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11월 16일 로동신문
당을 따라 곧바로 한길을 가는 우리 청년들을 자랑한다 함경북도양묘장으로 자원진출한 청진농업대학 39명 졸업생들에 대한 이야기
공화국 70년 력사의 갈피에는 당과 《우리의 청년들이야말로 온 세상이 부러워하도록 높이 떠받들어주고싶은 애국적이고 영웅적인 청년들이며 이런 미더운 청년대군을 가지고있는것은 조선로동당의 큰 복이고 조선의 자랑이며 바로 여기에 존엄높은 우리 국가의 강대성과 창창한 미래가 있습니다.》 지난 9월 30일에 진행된 청진농업대학 제45기 졸업식에서 39명의 졸업생들이 대학졸업증과 탄원증서를 한가슴에 품어안고 아직은 이름뿐인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곳으로 주저없이 달려간 우리의 주인공들, 그들의 장한 모습은 력사의 모진 풍파속에서도 생기와 활력에 넘쳐 신심드높이 전진하는 우리 조국의 무궁무진한 힘과 창창한 미래를 확신하게 한다.
청춘은 무엇으로 아름다운가
우리의 이야기는 례년에 없는 무더위가 지속되던 지난 7월 중순 《우리 함북도인민들의 식탁에 사철 푸르싱싱한 남새가 오르도록 하시려고 이 무더운 때에 험한 길을 걸으시다니…》 《온실농장건설을 인민군대가 통채로 맡아하도록 하시였다니 그처럼 인민을 위하시는분이 또 어디 있겠소.》 화제는 새로 건설되는 온실농장에 어떤 작물들을 심게 되고 온실농사를 잘하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데로 흘러갔다.그러다나니 자연히 모여앉은 사람들의 시선은 전경일동무한테로 쏠리였다. 사람들은 흔히 평범하게 여기던 사실에서 자기의 의무를 자각하고 인생의 새 출발을 결심하는 때가 있다.깊어가는 밤 쉬임없이 열변을 토한 전경일동무의 경우가 그러했다.대견함이 가득 실린 부모의 눈빛에서, 마을사람들의 정깊은 미소에서 자기에 대한 크나큰 믿음과 기대를 새겨안으며 그는 가슴이 뻐근해지는것을 느꼈다.함북도인민들에 대한 다음날 그는 학급동무들에게 대학을 졸업하면 새로 건설되는 남새온실농장으로 탄원할 의향을 터놓았다.그것이 청년대학생들에게 던진 파문은 컸다. 그때 리충성동무는 두해전의 일을 돌이켜보았다고 한다. 두만강연안의 6개 시, 군지역을 휩쓴 자연재해는 회령시 계상리에 있는 그의 집도 단숨에 삼켜버렸다.홀어머니와 동생이 한지에 나앉았다는 소식을 들은 리충성동무는 휴식일을 리용하여 혈육들한테로 부랴부랴 달려갔다.하지만 그는 흙 한삽도 뜨지 못하고 되돌아왔다. 그로부터 불과 두달만에 그는 어머니한테서 온 전화를 받았다. 《맏이야, 오늘 나라에서 지어준 새 집에 이사했다.큰물에 떠내려간 집의 두배나 되는데 어찌나 희한한지 꿈을 꾸는것만 같구나.집구경을 오는 사람마다 얼마나 우릴 부러워하는지 모른단다.》 흐느낌에 젖은 어머니의 목소리, 그는 목이 꽉 메여올라 한마디 말도 할수 없었다. 못 잊을 추억을 더듬는 그의 마음속에서는 이런 웨침이 울리고있었다. (보답의 시각이 왔다.가자, 온실농장으로!) 이렇게 심장을 끓이며 결의해나선것은 리충성동무만이 아니였다.일가친척이 모두 청진시에 살고있는 학급당세포위원장 현승국동무와 칠보산아래 농장마을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꾸릴 열망을 안고 대학에 온 김남혁동무, 림승철, 김정국, 김동명동무들… 가슴에 품은 사연들은 서로 달랐지만 흔히 제대군인대학졸업생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선망의 눈길로 바라본다.그것은 그들이 젊은 시절에 누구나 쉽게 지닐수 없는 경력과 표징을 갖추었기때문이며 그 어떤 과업을 맡겨도 막힘없이 해제끼는 기질과 능력의 소유자들이기때문이리라.