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3월 11일 로동신문

 

주타격전방에서 척후대의 영예를 빛내여
가는 농촌청년혁명가집단

숙천군 칠리농장 청년작업반 당세포위원장
김재남동무와 작업반원들에 대한 이야기

 

지난해 12월 제4차 전국농업부문열성자회의 참가자들과 함께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어주시는 자리에서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숙천군 칠리농장 청년작업반 당세포위원장 김재남동무를 만나주시였다.

영웅의 장알박힌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며 뜨겁게 축복해주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를 우러러 격정의 환호성을 터치는 참가자들속에는 10여명의 칠리농장 청년작업반원들도 있었다.꿈만같은 소식에 접한 70여명의 청년작업반원모두가 감격의 눈물을 쏟고쏟으며 영광의 대오속에 자신들도 세워보았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청년들은 최근에 당의 전투적호소를 받들고 새로운 시대의 신화들을 창조한 그 정신과 본때로 당이 부르는 혁명초소들에서 척후대의 영예를 빛내여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직접적인 발기와 당의 현명한 령도밑에 줄기차게 전진하여온 농촌청년작업반, 청년분조운동의 자랑찬 력사도 어느덧 40여년의 년륜을 아로새기고있는 때에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받아안은 새 세대 다수확선구자집단,

열두삼천리벌의 한끝, 갈대무성하던 간석지포전에 삶의 뿌리를 든든히 내리고 당의 농업정책과 사회주의농촌테제를 앞장에서 받들어가고있는 이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은 오늘 우리 청년들이 당이 부르는 혁명초소들에서 어떻게 척후대의 영예를 빛내여나가야 하는가를 값높이 새겨주고있다.

 

열두삼천리벌의 붉은 기발

 

《…먼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력영웅칭호와 함께 금메달(마치와 낫) 및 국기훈장 제1급을 수여하겠습니다.숙천군 칠리농장 청년작업반 김재남동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이 랑독되고 제일먼저 자기 이름이 불리워지는 순간 김재남동무는 후두둑 심장이 뛰는것을 느꼈다.다음순간 그는 얼굴을 싸쥐였다.뜨거운 눈물이 거쿨진 손을 타고 줄줄이 흘러내렸다.

요란한 박수소리가 수여식장을 뒤흔들고 제4차 전국농업부문열성자회의 참가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정다운 눈빛이 가슴에 영웅메달을 번쩍이는 김재남동무의 온몸을 감싸안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였다.

모든것이 꿈같기만 하였다.세찬 흥분으로 달아오른 그의 가슴속에 지나온 나날이 주마등같이 흘러갔다.

10여년전 가을 어느날 칠리농장 청년분조(당시)건물앞에서 오래동안 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새로 청년분조 분조장으로 임명된 김재남동무와 리당일군이였다.

《전… 자신없습니다.원래 있던 작업반으로 다시 보내주십시오.》

한동안 아무말없이 그를 바라보던 리당일군이 건물지붕우를 손으로 가리키며 준절히 말하였다.

《정 그렇다면 동무손으로 저 기발을 내리우고 가오.…》

그때 리당일군이 그 어떤 다른 말로 김재남동무를 설복했다면 그는 끝내 떠나가버렸을것이다.하지만 기발을 내리우고 가라는 말앞에서는 심장이 멎는듯 한 아픔에 소스라치지 않을수 없었다.

청년동맹마크가 새겨진 붉은 기발,

저 기발을 내리운다는것은 열두삼천리벌의 한 부분에서 청년들이 주저앉고 난관앞에 물러선다는 말이다.만약 전쟁시기라면 조국의 고지에 기발을 남겨두고 떠나는 사람을 과연 용서할수 있겠는가.

칠리 소재지에서도 근 20리나 떨어진 이 열두삼천리벌의 한끝에 청년분조의 기발이 휘날리기 시작한것은 나라가 엄혹한 시련을 겪던 시기였다.

고난의 눈보라는 척박한 청년분조 포전을 더욱 모질게 휩쓸었다.군데군데 갈이 무성한 간석지논인데다가 관개체계의 말단에 위치하고있어 농사조건은 참으로 불리하였다.거기에 때없이 들이닥치군 하는 가물과 장마, 태풍을 비롯한 자연재해…

정보당 2t의 논벼수확을 넘겨보지 못하는 야속한 땅을 원망하며 청년들은 하나둘 떠나갔고 청년분조이름은 날을 따라 빛을 잃고있었다.

