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2월 19일 로동신문
정월대보름날을 통해 본 어제와 오늘
정월대보름날이 왔다. 이제 쟁반같은 둥근달이 하늘중천에 솟아오르면 민족성을 귀중히 여기고 적극 살려나가는 우리 인민의 아름다운 생활을 비껴안고 그 어디에서나 이채로운 달맞이풍경이 펼쳐질것이다. 가슴속에 품은 소원도 터놓고 얼씨구 좋다 어깨춤도 추며 달맞이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우리의 민속명절. 벌써부터 풍치수려한 모란봉과 대동강반을 비롯한 수도 평양의 곳곳에서, 녕변의 약산동대며 온 나라 방방곡곡의 명승지들, 마을과 거리들에서 밝은 달을 바라보며 희망을 터놓고 보다 창창할 래일을 그려볼 인민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히 어려온다. 정월대보름, 아득한 옛날부터 어김없이 찾아오는 민속명절이다. 하지만 언제부터 이날이 우리 인민에게 누구나 기다려지는 기쁜 날로 되였는가. 과연 언제부터 정월대보름달을 바라보는 우리 인민의 눈빛에 한없는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이 어리고 가슴가슴은 희망과 행복으로 높뛰기 시작했던가.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조선민족은 로동당시대에 와서 민족의 존엄과 영예를 더욱 빛내이고있습니다.》 예로부터 우리 인민은 달을 좋아하고 사랑하였으며 둥근달에 자기 소원을 싣기도 하였다. 돌이켜보면 달은 옛 시와 가요들에서 적지 않게 노래되고 그림들에서도 묘사되여왔는데 그 달에는 인민들의 소박한 희망과 념원이 반영되였다. 정월대보름달은 설명절후 첫달에 보게 되는 보름달이다.이런 보름달이 뜨는 정월대보름날 저녁이면 온 동리가 떨쳐나 솟아오르는 쟁반같은 둥근달을 구경하군 하였는데 그해의 정월대보름달을 먼저 본 총각에게는 달처럼 환한 처녀와 짝을 뭇는 기쁜 일이 생기고 자식이 없어 안타까와하던 부부에게는 옥동자, 옥동녀가 태여난다고 하였다. 하지만 하늘중천 밝은 달은 하나이건만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서로 다르다는 내용의 노래구절도 있듯이 나라잃은 그 세월에는 달이 아무리 밝아도 수난많은 인민의 가슴속엔 한가닥의 빛도 흘러들지 못했다.말그대로 정월대보름날은 식민지민족의 불우한 운명을 통탄하는 슬픔의 상징이기도 하였다.하기에 해방전의 한 시인은 정월대보름날의 달맞이광경을 두고 이렇게 노래하였다.
정월대보름날 달맞이 달맞이 달마중을 가자고 새라 새옷은 갈아입고도 가슴엔 묵은 설음 그대로 달맞이 달마중을 가자고! … 그러한 우리 인민의 생활에서 극적인 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한것은 떠오르는 보름달을 바라보며 새 조국건설에 한몸바칠 결심을 다지기 시작한것도, 쟁반같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커만 가는 행복으로 가슴을 들먹이기 시작한것도 바로 그때부터였다. 지난날 새해의 행운과 풍작, 풍어를 바라는 소박한 념원을 담던 달맞이, 자기의 운명을 한탄하며 희망과 행복을 실어보군 하던 달맞이가 오늘은 우리의 일심단결을 백배로 다져주는 달맞이로, 내 나라, 내 조국을 더욱 빛내여갈 의지를 더해주는 달맞이로 되고있으니 우리 어찌 이것을 로동당시대와 더불어 길이 전해갈 우리 민족의 새로운 달맞이풍습이라고 하지 않으랴. 해마다 찾아오는 민속명절 정월대보름날이면 조국과 인민을 위한 헌신의 길에서 조국수호를 위하여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화같은 사랑으로 우리 여기에 민족의 아름다운 풍속을 되찾아주신 정월대보름 달밤의 이야기가 있다. 언제인가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신 그이께서는 오늘이 정월대보름이라고 하시며 그 유래와 풍속에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그밤은 정녕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에서 쌓이신 피로도 잊으시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며 인민에게 정월대보름의 아름다운 달밤을 안겨주시려 한밤을 지새우신 이렇듯 하다면 내 조국땅에 두둥실 떠오르는 보름달을 바라보며 우리 인민은 과연 무엇을 생각하는것인가.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간직된 소원은 정녕 무엇이던가. 그것은 우리 인민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인민으로 되게 해주시려 쉬임없이 헌신의 길을 걷고 또 걸으시는 달빛속에 우리 조국의 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언제나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는 우리 민족수난의 설음에 달마저 빛을 잃었던 어제날의 정월대보름, 대를 이어 누리는 하거늘 우리 인민은 해마다 정월대보름명절이 오면 밝은 달에 소원을 얹군 한다. 지금 이 시각도 인민위한 헌신의 길을 이어가실 글 본사기자 리경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