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9월 13일 로동신문
천리마시대 영웅의 일편단심 평양의사재교육대학 교원인 로력영웅, 박사,
평양의사재교육대학에 한 로교원이 있다. 《우리 인민처럼 당과 이제는 여든살을 눈앞에 둔 고령의 몸이지만 사회주의보건제도의 수호자들을 키우는 성스러운 교단에서 인재육성과 과학연구, 도서집필사업에 지혜와 정력을 쏟아부으며 들끓는 시대의 숨결에 뜨거운 심장의 박동을 맞추어가는 최정심동무, 육체적한계와 로쇠를 모르는 그의 불같은 삶은 우리 시대 인간들의 무한대한 힘과 열정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있는가를 가슴깊이 새겨준다.
지금으로부터 50여년전인 1961년 여름 철령너머에 자리잡은 회양땅은 폭풍을 안은 밀림처럼 설레였다. 《평양에 회의갔던 군병원 조산원이 영웅이 되여 돌아온대요.》 《그의 토론을 들으시고 크나큰 격정속에 앞서거니뒤서거니 하며 동구밖 큰길로 서둘러 달려나간 회양군인민들, 바로 그 시각 최정심동무는 울렁이는 가슴을 안고 고향땅에 들어서고있었다.얼마전 수도 평양에서 《만약 보건일군들이 다 이 동무와 같이 인간에 대한 지극한 정성을 가지고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는 동시에 군중을 인내성있게 교양한다면 모든 군중을 다 당주위에 더욱 튼튼히 묶어세울수 있습니다.》 군사람들이 《어머니, 난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불과 20대 초엽인 자기가 감자골이라 불리우는 막바지산골에서 자식들을 낳아 키우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다가 해방이 되여서야 난생처음 낟알구경을 하고 아이들을 학교로 떠나보내며 기쁨속에 눈물지었던 그의 어머니는 한동안 생각한 끝에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한뉘 깊은 산골에서 살아온 내가 뭘 알겠냐만 군의 한 일군도 그의 남다른 고민을 알고 차근차근 일깨워주었다. (어버이수령님, 저는 앞으로도 소박한 토론을 들으시고 만족을 금치 못하시던 그 시각은 외진 산골의 한 처녀조산원이 당의 은정속에 평양의학대학(당시)을 졸업한 최정심동무는 강계의학대학병원에서 10여년간 일하였다. 대학시절에도, 가정을 이루고 산과의사로 일하는 나날에도 나는 그러던 1970년대의 어느해 겨울 자강땅의 험한 령길에서 한대의 자동차가 멈춰섰다.운전칸문이 열리더니 왕진가방을 멘 녀인이 뛰여내렸다.도에서도 제일 외진 어느 한 군의 인민병원사업을 돕고있던 최정심동무였다.읍에서 멀리 떨어진 림산마을의 벌목공의 안해가 해산을 앞두고 중태에 빠진 소식을 듣고 떠난 길이였는데 눈사태를 만나 자동차가 더 갈수 없게 된것이였다.산짐승들의 발자욱이 뚜렷이 나있는 오솔길로 담차게 걸음을 내짚는 그를 운전사가 막아섰다. 《안됩니다.그러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쩝니까.》 도소재지에 자리잡은 병원에서의 의료활동으로 만족하지 않고 한달에도 몇차례씩 군과 리들을 찾아 멀고 험한 령길을 걷는 그가 최정심동무의 눈가에 따뜻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고마워요.하지만 너무 걱정말아요.》 가파로운 산발을 오르다가는 발을 헛디디여 산비탈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눈속에 파묻혔다가는 다시 안깐힘을 다해 빠져나오고… 허리치는 생눈길을 헤쳐가는 그의 마음속에는 온몸이 얼음덩어리로 변한 그가 림산마을에 이르렀을 때 마을사람들은 반가움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작은 몸집에 아련한 얼굴, 연약해보이는 그가 자강땅에 태를 묻은 자기들도 선뜻 나서기 힘든 눈보라폭풍속을 뚫고 온것이 잘 믿어지지 않았던것이다. 온밤을 꼬박 밝히며 긴장한 치료전투를 벌린 그에 의하여 산모는 위험에서 구원되였다.이른새벽 밀림속의 눈덮인 산발들에 아기의 고고성이 울려퍼졌을 때 온 마을이 기쁨에 휩싸였다. 《선생님이 아니였더라면… 선생님은 이 벌목공가정의 은인입니다.》 고마움에 눈물짓는 마을사람들앞에서 최정심동무는 회양땅의 임산모들을 찾아 먼길을 걷던 처녀조산원시절처럼 동실한 얼굴에 순결한 미소를 담았다. 