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4월 5일 로동신문

 

력사의 갈피에서

인민을 전쟁승리에로
불러일으킨 음악

 

사람들의 심장을 틀어잡고 마음을 움직이는데서 문학예술은 큰 역할을 한다.총포를 가지고 쟁취할수 없는것도 문학예술을 가지고 쟁취할수 있다.

자주성을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력사는 혁명적인 시와 노래, 소설이 천만사람들을 격동시키고 영웅적위훈에로 불러일으켜 침략자들을 물리치는 싸움에 크게 기여한 사실들을 적지 않게 기록하고있다.

그중에는 제2차 세계대전시기 쏘련의 이름난 작곡가이며 지휘자인 알렉싼드로브가 창작한 가요 《정의의 싸움》도 있다. 전쟁이 일어난지 3일만에 나온 노래는 쏘련인민들의 심장을 울리는 노래,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유명한 노래로 되였다.

노래의 감화력이 얼마나 컸는가 하는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전쟁이 일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1941년 7월 어느날 붉은기협주단이 모스크바의 한 철도역에서 전선으로 떠나는 병사들을 위한 예술공연을 진행하였다.

첫 종목으로 가요 《정의의 싸움》의 힘찬 선률이 철도역에 울려퍼졌다.노래는 그대로 병사들의 가슴속에 전류처럼 흘러들어 그들의 심금을 울리였다.

수천명의 병사들이 일제히 일어나 폭풍같은 환호를 올리면서 재청을 요구하였다.하여 노래를 다섯번이나 반복하지 않으면 안되였다.마지막에는 협주단성원들과 병사들이 함께 어울려 노래를 불렀다.

 

나가자 나의 조국아 정의의 싸움에

히틀러강도배들을 족치는 싸움에

증오야 불타올라라 심장아 뛰여라

그렇다 인민의 싸움 정의의 싸움이다

《정의의 싸움》, 이 노래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원쑤에 대한 치솟는 증오와 복수로 끓어번지는 심장의 웨침이였다.

노래는 광활한 쏘련의 방방곡곡에 보급되여 인민들을 원쑤격멸에로 불러일으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전쟁 전기간 쏘련군장병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파쑈도이췰란드침략자들을 무찌르는 싸움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베를린해방전투때에도 이 노래를 부르며 돌격전에 나섰고 승리의 기발을 꽂았다.

쏘련의 작곡가 쇼스따꼬비츠의 교향곡 제7번 《레닌그라드》도 역시 조국전쟁시기 붉은군대장병들과 인민들의 투쟁을 고무한 대표작이다.

쇼스따꼬비츠가 이 작품을 창작하게 된데는 동기가 있다.

어느날 그는 방송을 통하여 파쑈도이췰란드의 침략을 반대하는 성전에 떨쳐나설것을 호소하는 연설을 들었다.

파시스트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을 안고 그는 교향곡창작에 착수하여 빠른 속도로 제1, 2악장을 완성하고 방송국을 찾아갔다.

마이크를 잡은 그는 다음과 같은 연설을 하였다.

《나는 지금 전투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는 레닌그라드에서 말하고있습니다.나는 새로운 교향곡을 2악장까지 완성하였는데 만일 순조롭게 제3, 4악장까지 완성된다면 이것이 교향곡 제7번이 됩니다.나는 레닌그라드시민들과 같이 한전호에 서있습니다.》

쇼스따꼬비츠는 적들의 공습이 계속되는 속에서도 작품을 끝끝내 완성하였다.

1942년 3월 4개 악장으로 된 교향곡이 처음으로 연주되였다.청중은 작곡가를 몇번이고 무대로 불러내여 열광적으로 환영하였다.

그는 《나는 교향곡 제7번의 작곡을 포위된 레닌그라드에서 끝냈다.내가 제일 사랑하는 이 작품을 레닌그라드의 영웅적수호자들에게 드린다.》라고 자기의 심정을 절절하게 토로하였다.

바로 이 교향곡이 레닌그라드방위자들에게 바쳐진것으로 하여 《레닌그라드》로 불리우게 되였다.

교향곡은 레닌그라드시민들의 평화로운 생활이 침략자들에 의하여 어떻게 파괴되고있으며 인민들과 장병들이 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어떻게 영웅적으로 투쟁하는가를 생동하게 펼쳐보이였다.

쇼스따꼬비츠의 작품은 심오한 사상과 실감있는 음악적형상으로 정의의 싸움에 떨쳐나선 쏘련군대와 인민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레닌그라드시민들은 이 교향곡에서 힘을 얻고 원쑤들과 끝까지 싸워 오랜 기간의 봉쇄를 격파하고 마침내 승리를 쟁취하였다.

본사기자 리학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