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10월 31일 로동신문

 

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자강땅이 자랑하는 참된 녀성일군

희천은하피복공장 지배인
장이영희동무에 대한 이야기

 

위대한 장군님께서 자신의 정든 고장이라고 하시며 류다른 애착속에 끝없이 찾고찾으시던 자강도는 인민의 사랑을 받는 녀성일군들이 많은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당과 인민의 일심단결의 위력과 불패의 국력이 그 어느때보다 힘있게 과시되고있는 오늘 우리는 또 한명의 미더운 애국자, 희천땅의 참된 효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려고 한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일군들은 당과 수령의 믿음과 사랑에 일로써 보답할줄 아는 진짜배기 혁명가가 되여야 합니다.》

희천은하피복공장 지배인 장이영희동무는 지배인으로 사업한 지난 6년동안 주저앉다싶이 하였던 공장을 2중3대혁명붉은기공장, 2중26호모범기대영예상공장, 모범체육공장, 모범준법단위로 내세우기 위하여 불같이 헌신하였다.

해마다 많은 성과를 이룩한 공장에 공화국창건 70돐이 되는 올해에는 로력훈장까지 수여되였다.공장의 눈부신 발전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해한다.하지만 지배인 장이영희동무가 받아안은 어머니당의 전설같은 사랑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누구나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새겨가는 삶의 자욱자욱은 위대한 우리 당과 운명의 피줄을 이은 사람이라면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보답의 주로를 억세게 꿋꿋이 이어가야 하며 바로 그 길우에 인생의 행복과 삶의 보람이 있다는 진리를 만사람의 가슴마다에 뜨겁게 새겨주고있다.

 

달리는 못살아

 

지금으로부터 6년전 3월 어느날 희천시당위원회의 한 사무실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오가고있었다.

《그 다리가 여전히 말썽을 부리는것 같구만.》

《그래도 전보다는 한참 나아졌습니다.아직 할 일이 많은데…》

그들은 시당위원회 책임일군과 당시 시인민위원회의 일군으로 사업하던 장이영희동무였다.

한동안 장이영희동무를 유심히 살펴보던 시당책임일군은 이렇게 말을 이었다.

《그동안 많은 일을 했지.중학교 부교장, 버섯공장 지배인, 시인민위원회 일군… 참 동무를 보고 사람들이 〈도로부장〉이라고 한다지.》

사실이 그러했다.

시인민위원회 일군으로 사업하면서 그의 첫 일과와 마지막일과는 언제나 시안의 도로를 순회하는것이였다.자강도는 자신의 정든 고장이라고 하시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강땅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신 위대한 장군님을 그리며 시안의 도로를 관리하는 사업을 스스로 맡아나선 그였다.그 나날 1년 365일을 하루와 같이 수십리길을 오가며 무리한탓인지 한쪽다리가 말을 잘 듣지 않았다.그런 그를 두고 언제부터였던지 사람들은 《우리 도로부장》이라고 정담아 불러왔던것이다.

이윽고 시당책임일군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장내에 울렸다.

《시당집행위원회에서는 동무에게 희천은하피복공장 지배인사업을 맡기기로 토론이 있었소.》

순간 장이영희동무는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사실 시당위원회에서 부른다는 련락을 받았을 때 년로보장을 앞둔 자기의 나이를 돌이키며 일손을 놓게 될 앞날을 그려보았던 그였던것이다.

너무도 뜻밖의 신임에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그의 심정을 읽은듯 책임일군은 말했다.

《동무가 좀전에 말하지 않았소.할 일이 많다고.나이도 있는 동무에게 좀 헐한 일을 맡겨야겠는데…》

장이영희동무는 번쩍 머리를 쳐들었다.

《아닙니다.전 로동자들과 함께 일하겠습니다.》

한동안 흐르는 침묵, 서로 마주보는 눈빛…

《고맙소.동무야 달리는 살수 없는 사람이지.사실 그 공장의 형편이 시원치 않소.그러나 우린 애국렬사의 딸인 동무를 믿소.》

장이영희동무에게는 애국렬사의 딸이라는 부름이 그때처럼 비상한 의미로 들려온적은 없었다고 한다.

