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12월 2일 로동신문

 

민족의 자랑 조선의 국견-풍산개(2)

 

우리는 조선의 국견 풍산개의 원산지로 유명한 김형권군으로 취재길을 이어갔다.

굽이굽이 후치령을 넘어 김형권군 소재지에 들어선 우리는 먼저 한 일군의 안내를 받으며 군의 연혁소개실을 참관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 북부지대에 있는 유명한 풍산개도 원종을 보존하고 많이 번식시켜 널리 키우도록 하여야 합니다.》

연혁소개실에서 풍산개의 보호증식을 위하여 크나큰 심혈과 로고를 기울이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령도업적에 대하여 다시금 가슴뜨겁게 새겨본 우리는 풍산개자랑을 많이 안고있는 이 고장 토배기들을 찾아 길을 떠났다.

먼저 이른 곳은 광덕리였는데 리의 일군은 우리가 온 사연을 듣고나서 올해에 79살이 된다는 김봉세로인부터 먼저 만나게 해주었다.

30년나마 사냥을 해온 로인은 풍산개의 령리성과 용맹성, 침착성, 이악성 등을 보여주는 여러가지 일화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사냥에 풍산개를 데리고갈 때에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맞받아가야 한답니다.그래야 개가 냄새를 잘 맡으니까요.》

이렇게 서두를 뗀 로인은 풍산개를 데리고 사냥을 다니던 이야기를 구수하게 펼쳐나갔다.

《풍산개는 령리하기때문에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큰 짐승무리를 발견하면 주인에게 되돌아와서 꼬리를 살래살래 저으며 어디에 짐승이 있는가를 알려준답니다.협조할 다른 개들을 붙여주든가 아니면 주인이 사냥에 적극적으로 합세해달라는거지요.》

그러면서 로인은 언제인가 20마리가 넘는 메돼지무리와 맞다들었을 때의 이야기를 손세까지 써가며 방불하게 들려주었다.

갑자기 수적으로 많은 메돼지와 맞다들었지만 풍산개는 당황해하지도 않고 무작정 덤벼들지도 않았으며 침착하게 목표물부터 골랐다.

목표물로 한놈을 선정한 다음 그옆으로 다가가 우정 툭툭 건드리기도 하고 짖어대기도 하면서 그놈을 교묘하게 무리에서 떼여냈다.

다른 메돼지들이 도와주러 오지 못할 정도의 거리까지 꾀여낸 다음 여러 마리의 풍산개가 교대로 덤벼들어 얼이 나가게 만들어놓고는 집요하게 공격하여 끝끝내 그놈을 물어메치고야말았다.

로인의 말에 의하면 때로 사냥에 나섰다가 허탕을 친 주인이 산을 내릴 때에도 풍산개는 포기하지 않고 그냥 각성있게 주위를 살피다가 사냥물을 기어이 찾아 물어메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풍산개의 사냥기질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난 김봉세로인은 우리에게 민병극로인을 꼭 만나보라고 하는것이였다.

우리를 반겨맞은 민병극로인은 풍산개가 1930년대 후반기에 어느 한 저수지공사장에서 위훈을 세운 실재한 이야기를 반영하여 자기가 직접 썼다는 영화문학의 초고부터 꺼내놓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아버지가 목격한데 의하면 그때 저수지공사장의 로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키자 일본감독놈들이 쉐퍼드 두마리를 풀어놓았다고 합니다.그 개들이 길길이 날뛰며 로동자들을 물어뜯으려고 덤벼들 때 누군가가 풀어놓은 풍산개 두마리가 달려들어 공사장에서는 개들의 혈투가 벌어졌습니다.풍산개들은 날랜 동작으로 쉐퍼드들의 다리밑을 빠져다니며 요진통을 물어뜯군 하였습니다.결국 일본놈들의 개 한마리는 피거품을 물고 쓰러졌고 다른 한마리는 심한 부상을 입고 도망쳤지요.일본감독놈들은 하는수없이 로동자들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슬기롭고 용맹한 풍산개의 특질이 선명하게 안겨오는 영화문학초고를 다 보고난 우리에게 민병극로인은 몇해전 다른 리에서 한 사냥군이 풍산개에 의하여 구원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느라니 우리의 뇌리에 주체52(1963)년 2월 27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명견-풍산개》라는 기사의 글줄이 떠올랐다.

