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2월 6일 로동신문

 

식민지파쑈통치체제수립을 위해
실시한 극악한 통감통치

 

지난날 일본이 조선통감부를 설치하고 우리 나라의 자주권과 존엄을 란폭하게 유린말살하며 전지역에 대한 식민지통치를 실시한 때로부터 장장 한세기가 넘는 1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하지만 우리 인민은 일제의 만고죄악을 잊지 않고있다.

일제는 1905년 11월 군사적공갈과 협잡의 방법으로 《을사5조약》을 날조하였다.이 《조약》은 정식명칭도 없고 고종황제의 서명, 국새날인도 없는 불법무도한 협잡문서였다.국제법상 비법이고 무효임에도 불구하고 일제는 그것을 턱대고 그해 12월 칙령 제267호로 《통감부 및 리사청관제》를 공포하였다.그 다음해인 1906년 2월 1일 서울에 정식 조선통감부를 설치하고 이또 히로부미를 초대통감으로 들여앉히였다.

일제는 황궁에 대한 《자유출입》을 중지시킨다는 궁금령을 칙령으로 발포하도록 하고 일본경찰들이 황궁과 황제에 대한 《호위》를 맡도록 하였다.그리고는 저들의 승인이 없이는 조선사람들이 황제를 만날수 없게 하였다.이렇게 함으로써 황제의 손발을 얽어매고 저들의 통제권안에 넣었다.

이와 함께 일제는 우리 나라의 모든 부문에 통감부가 파견한 일본인들을 배치하고 그들이 직접 통치하게 하였다.통감은 그야말로 우리 나라의 립법, 사법, 행정, 군사통수권 등 모든 권한을 다 거머쥔 최고통치자였다.

통감은 일본왕의 직속으로서 우리 나라에서 외교관계문제와 관련한 법령이나 조약들을 정지, 취소시킬수 있는 권한, 통감부령을 발포하여 우리 인민들을 구류할수 있는 권한, 무력사용을 명령할 권한 등을 틀어쥐였다.한마디로 통감부라는 식민지통치기구를 통하여 그 어떤 제한도 받지 않는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였다.

일제는 《복리증진》이라는 구실밑에 1906년 6월 《광물채굴법》을 조작하고 우리 나라에서 금, 은, 동, 석탄 등 지하자원을 마구 략탈해갔다.1908년 11월에는 《한일어업협정》을 조작하고 수산자원을 닥치는대로 긁어갔다.같은 해 12월 일제는 악명높은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조작하고 우리 나라의 토지를 마구 강탈하였으며 1909년 10월에는 《한국은행》 등을 조작하여 우리 나라의 금융분야를 완전히 틀어쥐고 민족자본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또한 일제는 1906년 8월 《보통학교령》을 발포하고 식민지노예교육을 강요하였다.1908년에는 《사립학교령》을 공포하고 애국적이며 반일적인 사립학교들을 강제적으로 페쇄하였다.

뿐만아니라 이 시기 일제는 우리 나라의 문화재들도 수많이 파괴, 략탈하였다.

일제는 우리 나라에 숱한 무력을 끌어들여 통감통치를 무력으로 뒤받침하였다.이로 하여 우리 인민은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강요당하였으며 우리 나라는 하나의 거대한 감옥으로 전변되였다.

이또 히로부미는 일본군장교들에게 통감통치에 방해로 되는 조선의병을 지방소요의 주범으로 취급하며 무자비하게 진압하라고 명령하였다.그에 따라 일제는 우리 나라의 주요도시들은 물론 산간벽지에까지 기여들어 의병부대들에 대한 야수적인 《토벌》을 감행하였으며 지어 의병들이 지나간 마을을 모조리 불사르고 의병들과 련계를 가진 사람들은 무조건 총살하였다.

한편 일제는 1909년 7월 《한국사법 및 감옥사무위탁에 관한 각서》를 조작하여 반일독립운동자들을 마구 체포, 투옥하고 학살하였다.

이렇듯 근 5년에 달하는 통감통치기간 일제는 우리 나라의 국권을 말살하고 수많은 침략무력을 주둔시켜 조선을 군사적강점지대로 만들어놓았으며 사소한 반일요소도 무자비하게 탄압하면서 조선봉건국가를 완전히 붕괴시켰다.

식민지파쑈통치체제가 수립되자 일제는 그를 유지하고 공고히 하기 위하여 조선통감부를 조선총독부로 바꾸었다.

정녕 일제는 우리 인민에게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긴 철천지원쑤이다.

하지만 일본반동들은 침략자, 략탈자로서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과거죄악에 대하여 인정하고 성근하게 사죄할 대신 그것을 외곡하고 부정하다 못해 미화분식해가며 흑백을 전도하고있다.

지난 2013년 7월 한 텔레비죤방송과의 회견에 나선 아베는 할빈역두에서 안중근렬사에 의하여 처단된 초대통감 이또 히로부미가 《존경받는 위인》이라는 넉두리를 늘어놓았다.

일본의 력사교과서들에는 우리 나라에 기여들어 《을사5조약》을 날조하고 우리 인민을 식민지노예화하는데 앞장섰던 이또 히로부미가 조선옷을 입고 찍은 사진밑에 우리 나라에 대해 강한 친근감을 가지고있었다는 설명문까지 뻐젓이 달아놓고있는가 하면 그가 《조선민족의 풍습을 존중》한자라고 서술되여있다.

일본반동들의 파렴치한 책동은 우리 인민과 인민군장병들의 가슴가슴을 천백배의 보복열기로 세차게 끓어번지게 하고있다.

일제가 조선민족에게 저지른 만고죄악을 대를 이어가면서라도 끝까지 결산하려는것은 우리의 드팀없는 의지이다.

본사기자 림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