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10월 22일 로동신문
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축산업발전을 믿음직하게 담보 농업성 중앙수의방역소 검사실장
우리 인민들에게 더 많은 고기와 알을 먹이시려 그토록 마음쓰신 그는 지난 20여년간 수많은 집짐승사육단위들과 축산물수입단위들에서 제기되는 수만건의 검사대상물진단을 신속정확히 진행하여 과학적인 수의방역대책을 제때에 세우도록 함으로써 당의 령도업적을 옹호고수하고 인민들의 건강과 축산물생산의 안전성을 담보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 어떤 난관과 시련앞에서도 주저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참된 애국의 한길을 걷는 사람, 조국과 인민이 맡겨준 혁명과업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제때에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이 진짜애국자입니다.》 권정혁동무의 모습에서 우리는 자기의 일터를 사회주의수호전의 전초선으로 여기고 당에서 준 과업을 기어이 관철하는 실천가, 그 어떤 명예나 보수도 바람이 없이 힘과 지혜와 열정을 아낌없이 바쳐 나라의 재부를 늘여가는 사람이 참된 애국자로 시대의 존경을 받을수 있다는것을 다시금 깊이 절감하게 된다.
이 한몸 성벽이 되여
권정혁동무는 지금도 22년전 중앙수의방역소에 배치되던 날을 잊지 않고있다. 그때 평양농업대학(당시) 박사원을 졸업하고 방역소에 배치된 그에게 소장은 느닷없이 이렇게 물었었다. 《자원하여 우리 방역소로 왔다던데 어떻게 되여 그런 결심을 하게 되였소?》 호기심이 가득 어린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는 소장에게 권정혁동무는 어린 시절에 체험했던 한가지 사실을 말해주었다. 농업위원회(당시)의 축산부문을 담당한 부서에서 사업하던 그의 아버지는 자주 출장을 다니군 하였다.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와 숙제를 하던 정혁은 오래간만에 출장길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목에 매달렸다. 아들을 얼싸안고 방안이 좁다하게 돌아가던 아버지는 정혁의 손에 쥐여져있는 연필을 보더니 자리에 멈춰섰다. 연필대에 씌여있는 《첫 의정》이란 글을 유심히 살펴보던 아버지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너도 학교에서 배워서 잘 알게다. 해방후 해방후 갓 조직된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가 나라의 복구발전과 인민생활의 안정, 복리증진을 위한 활동을 시작한 때로부터 19일이 지나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결정 제1-(1)호가 채택되였다. 그것은 《평안북도내에서의 가축우역전염병과 투쟁할 대책에 대한 건》이였다.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에서 수의방역사업에 대한 문제가 첫 결정으로 채택된것은 우리 인민이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마음껏 누리도록 해주시려 《그런데 우린 아직 마치도 다 자란 자식에게 이르듯 하는 아버지의 그 말은 정혁의 마음속에 깊이깊이 새겨졌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난 소장은 권정혁동무의 손을 꼭 잡으며 믿음어린 어조로 말했다. 《 권정혁동무는 이렇게 당의 축산정책을 옹위하는 전초선에 투쟁의 좌지를 정하고 삶의 순간순간을 불같은 열정과 헌신으로 이어왔다. 그는 수의방역사업과 관련하여 주신 그에게 있어서 수의방역사업은 단순히 집짐승전염병을 진단하고 대책을 세우는 문제이기 전에 당의 축산정책을 옹위하는 결사전이였다. 어느 한 지역에서 소병이 발생했을 때였다. 현지에 달려가 검진을 끝마친 권정혁동무의 마음은 천근만근으로 무거웠다. 병에 걸린 그 소들은 협동농장들에 절실히 필요한 부림소들이였던것이다. 권정혁동무는 마음의 신들메를 조여매고 부림소들을 지켜내기 위한 전투마당에 뛰여들었다. 문헌자료들을 연구하는 과정에 그는 저항성이 강한 부림소들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분석한데 기초하여 치료회복체계를 세웠다. 며칠밤을 꼬박 지새우며 부림소들에 대한 투약을 진행하고 상태를 관찰하느라 입술이 부르트고 두눈이 충혈되였지만 그는 부림소들을 모두 살려내야 한다는 각오를 안고 단 한시도 전투를 중단하지 않았다. 완쾌된 부림소들을 쓸어보며 협동농장들의 일군들과 농장원들이 기뻐할 때 권정혁동무는 또다시 수백만마리의 집짐승들에 대한 수의방역대책을 세우기 위해 어려운 길을 떠났다. 당의 은정속에 건설되는 어느 한 소목장에 대한 검역사업을 진행할 때였다. 건설과 함께 소목장운영에 필요한 소들을 동시에 확보하다나니 검역사업에서 적지 않은 애로와 난관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짧은 기간에 많은 소들에 대한 검역사업을 진행하자니 시간이 어방없이 모자랐다. 함께 나갔던 방역소의 검정원이 부족되는 시간을 어떻게 보충하겠는가고 물었을 때 권정혁동무는 단마디로 말하였다. 《잠시간과 식사시간을 줄이면 되오.》 당에서 준 과업을 관철하기 전에는 쉴 권리도, 쓰러질 권리도 없다는것이 권정혁동무의 의지였고 변함없는 자세였다. 그는 소우리곁에서 별과
함께 한밤을 지새웠고 간편하게 주먹밥을 만들어가지고 서서 먹으며 검역사업을 진행하였다. 그때로부터 몇달후 권정혁동무는 현대적으로 건설된 소목장을 찾으신 언제나 조국을 위해 싸우다 남모르게 묻힌대도 더 바랄것이 없다는 고결한 인생관, 언제나 어렵고 힘든 일은 자기가 떠맡아안는 투신력을 지닌 사람이 먼길을 끝까지 갈수 있다. 원가가 다른 나라의 진단액에 비할바없이 적게 들면서도 진단속도를 종전의 18~20시간으로부터 3분내로 단축할수 있는 새로운 집짐승전염병신속진단액을 개발하여 집짐승전염병진단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올수 있은것도, 집짐승전염병예방약을 개발완성하고 예방약생산방법을 확립할수 있은것도 그런 신념을 지녔기때문이다. 원가를 줄이면서도 면역률을 100% 보장할수 있는 집짐승전염병랭동건조예방약을 연구완성, 우리의 원료와 자재, 우리의 기술에 의거하여 주체화된 집짐승불활화예방약면역보조제 개발완성,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실리가 보장된 돼지페스트, 단독, 돈역 3가랭동건조예방약을 개발완성… 언제 어디서나, 자나깨나 당의 뜻으로만 불타는 마음에서, 죽으나사나 당정책을 끝까지 옹위하려는 결사관철의 돌격정신에서 이런 창조물이 태여날수 있다. 권정혁동무는 이렇게 우리 당의 축산정책을 옹호고수하고 인민들의 건강과 축산물생산의 안전성을 믿음직하게 수호하는 성벽으로 굳건히 서있었다.
