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출위인들을 높이 모시여 민족의 력사 더욱 빛난다
유구한 반만년력사의 전로정을 더듬어볼 때 공화국의 70년력사는 매우 짧은 하나의 구간이라고도 할수 있다.그러나 우리 민족은 공화국의 70년력사와 더불어 절세의 위인들을 수령으로 모심으로 하여 크나큰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지니게 되였으며 자기의 반만년의 력사를 온 세상에 빛내일수 있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께서는 혁명령도의 전기간 민족유산보호사업을 중시하시고 여기에 힘을 넣으시여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온 세상에 빛내여주시였습니다.》 흔히 말하기를 력사는 과거를 통해 오늘과 래일을 비추어보는 거울이고 민족문화유산은 그 력사의 유구함과 그 민족의 창조적재능을 엿볼수 있게 하고 민족정신을 반영하고있는 증거물이라고 한다.하지만 민족의 력사가 유구하고 선조들이 창조한 민족문화유산이 아무리 많다고 하여도 그것이 어느때나 민족의 매 성원들에게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북돋아주는 원천으로 되는것은 아니다. 땅속에 묻힌 진주보석도 캐내야 진가를 알수 있고 빛을 뿌리는것처럼 나라의 민족문화유산도 그것을 귀중히 여기고 보호해주는 은혜로운 품이 있어야 한다. 지켜주고 빛내여줄 참다운 보호자가 없었던탓으로 하여 지난날 외래침략자들에게 수난당하고 여지없이 짓밟혀왔던 우리의 민족문화유산은 절세의 위인들의 은혜로운 품이 있어 자기의 가치를 되찾게 되였으며 그와 더불어 우리 민족의 력사는 온 세상에 빛을 뿌리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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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동안 외곡말살되여온 우리의 민족사가 세계만방에 빛을 뿌리는 단일민족의 자랑스러운 력사로 정립되게 되고 선조들이 창조한 우수한 민족문화유산들이 우리 인민들에게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북돋아주게 된것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비범한 예지와 과학적통찰력, 현명한 령도의 결실이다. 혁명발전에서 민족사가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깊이 통찰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원시사회로부터 고대, 중세,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력사적로정에서 당시까지 미해명으로 남아있거나 외곡되여있던 력사문제들을 확고한 주체적립장에서 바로잡도록 하는데 선차적인 관심을 돌리시였다. 우리 민족이 사회력사발전의 매 단계를 정상적으로 거쳤는가, 거치지 않았는가 하는것은 학술상의 문제인 동시에 우리 민족사가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되여온 력사인가 아니면 자주적으로 발전해온 슬기로운 민족의 력사인가를 규정짓는 기본척도로서 민족의 존엄과 직결된 심각한 문제였다. 때문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해방직후 새 조국건설의 바쁘신 속에서도 모란봉에 있던 《기자묘》의 정체를 밝혀주시여 우리 민족성원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이 우리 나라에 와서 고대국가를 세웠다는 반동적인 학설의 허황성을 론증하시였다. 그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단군이 신화적인 존재가 아니라 첫 고대국가를 세운 실재한 인물이라는것을 과학적으로 밝히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조선사람의 기원과 우리 나라에서의 원시사회문제를 바로 해명하도록 하신분도 우리 수령님이시다. 주체65(1976)년 11월 김일성종합대학을 찾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당시의 자연박물관에 진렬된 털코끼리를 보시면서 우리 나라에 털코끼리가 있었다고 하면 반드시 털원숭이가 있었을것이라고, 그러므로 인류가 남쪽지방에서 생겨나 북쪽지방으로 퍼졌다고 단정할수 없다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이것은 력사학자들의 눈을 크게 틔워주었으며 조선사람의 기원과 우리 나라에서의 원시사회문제를 새로운 방향에서 독창적으로 해명할수 있게 한 근본지침으로 되였다. 정녕 어버이수령님의 비범한 예지와 과학적통찰력이 있었기에 우리 나라 중세 첫 봉건국가였으며 국력이 강하였던 고구려의 건국년대가 B.C.277년이라는것, 우리 나라에서 자본주의적관계의 발생발전과 근대부르죠아개혁운동이 력사발전의 합법칙적과정에 기초하여 진행되였다는것, 우리 민족이 이룩한 문화가 일본문화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것 등 미해명으로 남아있던 적지 않은 문제들이 새롭게 해명되여 우리 민족사의 갈피갈피가 과학적으로 정립되게 되였다. 우리의 민족사를 주체적립장에 기초하여 바로잡는 사업은 위대한 장군님의 비범한 예지와 과학적통찰력에 의하여 보다 풍만한 성과를 거둘수 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찌기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시기에 당시의 대학생들이 력사문제를 대하는데서 흥미본위주의에 많이 빠져있는 사실을 료해하시고 우리가 력사를 연구하는것은 지난 시기의 사실에서 경험과 교훈을 찾고 행동방향을 바로세워 혁명을 더 잘하자는데 있으며 사람들에게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키워주자는데 있다고 하시면서 주체확립은 력사연구의 생명이라는 민족사연구의 근본원칙을 명철하게 밝혀주시였다.