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8월 19일 로동신문

 

실화

재부

 

《더 질문할것이 없습니까?》

한동안 정적이 깃들었던 심의장에 사회자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대견한 눈빛으로 젊은 박사학위론문발표자를 바라보며 참가자들이 머리를 끄덕이고있는데 아직도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것이 있는듯 눈을 쪼프리고 앉아있던 한 로교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가지만 더 묻겠습니다.동무는 의학자입니까 아니면 공학자입니까? 》

긴장한 표정을 짓고있던 론문발표자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 *

 

자정도 넘은 깊은 밤 토론문을 써나가던 평북종합대학 의학대학 의학과학연구소 박사 부교수 한영철은 박사학위론문을 발표하던 그날처럼 또다시 미소를 지었다.

(난 그때 이렇게 대답했지.저는 고려의학자입니다.고려전자치료학은 제가 앞으로 인생의 전부를 바쳐서라도 기어이 개척해야 할 새로운 학문입니다.…)

날이 밝으면 그는 고려전자치료에서 이룩한 성과에 대한 경험토론연단에 나서게 된다.토론문의 글줄 하나하나가 잊을수 없는 사연을 안고있었다.한생의 전부라고 할수 있는 그 소중한 추억은 한영철의 가슴을 뿌듯하게 해주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나는 무엇을 바쳤는가라는 물음에 늘 자신을 비추어보면서 애국의 마음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수십년전 어느날이였다.신의주의학대학(당시) 고려의학부 학생 한영철은 어느 한 병원의 입원병동에서 진행하는 실습에 참가하게 되였다.

의사가 기다란 침대를 뽑아들자 환자의 목은 대번에 자라목이 되였고 그것을 바라보는 어떤 녀학생들은 얼굴이 다 창백해졌다.건너편침대에서는 다른 의사가 삼각추모양으로 빚은 뜸쑥을 환자의 족삼리혈에 올려놓고 불을 달고있었다.뜸쑥이 거의 타들어가자 아픔을 참느라고 얼굴을 찌프린 환자의 이마에서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솟아올랐다.

이날의 실습은 한영철에게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환자들의 피부에 손상을 주지 않고 고통도 느끼지 않게 하는 그런 치료기구를 만들어낼수는 없을가?)

그후 대학박사원을 졸업하고 의학과학연구소 연구사로 배치된 그는 여러해동안 방대한 문헌자료들을 연구하는 과정에 전자공학 및 콤퓨터기술을 리용하여 피부에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도 치료효과를 충분히 볼수 있는 고려전자치료기구들을 만들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였다.

(고려전자치료학을 기어이 개척하여 우리의 고려의학을 온 세상에 빛내이리라.)

이것은 탐구의 길에 갓 들어선 30대의 청년과학자 한영철이 스스로 걸머진 연구과제였다.하지만 남들이 걸어보지 못한 초행길이라 앞으로 어떤 난관이 막아서겠는지는 누구도 알수 없었다.

 

* *

 

《무슨 일이나 마음이 모자라 못하면 못했지 힘이 모자라 못하는 법은 없다.다 닳아서 없어질 때까지, 단 한순간도 멈춤이 없이…》

색바랜 연구일지의 여백에 자기가 써놓았던 글줄을 보는 한영철의 생각은 깊어갔다.

고려의학발전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는 영예와 긍지감보다 자기자신을 이겨내려 몸부림치며 이어온 나날들이 그에게는 더욱 소중하였다.

온 나라가 엄혹한 난관을 겪고있던 시기에 시련은 한영철의 가정에도 들이닥쳤고 그의 연구사업에도 영향을 미치였다.

고려전자치료기구의 효과적인 침혈자극방식을 찾기 위해 며칠째 실험실에서 연구사업에 열중하던 한영철이 어느날 늦은저녁 집에 들어서니 4살잡이 어린 딸애가 울면서 하는 말이 방금전에 엄마가 고열이 나는 오빠를 업고 병원으로 뛰여갔다는것이다.

펼쳐진채로 책상우에 놓여진 아들의 일기장글줄들이 한영철의 눈앞에 안겨들었다.

《어머니까지 새 학년도준비로 집에 못 들어오는데 열은 점점 더 세게 오른다.온몸이 막 와들와들 떨린다.그런데 동생은 자꾸 배고프다고 칭얼거린다.강냉이라도 타개놓아야 저녁을 먹을텐데.아, 이런 땐 내게 누나라도 한명 있었으면!》

(정말 내가 우리 아이들보다 자료배낭을 더 많이 안고다녔지.식구들이 무엇으로 끼니를 에우는지조차 모르고 산 내가 과연 무슨 아버지이고 세대주란 말인가.)

