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12월 16일 로동신문
항일무장투쟁의 시초를
총대가 강하면 승자가 된다. 혁명의 이 철리를 새겨안을수록 우리의 눈앞에는 력사적인 겨울명월구회의에서 강도 일제와의 항일전쟁을 선포하시던 백두산청년장군의 담대한 기상이 우렷이 어려온다. 겨울명월구회의가 진행된 때로부터 어느덧 87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이 회의가 력사의 흐름과 더불어 그 의의를 더욱 뚜렷이 새기며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 커다란 감회를 불러일으키는것은 무엇때문인가. 항일무장투쟁의 시초를 열어놓은 뜻깊은 회의! 바로 여기에 겨울명월구회의가 우리 혁명에서 차지하는 력사적지위가 있다. 겨울명월구회의가 열릴 당시의 정세는 참으로 엄혹하였다. 일제는 9.18사변을 일으키고 만주에 대한 무력침공을 개시하였다.이것은 중국인민에 대한 침략인 동시에 이 일대에 살고있는 조선인민들과 조선혁명가들에 대한 침공이기도 하였다. 한편 일제는 《후방의 안전》을 부르짖으면서 조선인민에 대한 탄압과 폭압의 도수를 더욱 높이였다. 망국노의 설음을 안고 초보적인 인간생활도 누릴수 없게 된 조선의 로동계급을 비롯한 농민, 청년학생 등 애국적인민들은 곳곳에서 투쟁에 떨쳐나섰다.이러한 대중의 투쟁을 조직화하여 무장투쟁에로 발전시키는것은 반일민족해방투쟁의 절박한 요구로 제기되였다. 조성된 정세의 요구를 꿰뚫어보신 겨울명월구회의에서 중점적으로 론의된것이 바로 이 문제였다. 무장투쟁을 하되 어떤 형식으로 하겠는가.정규전이냐, 유격전이냐? 그때 변화무쌍한 유격전이야말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기본무장투쟁형식이다.국가가 없는 우리 나라의 실정에서 정규전으로 일제와 대항한다는것은 불가능한 일이다.우리는 군사기술적으로나 량적으로 렬등한 무력으로 강대한 일제침략군과 맞서 싸워야 하는것만큼 변화무쌍한 유격전을 해야 한다.이외에 다른 출로란 있을수 없다. 하지만 몇몇 회의참가자들은 땅크와 대포, 비행기와 같은 현대적인 정예무기로 장비된 수백만대군을 국가적후방이나 정규군의 지원도 없이 그것도 남의 나라 령토에서 유격대와 같은 비정규적인 무력으로 이겨낼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을 거두지 못하였다. 하지만 조선혁명의 운명과 관련되는 그처럼 중대한 시각에 우리 그것은 유격전을 정규전의 보조적인 수단으로 보고있는 기성관념을 타파하고 우리의 실정에 부합되는 기본적인 투쟁형식으로 확정한 과학적이면서도 창조적인 결단이였다. 유격전을 기본으로 하여 조직적인 무장투쟁을 벌릴데 대한 방침이 제시됨으로써 그에 맞는 혁명무력을 건설하는 문제, 대중적지반을 축성하는 문제와 조중인민의 반일공동전선을 형성할데 대한 문제, 당조직사업과 공청사업을 강화할데 대한 문제들이 명백한 방향을 가지고 정식화될수 있었다. 후날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의 유격전사를 들추어보아도 우리 나라 혁명실천에 그대로 적용할수 있는 표본을 찾을수 없었기때문에 우리는 오직 자기 머리로 모든 문제를 생각하고 자기 힘으로 근거지를 꾸리지 않으면 안되였다.그것은 국가적후방이나 정규군의 지원이 없는 력사상 류례없이 간고한 조건에서 유격전을 벌리지 않으면 안되였던 우리 조선공산주의자들에게 있어서 피할 길 없는 숙명적인 과제였다.이 과제해결에서 만일 우리가 정규군의 지원을 전제로 하여 그와의 배합으로 유격전을 벌린 다른 나라들의 경험을 교조적으로 모방하였더라면 만회할수 없는 엄중한 실패를 당하였을것이다. 이렇듯 《무장은 우리의 생명이다! 무장에는 무장으로!》 그날의 이 투쟁구호는 우리 인민자체의 힘과 투쟁으로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시려는 총대우에 혁명위업의 승리가 있고 나라와 민족의 자주독립도 번영도 있다. 오철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