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3월 7일 로동신문

 

아름다운 삶에 대한 열렬한 공감, 불같은 지향

기사 《사회주의 우리 집을 이런 참된 공민들이 떠받든다》의 후기

 

지난 2월 7일, 건군절을 하루 앞두고 우리는 북창군을 향해 떠나는 뻐스에 올랐다.거기에는 조선국제체육려행사 일군들과 종업원들이 타고있었다.

그들은 지난 1월 19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기사 《사회주의 우리 집을 이런 참된 공민들이 떠받든다》를 통하여 온 나라에 널리 알려진 회안땅의 특류영예군인의 안해인 김춘화녀성을 찾아가는 길이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과 같이 혁명적이고 고상한 사상정신적풍모를 지니고 살며 투쟁하는 훌륭한 인민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조선국제체육려행사 일군인 리연수동무는 동행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사회주의 우리 집의 한식솔이라면 누구나 따라배워야 할 참된 공민인 김춘화녀성에 대한 기사를 읽고났을 때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를 만나보고싶었습니다.그것은 저 한사람만이 아닌 우리 종업원들의 한결같은 심정이였습니다.

그러나 영예군인들을 금방석에 오래오래 앉혀두고싶어하는 우리 당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30여년세월 묵묵히 성실한 피와 땀을 바치고 두몫, 세몫 일을 찾아하면서 애국의 한길을 꿋꿋이 걸어온 그런 훌륭한 녀성을 어떻게 그냥이야 찾아가겠는가 하는데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그래서 종업원들모두가 떨쳐나 가지가지의 성의있는 물자를 마련해가지고 뜻깊은 건군절을 앞둔 오늘 길을 떠난것입니다.》

한 공민의 참된 삶에 대한 뜨거운 공감과 꾸밈없는 진정이 흘러넘치는 그의 이야기에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김춘화녀성에 대한 기사가 나간 때로부터 우리가 보고 듣고 체험한 수많은 일들이 차창가에 흐르는 수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되살아났다.

온 나라 방방곡곡에서 독자들은 매일같이 전화를 걸어오고 편지를 보내여왔다.어떤 사람들은 본사로 찾아와 김춘화녀성에 대하여 더 자상히 알려줄것을 청하였다.

누구보다 열렬히 호응한 사람들은 영예군인의 안해들이다.그들은 당에서 귀중히 여기는 영예군인남편을 돌보며 수십년세월 불사신처럼 살아온 김춘화녀성의 곁에 자기를 세우고 그의 한생을 거울로 삼아 지금껏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을 비추어본다고 하면서 영예군인들을 귀중히 여기는 당의 뜻을 앞장에서 받들어갈 굳은 결심을 피력하였다.

그들가운데는 구장군과 덕천시에 살고있는 영예군인들의 안해들도 있었는데 지금껏 영예군인남편을 돌보면서 사회와 집단을 위한 좋은 일을 찾아하느라고 하였지만 김춘화녀성의 소행에 비해보면 얼굴을 붉히지 않을수 없다고 하면서 앞으로 더 분발하여 반드시 그와 같은 참된 공민이 되겠다고 열렬히 토로하였다.

우리는 수도 평양과 강계시를 비롯한 여러곳에서 울려오는 이런 목소리도 들었다.

《나는 기사의 주인공인 김춘화녀성의 남편 손재철동무와 한부대에서 복무한 전우입니다.》

그들은 손재철동무가 수십년전에 육체의 많은 부분을 잃은 몸으로 예순살이 된 오늘까지 건재해있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고 기쁘다고 하면서 전우의 이름으로 그의 안해 김춘화녀성에게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싶으니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저마다 부탁하는것이였다.

독자들속에는 김춘화녀성을 오래전부터 알고있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수십년전 당보에 그에 대한 기사가 났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있었다.

하여 우리도 그 기사를 찾아보았다.정말 1985년 7월 30일부 《로동신문》에 《풍곡마을의 새며느리》라는 제목으로 손재철영예군인과 가정을 이룬 김춘화녀성에 대한 기사가 큼직하게 실려있었다.

그 기사를 보느라니 수십년전 당과 수령앞에 다진 맹세를 지켜 변함없는 한모습으로 살아온 김춘화녀성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커졌다.

