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10월 8일 로동신문

 

일제의 야수성을 낱낱이 드러낸 을미사변

 

1895년 10월 3일 서울주재 일본공사관 밀실에서는 황궁에 들어가 명성황후를 살해할 모략이 꾸며졌다.일본에서 매우 음흉하고 악착하기로 소문난 군벌출신의 일본공사 미우라의 주관하에 서기관, 조선봉건정부의 궁내부《고문》, 공사관 무관 등 일제의 살인두목들이 모여 토의하고 구체적인 명성황후살해계획을 결정하였다.이 계획에서 요점은 명성황후를 살해하는것과 동시에 그것을 조선봉건정부의 《내부정변》으로 꾸밈으로써 일본에 대한 내외의 반항을 무마시키고 류혈참극을 빚어낸 책임에서 벗어나는것이였다.

일제가 이러한 흉계를 꾸미게 된것은 황궁안의 실권을 틀어쥐고있던 명성황후가 조선강점야망실현의 큰 장애로 되였기때문이다.

미우라를 비롯한 살인귀들은 명성황후살해날자를 10월 8일 새벽으로 정하였다.

그렇게 정한 의도가 있었다.

당시 조선봉건정부는 일제에 의하여 조직되고 길들여진 조선인훈련대의 해산을 선포하고 10월 8일부터 무장해제시킬것을 계획하고있었다.이것을 내탐한 일제는 명성황후살해사건의 총알받이로 나서야 할 조선인훈련대가 해산되면 저들의 음모가 물거품으로 돌아갈수 있다는것을 타산하였다.

이 흉계에 따라 미우라는 자기 공사관 관원을 대원군에게 보내여 명성황후를 몰아내고 다시 정권을 잡으라고 협박하는 한편 임의의 시각에 명성황후를 살해할수 있도록 일본불량배들로 폭력단을 조직하였다.

1895년 10월 8일 드디여 미우라의 총지휘밑에 력사에 을미사변이라고 기록된 피비린 명성황후살해극의 막이 올랐다.

일본군대, 경찰, 불량배, 친일무력인 훈련대 등이 망라된 살인무리는 경복궁으로 달려들었다.맞다드는 궁녀들을 닥치는대로 죽인 일제는 쓰러진 궁녀들가운데서 명성황후를 확인하자 범죄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하여 채 죽지 않은 그를 미리 준비한 장작더미우에 올려놓고 불태워죽였으며 남은 유골까지도 못속에 집어던져버렸다.

저들의 목적이 달성되자 미우라는 《이것으로써 조선은 드디여 일본의것으로 되였다.》고 뻔뻔스럽게 뇌까렸다.

당시 조선봉건국가권력의 대표자의 한사람이였던 명성황후를 무참히 학살함으로써 우리 나라의 자주권과 존엄을 강도적으로 란폭하게 침해하는 특대형범죄를 감행한 일제는 사건의 진상을 은페하는데서도 날강도적인 파렴치성을 여지없이 드러내보였다.

증인들과 흔적들을 없애버리기 위하여 악랄하게 책동하였으며 명성황후살해사건의 모든 책임을 대원군과 조선인훈련대에 넘겨씌우려고 획책하였다.그러나 그러한 행위들은 즉시에 반격을 받았고 명성황후살해사건은 점차 국제적문제로 번져졌다.바빠맞은 일제는 사건관계자들을 히로시마감옥에 림시《구금》하는 기만적인 놀음을 벌리였으나 《증거불명》이라는 구실을 내대고 인차 무죄석방하였다.

명성황후살해사건의 진상은 바로 이렇다.

모든것은 명성황후살해사건의 주범이 다름아닌 일본정부이며 전대미문의 이 테로사건은 조선에 대한 일제의 독점적지배를 실현하기 위한 침략의 전주곡이였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명성황후살해사건이후 일제는 《을사5조약》과 《한일합병조약》을 조작해내고 조선에 대한 식민지지배권을 확립하였으며 식민지파쑈통치기간 우리 인민에게 온갖 불행과 재난을 다 들씌웠다.

중일전쟁도발후에만도 840만여명의 조선사람들이 랍치, 강제련행, 유괴당하여 고역살이를 하였다.전쟁마당에 끌려가 희생물이 되고 탄광, 광산 등에서 고역을 치르다가 무참히 살해당한 조선사람들만도 헤아릴수 없이 많다.

오늘도 세계는 20만명의 조선녀성들에게 성노예생활을 강요한 일본의 과거죄악에 대해 저주하고 규탄하고있다.

일본은 엄청난 과거죄악을 미화분식하고 부정하는 언동을 로골적으로 일삼고있다.

력사를 외곡한 교과서들이 교육에 리용되고있으며 야스구니진쟈참배놀음이 계속 벌어지고있다.우리의 《위협》을 운운하며 군사비를 증강하는 한편 헌법개악책동을 집요하게 벌리면서 재침책동을 강화하고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민에게 이중삼중의 죄를 덧쌓는 행위로 된다.

을미사변이 일어난 때로부터 한세기가 훨씬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서는 일제에 대한 증오와 원한의 피가 더욱 세차게 끓고있다.

일본은 과거죄악의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

본사기자 손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