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3월 22일 로동신문
실화 척후병
막장의 어둠을 헤가르며 안전등불빛이 뻗어나갔다. 온몸을 지팽이에 얹고 한걸음한걸음 내딛는 김동일의 눈앞으로 물기가 번들거리는 동발이며 압축공기배관, 레루며 침목이 연줄연줄 다가들었다.이제는 수십년세월 걸어온 막장길이건만 어쩐지 제대배낭을 푸는 길로 착암기를 둘러메고 들어서던 그날처럼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쿵- 멀리서 들려오는 둔중한 발파소리가 김동일을 무등 흐뭇하게 했다.새해벽두부터 기세를 올리는 중대원들의 미더운 모습이 벌써 마음속에 흠뻑 차올라 주름깊은 눈가에 만족의 미소가 넘실거렸다.거쿨진 손으로 지팽이를 꽉 틀어잡고 힘껏 걸음을 다우치는 그의 뇌리에는 석탄공업은 자립경제발전의 척후전선이라고 하신 《척후전선!》 하고 그는 입속말로 뇌여보았다.예순이 넘은 몸으로 제남탄광 독립4중대장으로 일하면서 순간도 자기의 본분을 잊은적 없는 그였건만 자력갱생의 기치높이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진격로를 열어나가야 할 보람찬 투쟁의 앞장에 지하막장의 탄부들을 내세워준 당의 크나큰 믿음에 접하고보니 어깨가 천근으로 무거워졌다. 《우리 당은 수천척 지하막장에서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하여 묵묵히 헌신분투하고있는 탄부들을 로동계급의 핵심부대, 나라의 보배로 굳게 믿고 끝없이 아끼고있으며 석탄공업부문의 로동계급이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오늘의 총공격전에서 선봉적역할을 수행해나갈것을 기대하고있습니다.》 신년사의 구절이 또다시 김동일의 가슴을 파고들었다.석탄공업부문의 로동계급은 모든것이 어려운 속에서 자립경제의 생명선을 지켜 결사적인 생산투쟁을 벌렸다고 하신 지난해에 탄부들은 말그대로 결사적인 생산투쟁을 벌렸다.우리의 전진을 가로막아보려는 적대세력들의 가혹한 제재봉쇄책동으로 겹쌓이는 애로와 난관속에서 조국의 불빛을 지켜, 공장의 동음과 협동벌의 풍년을 지켜 얼마나 간고한 전투를 벌렸던가.그처럼 어려운 속에서도 중대는 공화국창건 일흔돐을 앞두고 년간계획을 완수하는 자랑찬 성과를 거두었다. 올해 중대의 생산계획은 전례없는 생산적앙양을 일으키던 세해전 충정의 70일전투때와 맞먹는다.그러나 김동일의 야심은 그 아름찬 계획을 훨씬 릉가한 대담한 목표를 내다보고있었다.척후전선을 지켜선 사람이라면 누구보다 많은 땀을 흘리고 높은 실적을 내는것이 당연하다고 그는 생각했다.그래서 지팽이신세를 지면서도 이렇게 굳이 막장걸음을 하는것이다. 안깐힘을 다해 걸음을 옮기던 김동일은 이마에 송골송골 내돋는 땀방울을 팔소매로 뿍- 훔쳐냈다.뒤돌아보니 갱입구의 밝은 빛이 점으로 보일듯말듯 했다.그러니 거의 200m는 전진한셈이다.문득 젊은 시절이 그리워났다.묵직한 착암기를 메고서도 굴진막장까지 단숨에 씨엉씨엉 날아들던 때가 엊그제같았다.이제는 육체가 좀처럼 마음을 따라서지 못한다.지난해 그는 대퇴골두무균성괴사라는 진단을 받았다.그것이 가뜩이나 뇌동맥경화증으로 신고하던 그를 이중으로 압박하고있었다. 불현듯 귀익은 목소리가 공명되며 뇌리를 울렸다. 《중대장, 절대로 넘어져선 안되오.》 몇시간전 사무실에서 만났던 탄광초급당위원장 한학종의 목소리이다. 