넋없이 기발을 바라보는 그의 귀전에 문득 아버지가 림종을 앞두고 남긴 목소리가 쟁쟁히 울려왔다.

《열두삼천리벌을 이제는 너희들이 지켜야 한다.》

1960년대말 당의 호소를 심장으로 받들고 사회주의농촌으로 자원진출한 수많은 사람들속에 그의 아버지도 있었다.철도부문에서 일하던 전쟁로병인 아버지는 가족과 함께 숙천군에 달려온 첫날부터 태를 묻은 고향도 아니고 일가친척도 없는 이 땅에 모든것을 다 바치였다.

온밤 뜬눈으로 새우고 날이 밝기도 전에 집문을 나서는 그의 손에는 분조명단이 꼭 쥐여져있었다.사방으로 흩어져간 분조원들을 찾아 먼길을 떠나는 김재남동무에게 있어서 그 명단에 적혀진것은 단순히 분조원들의 이름이기 전에 열두삼천리벌의 붉은 기발을 이루는 하나하나의 쪼박과도 같은것이였다.

역기다림칸에서 지새운 밤은 얼마이고 사나운 눈보라를 헤치며 걸은 길은 얼마이던가.한두번의 설복으로 안되면 네번, 다섯번이라도 분조원들의 집문을 두드렸다.먹는물도 매일 길어먹어야 하는 그런 험한 곳에 자식들을 보내여 고생시키고싶지 않다는 부모들의 손을 꼭 잡으며 아버지, 어머니들이 피땀흘리며 가꾸어온 이 땅을 우리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기어이 농사도 잘 짓고 생활도 남부럽지 않게 꾸리겠으니 믿어달라고 간청하기를 그 몇번…

마침내 몇명의 분조원들을 앞세우고 돌아온 김재남동무는 그길로 친척집에 갔다는 한 청년을 찾아 또다시 먼길을 이어갔다.

일년내내 허리 한번 못 펴고 땀흘려도 별로 빛을 보지 못하는 그런 곳에서 청춘을 헛되이 보내고싶지 않다며 차라리 건설장에 찾아가려 한다는 청년에게 김재남동무는 말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청년들이 발전소건설장이나 철도건설장에서만 혁신자가 되고 영웅이 될수 있는것이 아니라 농촌에서도 혁명의 주인다운 자각과 청춘의 열정을 가지고 투쟁한다면 누구나 혁신자가 되고 영웅이 될수 있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우리 열두삼천리벌을 지키고 고향을 가꾸는 길에서 혁신자가 되고 영웅도 되자고 하면서 그의 손을 잡고 숙천행 렬차에 올랐다.

이렇게 간난신고하며 찾아내여 데려온 20여명의 청년분조원들이 한지붕밑에 모였을 때 김재남동무는 새 기발부터 다시 띄웠다.

2005년 1월 새해의 첫아침 분조장이 막냉이분조원과 함께 올리는 기발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가슴은 높뛰였다.눈비에 꽁꽁 다져진 솜옷자락속에서 삶은 감자 몇알을 꺼내여 손에 쥐여주며 함께 가서 우리 기발을 지키자고 호소하던 분조장, 농촌에서 나서자란 우리가 농사일이 힘들다고 떠나고 자기 고장이 뒤떨어졌다고 버린다면 태를 묻은 이 땅, 우리 고향은 누가 가꾸고 나라의 쌀독은 누가 채우겠는가고 가슴을 치던 그의 절절한 목소리가 그 붉은 기폭에서 메아리쳐울리는듯싶어 새로운 희망과 열정으로 가슴부풀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뼈속까지 스며드는 한겨울의 바다바람도 사나왔지만 끝이 뾰족한 갈그루터기에 발이 찔려나고 갈잎을 당기다가 손을 베여 피가 흐를 때면 연약한 처녀들은 물론 총각들의 눈에도 눈물이 찔끔 솟군 하였다.

그런 그들이 또다시 뒤걸음칠세라 김재남동무는 사랑과 정을 깡그리 쏟아부었다.분조원들에게 새옷을 해입히고 따뜻한 아래목을 마련해주며 무드기 쌓인 밥그릇속에 닭알까지 묻어주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합숙마당가에 배구장도 만들어놓고 매일 저녁 오락회도 조직하였다.생일일람표를 붙여놓고 생일상도 성의껏 차려주었으며 앓는 분조원을 위해 밤길도 주저없이 달려가군 하였다.

