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12월 9일 로동신문

 

민족의 슬기와 용맹한 기상이
어린 조선의 국조-참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참매는 용맹스러운 새입니다.참매는 조선사람의 기질을 닮은 새입니다.》

일찌기 국조선정문제를 나라와 민족의 기상과 존엄을 떨치고 인민들의 가슴속에 애국심을 더욱 깊이 심어주는 중요한 사업의 하나로 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97(2008)년 4월 오랜 옛날부터 우리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지고 친숙해졌을뿐아니라 강의하고 용맹한 조선사람의 기질을 그대로 닮은 참매를 나라의 국조로 정해주시였다.

일반적으로 국조는 해당 나라를 상징하는 새로서 그 나라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지고 가장 친숙해진 새 또는 특산종의 새로 정하고있으며 그런것으로 하여 국조로 선정된 새들의 특성에는 해당 나라의 풍토와 문화, 사람들의 생활관습과 관계되는것이 많다.

우리는 얼마전 슬기롭고 강의한 조선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더해주며 우리 공화국의 국조로 사랑을 받고있는 참매의 자취를 따라 취재길에 올랐다.

 

우리 민족사에 한 자리를 남긴 새

 

우리는 양덕군을 향해 달리는 취재차에서 예로부터 우리 나라에서 사냥에 참매를 리용해온 력사와 주변나라들에 매를 리용한 사냥방법을 전파시킨 슬기로운 우리 인민의 활동내용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펼쳐들었다.

우리 선조들은 여러종의 매가운데서도 사냥을 제일 잘하는 매를 참매라고 부르면서 매우 귀한 새로 여기고 사랑하였으며 야생적으로 자란 매를 잡아 길들여 꿩을 비롯한 날짐승사냥에 리용하였다.

참매는 해동청, 보라매 등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웠는데 해동청은 조선의 푸른 매라는 뜻으로서 주변나라들에서 우리 나라의 참매를 가리켜 부른 이름이였다.

또한 보라매는 그해에 나서 길들여진 매로서 가슴부위의 털색갈이 보라색을 띠고있다는데로부터 불러온 이름이라고 한다.

《고본응골방》이라는 우리 나라의 옛 문헌에는 사냥을 좋아하는 초나라의 왕에게 어떤 사람이 《해청》(해동청)을 보내주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고조선시기에 벌써 참매가 다른 나라들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이름이 나있었다는것을 말해주고있다.

매를 리용한 사냥은 상무기풍이 높았던 고구려에서 제일 활발히 진행되였다.

고구려건국설화에는 동명왕의 아버지 해모수가 꿩으로 둔갑한 하백의 재주에 대해 매로 변해서 그를 굴복시켰다는 내용이 기록되여있다.또한 장천1호무덤, 세칸무덤을 비롯한 고구려시기 벽화무덤들에는 매를 길들이는 사람의 모습과 매를 리용한 사냥장면들이 그려져있는데 이것은 고구려사람들이 일찍부터 민첩하고 용맹스러운 참매를 사냥에 널리 리용하였을뿐아니라 예술작품에도 적극 반영하였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고려시기에 이르러 매기르기와 매를 리용한 사냥은 더욱 활발히 진행되였는데 그것은 매를 전문적으로 키우는 기관을 내오고 운영한 사실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도 한강기슭에 매에 대한 관리를 전문적으로 맡아보는 응방이 설치되였는데 이 기관은 그후에도 계속 확대되였다고 한다.

우리 인민은 예로부터 정월 초하루날이면 집집마다 매를 그린 세화(새해를 축하하는 의미로 그려붙이던 그림)를 방안의 벽이나 대문에 붙이군 하였는데 여기에는 참매의 용맹성을 빌어 그해 집안에 닥쳐드는 화를 막고 복을 불러들인다는 의미와 함께 아름다운 산천에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우리 민족의 소박한 념원이 깃들어있다.

우리 인민은 매를 길들이는데서도 오랜 옛날부터 고유하고 독특한 방법을 썼다.

매는 제때에 잡아 길들여야 하는데 대체로 해마다 7월부터 10월까지의 기간을 제일 적합한 때로 보았다.

다 자란 매는 산에 덫이나 옹노를 놓아 잡았으며 산에 있는 매둥지에서 일정하게 자란 새끼매를 잡아다 길들이기도 하였다.

오래전부터 매를 길들여 사냥에 리용하여온 우리 인민은 주변나라들에 참매를 많이 보내주었으며 매를 길들이는 방법과 매를 리용한 사냥방법을 배워주기도 하였다.

《일본서기》, 《고사기》와 같은 일본의 오랜 력사책들에는 백제와 신라를 비롯한 우리의 옛 국가들에서 매길들이기와 매를 리용한 사냥방법을 일본에 대대적으로 전파하였다는것을 보여주는 기록들이 있다.

이미 고조선시기에 해동청이라고 부르는 우리 나라의 참매를 고대중국의 여러 나라에서 앞을 다투어 사갔는데 그후 참매에 대한 수요는 삼국시기에 이르러 더욱 높아져 이 시기 대외무역에서 참매는 주요수출항목의 하나로 되였다고 한다.

