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8월 10일 로동신문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안아온 필승의 신념
온 나라가 당이 제시한 새로운 전략적로선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으로 세차게 끓어번지고있는 격동적인 시기에 우리는 력사적인 소할바령회의 78돐을 맞이하고있다. 필승의 신심과 락관에 넘쳐 최후승리를 향하여 힘차게 전진하는 천만대오의 모습은 소할바령회의정신을 높이 받들고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맞이하기 위한 최후결전에 나서던 항일혁명투사들의 모습그대로이다. 력사의 그 나날을 되새겨볼수록 불굴의 신념과 의지로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키시여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안아오신 돌이켜보면 일제가 《대동아공영권》의 야망실현을 위해 최후발악을 하던 1940년대 전반기 우리 혁명이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더욱 힘차게 전진할수 있은것은 전세계가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속에 빠져들어 심각한 변화를 일으키던 당시 일제는 중국대륙에 대한 침략전쟁을 결속하지 못한채 동남아시아지역에로 전쟁의 불길을 확대하려고 미쳐날뛰면서 우리 인민의 희망의 등대인 조선인민혁명군을 없애버리기 위한 갖은 모략과 책동을 다하였다. 피를 물고 날뛰는 일제의 발악적책동을 주동적으로 분쇄해버리지 않는다면 우리 혁명이 커다란 피해를 입을수 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 이 시기 우선 선행단계에서 규정한 전략적과제가 원만히 해결되였다. 당창건을 위한 조직사상적기초축성, 반일민족통일전선의 결성과 확대발전, 국경지대에로의 진출,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하는 문제… 무장투쟁의 전략적단계를 규정하는데서 반드시 고려하여야 할 다른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적아간의 력량관계의 변화였다.수자상으로 볼 때 적아간의 력량은 대비도 되지 않았다.그러나 우리 이렇듯 혁명의 준엄한 폭풍속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은 정치사상적으로나 군사기술적으로 급속히 자라났다. 이 모든것은 새로운 전략적단계의 과업을 능히 맡아 수행할수 있는 주체적핵심력량이 믿음직하게 준비되였다는것을 말해주고있었다. 주체29(1940)년 8월 10일부터 11일까지 조선혁명의 중추력량인 조선인민혁명군의 력량을 보존축적하면서 그들을 유능한 정치군사간부로 키우는것을 대사변의 시기에 실행하여야 할 전략적과업으로 규정하신 그러시면서 최후승리는 우리의것이며 멸망할자는 오직 일본제국주의강도들이다, 모두다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앞당기기 위한 투쟁을 과감히 전개하여나가자고 호소하시였다. 혁명승리의 앞길을 휘황히 밝혀주시는 필승의 신념은 혁명가들이 간고하고도 장구한 혁명의 길을 변함없이 걸어나가게 하는 사상정신적원천이다. 《나에게는 지금 눈이 없다.그러나 나에게는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 최후의 순간 최희숙동지가 웨친 이 말속에는 전체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의 억척같은 신념이 어려있었다.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국내와 만주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수많은 소부대, 소조들의 대담무쌍한 기동전으로 적들에게 심대한 정치군사적타격을 주었다. 그리하여 일제침략자들의 마지막숨통을 조일 시각은 바야흐로 다가왔다. 소할바령회의가 있은 때로부터 5년후인 주체34(1945)년 8월 9일 조선인민이 얼마나 일일천추로 고대해온 력사의 시각이였던가. 무서운 지압을 안고 이글거리던 용암의 폭발마냥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과 인민들은 멸적의 기세높이 조국해방성전에 산악같이 일떠섰다. 8월 15일 마침내 일제는 우리 인민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을 선언하였다. 정녕 국가적후방도 지원도 없는 속에서 일제침략자들을 쳐물리치고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실현한것은 탁월한 사상리론가, 강철의 령장이실뿐아니라 신념과 의지의 제일강자이신 력사의 모진 풍파속에서도 언제나 필승의 신념으로 부닥치는 모든 시련과 난관을 짓부시며 백승떨쳐온 우리 혁명의 본사기자 강원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