그리고 정력적인 사상리론활동을 벌리시여 우리 민족사에서 당시까지 미해명으로 남아있거나 외곡되여있던 문제들을 심오한 철의 론리로 밝혀주시였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 있어서나 첫 통일국가의 출현은 나라와 민족의 통일적발전을 위한 투쟁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되며 그것을 옳게 해명하는것은 력사발전의 합법칙성을 밝히는 매우 중요한 문제로 된다.그러나 당시까지 내외반동사가들에 의하여 외곡된 견해가 사람들의 머리속에 뿌리깊이 남아있는것으로 하여 우리 민족의 첫 통일국가형성문제는 옳게 밝혀지지 못하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보시고 주체49(1960)년 10월 불후의 고전적로작《삼국통일문제를 다시 검토할데 대하여》를 발표하시여 당시까지 학계에 만연하고있던 견해의 부당성을 까밝히시고 우리 나라에서의 첫 통일국가형성문제를 과학적으로 해명해주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장군님의 과학적안목에 기초한 철의 론리에 의하여 우리 나라에서의 구석기시대문제, 고대국가형성문제, 초기봉건국가의 사회경제적성격에 대한 문제, 자본주의적관계의 발생문제, 부르죠아개혁에 관한 문제 등 우리 민족사를 바로잡는데서 의문점으로 제기되고있던 여러 문제들이 과학리론적으로 완벽하게 해명될수 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민족사에서 지난 시기 그릇되게 평가되였던 력사적사실과 사건, 인물문제도 주체적관점에서 바로잡아주시는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시였다. 지난 시기 그릇되게 평가되였던 6가야문제, 중세 농민들의 반봉건투쟁에 대한 문제, 옛날 력사책들에 대한 문제, 근대시기 일제의 조선침략에 대한 문제 등 수많은 문제들을 주체적관점에서 바로잡아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비범한 통찰력으로 력사인물평가의 기준도 밝혀주시였다. 애국명장들을 반드시 민족의 자주권문제를 중심에 놓고 평가하여야 한다는것, 충신과 공신을 평가할 때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헌신한것과 큰 공을 세운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것, 봉건사회의 왕들을 평가할 때 민족의 발전문제를 중심에 놓고보아야 한다는것 등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 력사인물평가의 강령적인 지침이다. 우리 나라가 인류문화발상지의 하나라는것을 확증해주시고 단군조선으로부터 력사발전의 합법칙적과정을 거쳐 면면히 이어온 우리 민족사를 옳바로 정립해주시기 위하여 기울이신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로고의 세계에 대하여 다 이야기하자면 정녕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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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우리 민족이 남겨놓은 민족문화유산이 후세에 길이 전해지도록 하기 위한 사업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여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온 세상에 빛내여주시였다. 책에서 습득한 력사지식은 력사유적이나 유물들을 실물로 직접 보게 될 때 더 공고하게 인식되게 된다.또한 이 과정에 민족의 매 성원의 가슴속에는 민족적긍지와 자부심, 애국의 마음도 함께 자라게 된다.민족문화유산보호사업을 애국주의와 결부시켜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민족이 남겨놓은 우수한 유산들을 찾아내여 적극 보호하기 위한 사업에 커다란 심혈과 로고를 바치시였다. 해방후 김일성종합대학 교사를 건설하는 부지가 옛 성터자리라는것을 아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력사학자들의 의견을 들어보시고 몸소 대학터전을 다시 정하시기 위해 현지에 나가시였다.종합대학 위치로는 여기가 참 좋은 곳이지만 토성을 없애고 교사를 지을수는 없다고, 고구려의 유적을 다문 몇m도 다칠수 없다고 하시며 친히 김일성종합대학 터전까지 옮기도록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애국의 세계에 대하여 우리 인민들은 지금도 전설처럼 외우고있다. 가렬처절하였던 조국해방전쟁시기에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서울에 있는 귀중한 력사유적유물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시가공격시간을 날이 훤히 밝은 다음에 하도록 늦추어주시였으며 인민군군인들을 동원하여 불타 없어질 위험에 처해있던 조선봉건왕조의 실록을 구출해오도록 하시였다.그리고 조선봉건왕조의 실록을 최고사령부에 보관하도록 하시고 많은 사람들을 나라의 곳곳에 파견하시여 귀중한 민족고전들을 수집해오도록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조선봉건왕조의 실록을 우리 대에 반드시 번역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강력한 번역집단을 무어주시고 10년 남짓한 기간에 훌륭히 번역출판하게 하시였으며 련이어 가치있는 수많은 민족고전들을 우리 말로 번역하는 사업을 현명하게 이끄시여 그 모든것이 인민의 향유물로 되게 하여주시였다. 