력사자료에 의하면 발해와 당나라사이 진행된 교역에서도 참매는 당나라상인들이 먼저 찾는 주요수출품이였으며 고려시기에 이르러서는 거란과 몽골에까지 매와 함께 매방울을 비롯하여 매와 관련한 여러가지 물품을 많이 수출하였다고 한다.

참매를 리용한 사냥이 활발히 진행되고 사람들의 생활속에 깊이 침투되면서 그와 관련한 수많은 력사이야기, 일화와 함께 《시치미를 떼다》, 《청산에 매놓기》, 《매한테 쫓기는 꿩》을 비롯한 기지있고 뜻이 깊은 속담들이 생겨나 오늘까지 전해지고있으며 《해동청》, 《까투리타령》과 같은 많은 시작품과 민요도 창조되였다.

가없이 넓은 창공을 자유로이 날아예온 참매도 나라없던 그 세월에는 민족의 운명과 함께 수난을 당하게 되였다.

얼마전 우리와 만났던 사회과학원 민속학연구소 소장 교수 박사 공명성선생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나라의 모든것을 송두리채 빼앗기 위해 미쳐날뛴 일제는 수천년세월을 두고 전해져온 참매를 리용한 우리 인민의 전통적인 사냥풍습을 말살하고 참매를 없애버리기 위해 정말 못된짓을 많이 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사상과 현명한 령도가 없었더라면 멸종의 위기에 처하였던 참매가 어떻게 나라를 상징하는 국조로까지 될수 있었겠습니까.한때 긴꼬리새매라고 불리운 참매의 이름을 자기의 옛 이름대로 고쳐부르도록 해주신분도 위대한 장군님이십니다.》

그의 이야기를 되새기며 차창밖을 바라보느라니 위대한 수령을 모셔야 강산이 더욱 빛나고 거기에 깃을 펴고 사는 이 땅의 모든것을 지켜내고 빛내일수 있다는 력사의 메아리가 수려한 산발마다에 끝없이 울려퍼지는것 같았다.

 

창공높이에 억센 나래 더 활짝 펼치라

 

군의 많은 면적이 산지로 되여있는 양덕군은 소나무, 이깔나무, 황철나무를 비롯한 바늘잎나무와 넓은잎나무들이 많은것으로 하여 참매의 활동에 유리한 자연지리적조건을 가지고있다.

양덕군에 도착한 우리는 양덕군박제품공장의 리영호, 김철웅동무와 함께 참매가 자주 나타나군 한다는 봉계리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두루봉과 칼바위산 등 높고낮은 산발들을 이틀동안이나 오르내렸지만 참매는 쉽게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지간히 지쳐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걷는 우리에게 리영호동무는 잠간 쉬였다 가자고 하면서 얼마전 자기가 보았다는 참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난 11월초 박제품생산에 필요한 짐승들을 잡기 위해 봉계리의 어느 한 골짜기에서 사냥을 하던 그는 데리고갔던 사냥개가 갑자기 얼마간 떨어져있는 이깔나무를 향해 짖어대는것을 보게 되였다.

그쪽을 바라보니 이깔나무에 날카롭게 생긴 새 한마리가 앉아있었는데 가슴에 뚜렷하게 새겨진 검은밤색의 가로무늬와 눈우에 나있는 짙은 흰 띠를 보고 참매라는것을 대번에 알았다고 한다.

그는 인기척이 조금만 느껴져도 즉시 날아가버리는 저광이나 큰새매와 같은 다른 사나운 새들과는 달리 사람이 자기가 앉아있는 나무아래까지 갔는데도 참매는 조금도 놀라지 않고 아래를 《위엄있게》 내려다보고있었다고, 이것만 놓고보아도 참매가 용맹할뿐만아니라 예로부터 사람들과 친숙해진 새였다는것을 잘 알수 있다고 하는것이였다.

김철웅동무도 지난해와 올해에 이 주변에서 소나무아지에 앉아있는 참매와 숲속의 나무사이로 날아다니면서 먹이감을 찾는 참매를 여러번이나 보았는데 몸매가 날씬한 참매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자기 머리우를 지날 때는 윙윙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하면서 참매가 나는 모습을 형상까지 하면서 그려보이는것이였다.

그러면서 자기가 본 참매들의 몸색갈이 서로 달랐는데 어느 책에선가 보니 참매는 자라면서 여러번 몸색갈이 변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인가고 묻는것이였다.

우리는 이들에게 여기로 오기 전에 김일성종합대학 생명과학부 박사 부교수 박학성선생을 통해 알게 된 참매의 생태학적특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독수리목 독수리과 새매속에 속하는 참매(Accipiter gentilis)는 백두산지역을 포함한 량강도일대와 자강도, 함경남도 등 우리 나라 북부의 고산지대에서 번식을 하고 그 이남지대에서 겨울을 나는 사철새로 알려져있다.

참매는 성숙정도에 따라 몸색갈이 여러번 변하는데 새끼때에는 보라색을 띠다가 점차 자라면서 누런색으로, 다 자라서는 푸른색으로 변한다고 한다.

