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3월 1일 로동신문

 

3.1인민봉기 100돐기념
사회과학부문토론회 진행

 

3.1인민봉기 100돐기념 사회과학부문토론회가 2월 28일 인민문화궁전에서 진행되였다.

사회과학원 원장 리혜정동지, 관계부문의 교원, 연구사, 강사, 기자, 편집원들과 일군들이 토론회에 참가하였다.

토론회에서는 일제의 식민지폭압통치를 반대하는 전민족적인 투쟁으로 벌어졌던 3.1인민봉기의 력사적의의와 교훈, 우리 인민이 발휘한 애국적기개에 대하여 해설론증하고 일제의 조선민족말살정책의 범죄적진상을 폭로한 론문들이 발표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1919년 3월 1일은 우리 민족이 〈일본인과 일본군대는 물러가라!〉, 〈조선독립 만세!〉의 구호를 소리높이 웨치면서 강도 일제를 반대하여 전민족적투쟁을 전개한 날이며 우리 민족이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준 날입니다.이날은 우리 민족이 자기의 자유를 위하여 고귀한 피를 흘린 날입니다.》

김일성종합대학 학부장 교수 박사 최수남동지는 《3.1인민봉기는 조선인민의 반일민족해방투쟁사에 특기할 민족적장거》라는 제목으로 토론하였다.

토론자는 3.1인민봉기가 일제의 야만적인 식민지통치를 반대하여 전체 조선민족이 처음으로 벌린 거족적반일항쟁, 반일민족해방투쟁을 힘있게 추동한 애국적장거라는데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는 주체8(1919)년 3월 1일 평양에서 시작된 봉기는 료원의 불길마냥 전국을 휩쓸었으며 국내는 물론 중국 동북지방과 로씨야의 연해주 등 조선사람이 살고있는 모든 지역에로 급속히 파급되였다고 말하였다.

봉기가 시작되여 열흘동안에만도 300만명이상의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을 비롯한 남녀로소가 쌓이고쌓인 민족적울분과 분노를 터뜨리며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고 그는 강조하였다.

그는 전국각지에서 랑독된 《독립선언서》와 《조선독립 만세!》의 힘찬 함성은 조선민족의 반일독립의지와 기개, 일제의 잔인무도한 살륙만행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용감히 싸워나가는 우리 인민의 불굴의 기상을 똑똑히 보여주었다고 말하였다.

《3.1인민봉기에서 평양의 선봉적역할》이라는 제목의 토론에서 사회과학원 연구사 후보원사 교수 박사 조희승동지는 3.1인민봉기에서 평양이 논 선봉적역할을 두가지 측면에서 론증하였다.

그는 인민봉기에서의 평양의 선봉적역할은 무엇보다도 전국적으로 처음으로 투쟁의 봉화를 든데서 찾아볼수 있다고 하면서 반일애국정신이 매우 투철하였던 평양사람들이 제일먼저 《독립선언서》를 랑독하고 뒤이어 격렬한 반일시위투쟁을 벌린데 대하여 언급하였다.

평양의 선봉적역할은 다음으로 평양을 중심으로 봉기가 급속히 파급되고 평양의 애국적청년학생들이 봉기의 불씨마냥 각지로 달려가 투쟁의 불을 단 사실을 통해서도 찾아볼수 있다고 그는 말하였다.

그는 당시 평양숭실중학교 학생들의 주동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에 의하여 평양에서 시작된 독립시위운동의 불길이 우리 나라의 서북부지역에로 타번졌으며 평양의 애국적청년학생들이 남부지역에까지 달려가 3.1인민봉기를 전국적으로 확대시키는데 적극 기여한데 대하여 말하였다.

이처럼 평양사람들은 거족적인 반일봉기에서 선봉적역할을 함으로써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사에 자랑스러운 자욱을 아로새기였다고 그는 강조하였다.

김형직사범대학 강좌장 박사 부교수 김덕성동지는 《3.1인민봉기시기 애국적청년학생들의 투쟁》이라는 제목의 토론에서 청년학생들이 3.1인민봉기의 발단을 열어놓고 봉화를 지펴올리는 선각자, 반일항쟁을 전국적범위에로 확대시키는데서 선봉결사대의 역할을 수행한데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는 국내의 청년학생대표들이 비밀모임을 열고 대규모적인 반일독립운동을 벌리는것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작성하는 등 구체적인 투쟁내용들을 합의하였으며 일본과 중국의 동북지방을 비롯한 해외의 애국적청년학생들도 그 준비사업을 다그친데 대하여 말하였다.

청년학생들은 민족주의상층인물들과 여러차례의 회합을 가짐으로써 그들이 봉기에 합세하도록 하는데 적극 기여하였다고 그는 말하였다.

그는 평양에서의 반일시위투쟁을 도화선으로 하여 벌어진 전민항전의 전렬에서 청년학생들이 《일본인과 일본군대는 물러가라!》, 《조선독립 만세!》의 구호를 웨치면서 조선민족의 애국적기개를 남김없이 과시한데 대하여 강조하였다.

《3.1인민봉기에 대한 일제의 탄압은 조선민족말살을 국책으로 삼은 일본정부의 국가적범죄》라는 제목의 토론에서 사회과학원 실장 박사 부교수 위광남동지는 일제가 저지른 탄압만행의 범죄적근거에 대하여 구체적인 사실자료들로 까밝히였다.

그 근거는 일본당국의 직접적인 탄압명령에 따라 감행되고 《합법화》된 국가적범죄이며 완전무장한 정규군에 의한 야만적인 조선인대량학살만행이라는데 있다.

전국적규모에서 벌어진 3.1인민봉기에 당황망조한 일제는 내각회의라는데서 조선인민의 투쟁을 무력으로 무자비하게 탄압할데 대하여 모의하고 《조선총독부》에 그에 대한 살인명령을 하달하였으며 조선강점 일제침략군뿐아니라 일본본토의 대규모탄압무력도 조선에 파병하였다.

일제가 4월에 공포한 《총독제령》 제7호도 3.1인민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조작한 새로운 악법이였다.

시위가 벌어진 모든 지역에서 일제침략군과 헌병, 경찰들은 적수공권의 평화적시위군중에게 무차별적인 사격을 가하였으며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10여만명에 달하는 조선사람들을 무참히 살륙하였다.

김일성종합대학 연구사 박사 박학철동지는 《3.1인민봉기가 민족사에 남긴 교훈》이라는 제목의 토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교훈은 첫째로 민족해방운동은 탁월한 수령의 령도, 혁명적당의 지도가 없이는 승리할수 없다는것이다.

둘째로 부르죠아민족주의가 민족해방운동의 사상적기초로, 부르죠아민족주의자들이 민족해방운동의 주도세력으로 될수 없다는것이다.

셋째로 민족적독립과 사회적진보를 위한 혁명운동의 승리를 이룩하기 위하여서는 사대주의를 배격하고 주체적인 혁명력량을 튼튼히 마련해야 한다는것이다.

넷째로 무장한 원쑤들과는 조직적인 무장투쟁으로 맞서야 한다는것이다.

토론자는 일본당국이 우리 인민의 반일감정을 똑바로 보고 죄악으로 가득찬 저들의 과거범죄를 성근하게 반성하며 사죄와 배상의 길로 나가야 한다고 하면서 전체 조선인민은 피로 얼룩진 일본의 과거범죄사를 잊지 않고있으며 그 대가를 기어이 받아내고야말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조선중앙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