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1월 22일 로동신문

 

불멸의 혁명전적지를 찾아서

불굴의 혁명신념을 새겨주는
력사의 증견자 마두산

 

위대한 격동의 시대와 더불어 인민의 마음속에 더욱 소중히 자리잡은 마두산, 절세위인의 거룩한 손길에 떠받들려 신념의 산악으로 높이 솟아 빛나는 이곳을 찾아 우리는 얼마전 취재길에 올랐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혁명의 만년재보이며 혁명전통교양의 중요한 거점인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들을 잘 꾸리고 그를 통한 교양사업을 강화하여 당원들과 군인들, 근로자들과 청소년들이 위대한 수령님들의 혁명력사와 불멸의 혁명업적을 깊이 체득하고 주체혁명위업의 최후승리를 위하여 힘차게 싸워나가도록 하여야 합니다.》

혁명선렬들의 넋이 살아맥박치는 마두산에 은빛세계를 펼치려는듯 푸르른 산발마다에 눈송이들이 조용히 내려앉고있었다.

눈꽃이 날리는 마두산의 전경은 우리에게 류다른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항일의 눈보라만리를 헤치며 조국의 해방을 위해 청춘도 생명도 다 바쳐싸운 투사들의 위훈을 전하려는듯 소리없이 내리는 눈송이들은 마치 세월이 흐르고흘러도 선렬들의 정신과 발자취를 영원히 잊지 말라고 절절히 당부하는것만 같았다.

깊은 생각에 잠겨 걸음을 옮기는 우리의 눈가에 답사도로를 따라 찍혀진 무수한 발자국이 안겨들었다.

우리에게는 그것이 오늘도 꿋꿋이 이어지는 우리 혁명의 피줄기, 백두에서 시작된 행군길을 세대와 세기를 이어 힘있게 다그쳐나가는 천만대오의 거세찬 흐름으로 안겨왔다.

그우에 발자국을 덧새기며 걸음을 다그치는 우리에게 사적일군인 권현일동무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것이였다.

마두산이라는 이름은 산의 모양이 말대가리와 비슷하다고 하여 그렇게 불리워졌다고 한다.예로부터 이 일대는 안전한 은신처 혹은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한 방어에 적합한 곳으로 여겨져왔다.임진조국전쟁시기 서산대사가 의병투쟁에 떨쳐나선 중들에게 무술을 련마시켰다는 곳도 바로 여기였다.오늘도 서산대사와 중들이 무예를 닦은 곳이라고 하여 닦은재골이라 불리우는 골짜기가 있다.

항일무장투쟁시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을 일제침략자들에게 섬멸적타격을 가하고 조국해방을 앞당기기 위한 군사작전에 아주 유리한 공격기지로 보시였다.

당시 광산과 탄광들이 있던 이 지구에 비밀근거지를 꾸려놓으면 여기에 집결되여있는 로동자들을 혁명적으로 각성시켜 일제를 반대하는 항쟁에로 불러일으킬수 있었다.

그뿐이 아니였다.지리적으로 볼 때 이 지구는 평양, 문덕, 신안주, 개천을 비롯하여 국내의 여러 지역으로 나가는데 유리한 곳이다.때문에 안주지구 비밀근거지가 자리잡은 곳은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공격작전이 개시되면 조선인민혁명군이 이곳에서 여러 지방으로 신속히 진출하여 무장투쟁을 전개할수 있었으며 국내의 광범한 대중을 전민항쟁에로 적극 불러일으킬수 있는 명당자리였다.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공격작전시기 혁명의 사령부가 자리잡게 될 중대한 사명을 지니고 안주지구의 비밀근거지에 전개되였던 마두산밀영은 근거지의 밀영망중에서도 특별히 큰 의의를 가지는 밀영으로서 우리 나라 서부일대의 지역적령도거점, 주요군사작전기지였다.

날로 높아가는 우리 인민의 반일감정을 어떻게 하나 꺾어보려는 일제의 악랄한 책동이 한층 강화되고있던 그때 국내깊이의 안주지구에 비밀근거지를 꾸린다는것은 사실 절세의 위인이신 우리 수령님이 아니시고서는 누구도 생각할수 없는 일이였다고 권현일동무는 말하였다.

그의 이야기에 심취될수록 1930년대 후반기에 벌써 앞날을 내다보시고 국내깊이에 최후공격작전기지들을 전개하도록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천리혜안의 예지와 탁월한 선견지명에 경탄을 금할수 없었다.