날이 갈수록 분조에 정을 붙이기 시작한 청년들은 성수가 나서 온 한해 농사일에 뼈심을 들였다.

드디여 가을이 오고 첫해에 벌써 지난 시기에 비해 정보당 3배나 많은 알곡을 거두어들였을 때 온 농장이 떠들썩하였다.일군들은 너무 기뻐 청년들을 한사람한사람 안아주기까지 하였다.어깨가 으쓱해진 청년들이 웃고 노래부르며 잠들지 못하던 어느날 밤 리당일군이 또다시 분조에 찾아왔다.늘 살붙이를 들판에 내놓은 부모심정으로 나약해질세라, 지칠세라 청년분조일을 세심히 보살펴주던 그가 집에서 안고 온 부식물들을 넘겨주며 김재남동무에게 조용히 말하였다.

《정말 수고가 많았네.분조원들의 밥그릇을 높여주고 새옷을 해입히는것도 중요하지.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열두삼천리벌에 대한 애착부터 심어주는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가.일판을 더 크게 벌려보라구.》

리당일군의 이야기를 듣는 김재남동무에게는 언제인가 군의 어느 한 농장을 현지지도하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 토지정리사업에 청년들이 앞장서도록 하는것이 좋다고, 그래야 농촌청년들속에서 자기 고향산천을 사랑하는 정신을 키워줄수 있으며 부모들의 구슬땀이 스며있는 고향땅을 대를 이어 가꾸어나가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게 할수 있다고 하신 가르치심이 새삼스럽게 되새겨졌다.그럴수록 자그마한 성과에 만족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고 울퉁불퉁하고 갈대무성한 분조의 논들이 아프게 밟혀왔다.

(토지정리사업을 통해 분조의 땅도 사람들도 개조하자.)

새해농사차비가 진행되는 1, 2월에 토지정리까지 내밀 새로운 결심을 내린 김재남동무는 거름실어내기와 모판자재확보를 종전보다 열흘 앞당겨 끝내고 분조원들과 함께 이 사업에 달라붙었다.

1월의 해풍속에서 떵떵 얼어붙은 땅을 한치한치 깎아내기가 생각보다 훨씬 힘겨웠다.어떤 날에는 20여명의 청년들이 온종일 함마와 정대를 휘두르며 까낸 토량이 한㎥도 되나마나했다.질통을 힘겹게 추스르며 눈물을 똘랑똘랑 떨구는 처녀들을 바라보는 김재남동무의 마음은 쓰렸다.

어느날 작업휴식시간에 모닥불을 지핀 그는 퍼렇게 얼어든 분조원들의 얼굴을 애틋한 정을 안고 둘러보며 말했다.

《이 추운 때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기가 정말 힘들지.어떤 땐 나도 막 주저앉고싶소.하지만 그때마다 리당위원장동지가 들려주던 이야기가 떠오르군 하더구만.》

그의 이야기는 해방후 어느 봄날에로 거슬러올랐다.

가물이 계속되던 어느날 열두삼천리벌을 찾으시였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물동이를 이고 힘들게 걸음을 옮기는 녀인들을 보게 되시였다.물동이를 내려놓은 한 녀인의 머리가 다 헌것을 보시고 너무 가슴아프시여 달리는 차안에서도 아무 말씀없이 그냥 뒤돌아보신 우리 수령님께서는 후날 일군들에게 절절히 호소하시였다.

동무들도 쌀을 먹고 나도 쌀을 먹소.이 쌀을 농민들이 헐하게 생산해야 그것을 먹는 사람의 마음도 편할게 아니겠소.우리는 물때문에 고생하는 농민들의 고통을 가셔주기 위해 이 공사를 해야 합니다.…

우리 수령님의 크나큰 심혈과 로고속에 평남관개가 완성되고 열두삼천리벌농민들의 세기적숙원을 풀어주며 단물이 철철 흘러들게 되였다.그런 은정깊은 단물이 높낮이가 심한 논들때문에 골고루 흘러들지 못하여 귀중한 이 땅이 해마다 묵어나가고있는데 우리 청년들이 눈을 펀히 뜨고 앉아 지켜보기만 해야 옳겠는가.…

김재남동무의 목소리는 가볍게 떨렸다.

