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9월 6일 로동신문
공화국과 더불어 무궁토록 전해가리 존엄높은 우리 조국의 국호,
우리 조국청사에 또 하나의 빛나는 년륜으로 아로새겨질 공화국창건 70돐의 력사적순간이 바야흐로 눈앞에 다가왔다. 맞이할 영광의 시각을 그려보며 우리 군대와 인민은 격정으로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소중히 새겨본다.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우리의 람홍색공화국기와 국장, 존엄높은 우리의 국호, 국기, 국장에는 정녕 얼마나 숭고한 뜻과 성스러운 리념이 담겨져있는것인가. 깊은 감회속에 못 잊을 추억의 갈피가 숭엄히 더듬어진다. 우리 조국의 국호, 국기, 국장은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크나큰 로고와 심혈의 고귀한 결정체이다. 새 조국건설의 그 나날 하지만 국호제정사업은 종파사대주의자들과의 치렬한 투쟁속에서 진행되지 않으면 안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가 제시되였을 때 종파사대주의자들은 《조선이라는 말아래 무슨 글자가 아홉자씩이나 달렸는가.국호가 너무 길다.》, 《외국에서는 나라이름을 그렇게 짓지 않았다.》라고 떠벌이면서 이를 반대해나섰다. 그러던 주체37(1948)년 7월초 어느날이였다. 국호제정과 관련하여 제기된 문제를 료해하신 계속하시여 한달후였다.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에서는 공화국창건과 관련하여 국호문제와 국기, 국장제정문제가 토의되였다. 회의에서는 먼저 국호문제가 토의되였는데 우리 나라의 국호는 회의에 참가한 절대다수는 그안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그런데 이때 자기의 정체를 숨기고있던 종파사대주의자들은 상정된 국호에 대한 안에서 《인민》을 빼자고 하면서 《인민》이라는것을 넣으면 통일전선에 지장을 준다고 하였다. 또 어떤자는 어차피 우리는 공산주의를 건설해야 하는것만큼 과도적표현인 《민주주의》라는것을 넣어 사람들에게 혼란을 줄 필요가 있겠는가고 하는것이였다. 회의참가자들은 이곳저곳에서 술렁대며 그자들의 말에 격분을 금치 못해하였다.그러면서도 그것을 론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계시던 우리는 국호를 하나 정하는데 있어서도 심중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일부 사람들이 국호에서 《인민》을 빼자고 하였는데 이것은 매우 그릇된 주장입니다.이것은 결국 남조선의 극우익반동들이 주장하는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을뿐아니라 그들의 주장을 비호하고 그를 따르려는 위험한 사상입니다. 《민주주의》를 빼자는 주장 역시 위험한 견해입니다.이 주장은 우리 혁명발전의 현 단계의 임무를 옳게 인식하지 못하고 특히 조국이 남북으로 량단된 조건에서 혁명을 수행한다는것을 무시한데서 나오는 매우 그릇된 주장입니다. 우리는 국호를 제정함에 있어서 우리 혁명의 근본목적과 당면임무를 다같이 고려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장차 우리 나라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여야 하며 당면하게는 조국을 통일하고 전국적범위에서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국이 통일되지 못한 현실과 우리 혁명의 당면임무와 혁명의 근본목적을 고려하여 국호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하는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인정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그 부름속에 담겨져있는 깊은 뜻이 어려와 회의참가자들의 가슴은 격정으로 설레이였다. 회의에서는 이어 국기와 국장의 도안문제가 심의되였다. 국기와 국장도안문제는 미술가들이 국장의 도안방향을 찾지 못하여 모대기고있을 때에는 친히 현장에 나오시여 도안방향과 방도를 가르쳐주신 주체37(1948)년 1월 어느날이였다. 깊은 밤에 미술가들이 도안하고있는 현장을 찾아주신 그해 2월 초순 어느날 국기에 흰것과 푸른것이 너무 많습니다.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싸운 투사들이 흘린 붉은 피와 당의 두리에 굳게 뭉친 우리의 혁명력량을 상징하는 붉은색을 기본바탕으로 하여야 하겠습니다.그렇다고 하여 국기의 바탕을 다 붉은색으로 하는것은 우리 나라의 현실에 잘 맞지 않습니다.수천년의 유구하고 찬란한 민족문화를 가지고있는 단일한 민족이라는것을 상징하는 흰색은 지금의 도안보다 좀 가늘면서도 선명하게 하며 세계혁명적인민들과 단결하여 사회주의, 공산주의위업을 위하여 투쟁하는 조선인민의 기백과 공화국의 자주권을 상징하는 푸른색 역시 지금보다 가늘게 하는것이 좋겠습니다.그리고 흰 동그라미는 지금처럼 중간에 놓지 말고 기발대쪽옆으로 놓으며 흰 동그라미안에는 미래의 승리를 상징하는 오각별을 그려넣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도안가들의 눈앞에는 금시 오각별 찬란한 람홍색공화국기가 눈앞에 펼쳐져보이고 도안가들은 그리하여 주체37(1948)년 5월에 국기와 국장초안을 신문에 발표하여 전조선인민의 토의에 붙이게 되였다. 국기와 국장초안이 신문에 나가자 종파분자들은 이 기회를 리용하여 또다시 저들의 정치적목적을 달성해보려고 발악하여나섰다. 어느날 당과 국가의 요직에 있던 한 종파분자는 미술가들을 불러다놓고 신문에 낸 국기와 국장도안에는 《조선적인 특성이 없다.》느니, 《대중들로부터 반대하는 의견이 많이 제기되고있다.》느니 하면서 국장의 테두리를 타원형으로 할것이 아니라 동그랗게 그리라고 하였으며 벼이삭도 그려넣지 말라고 강요하였다.지어 국장안에는 용광로대신에 조선봉건왕조시대의 왕궁인 경복궁을 그려넣으며 국기의 동그라미안에는 오각별대신 보습을 그려넣으라고 뇌까리는것이였다. 이것은 실로 터무니없는 망발이였다. 미술가들이 국장도안에 그린 용광로를 다른 그림으로 바꾸지 못한채 심의에 제출했을 때였다. 국장도안을 찬찬히 살피시던 그러시면서 장차 우리 나라가 세계적으로 발전된 부강하고 문명한 나라로 되려면 기술발전의 방향을 보여주는 전기화를 반영하여야 한다고 이르시였다. 미술가들의 눈앞에는 새롭게 그려질 국장의 모습이 펼쳐지면서 그 국장에 담겨진 우리 조국의 휘황한 앞날이 현실로 안겨오는것만 같았다. 그후 미술가들은 하지만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국장도안에 우리 공화국창건을 앞두고 새로 만든 국기와 국장도안을 심의하기 전날 밤까지도 국장도안을 들여다보시며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던 그러자 우리 공화국의 국호와 국기, 국장은 이렇게 세상에 태여나게 되였다. 존엄높은 우리 조국의 국호를 만방에 빛내여주시며 국기, 국장을 우리 혁명의 만년재보로 영원히 빛내여나가도록 해주신분은 오늘 우리 조국은 또 한분의 백두산절세위인이신 그이께서 계시여 우리 조국은 희세의 천출위인을 높이 모신 성스러운 우리 조국의 끝없는 승리의 력사와 더불어 우리의 국호, 국기, 국장은 백두산절세위인들의 불멸의 업적을 전하며, 후손만대의 가슴마다에 크나큰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새겨주며 무궁토록 빛을 뿌릴것이다. 본사기자 김일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