《다 우리 겹쌓인 피로도 다 잊고 무한한 행복감에 싸여 밝게 웃는 녀의사, 그의 뜨거운 눈빛이 머나먼 평양의 하늘가를 우러르고있었다. (어버이수령님, 저는 오늘 조국땅 한끝에 있는 림산마을의 두 생명을 살려냈습니다.) 이렇듯 최정심동무는 애젊은 처녀조산원이였던 자기를 당앞에, 조국앞에 전적으로 보증해주신 그 나날 그가 걸은 길은 얼마이고 그의 정성과 헌신으로 생사기로에서 구원된 녀인들과 고고성을 터친 새 생명은 또 얼마였던가. 절세위인들의 은혜로운 손길아래 수도 평양에 녀성들을 위한 종합적의료봉사기지인 평양산원이 일떠섰을 때 당에서는 최정심동무가 3산과 과장으로 사업하도록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었다. 지금도 평양산원 3산과 의료일군들은 최정심동무가 과장으로 일한 나날 온 나라 방방곡곡에서 아기들의 첫돌사진을 넣은 편지들이 수많이 오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3산과에 입원한 많은 녀성들이 그때를 돌이켜보며 최정심동무는 이렇게 말하였다. 《수많은 녀성들이 저를 찾고 저에게서 치료를 받고싶어한것은 결코 제가 잘나서도, 의술이 특별해서도 아니였습니다.거기에는 우리 언제나 아마도 일생에 최정심동무처럼 아기이름을 많이 지은 사람도 드물것이다.그의 지극한 정성에 감동된 많은 산모들이 이제 아기가 철이 들면 이 세상에 태여난 너를 제일먼저 안아준 사람이 산과의사로 수십년, 그 나날은
보답에는 한생도 모자란다
세월의 흐름은 어쩔수 없는것이여서 처녀조산원시절의 왕성한 투지와 열정으로 일하던 최정심동무에게도 인생의 황혼기가 왔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평양산원에서 일하다가 예순살이 넘어 년로보장을 받은 그가 집에 들어온 날 저녁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앉았다.한생 군복을 입고있으면서도 산과의사이며 영웅인 그를 위해 가정의 많은 일을 도맡아준 인정깊은 남편과 언제 한번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마음껏 부어주지 못한 아들딸들… 늘 바쁘게 살아온 어머니가 아닌가고, 이제는 집에서 편히 쉬면서 건강을 돌보라고 하는 자식들의 이야기를 듣는 최정심동무의 눈가에 방안벽을 꽉 채운 영광의 기념사진들과 선물명세며 대회참가증 등이 추억깊이 안겨왔다.그중에는 여러해전 2월의 가슴뜨거운 일을 되새겨주는 뜻깊은 생일날의 사진도 있었다. 바로 그날 아침 최정심동무가 치료를 앞두고 소독수에 손을 깨끗이 씻고있는데 평양산원 초급당일군이 방에 들어섰다. 《정심동무, 어서 갑시다.》 뜻밖의 말에 그가 영문을 몰라하자 일군은 오늘이 무슨 날인가고 묻는것이였다. 잠시 생각해보니 그의 생일이였다.하지만 그는 수십년전부터 이날을 례사로이 지나보내고있었다. 그가 이런 사연을 이야기하자 일군은 흥분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 돌이켜볼수록 (이제 10년 아니면 20년?… 보다 중요한것은 남은 생이 또 하나의 옹근생을 대신할수 있도록 더욱 줄달음쳐 사는것이다.) 자본주의나라에서는 백만장자들이 인생의 짧음을 탓하며 그 연장을 위해 별의별 모지름을 다 쓰지만 최정심동무는 당의 사랑과 은덕에 기어이 보답하기 위해 인생말년에 새 출발의 길에 나섰다. 최정심동무는 평양산원에서 일하면서 자료작업을 시작하였던 두종의 도서 《이상산과림상》과 《한 산과의사의 수기》집필을 본격적으로 밀고나갈것을 결심하였다.이 사실을 알게 된 도서편집원들이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였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그에게는 생의 하루하루가 귀중하였던것이다. 《나는 이 두 책의 집필을 다음해까지 무조건 끝내겠습니다.》 그의 이 말은 도서편집원들에게 한 대답이기 전에 당과 하여 문수거리에 자리잡은 그의 집은 거대한 발파소리가 지심을 흔들고 쇠물폭포가 쏟아지는 대고조전투장은 결코 아니였지만 이 땅의 한 공민이 고결한 충정이 어떤 기적을 낳는가를 그는 끝내 증명하고야말았다.수백페지에 달하는 도서 《이상산과림상》과 《한 산과의사의 수기》집필이 예정대로 완성되였던것이다. 그후 두 도서의 발행을 앞두고 그는 철령을 넘어가 회양군인민병원의 의료사업을 도와줄 결심을 하게 되였다.그것을 안 가족들은 펄쩍 뛰였다.정 일을 하고싶으면 가까운 진료소에 나가 의료사업을 돕는것이 어떻겠는가고 하였다. 