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3월 30일 로동신문

 

영광의 자욱을 따라

은혜로운 사랑속에 펼쳐진 로동당시대의 무릉도원

사리원시 미곡협동농장을 찾아서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 자기 단위에 깃든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령도사적을 빛내이고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여 수령님과 장군님의 생전의 뜻과 념원을 현실로 꽃피워야 한다.》

봄을 맞아 들끓는 논벌들을 끼고 취재차는 경쾌하게 달리였다.

포전마다에 세워진 구호판들, 봄바람에 펄럭이는 기발들, 분주히 오가는 뜨락또르들…

올해농사에서도 통장훈을 부르기 위해 한사람같이 떨쳐나선 농장원들의 심정을 미곡벌은 말없이 전하고있었다.

이윽고 취재차가 멈춰섰다.야산기슭에 줄지어 늘어선 멋들어진 문화주택들과 공공건물들이 비껴오는 길목에 《살구동네》라고 쓴 파란 안내판이 세워져있었다.

살구동네,

유정한 정서를 자아내는 류다른 마을이름이였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드넓은 미곡벌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휴식터로 다가갔다.그곳에 있는 살구나무들이 마음을 끌었던것이다.

가까이 가보니 가지마다 뾰족뾰족 움이 터있었다.쟁글거리는 해빛이 발그레한 싹들을 따뜻이 쓰다듬고있었다.

사나운 겨울을 이겨낸 살구나무들, 그래서 더욱 정다운듯…

미풍에 가지를 조용히 흔드는 살구나무들에서 눈길을 못 떼는 우리에게 한 농장원이 이런 말을 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다녀가신 우리 살구동네입니다.집집마다 뜨락에 이런 살구나무들이 있지요.우리 장군님께 기쁨을 드린 과일나무들입니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집집마다에 심어놓은 살구나무들을 보시고 못내 기뻐하신 위대한 장군님,

그 하나의 사실에서도 인민들의 행복을 위해 바치신 우리 장군님의 한평생을 뜨겁게 읽을수 있는것 아니랴.

혹시 휴식터의 저 란간에도 어버이장군님의 손길이 닿았던것은 아닌지.우리가 서있는 이 자리가 장군님께서 살구동네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시며 환히 웃으시였던 곳은 아닌지.

아니나다를가 농장원은 10년전 가을 미곡벌을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여기 살구동네휴식터에서 농장의 가을풍경을 바라보시며 추리동네와 살구동네라는 이름이 생겨나게 된 경위도 알아보시고 미곡협동농장은 말그대로 로동당시대의 무릉도원, 사회주의선경이라는 교시를 주시였다고 감회깊이 말하였다.

알고보니 위대한 장군님께서 찾으시였던 그해에 이곳에 새 살림집들이 일떠섰는데 집들의 주변에 살구나무를 심었기때문에 마을이름도 살구동네라고 지었다는것이였다.

그 전해에 지은 마을이름은 추리동네였다.

《집집마다 살구나무를 다섯그루씩 심었지요.그리고 어떤 집들에서는 포도나무도 심고 감나무, 복숭아나무, 사과나무, 배나무도 심었답니다.

사과, 배도 제 집뜨락에서 따먹으니 과일 그리운걸 모르지요.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과일철이면 아침저녁 집뜨락에서 발돋움하지요.

게다가 과일나무들이 부수입도 늘여주니 당정책이 정말 좋습니다.》

농장원은 감사의 정에 목메이는듯 말끝을 흐리였다.

농촌세대들에서 과일나무를 많이 심어가꾸라는것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수십년전에 주신 교시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찌기 1950년대에 농촌들에 농민들을 위한 살림집들을 많이 짓고 집주변에 과일나무도 많이 심을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집집마다 과일나무를 심는 운동을 광범히 전개하도록 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주체57(1968)년 5월에는 몸소 이곳 농장에 새로 지은 농장원살림집을 찾으시여 로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며 매 집에서 집짐승도 기르면서 과일나무를 5그루이상 심을데 대한 교시를 주시였다.

그날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농장을 찾으시였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농촌에서 집집마다 여러가지 과일나무를 많이 심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집집마다 여러가지 과일나무를 심고 잘 가꾸면 신선한 과일을 아이들에게 철따라 먹일수 있고 손님들에게도 대접할수 있다고 교시하시였다.

농촌살림집주변에 과일나무를 5그루이상 심으라는것은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이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현지지도의 길에서 과일나무가 우거진 농장마을을 보시면 못내 기뻐하시면서 온 나라에 내세워주기도 하시였다.

10여년전 어느날 나라의 치산치수사업과 관련한 중요한 가르치심을 주시는 자리에서도 농촌살림집마당에 과일나무가 있으면 보기도 좋고 과일도 먹을수 있고 무더운 여름철에 논밭에 나가 일하다가 들어와 땀을 들일수도 있어 여러모로 좋다고 하시면서 농촌문화주택을 지을 때에는 반드시 집집마다 과일나무를 5그루이상 심을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

그후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전에는 농촌살림집들에 과일나무들이 많아 배나무집, 감나무집, 밤나무집이라는 말들이 많았는데 집집마다 과일나무를 심으면 마을의 풍치를 돋구어주어 보기에도 좋고 과일도 먹을수 있으니 좋다는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속에 미곡땅만이 아닌 나라의 방방곡곡 농촌마을마다에 과일나무들이 설레이게 되였다.

이 땅의 농촌들에 행복의 무릉도원을 펼쳐주시려 한평생 심혈을 기울이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로고를 돌이켜보는 우리의 가슴은 뜨겁게 젖어들었다.

뜨거운 추억을 자아내는 휴식터를 지나 우리는 살구동네의 살림집들로 향하였다.