《전세대들은 한치의 땅을 지켜 목숨도 바쳤는데 우리가 땀이야 왜 못 바치겠소.이제 우리 후대들이 이런 한심한 땅을 물려받고 아버지, 어머니세대는 무엇을 했는가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겠소.》

추위를 밀어내며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보다 더 세차고 뜨거운 애국의 불길이 청년분조원들의 심장마다에서 이글거렸다.

이렇게 시작된 토지정리사업이 10여년세월 꾸준히 이어졌다.그 나날 작업능률을 높일수 있는 묘리도 터득하여 그들은 해마다 가을이면 높은 지대의 논을 갈아놓았다가 다음해 겨울에 얼어붙은 흙덩어리들을 까서 낮은 논에 펴주며 매해 4정보의 땅다루기실적을 기록하군 하였다.논판에 있던 10여개의 웅뎅이와 갈밭들이 모두 없어지고 한 포전이 1, 500평이상 지어 2~3정보의 규격포전으로 번듯하게 정리되였어도 그들은 만족을 모르고 옥토로 걸구기 위해 땀을 쏟았다.

토지정리사업을 시작한지 얼마후부터 분조에서는 뒤마당에 벼짚무지를 쌓아놓고 온 한해 잘 썩여 다음해 농사에 리용하군 하였다.

몇해전 8월 어느날 거름뒤져주기작업이 진행될 때였다.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삼복철에 더운 김을 확확 내뿜는 산더미같은 거름무지를 한삽한삽 찍어 뒤져주는 일은 헐치 않았다.연방 땀을 훔치던 한 청년이 거름더미우에 걸이대를 박고나서 바께쯔로 물을 퍼서 뿌려주려고 하였다.

그 찰나 작업장으로 다가오던 김재남동무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그리고는 거름을 찍어 물도랑속에 푹 잠그었다 꺼내며 말했다.

《그렇게 바께쯔로 물을 추기면 벼짚이 뜨기만 하고 잘 썩지 않는다는걸 모른단 말이요? 자기도 속이고 땅도 속이는 그런 마음으로는 열두삼천리벌을 가꾸지 못해.》

그들은 이렇게 땅에 량심을 묻는 법부터 익혔다.전야에 씨앗을 뿌리기 전에 먼저 애국의 땀과 열정을 아낌없이 쏟았다.

한평한평 늘어나는 옥토와 더불어 불과 몇명의 청년동맹원들만 남아있던 분조가 70여명의 당원들과 청장년들로 흥성이는 3중모범청년작업반으로 성장하였다.알곡수확고도 해마다 뛰여올라 정보당 1.7t도 거두어들이지 못하던 땅에서 올해에는 11t이상의 다수확을 내지 않았던가.…

장내에 울려퍼지는 박수소리에 김재남동무는 생각에서 깨여났다.

수여식이 끝나 홀에 나서는 그에게로 청년작업반원들이 달려와 안겼다.10여년전 청년분조의 기발을 함께 띄웠던 작업반장 김광명동무, 어제날 소문난 애군이였던 분조장들인 최혁철, 김정남, 지홍식동무, 남달리 몸이 약해 마음도 많이 쓰이던 애젊은 장운송, 김명학동무의 앞가슴에도 훈장이 빛나고있었다.그들을 얼싸안는 김재남동무의 눈앞에 청년작업반의 붉은 기발이 삼삼히 어려왔다.청년동맹마크가 뚜렷이 빛나는 그 기폭과 더불어 열두삼천리벌의 참된 주인들로 자라난 작업반원모두의 자랑스러운 모습들도 안겨왔다.

진정 영광의 땅 열두삼천리벌의 한끝에서 세차게 나붓기는 그 한폭의 붉은 기발은 청년작업반원들의 미더운 모습이였다.

김재남동무의 심장은 이렇게 고동쳤다.

(경애하는 원수님, 우리는 기발앞에서 다진 맹세를 기어이 지켜냈습니다.)

 

청년, 그 이름을 빛내이며

 

당면한 영농전투로 들끓고있는 이곳 청년작업반으로 지금 도안의 시, 군들은 물론 평양시와 염주군, 저 멀리 동해지구에서까지 많은 일군들과 농업근로자들이 찾아오고있다.지어 인민군대의 후방부문 일군들과 당간부양성기관의 교원, 학생들도 경험을 배워가고있다.