우리의 일행은 어느덧 구호문헌보존교양실앞에 이르렀다.

우리는 답사자들과 함께 마두산혁명전적지 책임강사 박명순동무의 안내를 받으며 구호문헌보존교양실에 들어섰다.

혁명전통교양의 거점답게 훌륭히 꾸려진 교양실은 마치도 투사들의 발자취가 력력한 천고의 밀림속을 방불케 하였다.

호실의 벽면웃쪽에 안주지구 비밀근거지는 조국해방의 최후공격작전을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중요한 작전기지이라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와 구호문헌은 우리 혁명의 귀중한 재보이라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교시가 부각되여있었다.

그리고 안주지구 비밀근거지와 주변지역들을 한눈에 볼수 있는 전경사판과 투사들의 회상자료, 근거지에서 발굴된 유물 등과 함께 혁명선렬들이 한자한자 새긴 구호문헌들이 유리원통관에 실물그대로 보존되여있었다.

지금으로부터 5년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이곳에 오시였을 때에는 구호문헌들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보수작업이 한창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정리되지 못한 주변환경을 조금도 탓하지 않으시고 구호문헌들을 보존하기 위한 대책을 철저히 세워야 한다고 다정히 이르시며 그 방도에 대해서도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그러시고는 구호문헌은 우리 당의 혁명전통이 어떻게 마련되였는가 하는것을 실물로 보여주는 력사의 증견자라고 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이제는 우리곁에 우리 당의 혁명전통이 어떻게 마련되였는가 하는것을 말해줄 혁명의 1세들인 항일혁명투사들도 몇명 남지 않았다고, 그런것만큼 우리는 구호문헌들을 세대를 이어가며 영구보존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안주지구 비밀근거지전경사판앞에서 강사의 해설이 시작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7(1938)년 3월 조선인민혁명군 사령부 비서처 성원을 책임자로 하는 소부대를 안주일대에 파견하시여 비밀근거지를 꾸리도록 하시였다.

안주지구 비밀근거지가 조국해방을 위한 총공격작전시기에는 혁명의 사령부가 자리잡게 될 중대한 사명을 지니고있었다는데 대한 해설을 듣는 답사자들의 얼굴마다에는 간고한 항일대전의 나날 국내깊이에 이렇듯 강력한 보루를 축성하도록 하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한없는 경모의 정이 어려있었다.

우리는 한 구호문헌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마두산을 백두산으로!》, 의미심장하게 안겨오는 이 글발은 마두산의 력사적지위를 새겨보게 하는 구호문헌이였다.

마두산밀영과 여러 밀영의 구호문헌들은 또 얼마나 깊은 뜻을 담고있는가.

《백두장수 장도짚고 삼천리 굽어본다》, 《항일혁명 만세》, 《겨레 모두 일어나 독립일 당기자》, 《회합참가자들아, 여기를 장악하면 일제 심장 허문다》…

이어 우리는 강사를 따라 다음 호실로 향하였다.

벽면에는 마두산혁명전적지를 돌아보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영상사진문헌이 정중히 모셔져있었다.

그이의 영상을 숭엄히 우러를수록 새 세대들을 백두의 혁명정신을 체질화한 불굴의 투사로 더욱 억세게 키워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불멸의 자욱자욱이 뜨겁게 어려와 가슴이 후더워올랐다.

호실에는 또한 안주지구 비밀근거지들에서 발굴된 구호문헌들이 주제별로 전시되여있었다.

그 구호문헌들을 차례로 돌아보던 우리는 《삼천리에 우리 국기 휘날리자》라고 쓴 글발앞에서 선뜻 발걸음을 뗄수가 없었다.

위대한 시대에 또 하나의 명곡으로 태여나 비상한 감화력과 견인력으로 새해의 총진군길에 산악같이 떨쳐나선 우리 인민을 새로운 기적과 위훈에로 떠밀어주는 노래 《우리의 국기》의 구절구절이 뜨겁게 되새겨졌기때문이였다.

감동깊은 눈빛으로 구호문헌을 바라보는 답사자들속에는 리명수체육단의 선수들도 있었다.한 체육인은 이 구호문헌을 보며 위대한 수령님들의 숭고한 념원이 어려있고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시여 무궁토록 나붓길 우리의 국기를 항상 가슴에 간직하고 국제경기마다에서 주체조선의 존엄을 떨쳐갈 불같은 결의를 피력하였다.