하지만 최정심동무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회양땅이 내가 태줄을 묻은 고향이래서가 아니다. 절세위인들의 위대성교양자료들과 계급교양자료들, 그가 이전에 집필한 도서 《임산모들을 위한 위생지식》과 산과의사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산부인과전서》를 비롯한 여러종의 도서들, 가지가지의 산과의료기구와 부인병치료에 쓰이는 귀한 약들… 그가 틈틈이 마련한 물자들을 가지고 철령을 넘어 고향땅을 찾았을 때 회양군인민들은 자기 고장이 낳은 영웅조산원을 오랜 지기를 만난듯 반겨맞았다.회양군당위원회에서는 산골군에서 천리마시대 영웅이 배출된것은 군의 자랑이라고 하면서 군인민병원 의료일군들과의 상봉모임을 마련해주었으며 그의 치료활동조건을 전적으로 보장해주었다. 사랑하는 고향사람들과 무릎을 마주하고 그들의 건강을 돌보아주며, 군인민병원 산과의사들의 자질향상을 위한 기술학습과 론문지도로 낮과 밤을 이어가면서 그는 마치 수십년전의 처녀조산원시절로 되돌아간듯싶었다.그는 고향사람들과 한마음한뜻이 되여 군인민병원 산부인과의 수술실과 입원실을 번듯하게 꾸려놓았으며 회양군 읍지구에 살고있는 이모네 집에서 벌도 치고 닭도 기르면서 산모들에게 더 많은 꿀과 닭알이 가닿도록 하기 위해 애썼다. 그의 지성이 깃든 꿀과 닭알을 받아든 한 녀성은 눈물이 글썽하여 말했다. 《전 평양산원에 가보는것이 소원이였습니다.그런데 오늘 이렇게 평양산원에서 오랜 기간 일한 선생님의 치료를 받고 꿀과 닭알까지 받아안으니 따뜻한 우리 집이라고 불리우는 평양산원이 여기 회양땅에 옮겨온것만 같습니다.》 그때 최정심녀성은 얼마나 가슴이 뿌듯하였던가.어제날의 처녀조산원에게는 산모들이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보건제도의 은혜로움을 가슴깊이 절감하며 눈굽을 적시는것을 볼 때가 제일 행복한 순간이였다.바로 그렇게 사회주의보건제도의 한줄기 빛이 되고 한줌 토양이 되라고 하지만 그는 또 얼마나 절세위인의 따사로운 축복은 최정심동무에게 더 큰 생의 활력을 부어주었다. 2007년에 그는 당의 은정어린 조치로 평양의사재교육학교(당시) 교단에 섰다.평양산원에 자리잡은 산부인과학강좌로 첫 출근을 하던 날 많은 의료일군들이 달려와 정답게 인사하였다. 《선생님은 더 젊어진것 같습니다.》 그의 《젊음》은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당과 어느날 그는 겹쌓인 정신육체적부담으로 자리에 눕게 되였다.며칠후 그가 정신을 가다듬으며 다시 론문집필을 하려고 책상앞으로 다가가니 거기에 무둑히 쌓여있던 과학기술자료들이 하나도 없이 반반하였다.그때 자식들이 다문 얼마간이라도 몸조리를 해야 한다고 간청하는것이였다. 《지금도 이렇게 절절히 이야기하는 그의 눈길은 또다시 영광의 기념사진들에 가닿았다.몸과 마음이 지칠 때마다 사람들이여, 천리마시대 영웅이 한생의 끝까지 보답의 길을 갈 충정의 마음을 가다듬군 하던 그 자리에 자신을 세워보시라.이 나라의 얼마나 많은 가정들에 절세위인들을 모시고 찍은 기념사진들이 있고 일터와 마을들에 영원불멸할 령도의 자욱이 력력히 새겨져있는것인가.하나의 가정용품에도 그 영광의 기념사진, 그 소중한 글발을 정녕 무심히 보아서는 안되며 한생토록 가슴깊이 간직하고 살 때 얼마나 놀라운 기적을 낳게 되는가를 천리마시대 영웅은 자기의 산모범으로 가르쳐주고있다. 평양의사재교육대학 학장 주창순동무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말 천리마시대 영웅이 다릅니다.그는 교수사업을 하는 바쁜 속에서도 〈아이를 총명하게 키우려면〉, 〈아픔을 모르게 해산하려면〉을 비롯하여 많은 도서들을 집필하였으며 수십건의 가치있는 론문들을 발표하였습니다.교수사업에서도 과학연구사업에서도 기수가 되여 나아가는 그를 따라 대학 교원들이 새 교수방법창조와 과학연구사업에 분발하여나섰습니다.》 최정심동무는 일흔일곱살에 박사학위를 수여받았으며 그후 10월8일모범교수자의 영예도 지니였다.이 모든 성과들은 최정심동무에 대한 뭇사람들의 존경이 열렬한것은 그가 천리마시대 영웅이여서만이 아니라
우리 공화국의 70년 력사는 최정심녀성은 영웅이기 전에 절세의 위인들과 끊을래야 끊을수 없는 혈연의 관계를 이룬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중 한사람이다. 자기 본사기자 허명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