드넓은 대규모규격포전들에 듬뿍듬뿍 쌓인 거름무지들과 벼가마니로 정성껏 감싸준 덩지큰 재무지들, 작업반뒤마당에 성벽마냥 높이 둘러싸여있는 다음해 농사에 리용될 벼짚무지, 작업반장, 당세포위원장으로부터 시작하여 작업반원모두의 이름이 표기되여있는 구운흙무지들…

다수확선구자집단의 드높은 애국열의와 알뜰하고 깐진 일본새가 그대로 엿보이는 하나하나의 흐뭇한 풍경앞에서 모두가 놀라움과 부러움을 금치 못하고있다.아담하고 산듯한 작업반건물과 창고들을 보면서도 정말 사람도 땅도 건물도 다같이 청춘이라고 찬탄을 아끼지 않고있다.

일찌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언제인가 수령님께서는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는 우리 청년들을 믿고 쓴다고 말씀하시였다고, 이것은 우리 청년들에 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기대의 표시라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청년분조장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김재남동무가 좌우명으로 간직했던 위대한 장군님의 이 뜻깊은 교시는 오늘 작업반원모두의 포부로, 삶의 목표로 되였다.

알곡생산량이 체계적으로 늘어나고 작업반이 소문나기 시작하자 청년들의 사기도 부쩍 높아졌다.하루빨리 농장과 군은 물론 도적으로도 제일 앞선 청년작업반이 되자는것이 모두의 한결같은 열망이였다.

이런 목표를 수행하자면 사회주의농촌테제에 밝혀져있는것처럼 모든 작업반원들이 농산기사, 기수가 되여 과학농사라는 높은 산을 반드시 넘어야 하였다.

몇해전 어느날 김재남동무가 새형의 양수기제작을 방조받기 위해 숙천농업대학에 찾아갔을 때였다.웃지구 작업반들에서 흘러내리는 퇴수를 잡아 리용할수 있는 양수기를 자체로 제작하려는 그의 착상을 교원, 연구사들은 적극 지지해주었다.그러면서 이왕이면 대학통신공부를 하면서 양수기를 제작하는것이 어떤가고 건의하는것이였다.

작업반으로 돌아오는 그의 마음은 설레였다.대학생교복을 입고 교정에 들어서는 광경을 흐뭇하게 그려보는 그의 마음속에 재간둥이 차대원동무의 모습이 제일먼저 떠올랐다.군사복무를 마치고 제대되면서 숙천농업대학 추천서를 품에 안고 왔던 그, 하지만 당에서 걱정하는 인민들의 식량문제해결을 위해 농장에 달려와 성실한 땀을 바치고있는 그가 안다면 얼마나 기뻐하랴.침착하고 연구심이 강한 김광명동무며 사업의욕이 높은 분조장들의 모습도 줄줄이 떠올랐다.

그날 저녁 김재남동무의 이야기를 들으며 초급일군들은 몹시 기뻐하였다.

그런데 3분조장이 불쑥 이렇게 말하였다.

《저… 우리만이 아니라 작업반동무모두가 대학생이 될수는 없습니까?》

순간 놀라운 눈길들이 그에게로 집중되였다.결코 엉뚱한 제기를 해서만이 아니였다.사실 그로 말하면 맡은 일은 맵시있게 해제끼면서도 자기밖에 몰라 초급일군들의 속을 어지간히 태웠었다.그후 분조장으로 사업하면서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이따금 본위주의를 부려 작업반의 단합에 지장을 주는 때도 있었던것이다.그런 그의 가슴속에 오늘은 작업반원모두가 자리잡고있다고 생각하니 초급일군들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세찬 흥분에 잠겨 한동안 아무 말 없던 그들이 서로마다 격동된 심정을 터놓았다.

온 작업반이 다같이 대학공부도 하고 농사도 본때있게 짓자고…

이렇게 되여 그들모두가 숙천농업대학 통신공부를 하게 되였다.

온 작업반이 명절처럼 흥성거렸다.청남구에서 소문난 재단사를 초청하여 만들어입은 양복에 넥타이까지 척 매고 책가방을 흔들며 등교길에 오를 때 온 농장마을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워하였던가.

첫 학기 공부를 성과적으로 마치던 날 김재남동무의 안해 유경심동무가 돼지까지 몰고 작업반으로 찾아왔다.돼지목에 척 걸려있는 꽃목걸이가 온 작업반에 웃음판을 터뜨렸다.