투사들의 넋이 맥박치는 구호문헌들은 답사자들의 심금을 세차게 울려주었다.

구호문헌들이 그대로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품속에서 영생하는 투사들의 모습으로 안겨와 우리의 가슴은 세차게 높뛰였다.

구호문헌보존교양실을 나서니 눈꽃이 날리던 마두산의 울창한 수림속으로는 해빛이 부채살처럼 퍼져가고있었다.

백두대산줄기를 따라 뻗어내린 마두산이기에 천변만화의 조화를 부리는 백두산을 닮은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잠시후 우리는 강사와 함께 야외에 구호문헌들이 전시되여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혼성림이 펼친 이채로운 풍경이 마두산혁명전적지의 정서를 한껏 더해주고있었다.

대렬을 지은 근로자들과 청년대학생들이 답사로정을 이어가는 모습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우리에게 강사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다녀가신 때로부터 전적지를 찾는 답사자들이 계속 늘어나고있다고 흥분된 어조로 말하였다.

우리의 발걸음은 마두산혁명전적지의 문주와도 같은 구호문헌앞에서 멎어섰다.

《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말라》,

이 땅 누구나의 가슴속에 신념의 글발로 간직된 뜻깊은 구호문헌앞에 서고보니 이름 못할 격정이 북받쳐올랐다.

못 잊을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강사의 해설이 우리의 귀전을 울리였다.

마두산혁명전적지를 찾으신 그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세월의 눈비도 지울수 없었던 구호나무의 글발을 보고 또 보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말라》는 구호문헌은 수령님을 따라 끝까지 혁명을 하려는 항일혁명선렬들의 정신세계를 반영한 정말 훌륭한 구호문헌이라고 하시였다.

이어 그이께서는 혁명은 곧 신념이라고, 신념을 버리면 혁명을 할수 없다고, 혁명적신념을 굳건히 간직한 사람만이 혁명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수 있으며 조국과 인민앞에 떳떳할수 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깊은 감회속에 잠겨계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 공화국이 오늘과 같이 존엄높은 사회주의강국으로 될수 있은것은 우리 장군님께서 혁명적신념을 굽히지 않으시고 선군의 길을 꿋꿋이 걸어오시였기때문입니다.우리 장군님은 참으로 혁명적신념이 강한 위대한 혁명가이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에 젖어있는 그이의 안광에 뜨거운것이 어리였다.

전대미문의 시련과 난관이 중중첩첩으로 막아나서던 고난의 행군시기 혁명적신념으로 온넋을 불태우시며 선군혁명의 길을 쉬임없이 이어가신 위대한 장군님.

애국헌신의 그 길에 새겨진 만단사연을 어찌 잊을수 있으랴.

잠시후 강사가 경애하는 원수님께 빨간 령장을 단 병사들이 전적지에 와보고는 어렵고 힘들 때마다 이 구호문헌을 생각하면서 군사복무를 잘하겠다고 결의다진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이 구호문헌이 그들의 마음속에 신념의 기둥을 세워주는것 같다고, 이렇게 훌륭한 구호문헌을 두고 그냥 갈수 없다고 하시며 우리모두 자신의 혁명적신념에 대하여 돌이켜보면서 이 구호문헌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자고 하시였다.

이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여러 구호문헌을 보아주시며 구호문헌을 통한 교양사업을 더 잘하기 위한 방도도 친히 가르쳐주시였다.

진정 마두산혁명전적지에 대한 경애하는 원수님의 현지지도는 백두에서 개척된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려는 우리 당의 철석의 신념과 의지를 과시한 력사적인 행로였다.

답사로정을 이어갈수록 우리에게는 마두산혁명전적지의 구호문헌들이 천금을 주고도 살수 없는 우리 혁명의 만년재보로, 혁명승리의 고귀한 진리를 새겨주는 교과서로 더욱 가슴뜨겁게 안겨왔다.

마두산으로 향한 답사행렬은 끊임없이 이어지고있었다.

성스러운 력사의 증견자, 신념의 산악으로 거연히 솟아 빛나는 마두산을 떠나는 우리의 가슴속에서는 이런 심장의 웨침이 울리고있었다.

희세의 천출위인이신 경애하는 원수님 따라 하늘땅 끝까지 가리라!

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말자!

글 본사기자 김일권
고철명
사진 본사기자 리동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