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5월 3일 로동신문
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당정책관철의 앞장에서 대오를 평원은하피복공장 지배인 최영복동무에 대한 이야기
《일군들은 자기 부문, 자기 단위의 일은 자기가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립장에서 맡은 사업을 혁명적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평원은하피복공장 지배인 최영복동무는 지난 10년간 모든 면에서 뒤떨어졌던 공장을 2중3대혁명붉은기공장, 2중모범기술혁신단위로, 품질관리체계인증증서를 수여받은 종합적인 피복가공기지로 변모시켰다.해마다 맡겨진 인민경제계획을 넘쳐 수행하여 인민생활향상에 실질적으로 이바지하고있는 공장은 로력훈장을 수여받았다. 당의 의도를 높이 받들고 자기 일터를 믿음직하게 지켜가고있는 최영복동무의 투쟁모습은 이렇게 새겨주고있다. 당정책의 운명을 어깨우에 걸머진 일군들이 자기 부문, 자기 단위에서 자력갱생의 기수, 높은 실력을 지닌 1번수가 될 때 어디서나 새로운 기적과 혁신이 창조된다고.
우리의 일터는 우리의 손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로운 직무를 맡아안았을 때 은근히 걱정부터 앞세우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 12월 어느날 평원은하피복공장 지배인으로 사업하게 된 최영복동무의 심정이 바로 그러했다. 그는 자기가 이제부터 일하게 될 공장의 주변을 벌써 몇번째 돌고있었다.얼마전까지만 해도 어느 한 단위에서 회계원으로 일하던 최영복동무는 공장정문으로 들어서기가 주저되였다. 언제 생산의 동음을 울렸던가싶게 공장은 무거운 적막속에 잠겨있었다. (내가 지배인사업을 꽤 해낼수 있을가.) 그의 우려는 공연한것이 아니였다.함흥약학대학 졸업생인 그의 전공은 피복분야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굳이 애써 피복부문과 련관된 실마리를 찾는다면 수십년전에 어느 한 편직공장에서 얼마동안 3대혁명소조원으로 생활했다는것뿐이였다. 문득 지배인으로 임명받을 때 도당위원회의 한 책임일군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우린 동무를 믿소.》 불현듯 그의 눈앞에 흘러간 시절이 떠올랐다. 평범한 농장원의 가정에서 태여난 그는 부모를 일찍 잃었다. 그러나 나라에서는 그가 외로와할세라, 주눅이 들세라 걸음걸음 따뜻이 보살펴주었으며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대학으로 등을 떠밀어주었다.정녕 고마운 조국의 품이 아니였다면 길가의 막돌처럼 버림받았을 인생이였다. 이 땅에는 나라에서 많은 품을 들여 공부시킨 대학졸업생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에 대한 조국의 기대는 실로 크다.하지만 당이 맡겨준 혁명임무앞에서 대학졸업생들이 자기 전공이 아니기때문에 할수 없다고 또 그 분야에서 뒤자리를 차지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보다 더 큰 배은망덕이 어디에 있겠는가. (최영복, 용기를 내여 앞으로!) 그는 공장정문으로 성큼성큼 자신만만한 걸음을 내짚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속에 최영복동무가 시작한 첫 사업은 공장의 면모를 일신시키기에 앞서 종업원들의 가슴마다에 자기 힘에 대한 확신을 안겨주는것이였다. 공사를 앞두고 진행된 종업원모임에서 그는 말했다. 항일의 나날 재봉대원들은 자력갱생의 선구자들이였다.우리도 그들처럼 살며 투쟁하자.자기 일터는 제힘으로 꾸려야지 그 누가 도와주지 않는다. 