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8월 22일 로동신문

 

전세대 과학자, 기술자들은 이런
정신과 본때로 투쟁하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새 세대들도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실하였던 전세대들처럼 한생을 빛나게 살도록 교양하여야 합니다.》

훌륭한 과거는 결코 추억만일수 없다.우리 공화국의 강용한 기상과 무궁무진한 위력을 높이 떨치는데서 불멸의 위훈을 세운 전세대 과학자, 기술자들의 투쟁정신은 오늘도 꺼지지 않는 불길이 되여 새 세대 과학자, 기술자들을 영웅적인 투쟁에로 부르고있다.

 

심장의 부름-당과 수령의 전사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의 불길속에서 창립된 과학원(당시)과 더불어 우리의 과학은 재더미속에서 천리마가 날아오른 1950년대에 커다란 비약을 이룩하였다.국내원료와 연료에 의거한 제강법과 갈에 의한 인견팔프제조기술의 확립 등 혁혁한 과학기술성과들, 나라의 첫 공작기계, 자동차와 뜨락또르, 불도젤, 탑식기중기, 대형굴착기, 대형양수기와 같은 창조물들이 련속적으로 쏟아져나와 세상사람들을 놀래웠으며 바로 이런 경이적인 성과들로 하여 우리 나라는 사회주의공업화를 앞당길수 있었다.

결코 연구조건이 좋고 자금이 많아서 이룩된 성과들이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전쟁기간에도 중단없이 진행된 비날론연구과정을 놓고보자.그때에는 실험설비들도 매우 불충분하였고 지어는 실험용유리관이나 시약마저도 구해올데가 없었다.하지만 하루에도 몇차례씩 적들의 폭격을 겪는 속에서도 우리 과학자들은 한시도 연구사업을 멈추지 않았다.비날론을 발명한 이름난 화학자는 전쟁시기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실험설비들을 받아안던 때를 돌이켜보며 후날 이런 글을 남기였다.

《눈섭에 졸음이 천근무게로 매달릴 때나 피로가 사지를 묶으려고 엄습해올 때나 나는 생각하군 하였다.

(지금 전체 인민은 생사를 결정하는 판가리싸움을 하고있다.우리는 실험실에서 연구만을 하는 단순한 과학자가 아니라 과학의 요새에로 돌격하는 당과 수령의 전사들이다.…)》

과학의 요새에로 돌격하는 당과 수령의 전사, 그처럼 어려웠던 1950년대에 우리 과학은 바로 이런 숭고한 자각을 안은 혁명적지식인들의 불굴의 투쟁으로 하여 재더미우에서도 눈부신 비약을 이룩하게 되였다.

 

사회주의조선의 존엄을 걸고

 

1960년대 우리 나라는 세계가 도달한 과학기술의 봉우리를 향하여 거세차게 육박하였다.

《콩을 먹자면 이발이 있어야 한다.》고 비웃던 외국의 코대높은 기술자들이 보란듯이 현대기계공업과 전기공업발전의 정수라고 하던 전기기관차를 단 1년동안에 만들어 조선로동당 제4차대회에 선물로 드린 이야기도 바로 이때에 태여났다.

남의 설계도면 한장 없이 우리의 기술자, 로동자들이 1만 4천여종의 18만개나 되는 부속품을 자체로 설계제작하면서 만든 전기기관차를 돌아보시던 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너무도 기쁘고 대견하시여 전기기관차의 이름을 《붉은기》라고 하는것이 좋겠다고, 전기기관차의 앞머리에 휘날리는 붉은기를 만들어붙이라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사회주의조선의 존엄이 실려있는 바로 이 붉은기가 과학자, 기술자들의 심장을 더욱 끓게 하였다.

서평양철도공장(당시)의 기술자, 로동자들이 하루에도 생산현장에 148장의 속보를 붙이면서 전기기관차를 만들고있을 때 과학원 물리수학연구소(당시)에서는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만능전자계산기제작에 달라붙었다.

이미 전자계산기를 제작한 나라에서 그 과학기술적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던것만큼 설계작성에서부터 애로가 컸다.

당시 《로동신문》은 불철주야의 간고한 노력끝에 1 500매나 되는 부분제작도를 자체로 완성하고 설비조립에 달라붙은 연구집단의 투쟁에 대하여 이렇게 소개하였다.