《우선 자기 주인외에는 그 누가 무엇을 주거나 추긴다 해도 좀체로 믿지 않으며 또 자기 집의것이라면 무엇이나 살뜰히 보살피며 그 누구도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게 한다.…

풍산개의 완강성과 박투력은 개량종개는 물론 싸움을 잘한다는 부르독크고 그 어떤 개든지 당할수가 없으며 또 그렇게 싸울만 한 체력을 가지고있다.…》

다음날 우리는 황덕린로인을 찾아 떠났다.

다른 개들이 아무리 사납다 해도 꼼짝 못하게 제압하는 풍산개가 집을 지키고 주인을 위하는데서는 얼마나 극성스러운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수 있다고 하면서 이곳 리의 일군이 우리를 그의 집으로 안내하였던것이다.

로인은 우리에게 유명한 조선의 국견 풍산개 3번으로 등록된 개라고 붓글씨로 정성다해 쓴 글발을 보여주었다.

심산오지에서 자라는 풍산개에 대한 연구때문에 해당 전문가들이 왔다가 이 집 개를 자기들의 연구일지에 그렇게 등록하였는데 조선의 국견을 키워가는 남다른 자랑을 안고 집주인들이 이런 글까지 썼던것이다.

풍산개에 대한 강렬한 애착심이 엿보여 가슴이 뭉클해졌다.

처음 우리가 이 집에 들어설 때 두마리의 풍산개가 달려들 자세로 사납게 짖었지만 로인이 이름을 한번 부르자 순간에 온순해졌다.

황덕린로인은 저 풍산개들이 낯선 손님을 보면 처음에는 으르렁거리는데 일단 집에서 하루밤 묵어가는 손님은 절대로 물지 않으며 그를 향해 짖지도 않는다고 하면서 우리를 집안으로 이끌었다.

로인의 풍산개자랑은 집짐승방목이야기로부터 시작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자기 집 풍산개는 착실한 경비개가 되여 하루방목을 보장한 다음 집짐승들을 우리에 몰아넣을 때 간혹 다른 집들의 염소나 양이 섞여들어오려고 하면 으르렁거리면서 절대로 제 집울타리안에 들여놓지 않는다는것이였다.

다른 개들은 서로 먹이를 먼저 먹겠다고 싸우는 경우가 많은데 풍산개들은 얼마나 똑똑한지 새끼들이 엄지가 먹이를 먼저 먹을 때까지 깍듯이 양보한다고 하면서 로인은 집도 잘 지키고 집짐승방목도 잘하며 경우에도 밝은 자기 집 풍산개자랑을 줄줄 내리엮었다.

풍산개덕으로 군사복무시절의 옛 전우들과 수십년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만나게 된 이야기를 비롯하여 가지가지의 즐거운 이야기꽃을 피우며 하루밤을 보낸 우리는 다음날 꼬리를 살살 저으며 곱게 노는 풍산개를 뒤에 남기고 신원리를 향해 떠났다.

신원리에서 우리는 대대로 사냥을 잘하는것으로 소문이 났다는 전동국분조장의 집부터 찾았다.

분조장이 처음 들려준 이야기는 언제인가 자기 친구와 씨름을 할 때 있은 일화였다.

《내가 이겼을 때에는 곁에 점잖게 앉아 구경하던 우리 집 풍산개가 내가 져서 밑에 깔리자 상대방의 옷을 물어제끼면서 으르렁거려 그를 깜짝 놀라게 했답니다.아무리 놀음삼아 하는 시합이라도 주인을 이기는 상대를 용납할수 없다는겁니다.풍산개가 정말 똑똑하다고 칭찬하며 혀를 차던 친구의 모습이 선합니다.》

그는 풍산개덕분에 사냥을 갔다가 목숨을 건진 이야기도 자세히 들려주었다.

지금으로부터 근 30년전 봄에 있은 일이다.