붉은넥타이시절 손재철, 김춘화부부와 한마을에 살면서 학급동무들과 함께 그의 집을 자주 찾아간 추억을 이날이때껏 소중히 간직하고있는 평성의학대학의 한 녀성강좌장은 김춘화어머니야말로 한생의 자욱자욱을 값있게 빛내여온 참된 인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녀성이라고 하면서 그런 훌륭한 녀성을 알고있는것을 커다란 긍지로 여긴다고 말하였다.

회안땅을 향해 기세좋게 달리는 뻐스가 평성시를 지날 때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었을뿐 한번도 만나본적이 없는 녀성강좌장이 친근한 모습으로 우리의 눈앞에 그려진것은 평범한 영예군인의 안해와의 친분관계를 더없이 소중히 여기는 그의 고결한 마음때문이리라.

자기 하나의 리익만을 절대시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권력위주, 황금만능의 법칙에 따라 인간관계가 맺어지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당의 뜻을 앞장에서 받들고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길에 자신을 깡그리 바치는 헌신적인 인간들이 전체 당원들과 근로자들의 가장 훌륭한 동지로, 사회성원모두의 선망과 동경의 대상으로 되고있다.

그래서 김춘화동무의 소행이 널리 알려지기 전까지 그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있던 수많은 사람들도 지금은 그를 가까운 혁명동지로, 적극 본받아야 할 인생의 모범으로 여기고있으며 누구나 《김춘화와 나》, 《사회주의조국과 나》 하고 자기의 사상정신과 생활을 갈피갈피 더듬어보고있는것이다.

스스로 맡아안았던 일감이 너무도 방대하고 어려워 포기할가 하고 주저하던중에 기사를 읽고 조국과 인민을 위한 길에서 헌신의 한계를 모르는 평남탄전의 평범한 녀인앞에 자기를 세워보았다는 신평군의 이전 당선전일군이며 축산부원으로 4년, 뜨락또르운전수로 20년, 작업반장으로 28년을 일한 끝에 세해전부터는 자기 고장의 제일 힘든 고개길을 자진하여 맡아 관리하는데 매일 김춘화녀성의 모습을 그려보며 일터로 향한다는 린산군 석교리의 도로관리원아바이…

조선국제체육려행사 일군들과 종업원들이 김춘화녀성이 사는 회안땅으로 수백리길을 멀다하지 않고 찾아가는것도 바로 그래서가 아닌가.

우리가 탄 뻐스가 회안청년탄광 마을에 들어서는데 《평양뻐스가 또 온다!》라고 하는 아이들의 챙챙한 웨침이 들려왔다.

알고보니 평양시당위원회, 대외건설지도국을 비롯한 수도의 여러 기관 일군들이 이미 손재철, 김춘화동무들의 가정을 다녀간것이였다.평남땅에서도 도당위원회일군들을 비롯하여 김춘화녀성의 소행에 감복하여 그를 찾아왔던 사람들은 셀수 없을 정도였다.

북창군 읍지구에서부터 동행한 북창지구청년탄광련합기업소 책임일군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뻐스에서 내린 우리는 마중나와있는 사람들속에서 낯익은 모습을 발견하였다.김춘화녀성이였다.

송구스러움으로 얼굴이 불그레해진 그가 어쩔줄 몰라하는데 라영희, 김류경, 김향해동무를 비롯한 조선국제체육려행사 종업원들이 달려가 꽃다발을 안겨주며 축하의 인사를 하였다.

이어 그들은 친혈육처럼 한덩어리가 되여 김춘화녀성의 집으로 향하였다.

먼길을 달려온 평양손님들을 또다시 맞이한 손재철동무의 격정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세차게 들먹이는 그의 어깨를 다정히 안아주는 조선국제체육려행사 일군들과 종업원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도 뜨거웠다.

그들이 마련해가지고온 성의있는 물자들이 영예군인부부를 놀라게 하였다.눈부신 람홍색공화국기며 액정텔레비죤과 록화기, 증폭기, 선풍기를 비롯한 갖가지 문화기재들과 생활필수품들…

조선국제체육려행사에서는 영예군인가정에서 리용할 생활용품들과 함께 탄광지원물자도 성의껏 마련하였다.

고난의 시기 김춘화녀성이 영예군인남편을 돌보고 직장에서 맡은 일을 하는 바쁜 속에서도 탄부들을 위해 짬짬이 유휴자재를 수집한 감동깊은 사실을 잊지 않고 그의 지성을 대신하는 심정으로 마련한 안전모와 작업장갑 그리고 많은 량의 후방물자들…

그 하나하나가 다 깊은 감동을 자아냈지만 려행사종업원들이 김춘화녀성에게 써보낸 100여통의 편지들은 많은 지원물자에 못지 않게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였다.