휴식터에서 내려오면서 오른쪽 첫번째 집에 들렸더니 마침 위대한 장군님께서 다녀가신 제대군관 리영준동무의 집이였다.

앞뜰에 5그루의 살구나무가 있었고 포도나무가 멋스럽게 가지를 뻗고있었다.

우리를 집안으로 이끌며 안주인인 오영애녀성이 감격에 젖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10년전 가을 우리 살구동네에 들리신 어버이장군님께서는 우리 집을 몸소 돌아보시였답니다.

글쎄 꿈결에도 그리던 장군님께서 우리같은 평범한 농장원의 집을 찾아주실줄이야.…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우리 장군님께서 얼마나 자상하시고 다심하신지 살림방들은 물론 부엌, 세면장까지 일일이 돌아보시며 친부모의 정을 기울이시였답니다.》

녀인은 이러며 눈굽을 찍었다.

도시살림집 부럽지 않은 멋들어진 문화주택에서 살게 된것만도 분에 넘치는데 너무도 뜻밖에 어버이장군님을 만나뵙게 되였으니 이들부부의 심정이 얼마나 뜨거웠으랴.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부엌을 보니 살림집에 메탄가스화를 하였는데 이렇게 번듯한 살림집에 메탄가스화까지 하였으니 농민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고 하시며 전기화의 밝은 전망도 펼쳐주시였다.

그 사랑, 그 은정만도 끝이 없는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들 온 가족과 함께 기념사진까지 찍으시였다.

우리는 리영준동무네가 대를 이어 전해갈 가보로 여기는 사랑의 기념사진에서 오래도록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친아버지를 모신 단란한 한가정마냥 찍은 사진속에 푸른 잎 설레이며 서있는 살구나무들도 무심히 안겨오지 않았다.

애어리던 그날의 살구나무들이 지금은 키높이 자라났고 년년이 알찬 열매가 주렁지는 살구나무를 바라보며 리영준동무네 가정은 어버이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을 불태운다고 한다.

오영애녀성은 말하기를 이제 살구꽃이 피는 계절이면 온 동네가 살구꽃에 묻혀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같다, 4월에는 살구동네가 꽃동네로 변하여 길손들도 황홀한 경치에 넋을 잃고 한동안 구경하고서야 떠난다, 살구가 익는 계절에는 그 풍치가 더 이채로운데 노란 살구들이 가지가 안보일 정도로 조롱조롱 맺혀 온 동네가 열매에 묻힌다, 그때에는 집집마다 살구그릇이 오고가는데 어느 집 살구가 더 맛있는지 돌려가며 맛을 본다고 하였다.

리영준동무네 집에서는 지난해에 다섯그루의 살구나무에서 100kg이 넘는 살구를 땄는데 생것으로도 먹고 절임도 하였다고 한다.

과일자랑은 이 가정에만 있지 않았다.어느 집에서나 살구나무외에도 여러가지 과일나무들을 심고 가꾸어 철따라 신선한 과일을 맛보고 부수입도 늘이고있다고 자랑하였다.

이곳이야말로 정말 살구동네, 로동당시대의 무릉도원이로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오영애녀성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자기네 농장을 찾으실 때마다 일을 잘하였다고, 수고했다고 믿음우에 사랑을 덧놓아주시였고 세간난 자식의 살림살이를 보살펴주는 친어버이의 심정으로 미곡리의 부흥을 앞당겨주시였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장군님의 은혜로운 사랑이 아니였다면 어떻게 미곡리의 풍성한 오늘을 생각할수 있겠습니까.》

진정 우리의 사회주의농촌을 봄이면 꽃속에 묻히도록 해주시고 철따라 과일향기, 구수한 낟알향기가 차넘치게 해주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은정속에 미곡협동농장뿐이 아닌 이르는 곳마다에 로동당시대의 무릉도원, 사회주의선경이 펼쳐진것 아니랴.

이런 생각으로 가슴설레이며 우리는 추리동네도 돌아보았다.

이름그대로 모든 살림집앞뜰에 5그루의 추리나무가 있었고 그외에도 포도, 감, 복숭아 등 과일나무들이 들어찬 모습이 얼마 안있어 갖가지 아름다운 과일꽃으로 단장될 동네의 모습을 엿보게 하였다.

《지금 우리 농장에서는 세대당 6~7그루정도의 과일나무를 심어가꾸고있습니다.모두 합해 몇천그루나 됩니다.해마다 거두어들이는 과일은 수십t에 달합니다.》

《해방전 거북등처럼 갈라터진 땅을 꼬챙이로 뚜지며 열손가락이 모지라지도록 모를 꽂아야 했던 우리 미곡사람들이 위대한 수령님들의 은덕으로 오늘은 물걱정을 모르며 기계로 농사짓고 좋은 집에서 살면서 과일까지 마음껏 먹고있습니다.》

감사의 정을 금치 못하는 농장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미곡리의 전경을 다시금 둘러보았다.

아담한 문화주택뜰안마다에 설레이는 과일나무들, 그 너머 안겨오는 아득한 논벌…

눈앞에 가지가 휘도록 주렁질 과일들이며 물결치는 황금이삭들이 보이는것만 같았다.

수확의 계절을 마음속에 안아보게 하는 기쁜 봄이였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념원이 현실로 꽃피는 땅, 경애하는 원수님의 령도를 쌀로써 받들어갈 충정의 마음이 공기처럼 흐르는 미곡리,

올해에도 알곡증산, 과일풍년을 이룩하겠다는 농장원들의 목소리를 뒤에 남기고 우리는 미곡리를 떠났다.

본사기자 백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