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3월 3일 로동신문
주체의 기치높이 영원히 백승떨쳐가리
세월은 멀리 흘러 어느덧 여든세돌기의 년륜이 새겨졌어도 남호두회의와 더불어 빛발친 주체의 진리는 우리 인민의 가슴마다에서 오늘도 세차게 높뛰고있다. 남호두, 잊지 못할 력사의 기슭에로 마음달리는 우리의 눈앞에 어리여온다. 경박호반의 수수한 귀틀집이며 세차게 휘날리던 혁명의 붉은기… 남호두회의는 조선공산주의운동과 반일민족해방투쟁력사에서 처음으로 주체를 완벽하게 확립한 회의였다. 바로 여기에 남호두회의가 우리 혁명과 민족사에서 차지하는 거대한 지위가 있다. 《남호두회의를 분기점으로 하여 조선혁명은 새로운 앙양기를 맞게 되였다.그런 의미에서 남호두회의는 1930년대 전반기와 1930년대 후반기를 구획짓는 조선혁명의 분수령이라고 할수 있다.》 1930년대 중엽에 이르러 간악한 일제는 조선인민에 대한 야수적인 폭압과 략탈을 한층 더 강화하는 동시에 우리 인민의 민족자주의식을 마비시켜보려고 악랄하게 날뛰였다. 일제는 조선사람들이 일본어를 쓰게 하고 조선말을 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신사참배》라는것을 강요하는 등 조선적인 모든것을 말살하고 모든 형태의 반일운동과 반일적요소까지 없애버리기 위해 광란적으로 날치였다. 조선이 죽어가고있는 이 기막힌 현실은 조선인민혁명군이 하루빨리 백두산에 나가 조선은 살아있다, 조선은 싸우고있다, 조선은 반드시 살아난다는것을 실증할것을 요구하고있었다. 그러나 당시 국제당이 존재하고 1국1당제원칙이 절대적인것으로 되여있던 환경에서 조선혁명가들이 조선혁명의 구호를 들고 싸우는것이 정당한가 정당하지 않은가 하는 문제는 누구도 결심할수 없는 복잡하고 심각한 난문제였다.본질에 있어서 이것은 조선혁명의 주체성에 관한 문제였다. 바로 이러한 때 지금도 귀기울이면 조선혁명의 주인은 바로 조선공산주의자들이다, 오늘 우리 인민의 반일민족해방투쟁을 강화하는가 못하는가 하는것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있다, 우리들은 조선혁명앞에 지닌 자기의 책임을 깊이 인식하고 조선혁명에 전심전력하여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을 더욱 높은 단계에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하시던 열정에 넘치신 백두산청년장군의 음성이 들려오는것만 같다.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국경지대와 백두산지구에로 진출시키며 투쟁무대를 점차 국내에로 확대할데 대한 방침,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을 확대할데 대한 방침, 당창건준비사업을 적극 추진시킬데 대한 방침, 공청을 반일청년동맹으로 개편할데 대한 방침을 비롯하여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국경지대와 백두산지구에로의 진출! 참으로 그것은 혁명투쟁의 전기간 주체의 기치를 높이 드시고 우리 혁명을 승리에로 이끄신 또한 그것은 하루빨리 조국에로 진출할것을 일일천추로 갈망하던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의 한결같은 념원을 반영한 정당한 방침이였다.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백두산을 근거지로 꾸리고 국경지대와 국내에서 무장투쟁을 활발히 벌린다면 일제의 야만적인 군사파쑈통치밑에서 신음하고있는 우리 인민에게 조국해방의 서광을 안겨줄수 있었다. 이것은 백마디의 말보다 더 힘있는 시위로 될수 있었다. 후날 한 항일혁명투사는 그때의 심정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력사적인 남호두회의에 참가하여 남호두회의에서 채택된 일련의 결정들은 그 이후 여러 단계의 혁명에서 조선의 공산주의자들로 하여금 주체적립장을 튼튼히 견지하고 어떤 역경속에서나 그것을 민족의 첫째가는 생명으로 변함없이 틀어쥐고나갈수 있게 하였다. 력사적인 회의장에 세워진 붉은기, 그것은 남호두회의후 국경지대와 백두산지구로 진출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투쟁은 더욱 본격화되였으며 이 과정에 백두산기슭에서 조국광복회가 창립되였다. 력사는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신 언제인가 주체의 길은 백전백승의 길! 이것이 오늘 우리 인민들이 다시금 굳게 가다듬는 억척불변의 신념이다. 고철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