우리는 김춘화녀성과 함께 그 편지들을 한장한장 펼쳐보았다.

《김춘화어머니!

오늘 저녁 집에 돌아와 조용한 방에 앉아 다시한번 어머니의 소행이 실린 기사를 읽고읽느라니 비록 한번 만나보지는 못하였어도 자신을 깡그리 바치며 30여년세월을 조국과 인민, 우리 사회를 위하여 억척같이 살아오신 김춘화어머니의 굳세고도 정이 넘치는 모습이 눈앞에 어려옵니다.…》

《뜨거운 정과 사랑으로 영예군인남편을 돌보며 두 아들을 조국보위초소에 꿋꿋이 세우고 탄부들과 군인들을 위한 헌신의 길에 온갖 지성을 다 바친 김춘화동지의 아름다운 인생은 저로 하여금 사랑과 정, 헌신으로 삶을 이어가도록 이끌어주고있습니다.

저는 김춘화동지를 생활의 거울로 삼고 사랑과 헌신으로 아름다운 자욱만을 새겨가겠습니다.》

편지의 구절마다 회안땅의 평범한 녀인이 걸어온 애국헌신의 길에 대한 열렬한 공감과 찬양, 그 모범을 적극 따라배울 열의가 넘쳐흐르고있었다.

김춘화녀성은 요즈음 수많은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오고 집으로 찾아오니 몸둘바를 모르겠다고 하며 얼마전에 있은 일을 이야기하는것이였다.

평양시당위원회 일군들이 집을 다녀간 날 저녁이였다.전화종이 울려 받아보니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뜻밖에도 평양시당위원회 책임일군이였다.

책임일군은 성의껏 마련하여 보낸 물자들가운데 화장품과 치마저고리감을 골라넣은 리유에 대하여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특류영예군인인 남편을 돌보느라 많은 고생을 한 춘화동무가 언제 한번 화려한 옷차림에 화장을 품들여 해보았으랴 하는 생각으로 특별히 마련하였습니다.치마저고리를 꼭 만들어 뜻깊은 광명성절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대의원선거를 하는 날 환하게 차려입고 나서기 바랍니다.》

그때 김춘화녀성은 전화기를 손에 든채 흐느껴울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하고난 김춘화녀성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있는 가정의 좋은일하기기록장을 내놓았다.

수십년세월 손재철, 김춘화가정이 사회와 집단을 위한 좋은 일을 찾아한 내용에 이어 지난 10여일간 그의 집을 찾아오거나 전화를 걸어왔던 방방곡곡의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여러 페지에 적혀있었다.수도의 여러 시민과 옹진군에 사는 한 주민 그리고 청진항의 일군들과 종업원들…

미처 이름을 적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그것은 그들이 《저는 그저 김춘화동지의 애국헌신의 삶에 감복한 공화국공민의 한사람입니다.》라고 하며 구태여 자기 소개를 하지 않았기때문이다.

이 나라의 한 공민이 새겨온 참된 삶을 수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긍정하고 적극 따라배우려 하는 사실이 우리의 심장을 세차게 두드렸다.

정녕 이 땅에는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있는것인가.참된 삶은 그자체도 아름답지만 그 메아리는 또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것인가.

김춘화녀성의 소행이 온 나라에 널리 알려진것은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우리 인민의 사상정신적풍모를 깊이 깨닫게 하는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어느새 친혈육처럼 가까와진 손재철, 김춘화부부와 조선국제체육려행사 일군들과 종업원들, 북창지구청년탄광련합기업소 일군들이 마음도 뜻도 하나가 되여 노래를 부르는 광경은 당과 조국은 애국충정을 체질화하고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헌신하는 삶을 시대의 전형으로, 참된 인생의 본보기로 내세워주며 인민은 그런 삶을 가장 값높이 여기며 적극 본받는 우리 사회의 참모습을 말해주고있었다.

참된 삶의 길에서 하나의 동지로 굳게 뭉친 그들의 모습을 우리는 사진에 담았다.

온 나라 인민이 그토록 보고싶어하는 김춘화녀성과 그의 남편 손재철동무가 그 아름다운 화폭속에서 밝은 미소를 짓고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허명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