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5월 5일 로동신문

 

순결한 량심과 높은 실력으로 우리 당을 받들어온 참된 의학자

김일성종합대학 평양의학대학 기초의학부 응용미생물연구실 실장이였던
공훈과학자 후보원사 교수 박사 김태원선생에 대한 이야기

 

오늘의 시대는 인재와 과학기술을 전략적자원, 무기로 하여 전진하는 인재중시, 과학기술중시의 시대이다.

자나깨나 당의 뜻으로 심장을 불태우며 높은 실력으로 자기 초소를 책임적으로 지켜나가는 과학기술인재들의 피타는 노력과 탐구의 열매는 자력갱생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나아가는 우리 조국의 전진속도를 가속화시키는 커다란 힘으로 된다.한생을 변함없이 한모습으로 일하면서 과학기술공적을 쌓아가는 우리의 지식인들이야말로 조국의 귀중한 재부라고 할수 있으며 그들의 순결한 삶은 언제나 사회앞에 돋보이는 법이다.

김일성종합대학 평양의학대학 기초의학부 실장이였던 김태원선생은 당의 보건정책을 받드는 길에 한생을 바쳐온 관록있는 의학자였다.

그는 56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과학탐구와 후대교육사업에 헌신하면서 조국과 인민을 위한 길에서 삶을 빛내였다.수많은 과학기술성과등록증을 받았으며 의학분야에서 국가최우수과학자들을 키우는데 크게 기여하였다.30여건의 도서를 집필하고 80여명의 학위소유자를 양성하여 위대한 장군님과 경애하는 원수님의 여러차례에 걸치는 감사와 은정어린 생일상을 받아안았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그 어떤 난관과 시련앞에서도 주저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참된 애국의 한길을 걷는 사람, 조국과 인민이 맡겨준 혁명과업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제때에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이 진짜애국자입니다.》

우리 나라 의학계에 지울수 없는 자욱을 새긴 김태원선생의 한생에 대하여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당에 대한 티없는 충정과 애국의 한마음으로 반세기도 넘는 세월 나라의 의학과학발전을 위하여, 의학과학기술인재육성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온 한 지식인의 인생길을 우리 역시 여기에 다 적을수는 없다.

다만 불치의 병이라는 진단을 받고서도 불굴의 의지와 순결한 량심으로 순간순간을 이어온 생의 마지막시기만을 더듬을뿐이다.하지만 그 짧은 이야기만으로도 사람들은 오늘날 주체형의 참된 지식인, 당이 바라는 인재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하여 다시금 새겨안게 된다.

 

심장이 고동치는 한

 

많은 의학자들이 김태원선생을 가리켜 창조형의 학자라고 말하고있다.

한 의학자의 한생에 대한 옳은 평가이다.하지만 그들이 선생을 잊지 못해하는것은 단지 그가 조국앞에 가치있는 연구성과를 내놓았다는 그것만이 아니다.심장이 고동을 멈추는 마지막순간까지 인생의 첫 출발선에서나 다름없이 창조의 삶을 줄기차게 이어온 그의 완강한 의지와 정열이 더없이 돋보였기때문이다.

그는 생의 시작이 아름다우면 마감도 아름다와야 함을 후대들에게 산 모범으로 보여주었다.

인생의 황혼기라고 할수 있는 70대 중엽에 이르러서도 연구사업에 심혼을 쏟아붓던 김태원선생이 불치의 병이라는 진단을 받은것은 지금으로부터 7년전이였다.

하고싶은 일이 많았던 그에게는 실로 천만뜻밖이였다.

《여보, 이젠 실험을 그만두는게 어때요?…》

며칠사이에 몰라보게 수척해진 남편을 바라보며 안해 김정애녀성이 겨우 말꼭지를 뗐다.

사실 선생이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것을 알고 대학에서는 입원치료를 받을수 있게 모든 조치를 취해주었다.일군들은 집에 찾아와 선생이 치료를 거절하는 경우 가족들이 잘 설복하도록 거듭 당부도 하였다.

《실험을 그만두라?…》

안해의 말을 곱씹어보는 선생의 눈앞에 아득한 멀리의 시절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야장쟁이의 맏아들로 태여난 그는 조국이 해방된 이듬해 봄에야 비로소 우리 글을 배우게 되였다.

우수한 성적으로 중학교를 졸업한 그가 평양의학대학(당시) 통지서를 받았을 때 아버지는 눈물이 글썽해서 말하였다.

《태원아, 공부를 잘해서 꼭 훌륭한 의사가 되거라.너희 열남매가 그 몹쓸 병에 걸려 네 동생 세명은 약 한첩 못 써보고 죽고 너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지 않았니.》

예술에 남다른 재능이 있던 그가 의학대학을 지망한데서 모든것을 짐작한 아버지는 아들의 결심을 적극 지지해주었다.

의사가 될것을 희망하며 대학교정으로 들어섰던 김태원선생이 기초의학연구를 결심하게 된데는 사연이 있었다.

주체44(1955)년 11월 23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평양의학대학(당시)의 미생물학강좌를 찾으시였다.그때 교원들이 리용하는 현미경도 몸소 보아주시며 우리 생활에 나쁜 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없애기 위한 연구사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전달받은 선생의 가슴은 격정으로 끓어올랐다.

단순히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라 병의 근원을 연구하고 그것을 예방하는 의학자가 되고싶은 20대 청년의학자의 포부는 이렇게 꽃펴나게 되였다.