애국렬사의 딸이라고 더욱 뜨겁게 믿어주고 내세워주는 당의 사랑은 그가 아버지처럼 충정의 넋을 이어가기를 바라는 뜨거운 기대이고 당부였다.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당의 믿음에 보답하겠습니다.》

그날 밤 그는 아버지의 애국렬사증을 어루쓸며 오래도록 이불깃을 눈물로 적시였다.위대한 장군님의 품이 아니였다면 아버지가 어떻게 애국렬사라는 값높은 칭호를 받아안게 되였으랴.

너무도 일찌기 세상을 떠난것으로 하여 자식들의 기억에조차 희미해졌던 아버지, 그러나 당에서는 떠나간 전사의 위훈을 언제나 잊지 않고 사려깊은 눈길로 보살피고있었다.하여 수십년세월이 흐른 후 아버지에게 애국렬사증이 수여되는 전설같은 화폭이 펼쳐지게 되였던것이다.참으로 위대한 당의 품이 있어 전사는 비록 갔어도 그의 삶은 영생하게 된것이다.

장이영희동무가 가보처럼 여기는 두상의 기념사진에는 또 얼마나 하늘같은 믿음과 사랑이 깃들어있는것인가.

장이영희동무는 아버지의 얼굴을 모르고 자랐다.그런 그의 마음속아픔을 헤아려 당에서는 장이영희동무의 아버지가 새 조국건설시기와 조국해방전쟁시기 두차례에 걸쳐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찍은 기념사진을 찾아 보내주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었던것이다.

정녕 시작은 있어도 그 끝을 헤아릴수 없는것이 바로 어머니당의 사랑이였다.

그는 아버지의 애국렬사증앞에서 굳게 마음다졌다.

(아버지가 못다 바친 충정까지 합쳐 나의 모든것을 다하리라.한생을 당에 충실한 아버지처럼 나도 당의 참된 효녀가 되리라.)

이튿날 장이영희동무는 열정에 넘친 걸음으로 공장구내로 들어섰다.

우리 잠시 년로보장을 앞둔 나이에도 새 직무를, 주저앉다싶이 한 일터를 기꺼이 맡아나선 그의 고결한 정신에 자기의 량심을 비추어보자.

나 하나만의 명예를 생각하며 새 일감앞에서 잠시 주춤한적은 없는가.일정한 공적을 세웠다고 그것으로 만족한적은 없던가.

당시 공장의 실태는 장이영희동무가 짐작했던것보다 더 어려웠다.하지만 그는 난관앞에서 주저하지도 비관하지도 않았다.앞으로 걸머져야 할 무거운 일감, 헤쳐가야 할 험로를 시시각각 느끼면서 그는 당이 걱정하는 문제를 다름아닌 애국렬사의 딸인 자기가 풀게 되였다는 생각으로 오히려 기쁘고 긍지스러웠다.

장이영희동무는 달리는 살수 없는 애국렬사의 딸이기에 누구나 서슴어하는 일감을 솔선 맡아나선것이다.

 

그 언제나 당의 딸

 

자식이 부모의 사랑에 보답하는것을 도리로 여기듯이 정치적생명을 주고 그것을 빛내여나가도록 이끌어주는 당의 사랑과 믿음에 보답하는것은 혁명전사의 마땅한 의리로 된다.

장이영희동무는 보답의 그 길에서 순간이나마 마음이 지칠세라, 걸음이 드틸세라 자기자신을 채찍질하며 달리고 또 달리였다.

신임지배인의 첫 사업은 생산건물을 새로 일떠세우는것으로부터 시작되였다.

비생산부문의 인원으로 돌격대가 조직되였다.인원은 다해서 15명, 대장은 물론 지배인자신이였다.

종업원들의 대다수가 녀성들인 실정에서 자체의 힘으로 건설을 밀고나간다는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세멘트 한g, 판자 한장, 못 한개도 없었다.누구인가 그에게 지배인동진 애국렬사의 딸인데 우에다 좀 도와달라고 하면 모른다고는 하지 않을거라고 했을 때였다.