늘 자기를 각별히 근심해주는 당일군의 인정깊은 모습이 우렷이 어려왔다.그날 새벽에도 분명 자기의 건강이 못미더워 독골까지 걸음을 했을것이 뻔했다.앉은책상에 머리를 붙박고 새해전투작전을 세우느라 여념이 없던 김동일은 제 집처럼 성큼 문을 열며 들어서는 당일군을 보는 순간 대뜸 반가움에 몸을 솟구었다.습관적으로 벽을 잡고 일어서며 지팽이부터 더듬어쥐느라 했는데 그것이 당일군의 가슴을 허빌줄이야. 목이 꽉 메인듯 아무 말도 못한채 김동일의 성하지 못한 오른다리를 어루쓰는 한학종의 눈귀로 뜨거운것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김동일은 당황했다.자기의 변변치 못한 신상을 두고 금시라도 초급당위원장이 《아무래도 안되겠소.》라고 언젠가처럼 또다시 폭탄선언을 던질것 같아 더럭 겁이 난 그는 서둘러 방 한켠에 놓여있던 도면을 끄당기며 말머리를 뗐다. 《기술과에 의뢰했던 갱의 전망공정도입니다.우본선을 개발하면 3년은 문제없을것 같습니다.》 당일군은 놀라운 시선으로 숱진 눈섭밑에 불덩이마냥 이글거리는 김동일의 열정적인 눈빛을 이윽토록 마주했다.다른 갱장들이 새해 첫 생산실적을 두고 한껏 경쟁열에 달아있는 지금 그는 몇년을 내다본 새 탄밭개발에 대해 론하고있는것이 아닌가. 흔히 탄광사람들은 김동일을 가리켜 탄복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말하군 했다.3갱 갱장을 할 때에도, 8갱 갱장을 할 때에도 그리고 독립4중대장을 하면서도 년간계획을 수행하지 못한적이 없었기때문이다. 그러나 석탄이 《날 캐주소!》 하고 늘 그의 앞에 진을 치고 기다리는것은 아니였다.편파를 모르는 그의 높은 실적은 그 어떤 타고난 《운수》의 덕인것이 아니라 치차처럼 빈틈없는 공정맞물림, 능숙한 조직지휘의 결과였다.그의 머리속에는 생산공정이 일별, 월별, 분기별로 치밀하게 세워지군 했다.바늘틈만큼도 에누리없는 생산공정을 짜놓고는 설비관리, 자재보장, 막장정리 등 모든 요소에 높은 요구성을 제기했다.그러니 생산이 안될리 없었다. 그는 늘 오늘만이 아니라 래일을 내다보며 작전을 폈다.중대의 생산실적이 탄광에서 큰소리를 칠만큼 부쩍 뛰여오르게 된것도 그런 일본새를 떠나 생각할수 없었다. 독립4중대가 새로 조직되던 몇해전까지만 해도 월생산능력은 고작 1, 500t수준에도 못미쳤다.그것이 김동일의 배짱에 맞을리 만무했다.낮은 수준의 국가계획을 수행하면서 면무식이나 하는 중대가 아니라 실지 탄광에, 나라에 보탬이 되는 중대, 꼭 필요한 중대로 만들고싶었다.그러자면 반복채굴에나 매달려서는 어림도 없었다.그는 탄상을 구체적으로 관찰하고 오랜 탄부들과 이야기도 나누어보는 과정에 285본선 좌하반구역을 개발할 결심을 내렸다.당시의 굴진속도로 볼 때 2년은 품을 들여야 하는것이여서 기술자들은 중대장의 어벌이 큰 설계에 혀를 찼다.새 탄밭개발은 곧 전개되였고 그와 더불어 생산능력이 3배로 껑충 뛰여올라 독립중대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갱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게 되였다. 이런 중대장이 있어 탄광일군들은 독립4중대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다.