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11월 18일 로동신문

 

위대한 포옹력을 지니신 민족의 어버이

 

가장 숭고하고 열렬한 동포애로 온 겨레를 묶어세우시며 조국통일의 주체적력량을 백방으로 강화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민족적량심을 지닌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든 하늘같은 도량과 포옹력으로 품에 안으시고 성스러운 통일애국의 길로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신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르며 온 겨레는 다함없는 경모의 정을 금치 못하고있다.

 

인생의 극적인 전환

 

최덕신선생이 불미스러운 과거사와 결별하고 늦게나마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된것은 인생의 극적인 전환이였다.

최덕신선생이 선친의 묘에 술이라도 한잔 붓겠다고 조국으로 힘든 걸음을 했던 때인 주체70(1981)년 7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그를 만나주시였다.

뜻깊은 석상에서 최덕신선생은 머리를 들지 못하고 속죄의 말씀을 드리였다.그의 말을 듣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과거는 어디까지나 과거이고 지금 나라가 분렬이냐, 통일이냐 하는 기로에 선 이때에 우리와 손을 잡고 통일을 위하여 한몫하여야 하겠다고, 자신께서는 최선생이 지난날의 일들을 씻어버리고 조국통일을 위해 일해보겠다는 새로운 결심을 가진데 대하여 감사히 여기고있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하해같은 도량에 감복한 최덕신선생은 그후부터 조국래왕의 길에 자주 올랐으며 공화국에 영주한 이후에도 통일애국사업에 적극 이바지하였다.

 

감복을 금치 못한 로목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70(1981)년 어느날 해외에서 찾아온 한 로목사를 접견하시였다.

그로 말하면 오래전부터 미국에 영주하면서 미국종교계에서도 영향력이 있는 인물로서 반공의식에 물젖을대로 물젖어있었다.

그는 조국땅에 첫발을 들여놓을 때 마중나온 일군들에게 고향인 평양을 조용히 방문하고 돌아가겠으니 자기와 관련하여 일체 보도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였다.

해방전 평양에서 목사로 있다가 미국으로 건너간 그가 평양을 못 잊어 찾아왔다는것을 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친히 그를 만나주시고 늦게나마 통일을 위한 애국의 길을 걸으려는 그의 민족적량심을 귀중히 여기시며 애국지사라고 불러주시고 오찬까지 베푸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식탁으로 초청하시고 먼저 선생이 식전기도를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고 권고하시였다.

로목사가 당황해하며 어쩔바를 몰라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생을 지켜온 신자들의 도리를 어겨서야 되겠는가고, 어서 기도를 드리라고 하시였다.

순간 목사의 마음속에 맺혀있던 위구심과 회의심은 삽시에 사라졌다.

어버이수령님의 그 넓으신 도량과 포옹력에 감복되여 자리에서 일어난 목사는 식전기도를 올렸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리 하늘이 낸 위인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건강을 축원하여, 조국의 자주적통일을 념원하여 기도를 올렸다.

평양을 떠나기에 앞서 스스로 기자회견을 요청한 그는 자기의 소감을 이렇게 피력하였다.

《저는 충심으로 김일성주석님을 위하여 기도를 올렸습니다.》

본사기자 장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