《부모의 주머니가 빈것을 알면서도 손을 내미는 자식이 있어요? 힘들어도 자체로 합시다.》

이렇게 말하며 착공의 첫삽을 억세게 박는 그의 심중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끊임없이 울리고있었다.

(난 아버지의 공적을 지팽이로 삼고싶지 않아요.당에서 애국렬사의 유가족이라고 그처럼 내세워주는것은 일을 더 많이 하라는것이지 결코 생색을 내며 대우를 받으라는것은 결코 아니예요.)

장이영희동무는 바로 이런 사람이였다.

그는 건물 하나를 지어도 당에 기쁨을 드릴수 있게, 먼 후날에도 손색이 없게 완성하려는 비상한 각오를 안고 때로는 설계가로, 때로는 자재인수원으로 되여 발이 닳도록 뛰여다녔다.

공사가 힘겹게 진행되고있던 어느날이였다.

초급당일군은 질통을 지고 지팽이를 짚으며 불편하게 층계를 오르는 한 녀인의 모습에 눈길을 주었다.자재때문에 먼길을 다녀온 지배인이 분명하였다.건설이 시작된 첫날부터 아예 합숙에서 살면서 그렇게 불같이 일하다가도 남들이 다 잠든 깊은 밤에는 저려드는 다리를 붙안고 모지름을 쓰는 지배인의 모습을 한두번만 보아오지 않은지라 초급당일군은 그에게 다가갔다.그리고 다짜고짜로 질통을 빼앗았다.종업원들도 안타까운 눈길로 지배인을 바라보았다.그러는 종업원들에게 장이영희동무는 목이 메여 말하였다.

《이제라도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우리 일터에 찾아오시면 기쁨을 드릴수 있을가 하고 생각할 때마다 난 막 가슴이 죄여들어요.》

그리고는 다시 질통을 지고 층계를 올랐다.

종업원들의 가슴속에는 그날 지배인이 한 말이 오늘도 깊이 새겨져있다.

장이영희동무의 이런 피타는 노력이 있어 공장은 해마다 인민경제계획을 앞당겨 수행하여 나라에 많은 리익을 주는 보배공장으로, 생산문화와 생활문화가 확립된 멋쟁이공장으로 전변되였다.

오늘 이곳을 찾는 사람들마다 감탄을 금치 못해하는 웃보상판지지점에 의한 천정처리방법도 다름아닌 지배인 장이영희동무가 착상한것이다.그는 합숙을 건설해도 모범합숙으로, 과학기술보급실과 연혁소개실, 제품견본실을 꾸려도 본보기로 일떠세웠다.

장이영희동무는 지배인으로 사업하기 시작한 첫날부터 오늘까지 모든 종업원들을 당의 참된 효녀들로 키우는것을 자기의 첫째가는 본분으로 여기고 일해오고있다.

그가 종업원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에 얼마나 각별한 관심을 돌리고있는가 하는것은 공장에서 매일 진행되고있는 어버이수령님의 회고록학습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작업현장이 새로 번듯하게 꾸려지자 일군들은 경쾌한 노래를 들으며 종업원들이 일하게 하자는 의견을 제기하였다.

그때 지배인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고 한다.

《종업원들에게 어버이수령님의 회고록을 들려줍시다.》

그리고는 그길로 필요한 설비들을 마련하기 위해 수백리 먼길을 떠났다.

이렇게 되여 현장에서는 종업원들이 회고록학습을 정상적으로 할수 있게 되였다.하여 종업원들이 회고록의 구절구절을 뜬금으로 외우게 되였고 이 과정에 그들의 사상정신세계에서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두해전 모든 힘을 함북도 북부피해복구전선에 총동원, 총집중할데 대한 당의 호소를 높이 받들고 온 나라가 떨쳐나섰을 때였다.공장종업원들은 수많은 지원물자를 마련하는것과 함께 많은 솜옷을 빠른 기일안에 만들어 북부전선에 보내주자고 궐기해나섰다.사실 그것은 생산능력을 초월한것이였다.