군사복무시절과 과학탐구의 길에서 수많은 난관과 어려움의 고비를 겪어온 한영철이였지만 그때처럼 당황해보기는 처음이였다.치료기구들을 제작하는데서 겪는 애로도 이만저만이 아니였다.현재상태로는 계획대로 연구사업을 밀고나갈수 없다는것이 명백하였다.어디서 방조받을데도 없었다.

이러한 현실앞에서 방도를 찾지 못하고 주춤거리던 어느날 아버지가 조용히 한영철을 불렀다.

《요즈음 연구사업은 어떻게 되여가느냐?》

그는 머리를 깊이 숙인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왜 말이 없느냐?》

다시금 다우쳐묻는 아버지의 목소리.

《아버지, 연구사업을…당분간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요즘 네가 먹을것도 부족한 지금같은 때에 웬 연구사업이냐고 생각하는것 같은데 오늘은 말 좀 하자.》

전쟁로병인 아버지의 낮으나 엄한 목소리가 계속 울렸다.

《사람이 사느라면 무슨 일엔들 부닥치지 않겠니.전쟁때 네 어머니와 나는 이보다 더 어려운 조건에서도 주저앉지 않았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뛰여난 재능을 가지고있다고 해도 자기가 내세운 목표를 기어이 실현할수 있는 완강한 의지가 없다면 성공할수 없느니라.사람에게 돈이나 물건이 재부가 아니라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며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정신과 열정이 제일 귀중한 재부가 아니겠니.》

아버지의 이야기는 가정이 겪는 일시적인 시련앞에서 잠시나마 주저하던 한영철을 제때에 정신들게 해주었다.자신을 다잡고 다시 일어선 한영철의 발걸음은 또다시 실험실로, 병원으로, 출장길로 이어졌다.낮과 밤을 이어 실험에 몰두하는 그는 언제 달이 가고 해가 바뀌는지 몰랐다.필요한 자료들과 자재들을 구입하기 위해 전국의 여러곳을 찾아 쉬임없이 걸었다.수십번의 실패앞에서도 조금도 주저를 모르는 그의 남다른 의지와 정열은 세월의 흐름속에서도 진하지 않았다.

 

* *

 

몇년후 그는 마침내 《초단파전자뜸치료기》를 제작하였다.그런데 치료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아 애를 먹고있었다.

어느날 지친 몸으로 대학정문을 나서는 한영철의 귀가에 접수실에서 소곤대는 실험공처녀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한선생님이 오늘 설비들을 또 태워먹었다지.》

《그래.아까 점심시간에 우리 실장선생님은 한선생님을 보구 요술막대기로 뜸도 뜨구 침도 놓는 기구를 만들겠다는 공상가라구 하더라.》

요즈음 자기의 연구사업을 두고 사람들속에서 조상전래의 전통치료법을 무시하는 헛수고라느니, 쓸데없는 연구에 정력을 소비한다느니 하는 뒤말이 돌아간다는것을 알고있었지만 이렇게 어린 처녀들의 말밥에까지 오르고보니 한영철의 가슴은 아팠다.

며칠후 또다시 갱신한 기구의 실험을 진행하기 위해 작업복을 갈아입던 한영철은 온통 화상자리뿐인, 《숯등걸》로 되여버린 자기의 온몸을 내려다보며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이때 조용히 문을 열고 대학당일군이 실험실에 들어섰다.

《한선생이 기구를 새로 갱신했다면서? 요새 무릎이 아파 그러는데 새로운 뜸치료기구로 어디 한번 치료를 받아보기요.》

한영철이 뜸치료기가 아직 미완성이라고, 자칫하면 살을 태울수 있다고 만류하였지만 일군은 쉽게 물러설 잡도리가 아니였다.

《그렇게 비싸게 굴지 말고 어디 한번 치료를 받아보기요.어서.》

조마조마한 마음을 안고 한영철은 뜸치료기를 매우 낮은 출력상태에서 가동시켰다.그러나 당일군의 거듭되는 요구에 출력을 한계단, 한계단 올리지 않을수 없었으며 끝내는 그에게 화상을 입히고야말았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뜸전극을 댄 부위의 피부가 순식간에 허옇게 익어버리고말았던것이다.

