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1월 23일 로동신문

 

길이 빛나라 혁명의 천리길이여!

 

우리는 지금 광복의 천리길을 떠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숭엄한 모습을 형상한 모자이크벽화앞에 서있다.

우러를수록 경건한 마음을 금할수 없다.

사납게 기승을 부리는 맵짠 눈보라에 옷자락을 날리시며 발걸음을 힘차게 내디디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력사의 그 길이 있어 이 땅우에 조국해방의 만세소리가 높이 울려퍼졌다.

그래서 우리 인민은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시고 평양에 개선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후손만대에 길이 전하는 개선문에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 가사와 함께 《1925》, 《1945》라는 년대를 새기지 않았던가.

개선문의 시각적중심에 새겨진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와 《1925》, 《1945》라는 서예형상은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혁명의 천리길에 나서신 때로부터 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치시며 조국을 찾아주시고 개선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력사와 고귀한 혁명업적을 뜨겁게 전해주고있다.

혁명의 천리길, 음미해볼수록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진정 우리 수령님께서 걸으신 광복의 천리길은 이 땅우에 조국해방의 력사적사변을 안아오고 사회주의건설의 격동적인 년대들, 그 눈부신 기적과 영광의 로정을 열어놓은 위대한 력사의 길이 아니였던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민족의 100년사는 탁월한 수령을 모셔야 나라와 민족의 존엄도, 강성번영도 있다는 철의 진리를 뚜렷이 확증해준 력사입니다.》

지금으로부터 94년전 력사의 그 나날이 되새겨진다.

주체14(1925)년 1월 어느날이였다.

창덕학교졸업을 몇달 앞두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버님께서 또다시 일제경찰에 체포되였다는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마음속에는 적개심이 세차게 불타올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버님의 원쑤, 일가의 원쑤, 조선민족의 원쑤를 갚기 위하여 일제와 사생결단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다지시고 떠날 차비를 하시였다.

모두가 학교졸업도 하고 날씨도 따뜻해진 다음에 가는것이 어떤가고 하였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렇게 할수 없으시였다.

1월 22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광복의 천리길에 나서시였다.

어른들도 선뜻 나서기 주저하는 위험천만한 길에 또다시 나서시였으니 우리 수령님의 담대한 배짱과 의지를 무슨 말로 다 표현할수 있으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광복의 천리길을 걸으시면서 우리 조국땅을 통채로 타고앉아 야수적인 탄압과 착취를 일삼는 일제놈들의 간악성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시였고 그럴수록 원쑤놈들에 대한 그이의 증오심은 더욱 높아지시였다.

만경대를 떠나 열사흘째 되는 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포평에 도착하시였다.

나루터에 이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차 압록강을 건느지 못하시고 강뚝에 서시였다.

팔도구로 건너가시자니 지나온 조국산천이 자꾸만 발목을 잡아당기고 고향을 떠나실 때 사립문밖까지 따라나오시며 자신의 손을 쓸어주고 옷깃을 여며주고 눈보라를 걱정해주며 눈물지으시던 할아버님, 할머님의 모습이 눈앞에 삼삼히 떠올라 발걸음을 옮길수가 없으시였던것이다.

찬바람이 불어대는 두 나라 지경에서 조국산천을 돌아보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랑하는 고향으로, 고향집으로 다시 달려가고싶은 충동을 억제할수 없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배움의 천리길을 걸으시여 조국에 나와 보내신 세월은 비록 두해밖에 안되였으나 그 기간은 참으로 많은것을 배우고 체험하신 나날이였다.

가장 귀중한 체험은 우리 인민이야말로 소박하고 근면하면서도 용감하고 강의한 인민이며 이런 인민을 잘 조직동원한다면 얼마든지 나라를 찾을수 있다는것 그리고 일제야말로 우리 인민의 자유와 존엄에 대한 가장 흉악한 교살자이며 우리 인민에게 참을수 없는 가난과 굶주림을 강요하는 악독한 착취자, 략탈자라는것, 조선민족은 오직 투쟁을 통해서만 일제를 몰아내고 독립된 조국에서 행복하게 살수 있다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슴속에서는 조국을 한시바삐 되찾고 그 모든것을 영원한 조선의것으로 만들고싶으신 념원이 불길처럼 타번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포평나루터아래쪽으로 좀더 내려가 여울목에서 압록강얼음판에 발걸음을 무겁게 내디디시였다.