지금도 많은 종업원들이 이날 최영복동무가 한 말을 잊지 못해하고있다. 사실 종업원의 대다수가 녀성들인 공장의 형편에서 생산은 생산대로 밀고나가면서 공사를 벌린다는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였다. 제일 걸린것이 로력이였다.일부 일군들은 우에 제기하여 로력을 해결받든가, 본격적인 공사기간만이라도 계획을 조절받는것이 어떤가 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최영복동무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라에 손을 내밀거나 계획을 조절받으며 할바에야 무엇때문에 자체로 일판을 벌려놓겠나요.생산도 공사도 우리 힘으로 밀고나갑시다.》 그는 대오의 앞장에서 억척스럽게 내달렸다. 말로써는 애국을 할수 없고 구호만으로는 자력갱생할수 없다.비록 요란한 맹세나 결의는 다지지 않아도 자력갱생의 기치를 들고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타개해나가는 사람이 애국자가 아니겠는가. 최영복동무가 바로 그런 사람이였다. 어느날이였다. 이른아침부터 등짐으로 블로크를 져나르고 현장에 들어선 종업원들은 재봉기앞에 털썩털썩 주저앉았다.하루이틀도 아니고 매일과 같이 일하다보니 어지간히 지쳤던것이다. 이때 현장에 설치된 확성기를 통하여 너무도 귀에 익은 목소리가 울려나왔다.공사장에서 제일 무거운 질통을 메고 앞장에서 내달리던 지배인 최영복동무가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에 실린 《재봉대원들》을 읽고있었다. 종업원들의 눈앞에는 회상기의 구절구절이 화폭으로 펼쳐졌다. …1937년 초봄, 4명의 재봉대원들은 연 사흘동안 소금물로 간신히 목을 추겨가면서 낮에 밤을 이어 군복을 만들고있었다.허기증과 졸음이 시시각각으로 몰려들었으나 잠시의 휴식도 없이 작업을 계속해나가던 그들은 적들의 습격을 받게 되였다.위급한 그 순간 어떤 일이 있어도 명령은 제 시간내에 수행해야 한다고 결심한 재봉대원들은 재봉기와 군복을 가지고 갈밭속으로 들어갔다. 앙칼진 소리를 내며 날아드는 탄알, 뼈가 저릴 정도로 차거운 흙탕물. 재봉대원들은 무릎우에 재봉기를 올려놓고 다시 일손을 잡았다.재봉기의 무게로 몸이 흙탕물속에 끌려들어가면 또 자리를 옮겨가며 순간도 일손을 멈추지 않던 녀투사들… 랑독은 끝났다.종업원들의 가슴마다에서는 이름 못할 그 무엇이 용솟음쳤다. 《일을 합시다.》 어느새 재봉기를 마주한 지배인이 주위를 둘러보며 하는 말이였다. 긴말이 필요없었다. 맡은 과업은 죽으나사나 제힘으로 무조건 해내야 한다는것을 자각한 종업원들의 얼굴마다에 비상한 결심이 비꼈다. 사르륵… 사르륵… 재봉기소리가 현장에 울려퍼졌다. 이런 나날속에 종업원들의 정신적풍모는 몰라보게 달라졌다.그전같으면 자그마한 시련앞에서도 주춤하던 그들이 아름찬 일도 팔소매를 걷어올리고 걸싸게 해제꼈다. 공장의 놀라운 변모를 두고 누구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최영복동무는 만족을 몰랐다. 당정책관철을 위한 사업을 끝장을 볼 때까지 완강하게 밀고나갔다.언제인가 한 일군이 자기 몸을 돌보지 않는 그에게 쉬염쉬염 일하라고 권고했을 때였다. 최영복동무는 나직이 말했다. 《평원땅이야 이런 뜨거운 마음에 떠받들려 공장의 면모는 해가 다르게 달라졌다. 번듯하게 일떠선 로동자합숙, 편의봉사시설과 태양열남새온실, 우리마다 집짐승들이 욱실거리는 종합축사… 높아가는 웃음속에 생산실적도 부쩍부쩍 올라갔다. 2009년 당시에는 21종에 400여대였던 피복가공설비가 지금은 39종에 900여대로 늘어났다. 비전문가가 공장을 꽤 경영해나갈수 있겠는가고 머리를 기웃거리던 사람들에게 최영복동무는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증명해보이였다. 자력갱생, 바로 여기에 만능의 경영전략이 있고 비약의 지름길이 있다는것을.
