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9월 22일 로동신문

 

혁명의 붉은기와 함께 계시는 친위전사

 

친위전사의 변함없는 한모습으로 서계시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로 달리는 우리 인민의 마음이 오늘도 오산덕기슭으로 끝없이 흐르고있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장 충직한 혁명전사, 걸출한 녀성혁명가이시며 조선의 위대한 어머님이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

그이의 한생은 길지 않았다.하지만 어머님께서는 32년이라는 그 짧은 생애에 남들이 100년을 살고도 못다 이룰 거대한 업적을 이룩하시고 조선혁명의 바통으로, 내 조국의 만년재보로 남겨놓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국과 인민, 시대와 력사앞에 불멸의 업적을 쌓아올리신 우리 어머님은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주체38(1949)년 9월 22일, 이날을 생각할 때면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먼저 떠오르는것은 어머님의 밝은 미소이다.

《장군님!밤이 퍽 깊었습니다.저때문에 너무 근심마시고 어서 돌아가 보시던 일을 마저 보십시오.치료를 받으니 정신이 들고 기분이 좋아집니다.치료를 좀더 받고 곧 집에 돌아가겠습니다.》

이날도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렇게 웃으시며 위대한 수령님을 바래우시였다.

어머님의 미소, 정녕 그것은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위대한 수령님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수령결사옹위의 빛나는 귀감, 친위전사의 가장 고결한 모습이였다.

어느해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머님을 뜨겁게 추억하시며 우리 어머님은 림종의 순간까지 오직 수령님 생각뿐이시였다고, 어머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수령님을 더 잘 모시고 사업부담을 덜어드리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언제 한번 편히 쉬시지도 못하였고 깊은 잠에도 드시지 못하였다고 하시였다.그러시면서 어머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의 대부분은 수령님을 잘 받들어모시고 충성다해야 한다는 내용이였다고, 어머님의 한생은 수령님을 위한 한생이였고 혁명을 위한 한생이였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한몸이 그대로 성새, 방패, 육탄이 되시여 백두의 혈전장들에서 수령결사옹위의 숭고한 모범을 창조하시고 혁명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변함없는 친위전사의 자세로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을 지켜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다 바치신 김정숙동지이시였다.

주체22(1933)년 4월 어느날 아침 해돋이구경을 하자고 하시며 아동단원들을 이끌고 뒤산에 오르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시였다.

《세상만물이 태양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것처럼 우리는 김일성장군님의 품을 떠나서는 살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하늘의 태양과 같은분은 바로 김일성장군님이십니다.

아동단원동무들은 김일성장군님을 높이 받들고 장군님만을 따르는 참된 전사가 되여야 합니다.》

수령결사옹위는 조선혁명의 요구, 혁명전사의 가장 숭고한 의무이다.

이것은 김정숙동지께서 그 어느 교과서를 펼쳐보셨거나 그 어떤 유명한 교수의 강의를 받아서 체득하신 진리가 아니였다.

오직 실체험속에서, 피어린 항일의 결전장들에서, 민족의 위대한 령도자를 맞이한 기쁨과 조국의 앞날을 그려보는 환희속에서 스스로 찾게 되신 혁명의 원리였다.

어머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호위사업을 첫째가는 임무로, 신성한 의무로 여기시고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시기 그이를 목숨으로 옹호보위하시였다.

조선혁명의 영원한 미래를 담보한 운명적인 전투의 하나였던 대사하치기전투는 어머님의 빛나는 위훈을 길이 전하고있다.

언제나 그러하셨듯이 이날 전투때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몸의 위험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산중턱 바위우에 올라 전투를 지휘하시였다.놈들이 쏘는 기관총탄이 바위주변에 수없이 날아와 떨어졌다.

전투를 진행하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너무도 안타까우시여 몇번이나 수령님께 안전한 곳으로 지휘처를 옮겨주실것을 말씀올리시였다.그러시면서도 적들의 움직임과 주변을 예리하게 살피시였다.

이때였다.지휘처에서 좀 떨어져있는 갈대들이 바람결이라고 하기에는 좀 이상하게 움직이는것이 아닌가.섬찍한 예감에 그이께서는 심장이 뚝 멎어버리는것만 같으시였다.

적들이였다.누런 군복을 입은 대여섯의 《신선대》놈들이 갈밭속에 몸을 숨기고 수령님께서 서계시는 산중턱을 향하여 총구를 쳐들었다.위기일발의 그 순간 김정숙동지께서는 《사령관동지!》 하고 다급히 웨치시며 번개같이 몸을 날려 위대한 수령님을 막아나서시였다.그리고 싸창의 방아쇠를 당기시였다.그때에야 위급한 정황을 판단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김정숙동지의 어깨너머로 두번째 놈을 꺼꾸러뜨리시였다.

두분께서는 연방 명중사격을 들이대시여 적들을 일격에 소멸해버리시였다.바위우에 거연히 서시여 계속 전투를 지휘하고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시는 김정숙동지의 눈가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렸다.

이날 김정숙동지께서 한몸이 그대로 방탄벽이 되여 위대한 수령님을 결사옹위하신 그 모습은 혁명하는 사람은 자기의 수령을 어떻게 받들고 결사옹위해야 하며 수령의 위업에 어떻게 충실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산 모범으로 오늘도 우리 천만군민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빛을 뿌리고있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건강하시고 안녕하시면 이 세상 그 무엇도 더 바랄것이 없다는 숭고한 의지를 지니시고 그 어떤 직위도 특혜도 친위전사라는 값높은 칭호와 바꾸지 않으신 어머님이시였다.

해방된 조국땅에 돌아오시여 고향에도 한번 못 가보시고 일가친척들을 찾아보는것도 미루신데 대해 우리 인민은 아쉬움을 금치 못하였다.

어느날 어머님께서는 그에 대해 이런 말씀으로 사양하시였다.

《…장군님께서 건국사업에 바삐 보내시는데 제가 어찌 집을 떠나겠습니까.

…정세가 매우 복잡합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런 복잡한 환경속에서 밤잠을 잊으시고 일하십니다.

제가 장군님의 사업을 도와드리지 않고 어찌 자리를 뜨겠습니까.저는 나라가 안정되기 전에는 친척들을 찾아 떠나지 않겠습니다.

저에게는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장군님을 보위할 하나의 임무만이 있을뿐입니다.》

어머님께서 그처럼 그리던 고향과 일가친척들을 찾는 문제를 뒤로 미루신 사연, 그것은 바로 수령결사옹위, 친위전사의 본분에 있었다.

언제인가 위병소의 수수한 나무의자에 앉으시여 경위대원들과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자신께서는 첫째 호위병이고 동무들은 둘째 호위병이라는 뜻깊은 말씀을 하신적이 있다.

첫째 호위병!

바로 여기에 위대한 수령님의 가장 가까운 혁명동지로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빛나는 한생이 응축되여있다.

어머님께서 우리곁을 떠나신지도 많은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자신의 한생을 바쳐 수령결사옹위의 훌륭한 귀감을 마련하시고 후손만대에 고귀한 재부로 물려주신 어머님의 불멸의 공적은 우리 혁명의 승리적전진과 더불어 더욱 빛나고있다.

우리 천만군민은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수령결사옹위의 숭고한 넋이 어린 혁명의 붉은기를 높이 휘날리며 경애하는 원수님의 령도따라 사회주의위업의 최후승리를 향하여 더욱 힘차게 전진해나갈것이다.

오영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