하지만 우리는 그보다도 누가 부르지도 시키지도 않았으나 하지만 그들은 얼마나 크나큰 영광이 자기들을 향해 마주 오고있는지 미처 알지 못하였다. 지난 8월 중순 대규모온실농장건설준비사업을 지도하시기 위해 또다시 현지를 찾으신 《내가 지난 7월 이곳에 대규모온실농장을 건설할데 대한 과업을 준 이후 청진농업대학 졸업반 학생들이 온실농장에 선참으로 탄원하였다는데 그들이 정말 기특합니다.》 바로 그 시각 한자리에 돌덩이처럼 굳어진 한 학생이 있었다.7명 탄원생들과 한학급에서 공부하는 양충일동무였다. 그의 집은 라선시였다.그곳에서는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가 대학공부를 마치고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있었다.그런것으로 하여 학급의 대다수 동무들이 장한 결심을 할 때 속으로 바재이며 선뜻 따라서지 못한 그였다.하지만 그때부터 납덩이라도 매달린듯 마음이 무거웠던것은 무엇때문이였던가. (나도 저들과 꼭같이 군사복무를 한 제대군인당원대학생이다.그런데 왜 사람이 살아가느라면 자신의 부족점을 깨닫게 되고 그로 하여 고민하는 때가 있게 된다.하지만 그 어떤 자질이나 능력이 아니라 당과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그는 학급동무들을 향해 웨쳤다. 《동무들, 나도 동무들과 함께 가겠소.》… 우리와 만난 자리에서 양충일동무는 이렇게 말했다. 《당을 따르는 길에서 다시는 한걸음도 뒤떨어지지 않겠습니다.주저없이 앞으로 곧바로만 가겠습니다.》 누구도 탓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되찾은 량심을 그는 한생토록 지켜갈것이며 수의축산학부 박국현동무는 온실농장으로 갈것을 결심하였지만 탄원을 제기하기 전에 여러 참고도서들을 깊이 파고들었다.현실에서 의의가 있는 연구과제를 찾아가지고 온포온실농장으로 진출하려는것이 그의 남다른 지향이였다.대규모남새온실농장에서 나오는 많은 량의 부산물을 집짐승먹이로 전환시켜 농장에 남새농사와 축산의 고리형순환생산체계를 확립하는데서 한몫하자는 그의 발기는 수의축산학부 탄원생들의 전적인 지지를 받았다.우리 시대 청년들은 바로 이런 청년들이다. 최윤철, 박세남, 리철혁, 김영진동무를 비롯한 국토건설학부의 졸업반 학생들도 온포온실농장과 함께 조선인민군 제122호양묘장이나 강원도양묘장과 같은 현대적인 양묘장도 건설할데 대한 청진농업대학의 39명 탄원생들의 뒤를 이어 함북땅의 또 다른 대학의 졸업생들과 방방곡곡의 청년들이 지금 세계를 둘러보면 수많은 청년들이 극단한 개인주의와 황금만능의 사고방식에 물젖어 대학공부를 해도 나라의 영예나 부강발전은 안중에 없이 자기 하나의 명예와 안락을 위해 기술을 배우고 학력을 쌓고있으며 대학을 나선 후에도 오로지 자기만을 위한 삶을 추구하고있다.하지만 우리의 주인공들은 청춘의 꿈과 리상은
참된 길동무, 초석이 되여
청진농업대학의 탄원생들이 온포온실농장과 함경북도양묘장으로 가겠다고 나섰을 때 그들과 꼭같이 잠 못 이루며 그 길에 자기들을 함께 세운 사람들이 있다.탄원생들의 안해들이다. 솔직히 말하여 우리 주인공들은 탄원을 결심하고도 안해와 자식들의 장래를 놓고 생각이 깊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고 한다.그들 대부분이 한가정의 세대주이고 애어린 자식들의 아버지였던것이다. 지난 8월 어느날 청진시 라남구역 은덕동에 살고있는 원예학부 과수학과 졸업반 학생 정광일동무는 집문앞에서 한동안 머뭇거렸다.