비하였다.1956년 12월 메히꼬에서 82명의 무장인원들과 함께 《그란마》호를 타고 꾸바의 오리엔떼주에 상륙하였으며 그후 씨에라 마에스뜨라산에 근거지를 두고 무장투쟁을 벌리였다. 1959년 1월 마침내 바띠스따독재정권을 뒤집어엎고 꾸바혁명의 승리를 이룩하였다. 피델 까스뜨로 루쓰동지는 서반구에 처음으로 인민이 진정한 주인으로 된 사회주의제도를 수립하였으며 나라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반제자주위업수행을 위하여 온 생애를 바쳐 투쟁하였다. 그는 꾸바에서 세기적변혁을 안아온 저명한 정치활동가였다. 사회주의제도가 수립된 후 수십년간에 걸친 적대세력의 제재와 압박속에서 꾸바인민이 사회주의기치를 변함없이 추켜들고 사회적진보를 끊임없이 이룩하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왔다. 그의 령도밑에 꾸바정부와 인민은 나라의 자주권과 존엄, 혁명의 전취물을 굳건히 수호하였으며 사회생활의 여러 분야에서 많은 성과들을 거두었다. 꾸바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문맹자가 없는 첫 나라로 되였다. 꾸바에는 아바나종합대학을 비롯하여 수많은 교육기관들이 일떠섰으며 많은 학생들이 고등교육을 받고있다. 꾸바당과 정부의 옳바른 시책속에 나라의 곳곳에 의료기관들이 세워져 주민들에 대한 치료사업에 적극 이바지하고있다.꾸바의 모든 지역들에 정연한 보건망이 수립되고 제약공업이 발전하여 의약품의 대부분을 자체로 생산보장하고있다. 과학, 문학예술, 체육 등 여러 분야에서도 훌륭한 성과들이 이룩되였다. 오늘 꾸바당과 정부, 인민은 피델 까스뜨로 루쓰동지의 유훈을 받들어 사회주의기치를 고수하고 부강한 자주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힘차게 투쟁하고있다. 피델 까스뜨로 루쓰동지는 반세기이상에 걸치는 장구한 기간 우리 나라와의 친선협조관계를 강화발전시키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하였으며 혁명적원칙과 의리를 지니고 우리의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과 정의의 위업에 확고한 지지성원을 보내준 조선인민의 벗이고 동지였다. 피델 까스뜨로 루쓰동지는 1986년 3월 우리 나라를 방문하여 우리 인민의 친근한 벗이며 오랜 혁명전우인 피델 까스뜨로 루쓰동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칭호를 비롯하여 우리 공화국의 여러 훈장들을 수여받았다. 피델 까스뜨로 루쓰동지의 탄생 92돐을 맞이하는 오늘 조선과 꾸바 두 나라 인민들은 력사에 빛나는 자욱을 아로새긴 그의 고귀한 혁명생애를 다시금 가슴뜨겁게 돌이켜보고있다. 반제자주, 사회주의위업의 승리적전진과 조선꾸바친선관계발전에 공헌한 피델 까스뜨로 루쓰동지의 업적은 두 나라 인민과 진보적인류의 마음속에 간직되여 길이 빛날것이다. 본사기자 리철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