전후복구건설을 시작할 때 현대적인 거리를 수도에 일떠세우기 전에 대동문과 보통문을 먼저 훌륭히 복구하도록 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보통강일대의 건설방향을 제시해주실 때에는 보통문을 중심축으로 하여 새로 거리를 일떠세울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전후 수도의 중심부에 현대적인 새 영화관이 건설되였을 때에는 그 이름을 《중앙영화관》이라고 하지 말고 부근에 유명한 대동문도 있으니 《대동문영화관》이라고 부르는것이 더 좋겠다고 하신분도 바로 우리 수령님이시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대웅전과 만세루를 비롯하여 전쟁시기에 파괴된 묘향산의 력사유적들도 그자리에 원상대로 복구하도록 하시고 국보적인 가치를 가지는 《팔만대장경》의 영구보존을 위해 보존고를 따로 훌륭히 짓도록 하시여 절승을 자랑하는 명산을 고적들과 더불어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가 빛나는 인민의 명승지로 되게 하시였다. 1970년대에 당시의 만수대예술극장을 건설할 때에도 건설부문 일군들이 건설부지안에 있던 오랜 력사유적인 숭인전을 헐어버리려 한다는 사실을 아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숭인전을 없애지 말고 원상그대로 옮겨지어 숭령전과 함께 보존하도록 하시였다. 민족문화유산을 그처럼 귀중히 여기시였기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단군릉과 동명왕릉, 왕건왕릉의 개건보수사업도 직접 발기하시고 주체성과 력사주의적원칙에서 공사가 완공되도록 세심한 지도를 주시였다. 장장 수십세기를 헤아리는 력사의 풍운속에 그 존재마저 사라질번 했던 민족의 원시조 단군의 실체를 정확히 밝혀내시고 발굴사업을 걸음걸음 이끌어주시고 명당자리에 단군릉 터전도 잡아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단군릉의 건축형성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단군릉의 형태는 피라미드식으로 하되 원시조를 내세우는 의미에서 동명왕릉보다 더 높이 하여야 한다고 하신 그이께서는 단군의 아들과 측근신하들의 돌조각상, 조선범돌조각상도 만들어놓아 릉의 위엄을 돋구게 하시고 고조선의 상징인 비파형단검, 석등과 망주석, 제상돌도 놓도록 하시였다. 그후 해당 부문 일군들이 만들어올린 돌조각상모형들을 일일이 보아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전문가들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조각상들의 관직과 인물생김새, 의상, 조선범의 특질 등 세부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면서 수정방향을 제시하시고 하나하나 완성시켜주시였다. 단군릉개건공사실태자료와 일부 세부적인 부분들을 수정한 최종형성설계도면을 다 보아주시고 마감공사를 질적수준에서 보장할수 있는 대책과 방도를 명백히 밝혀주시며 어버이수령님께서 설계도에 뜻깊은 친필을 남기신 그날은 주체83(1994)년 7월 6일이였다. 단군릉개건에 앞서 왕릉의 규모나 크기는 왕들이 력사발전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밝혀주시고 동명왕릉과 왕건왕릉을 훌륭히 개건하도록 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그처럼 민족의 원시조릉을 훌륭히 완성시켜주시기 위해 불면불휴의 로고를 바쳐오셨다는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것이다. 단군릉을 대를 이어 후대들에게 물려줄 국보로 완성시켜주시고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의 전구간을 단일민족으로 살아온 우리 겨레에게 크나큰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주신 어버이수령님의 그 불멸의 업적은 대박산기슭에 높이 솟은 단군릉과 더불어 세세년년 길이 빛나고있다. 하기에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민족애와 불보다 뜨거운 애국심,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훌륭히 개건된 단군릉과 동명왕릉, 왕건왕릉을 돌아본 수많은 외국의 력사학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주체사상은 력사과학분야에도 깊이 관통되여있다고 하면서 조선에서 위대한 주체사상만이 아니라 주체의 력사관도 배웠다고 자기들의 흥분된 심정을 토로하였다. 민족문화유산을 귀중히 여기시고 그 보호사업을 그토록 중시하신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뜻은 위대한 장군님에 의하여 더욱 빛나게 계승되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민족문화유산을 적극 보호하고 옳게 계승발전시키는데서 나서는 원칙적문제들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세계화》를 떠들며 제국주의자들이 사상문화적침투책동을 날로 로골화하고있는 시대적환경을 깊이 통찰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선조들이 이룩해놓은 문화적재부를 귀중히 여겨야 한다》, 《혁명과 건설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할데 대하여》, 《우리 인민의 우수한 민족적전통을 적극 살려나갈데 대하여》, 《력사문화유적이 많은것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다》, 《민족음식을 적극 장려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를 비롯한 수많은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을 발표하시여 민족문화유산보호사업의 본질과 중요성, 견지하여야 할 기본원칙과 기본요구, 과업과 방도 등에 대한 강령적지침을 우리 인민들에게 안겨주시였다. 