청진닭공장 로동자인 그의 안해는 금방 아기를 낳고 산전산후휴가를 받고있었다.신혼살림의 행복에 함뿍 취해있는 안해가 정든 도시와 일터를 떠나 농촌으로 가자고 할가. 그가 이런 생각에 옴해있을 때 안해 리일순동무는 호- 하고 긴숨을 내쉬는 그의 눈앞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진이 비껴들었다.돌격대제복을 입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있는 아버지, 당의 설계도따라 이 건설장에서 저 건설장으로 쉬임없이 옮겨가면서 대상건설을 끝낼 때마다 《아버진 또 하나 해제꼈다!》라고 마치 건설을 책임진 큰 일군이나 되는듯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던 아버지가 이 일을 알면 무엇이라고 하였겠는가. 문득 아버지의 웅근 목소리가 들려오는듯싶었다. 《남편이 장한 결심을 했는데 발목을 붙잡아선 안된다.당의 구상을 받드는 삶이 제일 영광스럽고 행복한 삶이란다.》 리일순동무는 요람속에서 고이 잠든 딸애의 보드라운 두볼을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아가야, 우리 셋이 다같이 가자.이 엄만 너랑, 애기나무모랑 함께 키우련다.》… 탄원생들의 가정마다에서 이런 가슴뜨거운 화폭이 펼쳐질 때 대학의 책임일군의 방에서는 국토건설학부 졸업반 학생 박홍철동무의 탄원문제를 놓고 심중한 토의가 거듭되고있었다.그의 안해는 영예군인이였던것이다.오랜 토의끝에 그의 탄원제의는 고려하는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였다. 대학일군으로부터 이 사실을 알게 된 박홍철동무는 일군들의 진정이 고마왔다.하지만 이미 굳힌 결심을 되돌릴수 없는 그였다.그러면서도 안해에 대한 근심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몇해전까지만 하여도 하반신마비의 몸이였던 안해, 사회주의보건제도의 혜택속에 건강을 많이 회복하였지만 돌봐주는 사람의 손길이 늘 곁에 있어야 하는 안해가 부모도, 가까운 친척도 없는 외지에서의 생활을 꽤 견디여낼수 있겠는지, 자기의 탄원이 나라에서 귀중히 여기는 영예군인인 안해의 얼굴에 그늘이 지게 하고 심리적부담을 주는 일로 되지 않겠는지… 이런 생각에 모대기던 박홍철동무가 안해에게 솔직한 심정을 터놓았을 때였다.김일심동무는 표지장정을 곱게 한 수첩 하나를 남편앞에 내놓으며 말하였다. 《제 걱정은 말고 함께 가자요.당의 사랑을 누구보다 많이 받아안은 우리 가정이 아니나요.일은 비록 못해도 시를 읊고 노래를 불러주는것이야 왜 못하겠나요.》 수첩에 또박또박 적어넣은 혁명적인 시들과 노래가사들, 그것을 보는 박홍철동무의 눈가에 뜨거운것이 고여올랐다.그는 안해앞에 오금을 꺾었다.침상에 누워있는 김일심동무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바로 그날처럼. 안해의 작은 손이 그의 억센 어깨를 쓰다듬었다.이어 방울방울 흘러내리는 안해의 눈물… 그 손길, 그 눈물을 불덩이마냥 뜨겁게 느끼며 박홍철동무는 마음속으로 용서를 빌었다. (이런 안해를 두고 내 순간이나마 주저하다니… 고맙소.정말 고맙소!) 영예군인녀성이 장한 결심을 한 남편을 지지하며 어서 가자고 도리여 고무한 고결한 정신의 밑바탕에 흐르는것은 정녕 무엇인가. 청진농업대학 탄원생들의 안해들이 남편들의 결심을 가정의 리상과 포부로 기꺼이 받아들인 미거에서 우리는 바늘가는데 실간다는 속담만으로는 다 설명할수 없는 숭고한 정신세계, 당의 구상이 펼쳐지는 곳에서 청춘의 사랑도, 가정의 행복도 활짝 꽃피워가려는 우리 시대 녀성들의 애국적열정과 랑만을 본다. 