폭이 백자도 되나마나한 강이였다.이 강만 건느시면 팔도구시가이고 그 강안거리에 사랑하는 어머님과 동생들이 있는 집이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제 조국을 하직하면 언제 다시 이 강을 건너보게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뚝우에 나딩구는 조약돌을 하나 집어들고 손바닥에 감싸쥐시였다.

조국의 표적이 될수 있고 조국을 추억할수 있게 하는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가지고가서 소중히 간수하고싶으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누군가가 지은 《압록강의 노래》를 부르시며 천천히 강건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시였다.

 

일천구백십구년 삼월 일일은

이내 몸이 압록강을 건넌 날일세

년년이 이날은 돌아오리니

내 목적을 이루고서야 돌아가리라

력사의 그날을 되새겨볼수록 조선아, 조선아, 나는 너를 떠난다, 너를 떨어져서는 한시도 살수 없는 몸이지만 너를 찾으려고 압록강을 건는다, 압록강만 건느면 남의 나라 땅이다, 그러나 남의 땅에 간들 내 너를 잊을소냐, 조선아, 나를 기다려다오라고 마음속으로 뇌이시면서 《압록강의 노래》를 부르시던 우리 수령님의 모습이 안겨온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의 잊을수 없는 심리적체험에 대하여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다음과 같이 쓰시였다.

나는 그 노래를 부르면서 내가 언제 다시 이 땅을 밟을수 있을가, 내가 자라나고 선조의 무덤이 있는 이 땅에 다시 돌아올 날은 과연 언제일가 하고 생각하였다.이런 생각을 하니 어린 마음에도 비감을 금할수 없었다.나는 그때 조국의 비참한 현실을 눈앞에 그려보며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비장한 맹세를 다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다지신 맹세, 그것은 조국을 한시바삐 되찾고 이 땅에 기어이 인민의 락원을 일떠세우시려는 가장 숭고한 애국애족의 맹세였다.

북방의 사나운 눈보라에 기폭마냥 옷자락을 날리시며 조국과 민족앞에 다지신 그날의 맹세를 지켜 우리 수령님께서 헤쳐오신 혁명의 천만리길은 얼마나 간고하였던가.

항일의 혈전만리, 눈보라만리길을 헤치시며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신 위대한 수령님,

해방된 이 땅우에 새 조선을 일떠세우시고 가렬처절하였던 조국해방전쟁을 빛나는 승리에로 이끄실 때에도, 전후복구건설에 이어 전설속의 천리마를 불러오시며 부강한 사회주의조국을 건설하실 때에도 우리 수령님께서는 광복의 천리길을 걸으실 때처럼 위대한 심장을 애국의 숭고한 뜻으로 불태우시였다.

혁명의 천리길에 력사의 자욱을 새기신 때로부터 수십성상에 이르는 위대한 수령님의 정력적인 혁명활동과 탁월한 령도에 의하여 조국과 민족의 운명이 구원되고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조선이 일떠섰으며 우리 인민의 긍지높고 보람찬 생활이 마련되였다.

혁명의 천리길은 백두의 천출명장이신 위대한 장군님을 높이 모시여 더욱 줄기차게 이어졌다.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 직령을 넘으시며 하신 교시가 오늘도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그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어버이수령님께서 어리신 나이에 걸으신 배움의 천리길과 광복의 천리길이라는 표식비를 보니 생각되는것이 많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가는 이 길은 만경대가문의 3대가 대를 이어 걷는 길이 되였다고 하시였다.그러시면서 나는 이 길을 걸으며 만경대가문이 대를 이어 개척하고 실현해나가는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할 결심을 더욱 굳게 가지게 된다, 직령을 넘는 이 길은 만경대가문과 더불어 력사에 길이 전해지게 될것이라고 힘주어 교시하시였다.

혁명의 천리길은 오늘도 래일도 변함없이 이어가야 할 영원한 신념의 길이다.

력사에 길이 빛날 혁명의 천리길과 더불어 우리 인민은 또다시 신념의 맹세를 다진다.

어버이수령님께서 개척하시고 위대한 장군님께서 승리적으로 전진시켜오신 주체혁명위업을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령도따라 영원한 승리로 이어나가리라.

본사기자 김철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