다만 마음을 못 놓는것은 중대장의 여의치 못한 건강이여서 초급당위원장은 자주 독골에 올라와 어머니의 사려깊은 눈빛으로 그를 깐깐히 《진찰》해보군 했다. 바로 그날도 당일군의 세심한 눈빛이 김동일의 온몸을 심상치 않게 훑어보았었다.김동일은 긴장했다.8갱 갱장으로 10여년간이나 일해온 그가 7년전 문득 후방으로 돌아앉게 되였던것도 당일군의 이런 눈빛을 받은 후였기때문이다. 기세좋게 달리던 탄차가 탈선되듯 그의 육체가 갑자기 주저앉기 시작한것은 뇌동맥경화증으로 쓰러진 때부터였다.의사들은 절대적인 안정을 요구했지만 그는 걸음을 옮겨디딜수 있게 되자마자 현장으로 나왔다. 어느날 초급당위원장과 함께 막장을 돌아볼 때였다.김동일은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그러나 그의 안전등불빛은 바람앞의 초불마냥 좌우로 사정없이 흔들렸다.그것이 당일군의 예민한 촉감을 어찌 피할수 있으랴. 《아무래도 안되겠소.》라는 당일군의 근심어린 목소리를 들은지 얼마 안되여 김동일은 자재공급과 로동자로 배치받았다. 물론 신병관계로 취해진 조치였지만 김동일은 섭섭함을 금할수 없었다.탄광에서도 척후전선인 막장에서 일하는것을 긍지로 여겨온 그였다.이제는 뒤전에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성쌓고 남은 돌이 된듯 한 느낌을 피할수 없었다. (하긴 갱장이야 나보다 더 든든하고 능력있는 사람이 되는게 마땅하지.) 하고 스스로 위안하면서도 일찍 물러앉은 육체가 원망스러웠고 오래동안 속을 터놓고 살아온 당일군이 자기의 심정을 몰라주는것이 야속했다. 길가에서 8갱사람들을 만나면 그는 다짜고짜로 붙들고 서서 굴진은 계획대로 밀고나가는가, 동발은 떨어지지 않는가 하는것 등을 자상히 캐물었다.갱의 종업원들이 그의 건강이 념려되여 집에 찾아와도 막장형편부터 알아보았다.옛 갱장의 진정이 헤아려져 사람들은 후더운 심정으로 달래군 했다.《아바이야 근 30년이나 막장일을 했으니 최우등졸업생이지요.나이도 많고 건강도 남같지 않은데 이젠 새 일터에 맘을 푹 붙이십시오.》라고. 그러면 김동일은 《한뉘 갱에서 살아와서인지 막장에 들어가야 숨이 나가는걸 어쩌겠나.》 하며 허구프게 웃군 했다. 당조직의 과업을 받은 탄광병원의 의사들이 자주 그의 집에 드나들었다.어떤 때에는 초급당위원장자신이 그를 차에 태우고 큰 병원에 다녀오기도 했다.그럴 때면 김동일은 이 인정깊은 당일군이 여직 나를 잊지 않고있구나 하는 안도감에 기대를 얹고 막장일을 다시하고싶은 심정을 슬며시 내비치군 했다.그러나 그때마다 초급당위원장은 병치료에 전념하라는 단마디 대답뿐이였다. 막장일을 놓은지도 어느덧 1년이 되였다.마식령속도를 창조하여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나갈데 대한 그러던 어느날 그는 어느 한 탄광 탄부들의 영웅적위훈에 대한 소식에 접하게 되였다.뜻밖의 붕락으로 갱입구가 완전히 막혀 생명이 위험에 처한 속에서도 19시간의 순간순간을 석탄생산을 위한 결사의 투쟁으로 이어나간 26명의 탄부들, 그들의 장한 모습을 그려보느라니 아득히 뒤전에 서있는듯 한 자신이 못내 민망스러웠다. 불현듯 12월의 100여리 연도가 눈앞에 펼쳐졌다.피눈물의 곡성이 차넘치는 눈덮인 영결의 거리에 어푸러져 10년만 젊었어도 막장에 들어가 탄을 캐고싶다고 하신 피눈물의 12월에 다진 맹세를 다시금 새겨보는 김동일의 눈앞에 《전 당조직에서는 그의 절절한 마음을 헤아려 새로 조직되는 독립4중대를 그에게 맡기기로 하였다.