《현아랑, 현명이랑 대학생삼촌들을 축하한다면서 저렇게… 뭐니뭐니해도 배가 불러야 공부도 잘되고 일도 잘하지요.후방사업은 념려말고 많이 배워요.》

웃고 떠들던 작업반원들이 뜨거운것을 삼켰다.한가정만이 아닌 작업반의 어머니가 되여 수십명 청년들의 결혼상을 차려주고 자기들의 생활을 구석구석 돌봐주는 유경심동무의 진정에 머리가 숙어졌다.그의 마음까지 합쳐 공부를 더 잘하리라 결심도 다졌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 흥분, 그 열정은 점점 식어갔다.

농사일을 하면서 대학공부를 한다는것이 욕망처럼 쉽지 않았던것이다.1년치고 그중 덜 바쁜 농사철로 되여있는 1월에 진행되는 통신공부였지만 해마다 바로 그 시기에 토지정리목표를 높이 세우고 어김없이 집행해나가는 그들에게 있어서 학습은 또 하나의 어려운 전투였다.

열두삼천리벌을 다 갈아엎으라면 갈아엎어도 자기 머리만은 조금도 갈기 힘들다고 무작정 빠져달아나는 청년도 있었다.이렇게 힘들게 공부하지 않고서도 농사를 지었는데 우리가 더 뼈심들여 일하면 되지 않는가고 수군거리는 작업반원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김재남동무도 생각이 복잡해졌다.나날이 마음이 무거워지고 주저하게 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러던 4년전 1월 어느날 작업반에 도당책임일군이 찾아왔다.

청년작업반의 성과를 놓고 도당책임일군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그날 밤을 김재남동무와 함께 새웠다.작업반사무실에 허물없이 나란히 누워 그들이 걸어온 과정을 대견하게 들어주던 도당책임일군이 대학통신공부를 놓고 흔들리는 그의 마음을 엿보고는 몹시 섭섭해하였다.

《과학농사의 본보기를 창조하고 농촌테제관철의 앞장에 서자고 해도 더 많이 알아야 하지 않겠소.청년들에 대한 우리 당의 믿음과 기대를 심장에 새기고 피타게 배우며 일해야 해.》

그날 김재남동무는 자기들의 어깨에 실린 무게를 새삼스럽게 다시 느꼈다.

청년작업반!

이는 단순히 일정한 면적의 포전을 맡아 관리하는 생산단위만이 아니였다.당의 농업정책과 사회주의농촌건설구상을 앞장에서 관철하는 청년혁명가집단, 더 좋은 래일을 앞당기는 척후대가 되여야 한다는 자각이 가슴을 두드렸다.

어느날 합숙을 돌아보던 김재남동무는 열심히 책을 들여다보는 동무들옆에서 학습장으로 얼굴을 덮은채 셈평좋게 누워있는 작업반원을 보게 되였다.공부만은 죽어도 못하겠다고 늘 볼이 부어있던 동무였다.

그와 마주앉아 배운 내용들을 다시 차근차근 일깨워주던 김재남동무가 말하였다.

《지금은 뚝심으로 농사짓는 때가 아니야.이제 온 작업반이 기사가 될 때 동무만 뒤에서 한숨쉬겠나.그리고 언젠가 동무가 말하던것처럼 모내기와 김매기를 하는 로보트도 바로 동무나 나, 우리 청년작업반원들이 만들어야 하지 않을가.》

그는 작업반원들을 이렇게 분발시키며 피타게 공부해나갔다.그들이 하루하루 배우고 다지는 지식은 실천투쟁에서 그대로 생활력을 나타내였다.

몇해전 가을 휴식날 작업반에서 분조별배구경기를 조직했을 때였다.낟알털기를 성과적으로 결속한 기쁨안고 아침부터 배구장으로 달려나온 작업반원들의 기세는 등등했다.그런데 1분조 선수들은 안절부절하며 자꾸 작업반으로 들어오는 길만 쳐다보았다.분조의 타격수인 순철동무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던것이다.끝내 경기에서 패한 분조원들은 그를 탓하며 윽윽 별렀다.그무렵 무거운 짐이 실린 자전거를 끌고 나타난 동무에게 그들은 아침부터 어디 가서 무슨 허튼짓을 하느라 경기에까지 늦어지는가, 동무는 아직도 낡은 습성을 버리지 못했는가고 막 들이대였다.