우리는 함경북도와 라선시의 곳곳에 살고있는 탄원생들의 부모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39명의 탄원생들이 모두 제대군인들이여서 조국보위초소로 떠나보내고 여러해, 대학공부를 하는 동안 또 몇해, 이렇게 오랜 세월 기다려온 그리운 아들들이였다.하지만 그들의 부모들은 자식들의 장한 결심을 어떻게 받아들이였는가. 경흥군 송학리에 살고있는 문룡국동무의 어머니는 아들이 전해온 소식을 듣고 깊이 생각한 끝에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집안의 외아들인 네가 이 어머니곁으로 오지 않는다니 섭섭한 마음은 없지 않지만 가거라. 당일군의 아들이 당과 우리는 39명 탄원생들의 부모들이 자식들의 결심을 듣고 무엇을 생각하였으며 그들을 새 일터로 떠나보내면서 어떤 당부를 하였는지 일일이 다 쓰지 못한다.이 나라의 부모들이 자식을 키우며, 다 자란 자식을 조국앞에 내세우며 바라는것은 정녕 무엇인가.어느 한 시구절에도 있듯이 당과 조국이 부를 때 절대로 주춤거리지 말라는 절절한 당부와 기대가 아니였던가.《일 잘하고 자주 소식을 전하거라!》라고 한 탄원생부모들의 한결같은 소박한 당부에서 자기 아들딸, 혁명의 새 세대들이 지난 8월 중순 그때부터 그의 일과는 더욱 분망해졌다.강의안에는 나날이 새로운 내용들이 추가되였다.과학기술전당, 농업연구원 평양남새과학연구소를 비롯한 해당 기관들과의 긴밀한 련계밑에 현대적인 수경온실과 관련한 학술자료들과 동화상자료들을 품들여 마련하고 방과후에도 교실을 떠나지 않고 열정적인 보충강의를 계속함으로써 탄원생들에게 풍부한 지식을 더해준 참된 교육자, 알찬 씨앗과도 같은 훌륭한 제자들을 당과 조국앞에 떳떳이 내세우려는것은 대학일군들과 교원들의 한결같은 마음이였다.하여 스승도 제자도 하지만 대학의 일군들과 교원들은 졸업을 앞두고 제자들을 잘 키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누구나 한목소리로 말하였다. 《우리가 지금껏 학생들을 가르쳐왔다고는 하지만 이번에 발휘된 청년대학생들의 티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 숭고한 정신세계를 놓고 참으로 많은것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39명 탄원생들을 보람찬 일터로 바래우는 뜻깊은 졸업식날 도당위원회 책임일군이 회의실주석단에 나섰다.미덥고 끌끌한 탄원생들을 한사람한사람 눈여겨보던 책임일군은 저으기 갈린 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탄원생동무들! 고맙습니다.우리 도를 찾아오신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린 일군, 이윽하여 그는 진정에 넘쳐 말했다. 오늘의 장한 걸음을 한생토록 끝까지 이어가기 바랍니다.모교와 당조직은 언제나 동무들과 함께 있을것입니다.》 나라의 기둥감인 우리 청년들의 곁에는 이런 일군들과 인민들이 있다. 애국충정의 억센 바통을 대대손손 물려주는 훌륭한 인민이 억년 드놀지 않는 초석, 튼튼한 지반이 되여 앞날의 주인공들인 새 세대 청년들을 높이 떠받들고있는것이다.
혁명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 계속된다.나라와 민족의 앞날은 청년들의 모습에 비껴있으며 새 세대들을 어떻게 준비시키는가 하는데 혁명의 성패가 달려있다. 우리 청년들은 본사기자 허명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