이렇게 되여 그는 중대장이 되였던것이다. 방금전 그는 근심어린 눈길을 떼지 못하는 초급당위원장에게 첫달 계획을 본때있게 해제끼고는 꼭 치료를 받겠노라고 단단히 다짐을 했었다.그리고나서 이렇게 막장으로 향하는것이다. 새해에 들어와 22일째 되는 날이다.이미 중대의 계획수행률은 100%계선을 돌파했다. 이날도 김동일은 막장걸음을 드티지 않았다.부중대장은 자기가 막장을 맡겠으니 사무실에 앉아 작업조직만 하라고 했지만 그는 《내 눈으로 막장을 봐야 마음이 놓여.》 하며 부축도 뿌리치고 고집스레 지팽이를 찾아쥐고는 막장으로 들어섰다.입구로부터 몇걸음이나 겨우 내짚었는데 벌써 진땀이 빠질빠질 내돋았다.하루가 다르게 건강이 하강선을 긋는것이 겁났다.내심으로 세운 목표까지 치달아오르자면 아직 한참이나 더 내달려야 했다. 이런 생각에 묻혀 걸음을 다우치던 김동일의 귀전에 조구로 석탄이 와르르 쏟아져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채탄막장에 이른것이다. 막장안을 둘러보던 김동일의 얼굴빛이 흐려졌다.천정 한켠에 집채같은 바위가 걸려있었다.그것을 들어내고 뒤에 숨은 탄을 캐내자면 곁굴을 뚫어야 했다.품이 여간만 들지 않는 일이다.아마 그래서 조건이 좋은 곳을 털어먹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는 당장 소대장을 불러내여 무섭게 닦아세웠다. 《탄을 그냥 묻어버리는건 탄부의 량심을 더럽히는거야!》 곧 재작업이 진행되였다.하여 그 마구리에서 적지 않은 석탄을 캐냈다.자책감에 머리를 들지 못하는 소대장에게 김동일은 간곡히 말했다. 《석탄을 캔다고 해서 다 탄부가 아니라 석탄을 사랑해야 진짜탄부일세.》 날이 흐를수록 갱, 중대들의 경쟁열은 더욱 고조되였다.탄부들의 생산열의가 높아질수록 자재소요량은 더 많아졌다.문턱이 닳도록 찾아오는 갱장, 중대장들에게 업무부지배인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독립4중대를 좀 보오.자재소비량은 제일 적고 일인당 생산량은 제일 많지 않소.》 그것은 사실이였다.흔히 갱일군들이 선차로 우는소리를 하는것이 동발이다.그런데 독립4중대는 이달에도 동발을 몇㎥ 되나마나하게 가져갔을뿐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에서는 제일 큰소리치며 내달렸다. 어디 동발뿐인가.중대에서는 베아링이 못쓰게 되면 재생한 베아링을 리용했고 로반에 나딩구는 베아링알이며 레루못도 몽땅 수집하군 했다.레루이음짬의 높낮이를 없애도록 막장관리를 짜고드니 베아링의 수명이 한결 늘어나 다른 갱들에서 베아링을 대여섯개나 요구할 때에도 군소리없이 생산을 꽝꽝 내밀었다.언제부터인가는 전차메달도 나무메달로 대신하여 그 덕을 단단히 보고있었다. 그러나 자력갱생, 자급자족이 결코 헐한것은 아니다.동발회수작업을 하며 한 채탄공이 우리도 남들처럼 탄광에서 자재를 타서 쓰면 고생을 덜하지 않겠는가고 툴툴거릴 때 김동일은 이렇게 타일렀다. 《생각해보라구.애기가 자꾸만 빈젖을 빨면 엄마가 얼마나 속상하겠나.》 어느날 김동일은 작업지령을 주다가 가슴을 붙안고 쓰러졌다.뒤늦게야 그 소식을 전해들은 안해 김정옥은 허겁지겁 20여리길을 단숨에 달려왔다. 《독골엔 의사도 없는데 다문 며칠만이라도 집에 내려가자요.》 하고 설복하는 안해를 안심시키려 김동일은 짐짓 태평스런 몸가짐을 보였다.