하지만 그가 가져온 마대를 헤쳐보고서는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그안에 닭배설물이 가득 들어있었던것이다.문득 농업화학과목시간에 닭배설물에 린성분이 많이 들어있다는데 대해 배우던 생각이 났다.

《닭배설물을 쳐주면 벼뿌리활성이 강해진다기에 읍지구에 있는 친척집에 부탁했더니… 미안합니다.》

송골송골 내돋은 땀방울이 아직 가셔지지 않은 얼굴에 미안한 기색을 지으며 조심히 말하는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분조장 김정남동무가 말하였다.

《아니요.비록 오늘 체육경기에서는 졌지만 동문 우리 분조가 농사에서 단연 1등 할수 있는 지름길을 열어놓았소.》

분조원모두가 그를 얼싸안았다.

그때부터 작업반에서는 닭배설물수집이 활발히 진행되였다.정보당 0.8~1t의 닭배설물을 낼 목표밑에 온 작업반이 뛰여다녔다.약혼식을 하기 위해 십여리 떨어진 처녀의 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 집의 닭배설물을 모조리 자전거에 싣고 와 웃음판이 터졌다는 이야기도 이 나날에 태여났다.

지식의 힘은 정말 강했다.자기들의 논판에 특별히 미꾸라지가 많은것을 놓고 그저 좋아만 하던 작업반원들이 그것들의 활동으로 토양속의 산소량이 많아져 벼뿌리썩음병을 극복할수 있다는것을 원리적으로 깨닫게 된 후부터는 미꾸라지논판양어를 활성화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였다.

김재남동무가 구상하던 양수기제작도 마침내 성공하여 웃지구에서 내려오는 비료성분이 많은 퇴수가 작업반포전으로 흘러들었고 장운송동무가 창안한 새형의 논판수평정지기와 김광명동무가 선풍기를 개조하여 만든 벼모잎자르는기계도 과학농사에 크게 이바지되였다.

피타게 배우며 실천해나가던 나날에 청년작업반원들은 다시금 깨달았다.

100가지 농사일을 제철에, 질적으로 해나가는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과학농사방법이라는것을.

이곳 작업반원들이 입버릇처럼 외우는 말이 있다.

자기 몸을 항상 벼포기로 생각하자.자기가 추울 때 벼모도 추워하고 더울 때 벼모도 더위를 타며 배고프고 아플 때 벼포기도 앓지 않는가 살피며 돌봐주어야 한다.

정녕 그들에게 있어서 그대의 은정 가없이 펼쳐진 저 푸른 이랑들을 더 푸르게 할수만 있다면 내 한줌 거름이 되여 어린 모 한포기 살찌운들 무슨 한이 있으랴는 시구절은 결코 책갈피속의 글줄이 아니였다.

지난해 7월 중순 수십년만에 처음 보는 폭우가 며칠째 멎지 않고 쏟아져내렸다.웃지구 작업반들에서 흘러내린 물까지 논판에 쓸어들다나니 한창 아지를 치던 벼들이 모두 꼴깍 잠겨버렸다.통수능력은 제한되여있었고 비는 언제 멎을지 몰랐다.

한가지 방도밖에 없었다.작업반포전옆에 있는 제방뚝을 따내고 관을 묻어주어 거기로 물을 뽑는것이였다.하지만 그것은 너무도 큰 모험이였다.철관은 작업반에서 퍼그나 멀리 떨어진 곳에 묻혀있었고 무게가 여러t이나 나갔다.그것을 날라다 묻고 제방뚝을 다시 쌓는 작업을 밀물이 들어오기 전까지 결속하지 못하면 상상도 할수 없는 후과를 초래할수 있었다.청년작업반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작업반논까지 물에 잠길수 있었던것이였다.작업반의 력량으로는 엄두조차 내지 못할 방대한 일감을 놓고 초급일군들은 초조하게 제방뚝을 오가며 망설이였다.

그때 멀리서 불빛들이 환히 비쳐왔다.작업반원들이였다.손에손에 삽과 곡괭이들을 들고 대줄기같은 비가 쏟아지는 야밤에 스스로 달려나온 그들의 맨 앞에 작업반의 막냉이가 서있는 모습은 초급일군들의 심장을 쿵 울려주었다.

믿음과 정과 기대가 실린 불같은 눈빛들이 수천마디의 말보다 더욱 명확한 언어를 주고받으며 오갔다.작업반의 논벼들을 살려내지 못하면 이 한몸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심장만이 할수 있는 선택, 생사를 함께 할 믿음으로 온 집단이 뭉쳐지지 않고서는 집행할수 없는 결심이 마침내 내려졌다.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

결사전이 벌어졌다.