누구나 과학기술발전의 담당자로
흔히 사람들은 일터에 대한 애착은 거기에 바쳐가는 땀방울의 무게와 정비례한다고 한다. 그러나 평원은하피복공장의 종업원들은 다르게 말하고있다. 일터에 땀만이 아니라 지식을 바쳐갈 때 애착은 더 커간다고. 이것은 지배인 최영복동무가 즐겨쓰는 말이다.수백명의 종업원들모두가 창의고안명수로 되는것이 그의 소원이다. 이를 위해 최영복동무는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공장의 소문난 창의고안명수들속에는 30대의 한 종업원도 있다. 처음에는 녀성종업원들이 많은 공장에 배치되였다고 로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면서 다른 곳으로 보내달라고 하던 그가 혁신자로 된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어느날 공장에서는 로력이 딸려 수리공들도 제품완성작업에 동원시키였다.손으로 맞단추를 달 자리를 표시하면서 그는 어떻게 하면 가끔 많은 로력이 동원되는 페단을 없애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그는 머리에 떠오르는대로 도안을 그려보았다. 이것이 그가 한 기술혁신의 첫 구상이였고 미래의 발명가의 첫걸음이였다고 말할수 있었다.그런데 그것은 실패로 끝났다.거기에다 비판까지 받았다. 욕망만 앞세우지 말고 착실히 하나하나 배우라는것이였다. 옳은 충고였지만 그는 그것을 삭이지 못했고 하던 일을 중도에서 포기하였다. 어느날 그가 일하는 현장에 최영복동무가 찾아왔다.그는 구석에 놓여있는 도안들을 하나하나 펴서 유심히 들여다보고나서 얼굴을 들었다. 《사내가 그만한 일에 맥을 놓다니 부끄럽지도 않아요? 강심을 먹고 일떠서세요.》 최영복동무는 엄하게 꾸짖었다. 그 꾸짖음은 왜서인지 아프지 않았고 종업원의 가슴에 뜨거운 불을 달아주었다.사실 그에게 맞단추다는 지구를 만들어보라고 귀띔해준 사람도 지배인이였었다. 그날부터 마음의 신들메를 조여매고 다시 일어선 그는 지배인이 안겨준 기술서적을 부지런히 탐독하였다.그러느라니 언제 날이 새는지도 몰랐다. 피타는 노력이 있어 그는 맞단추지구를 제작하는데 성공하였다.이 지구는 많은 로력을 절약하면서도 생산능률을 종전보다 훨씬 높이게 하였다. 그가 사람들이 보내는 축하의 인사속에 파묻혀 어쩔줄 몰라하고있을 때 뒤에 서있는 지배인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퇴근길에 지배인은 그와 나란히 걸으면서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기술혁신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신심을 북돋아주었다.그후 그 종업원은 현장에서 제기되는 기술적문제들을 척척 해결하는 기능공으로 자라났다. 최영복동무는 자신부터가 기술혁신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낮에는 낮대로 공장에서 제기되는 크고작은 문제를 해결하느라 드바빴고 밤에는 밤대로 피복부문에 주신 최영복동무가 피복부문의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얼마만한 사색과 정열을 기울였는가 하는것은 그가 수여받은 과학기술공적증과 과학기술성과도입증, 여러개의 전국과학기술축전증서와 창의고안증서가 웅변적으로 말해주고있다. 공장을 찾는 사람들은 현장에 설치된 천정이동식전기접속구를 보고 착상이 참 기발하다고 찬탄을 아끼지 않고있다.이것도 다름아닌 지배인이 창안한것이다. 종업원들이 하나둘 지배인의 뒤를 따라섰다.재봉기만 잘 돌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던 재봉공들도, 설비수리를 해주는것으로 만족해하던 수리공들도 기술혁신에 너도나도 떨쳐나섰다. 공장에는 대중적기술혁신운동의 불길이 세차게 타번지였다. 그 불길속에 공장의 경영활동에 필요한 연단관리프로그람과 일생산 및 재정총화지원프로그람의 개발이라는 성과도 이룩되였다. 처음 공장에서는 다른 단위에서 개발하여 리용하고있는 프로그람들을 경영활동에 도입하였었다. 그러나 별로 큰 도움이 못되였다.공장의 실정에 맞지 않았던것이다. 이 문제를 놓고 깊이 생각하던 지배인은 공장의 기술력량을 대담하게 믿고 경영활동에 필요한 프로그람들을 자체로 개발할것을 결심하였다. 