애국으로 불타는 심장
언제인가 권정혁동무는 당의 크나큰 신임에 의하여 외국연구기관에 파견되여 실습을 진행한적이 있었다. 시간을 쪼개가며 연구사업을 진행하는 속에서도 그의 마음은 언제나 조국으로 달리였다. 그는 가치있는 유전정보자료들을 수집하고 분석하는 한편 실습비용을 절약하여 과학기술도서들과 시약, 기구들을 적지 않게 해결하여가지고 조국으로 돌아왔다. 그후 여러차례 외국출장을 다녀왔지만 그의 모습은 언제나 한본새였다. 언제인가 그가 외국출장길에서 돌아왔을 때였다. 아버지의 가방을 유심히 살펴보던 어린 자식이 볼부은 목소리로 물었다. 《내게 줄 기념품은 못 가져왔나요?》 그때에야 권정혁동무는 이마를 쳤다. 외국출장을 떠날 때 이번에는 자기에게 줄 기념품을 하나 멋진것으로 구해달라고 하던 자식의 부탁이 생각났던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어린 자식의 부탁을 잊고있었다고 생각하니 권정혁동무는 여간 죄스럽지 않았다. 《도서와 실험기구들만 생각하다나니 아버지가 그만 깜빡 잊었구나.》 눈물까지 글썽해지는 아들과 가족들을 멋적은 눈길로 둘러보는 권정혁동무의 모습을 띄여보던 그의 안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버지가 가져온 도서와 실험기구들은 기념품보다 더 귀한것이고 그런것들이 많아야 우리 집은 물론이고 다른 집들의 식탁도 풍성해진다고 자식의 마음을 눙쳐주었다. 부모들이 출장길에서 돌아오면 가방부터 열어보군 하는것이 어린 자식들의 심리이다. 하지만 권정혁동무는 아들이 다 자란 오늘까지 출장길을 수없이 다녔지만 그에게 기념품 하나 마련해준것이 없었다. 그의 머리속에는 오직 어떻게 하면 당의 뜻대로 축산업을 발전시켜 인민생활에 이바지할것인가 하는 한생각뿐이였다. 그 나날 권정혁동무는 수십차에 걸쳐 많은 첨단설비들과 수백종의 시약, 기구들을 일식으로 해결하여 중앙수의방역소를 국가적인 수의전염병진단거점으로 개건하고 수의방역사업의 과학화, 현대화를 실현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언제인가 발생한 원인모를 돼지병의 원인을 해명하고 대책을 제때에 세울수 있게 하였으며 조류독감예방약을 생산도입하여 당의 수의방역정책을 앞장에서 관철해오는 나날에 권정혁동무는 수십건의 수의과학기술성과들을 이룩하였다. 권정혁동무와 함께 일하는 성원들은 그를 우리 실장, 우리 당세포위원장이라고 존경을 담아 부르고있다. 10여명의 기술자들이 권정혁동무의 높은 실력과 사심없는 방조속에 나라의 수의방역사업을 떠메고나가는 기둥으로 자라났다. 당의 웅대한 구상을 받드는 길에 청춘을 바칠 결심을 품고 세포지구 축산기지건설장으로 탄원했던 한 기술자를 위해 권정혁동무가 바친 진정은 얼마나 뜨거웠던가. 아버지없이 어머니와 함께 사는 그에게 친아버지를 대신하여 돌격대생활에 절실히 필요한 물자들과 생활용품들도 마련해주고 한해에도 몇번씩 찾아가 힘과 용기를 북돋아준 이야기며 그의 가정일을 친혈육의 심정으로 돌봐준 이야기를 다 꼽자면 끝이 없다. 이처럼 권정혁동무는 당세포의 당원들을 당과 조국이 부를 때 제일먼저 나서는 첫번째 용사들로, 당세포를 우리 당의 믿음직한 전위대오로 만들기
위해 나라의 축산업발전에 깃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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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에서는 수십년간 나라의 수의방역초소를 지켜 성실한 노력을 아낌없이 바쳐온 권정혁동무를 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시대의 앞장에 내세워주었다. 당의 크나큰 믿음을 심장에 새겨안고 권정혁동무는 오늘도 보답의 큰걸음을 힘있게 내짚고있다. 이런 참된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오은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