그러면서 래달 18일이 채탄공 류충렬의 예순번째 생일임을 강조하는것을 잊지 않았다. 김정옥은 가슴이 찌르르해졌다.남편의 마음속엔 오직 중대원들과 석탄만이 꽉 차있었다.한생을 그렇게 살아왔지만 석탄공업은 자립경제발전의 척후전선이라고 하신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안해를 바래우는 길로 김동일은 다시 막장으로 들어갔다.마구리까지 들어가볼 심산으로 올리굴사다리를 타고 오르느라 애썼다.누군가 허공에서 허둥거리는 그의 다리를 받쳐올렸다.부중대장이였다.그의 눈가에는 뜨거운것이 고여있었다.평탄하고 안전한 길만이 아닌, 희생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험한 길을 앞장에서 걷는것이 척후병임을 뼈에 새기며 그는 중대장을 힘껏, 더 힘껏 떠밀어올렸다. 1월 31일까지 중대는 월생산계획을 153%로 넘쳐 수행하였다.생산량에 있어서 중대가 생긴이래 최고기록을 돌파했다. 김동일의 기쁨은 형언할수 없었다.가슴뭉클해지는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힘껏 달려왔던가.돌이켜보면 탄부로서의 30여년간을 그렇게 살아왔었다.조국의 진격로우에 뚜렷이 새긴 애국의 자욱을 긍지높이 더듬어보는 그 희열의 한순간을 위해 지하막장에서 달과 달을 보내고 해와 해를 이어온 그였다. 어머니당에 새해의 첫 승전보고를 올리며 탄부의 영예, 척후병의 긍지를 한껏 절감하는 김동일의 심장은 흥분과 격정으로 세차게 높뛰였다. 다음순간 그는 찌르는듯 한 아픔에 가슴을 움켜쥐며 쓰러졌다.… 2월 1일 아침이다.1월 생산총화 및 혁신자축하모임이 진행되게 될 문화회관은 탄광의 일군들과 가족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그런데 제일먼저 무대에 나선 초급당위원장이 이윽토록 말을 떼지 못하는것이 아닌가.한동안이 지나서야 눈물에 젖은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울리였다. 《동지들, 사실 저는 이 자리에서 독립4중대장과 함께 노래를 부르려고 했습니다.그런데 바로 3시간전에 그가… 중대장이… 우리곁을 떠났습니다.》 여기저기서 놀라움에 찬 새된 목소리들이 터져나왔다.다음엔 흐느낌으로 번져졌고 차츰 와- 하는 함성과도 같은 크나큰 울림이 장내를 뒤흔들었다. 누구인들 김동일을 모르랴.지팽이를 짚고 험한 막장길을 걸으며 오직 석탄, 석탄을 위해 온몸을 초불처럼 태워온 중대장, 우리 당이 바라는 척후병은 어떤 사람인가를 말로써가 아니라 값비싼 희생으로 가르쳐준 그를 모두가 눈물속에 추억하며 마음속으로 웨쳤다. 동일중대장처럼! 동일중대장의 몫까지! 김동일은 갔어도 그가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변함없이 찍어온 충정의 자욱, 애국의 자욱은 온 중대 아니 온 탄광 탄부들의 심장속에 뚜렷이 새겨져 척후전선의 주인공들을 새로운 위훈창조에로 고무하고있다. 처억- 처억- 이 시각도 씩씩하게, 보무당당히 돌진하는 척후병들의 발자욱따라 조국은 전진의 보폭을 힘차게 내짚는다.휘황한 미래를 향하여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본사기자 김순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