참매의 몸색갈변화에서 특징적인것은 새끼때에는 가슴과 배부위에 큼직큼직한 검은밤색무늬가 세로로 놓여있지만 다 자랐을 때에는 그 무늬가 가로놓여있는것이다.

길고 넓은 날개와 끝이 둥그스럼한 긴 꼬리를 가지고있는 참매는 눈우에 뚜렷한 흰색의 띠(흰눈섭선)가 있는것이 특징적인데 암컷이 수컷보다 좀 크며 대가리 웃부분과 뒤부분은 검은색이고 목 뒤부분은 밤색빛이 도는 검은색으로서 흰색의 얼룩점이 있다.

뺨과 멱부분은 흰색이며 깃축은 검은색이다.

푸른빛이 도는 검은색을 띤 부리는 짧고 앞끝이 구부러졌으며 다리는 비교적 긴데 연한 분홍색을 띠고있다.…

우리의 말을 듣고있던 리영호동무가 참매의 먹이사냥방법과 번식에 대하여서는 자기도 좀 알고있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참매는 주로 꿩이나 청서를 비롯한 조류나 포유류 등을 먹고 사는데 먹이사냥은 두가지 방법으로 한다.

하나는 나무에 앉아있다가 먹이를 발견하면 순간에 내리꽂히면서 덮쳐잡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숲속의 나무사이로 날아다니면서 먹이를 잡는것이라고 한다.

참매의 알낳이시기는 4월말-6월 중순인데 보통 소나무, 이깔나무를 비롯한 키나무들의 줄기에서 수평으로 뻗어나간 가지에 의지하여 둥지를 튼다.

알은 연한 푸른색이며 보통 2~4알을 낳는데 암컷이 알을 품는 기간에는 수컷이 먹이를 보장한다.…

전문가 못지 않은 그의 해박한 지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우리에게 리영호동무는 얼굴을 붉히면서 사실은 지난해 여름 산속에서 만났던 동물학자들과 책을 통해 알게 된것이라고, 나라의 국조인 참매를 적극 보호증식하자면 이런 지식쯤이야 응당 알고있어야 하지 않겠는가고 하는것이였다.

나라와 민족의 귀중한 재부를 지키고 빛내이기 위해 험준한 산발을 오르내리면서도 참매에 대한 지식을 꾸준히 다져왔을 이들의 모습은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해주었다.

사흘째 되는 날 드디여 참매가 우리앞에 자기의 모습을 나타냈다.

우리가 큰 소나무가 류달리 많다고 하여 고송골이라고 불리우는 골짜기마을을 끼고있는 어느 한 야산에서 소나무의 초리에 앉아있는 참매를 발견한것은 정오무렵이였다.

균형잡힌 몸매와 주변을 예리하게 살피며 번뜩이는 두눈, 날카로운 부리와 나무가지에 그대로 들어박힌듯싶은 억센 발톱…

생김새가 나무랄데 없이 뛰여날뿐아니라 담차고 용맹스러운 기상이 온몸에 그대로 넘쳐흐르는 참매의 모습을 바라보느라니 며칠간 산발을 오르내리며 쌓였던 피로가 순간에 사라지는것만 같았다.

동쪽켠 수림속에서 꿩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동안 그곳을 살펴보던 참매는 아득한 창공을 향해 나래를 펴고 떠올라 하람산방향으로 날아갔다.

수려한 산발들을 굽어보며 만리대공을 향해 힘차게 날아가는 참매, 오랜 력사를 자랑하며 로동당시대에 더욱 이름떨치는 국조의 담찬 모습을 바라보니 눈굽은 쩌릿이 젖어들었다.

우리 인민은 오늘도 크나큰 민족적자부심으로 온 세상을 굽어보게 해주는 시대의 명작 《조국찬가》의 구절구절을 즐겨부르면서 조선민족특유의 성격과 기질, 슬기롭고 강의한 조선사람의 근본을 다시금 깊이 새겨안고있다.

구름우엔 참매 날고 목란꽃 핀 이 강산

슬기롭고 아름다운 조선의 모습

뜻깊은 올해에는 존엄높은 우리 공화국의 70년력사를 풍부한 예술적형상으로 감명깊게 펼쳐보인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에 훨훨 나는 참매가 훌륭히 형상되여 수많은 관중에게 민족적긍지를 더해주었다.

창공을 힘차게 날으는 참매의 세찬 퍼덕임,

그것은 진정 찬란한 문화로 자라난 슬기롭고 용맹한 민족의 자랑이다.

위대한 당의 령도따라 힘차게 전진하는 내 나라, 내 조국의 억센 기상을 그대로 전하는 자랑찬 화폭이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조선사람의 기질을 닮은 새라고 정담아 불러주신 우리의 국조 참매는 오늘도 래일도 인민의 가슴마다에 애국심을 더해주며 태양민족의 존엄과 기상이 나래치는 주체조선의 맑고 푸른 하늘가를 영원히 날고날을것이다.

본사기자 김성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