당황한 한영철이 급히 스위치를 끄고 일군의 얼굴과 화상자리를 번갈아보며 몸둘바를 몰라하는데 그는 아무 일도 없는듯 환하게 웃으며 말하였다.

《어 시원하군.이젠 쿡쿡 쏘던 무릎아픔이 다 멎은것 같애.그래 적합한 초단파출력세기는 찾아냈겠지.》

그때야 한영철은 누구든 몸을 내대야 하는 새 뜸치료기앞에 당일군이 자기를 대신하여 나섰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한선생, 인차 그 치료기로 이쪽다리도 마저 치료해주어야 하오.》

걸걸한 웃음을 남기고 문밖을 나서는 당일군을 바라보는 한영철의 가슴은 뭉클했다.

얼마후 새 실험설비신청문건을 들고 어느 한 일군의 사무실문을 두드리려던 한영철은 방안에서 울려나오는 당일군의 준절한 목소리를 듣게 되였다.

《난 지금도 대학시절 훌륭한 발명을 한 한선생이 위대한 장군님의 존함이 모셔진 사랑의 친필을 받아안고 불같은 결의를 다지던 모습을 잊을수가 없소.그 뜻깊은 친필을 한생의 재부로 간직하고 장군님께 다진 그날의 맹세를 지켜 자나깨나 온몸을 초불처럼 태워가는 그런 훌륭한 선생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어쩌면 그렇게 무관심할수 있소.…

아는것이 많고 년한이 오랜 사람보다 당의 뜻을 심장으로 접수하고 조국과 인민을 위해 자기 한몸을 깡그리 바칠줄 아는 사람이 더 존경받는다는것을 명심합시다.》

조용히 문앞을 떠나 실험실을 향해 걸어가는 한영철의 눈가에 뜨거운것이 가득 고였다.

(얼마나 고마운 손길이 나를 떠밀어주고있었는가.내 이 길에서 물러서지 않으리라.열백번 쓰러진대도 기어이 다시 일어나 연구과제를 완성하고야말리라.나의 심장이 고동치는 한!)

또다시 실험실의 불빛은 밤새도록 꺼질줄 몰랐다.…

그때로부터 10여년이 지나 한영철은 고려전자치료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개척해온 간고한 나날들을 적은 장편수기 《량심의 탑》을 집필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 *

 

제1차 국제청년발명 및 새 기술 평양전람회 메달증서, 특허증서 2건, 국가발명증서 9건, 과학기술성과등록증 2건, 새 기술등록증 4건, 창의고안증서 5건, 《고려전자치료》(증보판)를 비롯한 가치있는 고려의학도서들과 5건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저작권증서, 여러가지 질병치료에 효과적인 《초단파전자뜸치료기》와 《음악침치료기》, 《조화효과식 고려전자치료기》 등 고려전자치료기구들,

끝없는 고뇌와 탐구의 흔적이 력력히 어려있는, 그의 한생의 전부라고 할수 있는 그 소중한 재부들을 하나하나 더듬어보던 한영철은 또다시 펜을 달리기 시작하였다.

《토론을 마치며 저는 이렇게 말하고싶습니다.저는 체험을 통하여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 재부는 그 어떤 발명품이나 과학연구성과 그자체가 아니라 어머니조국을 받들어 변함없이 성실하게 바쳐가는 깨끗한 량심이라고.

피땀흘려 아낌없이 바친 노력으로 조국의 재부가 늘어난다면 그보다 더 크고 자랑스러운 인생의 재부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는 토론문에서 눈길을 뗐다.

깊은 상념에서 깨여나 창가로 다가간 한영철은 창문을 활짝 열어제꼈다.

아침노을에 물들여진 그의 얼굴에는 성공의 자족감이 아니라 여생을 깡그리 바쳐 더 큰 애국의 열매를 가꾸어갈 열정이 이글거렸다.이런 때면 흔히 버릇처럼 불러보군 하는 노래소리가 그의 입가에서 조용히 울려나왔다.

사랑의 이랑에 씨앗 뿌리며

서둘러 그 수고 말하지 말자

한영철이 경험토론연단에 나섰던 때로부터 여러해가 지났다.그동안 그는 허준을 비롯하여 력사에 이름을 남긴 고려의학자들을 원형으로 하는 장편사화들을 련거퍼 써냈다.장편사화 《동의보감》의 필자가 바로 고려전자치료학의 개척자인 한영철박사라는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것이다.

본사기자 김성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