그는 사촌형제들과 함께 풍산개를 데리고 산으로 올랐다가 곰과 마주치게 되였다.그들은 도끼와 창을 곰을 향해 던졌다.도끼에 대갈통을 맞고 두개의 창에 가슴팍이 찔렸지만 육중한 곰은 쓰러지기는커녕 더 무섭게 으르렁거리며 달려들었다.

몇발자국뒤에는 아찔한 낭떠러지였다.곰이 그들을 막 덮치려는 위기일발의 순간 풍산개가 날쌔게 곰의 상통에 날아들어 귀를 물었다가 사람들의 반대쪽으로 휙 날아떨어졌다.

곰의 약을 바싹 올려놓은 풍산개는 요리조리 잡관목사이를 빠져달아나며 그 주변을 한참이나 빙글빙글 돌아갔다.그사이 그들은 땅에 떨어진 도끼와 창을 다시 찾아들고 숨을 돌릴수 있었으며 재차 역습할 기회를 노리였다.

한동안 곰의 맥을 빼며 골려주던 풍산개는 사냥군들이 역습할 차비를 갖춘것을 알고 다시 이들에게로 곰을 유인해왔다.

힘껏 던진 창 두개에 염통이 찔리고 도끼에 또다시 얻어맞은 곰은 온 산판이 떠나가게 굉음을 지르며 태질하다가 나자빠졌다.

《풍산개가 그처럼 용맹한것은 백두산과 잇닿은 곳에서 살면서 조선범의 용맹한 기질을 닮아서인것 같습니다.저 풍산개를 유심히 보십시오.이마와 두눈사이가 넓고 주둥이도 뭉툭하며 가슴통도 쩍 버그러지고 몸통근육 또한 조화롭게 발달된게 꼭 조선범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말을 듣고보니 정말 그럴듯 하였다.

전동국분조장은 계속하여 풍산개에 대한 이야기는 사아리와 내중리, 지경리를 비롯한 그 어디를 찾아가보아도 들을수 있다고 하는것이였다.

그 풍산개자랑을 세상에 널리 전하자고 김형권군 읍에 사는 리수옥녀성의 아버지 리인영도 국견과 관련한 영화문학을 쓸 때 눈이 실명되였어도 손가락을 꼽아가며 작품의 구성을 세웠고 딸에게 사색이 깃든 문장을 한글자한글자 불러주어 마침내 작품초고를 완성시켰다고 한다.

김형권군의 여러곳을 편답하면서 알게 된 이 고장 토배기들의 풍산개자랑이 우리에게 남긴 여운은 컸다.

그것은 자기 가정, 자기 향토에 대한 애착인 동시에 우리 조국의 귀중한 재부중의 하나가 제 고장에 있다는 남다른 긍지와 자부심의 표현이였고 그것을 더없이 귀중히 여기며 끝없이 빛내이고싶어하는 뜨거운 애국심의 분출이였다.

예로부터 슬기롭고 용감하며 불의를 미워하고 정의와 진리를 사랑하며 도덕의리를 귀중히 여기는 우리 민족이였기에 그렇듯 훌륭한 명견도 키워올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취재를 마치고난 우리의 마음속에 그들먹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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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행길은 끝났어도 민족의 자랑인 풍산개에 대한 이야기는 나라의 방방곡곡에서 끝없이 이어지고있다.

우리 인민들속에서는 국견인 풍산개를 저저마다 키우려는 열의가 보다 높아지고있다.

풍산개의 원산지인 량강도 김형권군과 그 주변지역은 물론이고 각지의 농촌에서도 풍산개를 기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있다.

사리원시에서는 해마다 봄철이면 수많은 애호가, 전문가의 관심속에 풍산개품평회가 성황리에 진행되고있다.

외국인들속에서도 풍산개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날로 높아가고있다.

해방전 나라잃은 민족의 수난과 함께 멸종의 위기에 처하였던 풍산개가 위대한 수령님들과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숭고한 뜻에 의하여 조선의 국견으로 그 이름을 높이 떨치고있는 자랑찬 현실을 보면서 우리 인민들은 크나큰 민족적자부심을 다시금 깊이 새겨안고있으며 공화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길에 값높은 애국의 자욱을 수놓아갈 결의를 더욱 굳세게 가다듬고있다.

본사기자 백성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