그는 기술자들의 기발한 착상을 적극 지지해주면서 훌륭한 열매를 맺을수 있게 아낌없는 진정을 바쳤다.결과 어렵게만 생각했던 프로그람들이 짧은 기간에 성과적으로 개발될수 있었다.하여 공장에서는 경영활동의 과학화를 보다 높은 수준에서 실현할수 있게 되였다. 이뿐이 아니다. 접착테프절단기와 실소비측정기, 쌍방향조종용정류소자에 의한 전기절약장치 등 새 기계 및 장치들을 창안제작하고 170여건의 가치있는 기술혁신안을 생산에 받아들여 많은 로력을 절약하면서도 제품의 질을 높이였다.공장에서 생산한 남자바지는 2월2일제품으로 등록되였다. 이 모든 성과속에는 전민과학기술인재화의 구호를 높이 들고 수십명의 종업원을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에 망라시켜 지식형근로자로 준비시켜나가는것과 함께 기술자들의 생활에서 자그마한 불편도 없도록 돌봐주는 최영복동무의 진정이 뜨겁게 어려있다. 그에게는 류다른 아침일과가 있다.아침일찍 남먼저 출근하여 정문에서 종업원들을 반겨맞아주는것이다.그가 이렇게 하는것은 단순히 인사나 나누자는것이 아니라 출근하는 종업원들의 얼굴을 살피며 자그마한 마음속그늘도 헤아려보고 친혈육의 심정으로 풀어주기 위해서이다.이 일과와 더불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꽃펴났던가. 그가운데는 이런 일도 있다. 어느날 출근하는 종업원들속에서 최영복동무는 낯색이 어두운 한 종업원을 보게 되였다. 그는 설비개조에서 중요한 몫을 맡고있는 기술자였다. 노상 싱글벙글하던 종업원의 얼굴에 비낀 수심은 최영복동무의 마음을 무겁게 하여주었다.조용히 불러 알아보니 안해가 평양산원에 급병으로 입원했다는것이였다. 그로부터 며칠후 종업원에게 안해의 편지가 와닿았다. 영문을 모르고 편지를 펼쳐보던 종업원의 눈굽이 축축히 젖어들기 시작했다. 《오늘 지배인동지가 또다시 면회를 오셨답니다.몹시 수척해진 그의 얼굴을 보며 저는 속으로 울었어요.공장일로 그처럼 바쁘신 지배인동지가 글쎄 제가 뭐길래… 부디 제 걱정은 말고 맡은 설비개조에 힘써주세요.…》 이런 가슴뜨거운 사연은 그 누구에게서나 들을수 있다. 어느해 장마철 살림집에 비가 새여 애를 먹고있는 한 기능공의 마음속고충을 알고 본래의 모습을 찾아볼수 없게 집을 다시 지어준 이야기며 뜻하지 않은 병으로 입원치료를 받고있는 한 기술자를 위해 수십일동안을 매일같이 오가며 극진히 위해준 이야기… 그가 사람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누구나 자기 일터에서 인재가 되기 위해 시간을 쪼개가며 배우고 쉬임없이 분발할 때 공장일이 잘되고 나라일도 잘될수 있습니다.》 력사적인 당 제7차대회에 참가하고 돌아온 후부터 그는 밤잠을 잊다싶이하며 더욱 불같이 일하였다. 모든 일을 단위시간동안에 질적으로!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피타게 학습하는 그의 실천적모범은 공장안에 과학기술학습열풍을 일으키는 불씨로 되였다. 이렇듯 생산에서 제기되는 과학기술적문제들을 자체로 해결해나가는 여기에 공장이 제발로 걸어나가고있는 다른 하나의 비결이 있었던것이다. 당이 바라는 일이라면 주저없이 어깨를 들이밀고 혼신을 깡그리 바치는 헌신성, 높은 실력과 완강한 실천력을 지닌 이런 일군을 어찌 대중이 진심으로 존경하며 따르지 않겠는가.
우리 당의 크나큰 은정속에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의 값높은 영예를 지닌 최영복동무, 그의 삶을 통하여 우리가 새겨안게 되는것은 무엇인가. 조국의 수백수천의 초소에서 모든 일군들이 최영복동무처럼 앉으나서나 당과 숨결을 같이하며 자력갱생정신과 과학기술을 번영의 보검으로 틀어쥐고 비약의 지름길을 열어나갈 때 사회주의강국건설을 위한 대진군이 활력있게 다그쳐진다는 고귀한 진리이다. 최영복동무는 오늘도 자력갱생의 기치높이 새로운 목표를 향하여 계속전진, 련속공격전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리고있다. 당이 바라고 시대가 요구하는 참된 일군, 진정한 애국자로 생을 빛내일 일념 안고.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신 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