쏟아지는 비발속에서 두대의 뜨락또르는 앞에서 끌고 70여명의 남녀작업반원들은 뒤에서 밀며 작업반장의 구령에 맞추어 한m한m 전진해나가는 그 모습은 진정 불비속을 헤치며 직사포를 고지에로 끌어올리던 전화의 영웅전사들의 불굴의 군상그대로였다.

드디여 작업이 성과적으로 결속되였다.작업반의 논벼들이 모두 살아난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그 어떤 큰물이 나도 안전하게 농사지을수 있는 또 하나의 토대가 마련된 소식은 온 농장, 온 군을 들었다놓았다.

《청년작업반이 저런 배짱가들을 키워냈구려.》

《우리 열두삼천리벌의 앞날은 정말 창창하우다.》…

오늘 모범기술혁신단위, 3대혁명붉은기작업반의 영예를 지닌 청년작업반의 성과를 두고 말할 때 사회주의농촌건설에서 척후대의 영예를 빛내이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진취적인 창조기풍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수 없다.

몇해전 이들이 작업반건물을 다시 지을 목표밑에 건설에 달라붙었을 때였다.사실 열두삼천리벌의 한끝에 자리잡고있는 작업반에서는 일년 가도 지나가는 길손조차 보기 힘들었다.보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적당히 꾸리고 살것이지 괜히 사서 고생하지 않는가 하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청년작업반원들의 생각은 달랐다.비록 지리적으로는 한끝이고 외진 곳일수도 있다.그러나 청년, 이 부름을 지닌 인간들이 사는 곳은 언제나, 그 어디서나 시대의 맨 앞자리가 되여야 한다.

이것은 욕망이기 전에 어길수 없는 그들의 량심이고 명예였다.

청년학교와 작업반사무실, 합숙이 잇달린 덩실한 건물과 창고들이 멋들어진 자태를 드러냈다.그들은 군적으로 제일 소문난 화가를 초청하여 작업반의 곳곳에 벽화들을 훌륭히 형상해놓고 깊은 밤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수 있게 건물벽을 따라 환하게 불장식을 하였으며 지붕에는 태양빛전지판들도 설치해놓았다.농장은 물론 군적인 모임에서도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이들의 산듯한 옷차림에도 농촌 새 문화의 창조자로 살려는 지향이 그대로 담겨져있다.축산물생산을 늘일데 대한 당정책도 농장적으로 제일먼저 관철하여 그 덕을 톡톡히 보고있는 청년작업반으로 되였다.

청년, 우리 당이 언제나 제일먼저 찾는 부름, 그 믿음과 기대앞에 떳떳할 불타는 열망 안고 이들은 해마다 알곡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면서도 여러해전부터 매해 30t이상의 애국미를 바치는 소행을 발휘하고있다.

참으로 우리 당의 현명한 령도밑에 줄기차게 이어져온 농촌청년작업반, 청년분조운동의 불길은 얼마나 훌륭한 또 하나의 척후대, 애국자부대를 키워냈는가.

 

* *

 

사회주의경제건설의 주타격전방을 지켜선 우리 농촌청년들앞에는 지금 그 어느때보다도 비상히 무겁고 영예로운 과업이 나서고있다.

농촌청년들이 앞장에서 내달려야 사회주의전야가 끓고 주타격전방인 농업전선이 들끓어야 자력갱생으로 비약하는 조국의 전진이 빨라진다.온 나라 농촌의 청년들이 열두삼천리벌의 청년작업반원들처럼 자기들의 붉은 기발을 자랑차게 휘날리며 성실한 애국의 피와 땀을 아낌없이 바쳐 조국의 위대한 력사를 써나갈 때 람홍색 우리 국기는 얼마나 찬란히 빛을 뿌릴것인가.

지금 이곳 청년작업반원들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주신 정보당 13t의 알곡생산목표를 기어이 점령하기 위해 용기백배하여 결사분투하고있다.

이들의 불같은 애국충정과 위훈은 우리 당과 조국이 지켜보는 주타격전방에서 척후대의 영예를 빛내이기 위해 투쟁하는 농촌청년들의 발걸음을 더욱 힘차게 떠밀어주고있다.

본사기자 장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