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3월 29일 로동신문

 

절세의 위인을 흠모하며 따르는 길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류자주위업수행에 쌓아올리신 특출한 사상리론적업적과 거창한 혁명실천, 고매한 위인적풍모로 하여 전세계 인민들로부터 다함없는 존경과 칭송을 받으시였다.위대한 수령님을 열렬히 흠모하며 그이를 따르는데서 참된 삶의 길을 찾은 외국의 벗들은 그 얼마인지 모른다.그들가운데는 인디아의 저명한 사회정치활동가였던 비슈와나스도 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20세기는 명실공히 우리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과 위인적풍모로 빛나는 김일성동지의 세기였다.》

비슈와나스는 어려서부터 학구열이 높았고 탐구심이 강했다.그는 많은 시간을 책읽기에 바쳤으며 사색하기를 좋아하였다.비슈와나스의 가슴속에는 점차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참답게 산 사람들에 대한 동경심이 움터올랐고 자기도 그들처럼 살고싶은 충동이 솟구쳤다.이것은 그대로 오랜 기간 외래침략자들에게 억눌려살아온 자기 조국 인디아를 위해 한몸바치려는 고귀한 사상감정으로 이어졌다.

그는 진보적사상과 리론에 대하여 서술한 책이라면 빠짐없이 읽으면서 자기의 뜻을 실현할수 있는 방도를 찾아 모대기였다.그러나 그의 정신적고충은 나날이 커만 갔다.선행고전들에서도 력사발전을 추동하는 결정적요인을 찾아낼수 없었던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비슈와나스는 인디아의 어느 한 출판물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과 그것이 빛나게 구현된 조선의 현실을 소개한 글을 읽게 되였다.

비슈와나스가 받은 충격은 컸다.그때부터 그는 서재에 묻혀 바깥출입을 안하고 버릇처럼 굳어진 아침산보시간과 지어는 식사시간까지 잊어가며 위대한 수령님의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을 열심히 탐독하였다.

그러던 비슈와나스는 어느 한 기회에 일본을 방문하게 되였다.공화국의 존엄있는 해외공민으로 가슴펴고 살고있는 재일조선인들의 생활은 그를 몹시 놀라게 하였다.이역땅에 흩어져 제 나라 말과 풍습조차 다 빼앗겼던 그들이 총련이라는 강력한 조직을 뭇고 하나의 대가정이 되여 자기 민족의 존엄을 굳건히 지켜나가고있었던것이다.

과연 어느분이, 무슨 힘이 거치른 이역의 하늘아래 막돌처럼 굴러다니던 그들을 하나로 묶어세워 존엄있는 해외공민으로 되게 하였는가.비슈와나스는 총련의 각급 조직들과 조선대학교를 비롯한 여러곳을 참관하고 재일조선인들의 생활을 구석구석 돌아보고서야 그 답을 찾게 되였다.

김일성주석님이시야말로 멀리에 있는 자식들까지 한품에 안아주고 내세워주시는 어버이이시고 구세주이시라고 비슈와나스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비슈와나스는 조선에 가보고싶은 충동을 강렬하게 느끼였다.그리하여 주체63(1974)년 12월 그는 우리 나라에 대한 첫 방문길에 오르게 되였다.

조선방문기간 그가 본 모든것은 상상을 초월하는것이였다.긍지와 희열에 넘친 얼굴들, 거리에 차넘치는 생기발랄한 숨결, 창조로 들끓는 벅찬 현실들…

특히 그에게 커다란 충격을 준것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우리 인민들의 절대적인 신뢰와 흠모였다.비슈와나스는 가는 곳마다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러따르는 우리 인민의 진정에 넘친 경모의 정을 가슴뜨겁게 느낄수 있었다.

비슈와나스가 금성뜨락또르공장을 참관하였을 때 우리의 한 일군에게 어떻게 설계도면 한장 없이 자체의 힘으로 뜨락또르를 만들어낼수 있었는가고 질문을 제기한적이 있었다.이에 그 일군은 별다른 재간이 없었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 로동자들을 나라의 주인으로 내세워주시고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는데 주인이 주인구실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그 한가지 생각을 가지고 달라붙었더니 기적을 창조하였다고 대답하였다.

비슈와나스는 조선에서 이룩되고있는 놀라운 전변의 밑바탕에 위대한 수령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따르며 그이의 두리에 철통같이 뭉친 인민대중의 통일단결과 자기 힘을 믿고 전진하는 무궁무진한 창조력이 놓여있다는것을 똑똑히 알게 되였다.

숙소에 돌아와서도 비슈와나스는 잠을 이룰수 없었다.조선방문의 나날에 받은 충동이 너무나도 컸기때문이였다.그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책상을 마주하고 심장의 느낌을 글로 적어나갔다.바로 이렇게 씌여진 글이 조선방문기 《하나의 나라, 하나의 인민, 한분의 수령님》이였다.글에서 그는 위대한 수령님을 어버이로 믿고 따르는 조선인민의 순결한 사상감정에 대하여, 조선인민이 발휘하고있는 힘의 원천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과 그를 구현한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에 있다는데 대하여 격조높이 토로하였다.

비슈와나스가 원고의 마지막페지를 넘겼을 때는 동틀무렵이였다.창가에 섰노라니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싶은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그러나 그렇듯 존귀하고 위대하신분에게 기쁨을 드릴만 한 일을 해놓지 못하고 만나뵙는다는것은 인간의 도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였다.비슈와나스는 자기의 간절한 소망을 묻어두기로 하였다.

그는 인디아로 돌아가기에 앞서 우리 안내원에게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를 자기 가정에도 모실수 있도록 해달라고 정중히 제기하였다.그의 이 간절한 청원속에는 주체사상의 열렬한 신봉자로서 위대한 수령님을 변함없이 받들어모시려는 맑고 깨끗한 마음이 어려있었다.

비슈와나스는 비행장에 바래주려고 나온 우리 일군의 손을 잡고 절절하게 말하였다.

비록 이 몸은 떠나지만 심장 한끝은 아름답고 위대한 나라 조선에 두고 간다고, 다시 이 나라를 찾아와서 김일성주석님을 꼭 만나뵙겠다고.

그후 비슈와나스는 주체사상을 연구보급하며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날에날마다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가는 우리 나라의 현실을 소개선전하는 활동에 자기의 온 심혈을 다 쏟아부었다.이 과정에 위대한 수령님과 류다른 친분관계를 맺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지니신 비범한 사상리론적예지, 인간을 무한히 아끼고 사랑하시는 숭고한 인품과 덕망은 절세의 위인을 절대적으로 흠모하며 따르는 길에 자기의 온 생애를 다 바치려는 비슈와나스의 결심을 더욱 굳혀주었다.여기에 자신뿐아니라 인류의 참다운 행복과 미래가 있다는것을 신념으로 체득하였기에 비슈와나스는 국제김일성리사회, 국제김정일리사회 서기장으로, 주체사상국제연구소 리사장으로 사업하면서 생애의 말년까지 자기가 선택한 길을 변함없이 걸을수 있었다.

본사기자 안철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