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4월 7일 로동신문

 

뜨거운 사랑과 고결한 의리를 지니시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덕망에 있어서 우리 수령님과 대비할수 있는 위인은 력사에 없었습니다.》

주체63(1974)년 로므니아의 평범한 녀의사 꼬르넬리아 뻐우네쓰꾸와 그의 남편이 우리 나라를 방문하였다.

꼬르넬리아 뻐우네쓰꾸로 말하면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우리 나라에 와있으면서 우리 인민들을 성심성의로 치료해준 의사였다.그는 기총탄이 우박치는 속에서도 거리와 마을을 찾아다니며 무려 3 50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치료해주었고 그중 270여명을 수술하였다.

공화국정부에서는 꼬르넬리아의 헌신성과 국제주의정신을 높이 평가하여 그에게 훈장과 기념메달을 수여하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를 잊지 않으시고 우리 나라를 방문하도록 초청해주시였으며 금강산을 비롯한 명승지들을 다 돌아보도록 세심한 조치를 취해주시고 몸소 녀의사와 그의 남편을 만나주시였다.

20여년만에 위대한 수령님을 다시 뵈옵게 된 녀의사는 격정을 금치 못하며 그이께로 달려가 정중히 인사를 올리였다.그는 존경하는 주석동지의 덕분으로 다시 조선을 방문하게 되였다고 하면서 현대적이고 문화적인 평양시를 보고 주석동지께서 인민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일을 하시였는가에 대하여 절실히 느꼈다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녀의사의 말에 사의를 표하시고나서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았다고, 20여년만에 만났지만 멀리서도 모습을 알아보았다고, 당신은 조선인민에게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고 하시였다.그러시면서 당신이 국제주의전사로서 자기의 임무를 매우 훌륭히 수행하였다는것을 잊지 않고있다는 치하의 말씀도 해주시였다.

녀의사는 감격에 겨워 어찌할바를 몰라하였다.

그들부부를 위해 오찬을 마련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음식을 권하시면서 그때 우리 나라에 와있다가 언제 귀국하였는가고 물으시였다.

그에 대답을 드린 녀의사는 존경하는 주석동지께서 전선을 지휘하시느라고 몸이 쇠약해지시였는데 의사로서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냥 돌아가자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당시의 심정을 그대로 터놓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어려웠던 시절에 자신과 우리 인민을 진실로 생각해준 20여년전의 전우를 다시 만나게 된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전우, 그 값높은 부름앞에서 녀의사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다.

강대한 두 제국주의를 타승하신 세계혁명의 원로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를 전우라고 불러주실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녀의사부부와 축배잔을 찧으시며 건강한 몸으로 인류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기 바란다고, 머무르는 동안 요구할것이 있으면 무엇이건 다 이야기하라고 이르시였다.

소탈하신 그이의 말씀에 어려움을 다 잊은 녀의사는 체류기간이 좀 늦어지더라도 조선에서 더 많은것을 보고싶다는데 대하여서와 조선의 고려의학을 배우고싶다는데 대하여, 혁명가극을 더 보고싶다는데 대하여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에 마음껏 있으면서 보고싶은것을 다 보라고, 고려의학을 강의해주도록 하겠다고 하시며 그의 모든 청을 기꺼이 수락해주시였다.몸소 그들의 오후일정에 대하여 알아보시고 함흥의학대학병원(당시)을 참관하게 된다는것을 아시고는 이제 대학병원을 돌아보면 알겠지만 아직 우리 나라의 의학기술은 높지 못하나 의료일군들의 정성은 높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담삼아 그 실례까지 들어주시였다.그것은 흥남항에 와있던 그리스선원에 대한 이야기였다.

심한 화상을 입고 거의 죽게 된 상태에서 함흥의학대학병원에 실려왔던 그에게 병원의료일군들은 자기들의 피부를 이식하여주었다.그렇듯 지극한 정성에 의하여 선원은 사경에서 구원되였다.선원은 건강을 회복하고 돌아가면서 자기는 조선사람들의 피와 살로 살아났다고, 자기는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조선의 사회주의는 참으로 훌륭하다고 자기의 진실한 감정을 열렬히 토로하였다.그리고 위대한 수령님께 감사의 편지를 삼가 올리였다.

녀의사는 자기의 일정까지 관심해주시며 친절하게 설명도 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이 감격스러운 순간을 영원히 잊지 않을것이라고 고마움의 인사를 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은정속에 녀의사부부는 2주일동안이나 더 머물러있으면서 자기들의 소원을 모두 성취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방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면서도 해당 부문 일군들을 찾으시여 녀의사에게 가극을 다 보여주었는가, 고려의학강의는 무엇을 가지고 했는가에 대해 알아보시였고 돌아갈 때까지 섭섭치 않게 잘 대해주라고 거듭거듭 당부하시였다.

이렇게 20여년만에 우리 나라를 찾아온 녀의사는 위대한 수령님의 전우로서 따뜻한 환대를 받으면서 평생을 두고 잊을수 없는 나날을 보내였다.

이것은 그 어느 나라 력사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일이였다.

이러한 은정을 받아안은 외국인은 비단 로므니아의 평범한 녀의사 한사람만이 아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애의 전기간 수많은 외국의 벗들을 태양과도 같이 넓은 품에 따뜻이 안아주시고 그들에게 한량없는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진정 숭고한 덕망을 천품으로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인간사랑과 숭고한 의리의 세계는 그 어디에도 비길데 없는 무한대한것이였다.

본사기자 손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