이와 함께 민족의 풍습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민족음식과 민속명절의 명칭문제는 물론 상모의 길이와 치마저고리색갈에 이르기까지 해당 부문의 전문가들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수많은 풍습내용들을 하나하나 바로잡아주시였다. 사리원시에 건설된 민속거리를 찾으시여서는 우리 민족의 우수한 전통을 살리며 애국주의교양에 이바지할수 있는 좋은 일을 하였다고 과분한 평가도 주신분이 우리 장군님이시다.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받드시여 왕릉들이 훌륭히 개건보수되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83(1994)년 10월에는 단군릉을, 주체85(1996)년 3월에는 왕건왕릉을 몸소 찾으시여 유구한 력사와 민족의 슬기를 대를 이어 빛내여나갈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그리고 혁명령도의 그 바쁘신 나날에도 묘향산력사박물관과 량천사, 개심사, 월정사 등 력사유적들을 돌아보시면서 력사문화유적들에는 우리 인민의 우수한 건축술과 뛰여난 예술적재능이 깃들어있는것만큼 보존관리사업에 관심을 돌려 인민들에게 조선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더욱 높여주어야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지난날 일제에 의하여 강탈당하였던 북관대첩비도 되찾아오도록 하시고 주체97(2008)년 5월 함경북도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서 원상대로 세워진 비를 돌아보시며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불의와 압제를 추호도 허용하지 않은 자주성이 강한 용감한 인민이라고 하시면서 귀중한 력사유적인 북관대첩비를 잘 보존관리하며 그를 통한 교양을 실속있게 벌릴데 대하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우리 나라의 귀중한 력사문화재부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고 국제적인 교류와 협조,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도 활발히 벌어지게 되였으며 고구려벽화무덤들과 개성일대의 주요력사문화유적들, 민요 《아리랑》과 김치담그기풍습 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는 성과도 이룩되게 되였다. 참으로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조국애와 민족애, 비범한 예지와 과학적통찰력, 현명한 령도가 있어 우리 민족사는 내외반동사가들의 외곡말살책동을 단호히 짓부시고 유구하고 찬란한 력사로 정립될수 있었으며 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문화유산들이 적극 보호되고 우리 민족의 우수한 전통이 대를 이어 빛나게 계승발전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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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란 먹으로 지울수도 없고 불로 태울수도 없으며 검으로 찢을수도 없는것이다. 허나 력사는 그 창조자인 인민대중을 진정한 주인으로 내세우고 그들의 무궁무진한 힘, 애국심이 빛을 뿌리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는 절세의 위인들을 높이 모셨을 때에야 참되게 정립되고 후세에 길이 전해질수 있다. 이것은 우리 인민에게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주시기 위하여 크나큰 로고와 심혈을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불멸의 령도업적을 더듬어보며 우리가 찾게 되는 또 하나의 력사의 진리이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숭고한 뜻을 그대로 이어나가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를 혁명의 진두에 높이 모시여 우리 나라의 민족문화유산보호사업은 오늘날 더욱 활발히 진행되고있으며 우리 인민은 크나큰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지니고 신심드높이 전진하고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주체103(2014)년 10월 불후의 고전적로작《민족유산보호사업은 우리 민족의 력사와 전통을 빛내이는 애국사업이다》를 발표하시고 발전하는 현실의 요구에 맞게 모든 일군들과 근로자들이 당의 민족유산보호정책을 철저히 관철하여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을 옹호고수하며 민족의 력사와 전통을 더욱 빛내여나가도록 우리 인민의 투쟁을 현명하게 이끌어주고계신다. 공화국의 영광스러운 70년력사와 더불어 우리 인민은 백두산절세위인들의 불멸의 령도업적을 영원히 잊지 않을것이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두리에 굳게 단결하여 단일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우수한 민족적전통을 더욱 찬란히 빛내여나갈것이다.
본사기자 백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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