《…땜해야 할 장소는 근 20만개소에 달하였다.그러니 이 사업에 50명이 달라붙는다 해도 40일은 남아 걸려야 한다.당대회까지는 불과 한달이 남았다.그렇다고 인원을 다른데서 더 보충받을수는 없었다.그들은 침대를 실험대옆에 가져다놓고 낮이고 밤이고 일하였다.…》

바로 이런 불굴의 투지와 세계를 앞서나갈 담대한 배짱으로 우리의 과학자, 기술자들은 1960년대에 벌써 CNC공작기계의 조상이라고 할수 있는 프로그람후라이스반 등 수자식자동선반들도 훌륭히 제작하였다.

 

사상의 위력으로 자동화의 새시대를

 

1970년대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단 14년만에 나라의 공업화를 빛나게 실현한 기초우에서 낡은 사회의 유물인 중로동과 경로동의 차이, 농업로동과 공업로동의 차이를 훨씬 줄이며 녀성들을 가정일의 무거운 부담에서 해방하는 3대기술혁명의 구호를 내놓으시였다.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강령이 선포된 이 격동적인 년대에 우리 과학자, 기술자들을 주체형의 과학전사들로 더욱 철저히 준비시킨것은 사상전의 힘찬 포성이였다.우리 과학자, 기술자들의 대오에서는 언제나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와 그 구현인 당정책학습의 열풍이 세차게 일었으며 혁명선렬들이 간직하였던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으로 만난을 뚫고나가는 투쟁기풍이 어디서나 높이 발휘되였다.

모비론섬유생산의 공업화, 시험조수력발전소의 건설과 같은 혁혁한 과학기술성과들과 함께 1970년대에 금속공업, 화학공업, 채취공업을 비롯한 중공업부문과 경공업부문들에서 일어난 종합적기계화, 전면적자동화의 거세찬 불길은 진정 우리 당의 위대한 혁명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한 과학자, 기술자들이 사회의 모든 근로자들을 어렵고 힘든 로동에서 해방하기 위한 투쟁의 앞장에 서서 이룩한 고귀한 결실이였다.

 

우리 식대로, 자기 힘으로

 

위대한 장군님의 교시를 받들어 우리의 기술자, 로동자들이 1만t프레스를 자체의 힘으로 만들어낸것은 당창건 40돐이 되던 1985년의 일이다.당시까지만 하여도 세계에서 이러한 대형프레스를 가지고있는 나라는 열손가락안에 들었고 또 자체로 만드는 나라는 다섯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전투는 첫 공정을 담당한 설계일군들속에서 먼저 벌어졌다.자료조사 6개월, 설계 2년, 제작 2년… 어느 한 나라에서 1만t프레스를 만든 경험을 적은 책을 뒤적이던 기술일군은 그 책을 덮어버리였다.결의한 날자까지 1만t프레스를 내놓자면 설계를 몇년이 아니라 몇달사이에 완성해야 했기때문이였다.

설계를 맡은 성원들은 모두 수자에 밝은 기술자들이기 전에 당의 의도라면 불가능도 가능으로 전변시키고 기존공식도 혁명의 요구에 맞게 새로운 공식으로 바꾸어야 한다는것을 심장에 새기고 사는 자력갱생의 투사들이였다.

로동계급속에 들어가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면서 광범한 토론을 벌린 기술자들은 개미가 뼈다귀를 갉아먹듯이 여러대의 가공기대와 천정기중기, 권양기까지 동원하여 3천t프레스를 만들던 때처럼 기업소의 현존능력으로 1만t프레스를 제작할수 있는 설계를 기어이 완성하고야말았다.

주체적인 제철법이 더욱 활력있게 발전하는 등 수많은 과학기술성과들이 도처에서 이룩된 1980년대에 우리 혁명이 과학기술이라는 기관차를 앞세우고 승승장구할수 있게 한 밑바탕에는 이렇듯 우리 식으로, 자체의 힘으로 그 어떤 고난도 맞받아 뚫고나가는 과학자, 기술자들의 완강한 혁명정신이 든든히 자리잡고있었다.

본사기자 리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