《우리모두 소왕청의 재봉대원들처럼 싸우자요.》

지배인의 말은 누구에게나 항일의 녀대원들의 투쟁모습을 되새겨주었다.

2~3대밖에 안되는 재봉기를 가지고 대대나 련대에 소요되는 군복을 도맡아 제작한 소왕청의 재봉대원들은 생산능력을 뛰여넘는 과부하가 생길 때마다 밤잠도 자지 않고 일손을 다그쳤다.잠이 오면 얼굴에 찬물을 끼얹으며 노래를 불렀다는 항일의 녀대원들.

종업원들은 두눈이 벌겋게 충혈이 지고 입술이 부르텄지만 누구도 쉬이 자기 초소를 뜨려 하지 않았다.하여 불과 3일동안에 천여벌의 솜옷을 마련하여 북부피해복구전투장에 보내줄수 있게 되였다.

항일의 녀대원들처럼 살며 싸우려는 그들의 정신을 어찌 수천, 수만벌의 솜옷에 비길수 있으랴.

공장의 곳곳에 새겨진 당의 기본구호들과 표어들, 복도에 게시된 직관물 하나하나에도 장이영희동무가 바친 헌신의 자욱이 뜨겁게 새겨져있다.

종업원들을 참된 효녀로 키우는 길에 한몸이 그대로 밑거름이 되려는 각오를 안고 장이영희동무는 늘 종업원들의 생활을 친어머니의 사랑으로 돌봐주고있다.

공장에는 세쌍둥이가 있다.일찌기 부모를 잃고 합숙생활을 하는 세쌍둥이는 그를 어머니라고 부른다.화장품이 하나 생기고 신발이 한컬레 차례져도 세쌍둥이를 먼저 생각하는 다심한 지배인, 결혼상도 차려주었고 새살림을 펼 보금자리까지 마련해주었으며 그들에게 자식들이 태여나면 마치 외손자가 생긴듯이 기뻐하며 돌봐주는 그의 진정은 정녕 친어머니의 사랑이였다.

그가 세쌍둥이에게 기울이는 사랑은 단순히 부모를 잃은 그들에 대한 동정도, 일군으로서 종업원들을 위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때문도 아니였다.당의 사랑을 남보다 더 받으며 자란 그들이 알찬 열매가 되고 모두다 혁신자가 되여 하늘같은 그 은정에 보답하기를 바라는 웅심깊은 마음에서였다.

어찌 이들뿐이랴.누구에게나 장이영희동무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그에게 있어서 수백명의 종업원들은 모두 그의 친혈육, 살붙이였다.공장에서는 종업원들에 대한 후방사업을 짜고들어 중요명절때마다 많은 물자들을 정상적으로 공급하고있으며 철따라 남새들도 떨구지 않고 보장하고있다.

공장초급일군들의 하루사업총화에서 지배인의 첫말이 그날 후방부문에서 보장하는 콩국과 빵을 종업원들이 다 들었는가라는 물음이라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우리는 여기에 공장에서 일하다 년로보장을 받은 사람들의 김장남새로부터 땔감에 이르기까지 다 자기 일처럼 맡아안고 마음쓰고 시안의 전쟁로병들과 영예군인들의 생활을 친딸의 심정으로 돌봐주고있는 장이영희동무에 대한 하많은 이야기를 다는 전할수 없다.

* *

얼마전 당에서는 그에게 사회주의애국공로자의 값높은 영예를 안겨주었으며 온 나라가 다 알도록 내세워주었다.

누구나 장이영희동무처럼 보답의 길에서는 쓰러질 권리도, 물러설 자리도 없으며 필요하다면 뼈를 깎고 살도 저며야 한다는 비상한 각오를 안고 분발하고 분발하고 또 분발한다면 내 조국의 전진속도는 그 얼마나 빨라질것인가.

이런 참된 녀성일군들, 효녀들이 많은것은 우리 당의 더없는 자랑이다.

장이영희동무는 오늘도 삶의 순간순간 당의 사랑과 믿음을 뜨겁게 새겨안고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보람찬 투쟁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쳐가고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리경일
본사기자 신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