대학기간 기초의학에 대하여 직심스레 파고든 그는 졸업후에는 연구사로, 실장으로, 권위있는 박사, 교수, 후보원사, 공훈과학자로 자라났으며 중요대회들에도 참가하는 영광을 지니였다.

(이제 더는 과학연구를 할수 없단 말인가? 아니, 아니야.그렇다면?)

끝없이 계속되는 고뇌속에서 한동안 몸부림치던 선생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래일 당장 입원하기요.》

《?…》

그 순간에 선생의 가슴속에 무엇이 끓고있는가에 대하여 안해는 미처 몰랐다.하지만 육체적으로 쇠퇴기에 이른 남편이, 지금껏 달성한 연구성과로 하여 누구보다도 떳떳이 인생을 총화할수도 있는 그가 치료를 받을 결심을 품은것이 단순히 생이나 연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것만은 온몸으로 느낄수 있었다.

의학연구원 방사선의학연구소에 입원한지 한달이 좀 지나서 실험실로 들어서는 선생을 본 연구사들은 저마다 걱정어린 눈빛들을 보내였다.

《선생님, 치료를 더 받아야 합니다.》

《고맙소.… 나에게서 일은 곧 보약이나 같소.…》

이전과 다름없이 실험을 진행하는 선생의 얼굴에는 연구사업을 끝내기 전에는 죽을 권리가 없다는 그런 비장한 각오가 비껴있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하루가 다르게 진척되여가던 약물실험이 중단되였다.실험의 일부 공정에서 문제가 생기였던것이다.

며칠째 선생이 고심하는것을 본 몇몇 연구사들은 강춘실동무를 찾아가 리론상으로는 이미 해결되였으니 연구사업을 결속하는것이 어떤가 하는 의향을 비치였다.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강춘실동무는 김태원선생과 함께 군단병연구를 심화시키던 수십년전 일을 떠올렸다.이 병은 공기조화기를 통하여 집단적으로 발생한다고 하여 군단병이라고 불러왔다.

아직은 의학계에서 전문가들도 미처 알지 못하고있던 때에 이 병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데 대한 과업이 김태원선생의 연구실에 맡겨졌다.선생의 가슴은 불덩이를 안은듯 뜨거워졌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 인민들의 건강보호를 위하여 보건부문에 주신 과업이였던것이다.

(언제 가면 인민들의 건강을 위해 그토록 마음쓰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높으신 뜻을 다 헤아릴수 있으랴.)

김태원선생의 연구조는 현지를 다니며 균을 분리하는 실험을 진행하기 시작하였다.

모두의 열의가 높은것만큼 성과도 컸다.일정한 시간이 흐르자 일부 연구성원들은 이쯤하면 당에 보고드릴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속생각을 내비치였다.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있는 사람들이 자기들만이 아니라는데서 조바심이 났던것이다.

이때 선생은 단호한 립장을 표시하였다.

《우리 장군님께서 이 병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라고 하신 의도가 뭐겠소.리론적인 연구나 해놓고 평가부터 받을 생각을 한다면…의학자의 량심이 용서치 않을거요.》

명예와 평가도 귀중하다.하지만 그에 앞서 당의 높은 뜻을 깨끗한 량심과 의리로 받들줄 아는 진짜배기의학자가 되여야 한다는 선생의 절절한 이야기가 연구성원들에게 준 충격은 컸다.…

강춘실연구사의 이야기는 새 세대 연구사들로 하여금 불치의 병을 앓고있는 로의학자의 가슴속에 무엇이 끓고있는가를 알게 해주었다.

그의 과학연구활동을 들여다보면 한생 지켜오는 하나의 신조가 있었는데 그것은 당에서 바라는 문제에서 종자를 잡고 그것이 실천으로 이어질 때까지 연구를 중단하지 않은것이였다.

그는 매일 아침 《로동신문》을 펼쳐들고 경애하는 원수님의 혁명활동보도와 중요기사들을 읽어보면서 연구종자를 잡아쥐군 하였다.

《우리 원수님께서 비내리는 궂은날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병원건설장들을 찾아주시였구나.난 래일 중간시험공장으로 떠나겠다.》

이렇게 늘 인민들의 건강을 위해 기울이는 당의 사랑과 은정을 새겨보며 자신을 부단히 채찍질한 의학자였다.

하기에 그는 생의 말년에 자기 지식에서 빈구석을 발견하자 주저없이 김일성종합대학의 젊은 연구사들을 찾아 떠났다.머리가 허연 후보원사선생이 자기들에게 강의를 해달라고 부탁하였을 때 그들은 처음에 영문을 몰라하였다.로의학자의 진정을 알게 되면서부터 선생의 실험을 적극 도와나섰다.

프로파게르마니움주사약은 이렇게 개발되였다.

그는 사랑하는 안해와 자식들의 뜨거운 마음도 어려있는 약물이 환자치료에서 효험이 크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더욱 정신을 가다듬으며 연구사업을 다그쳤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육체는 그에게 쉬임없이 붉은 신호를 보내고있었다.

아픔으로 잠 못 드는 밤이면 가족들이 걱정할가봐 우정 책상앞에 앉아 책장을 번지기를 그 몇번…

이런 속에서도 그는 여러종의 약물을 또다시 개발하였으며 림상적의의가 큰 도서들을 집필하였다.

더욱 놀라운것은 그가 생의 말년에 이룩한 연구성과가 한창나이에 이룩하였던 성과들에 못지 않으며 인민보건실천에서도 대단히 큰 의의를 가진다는 사실이다.

하다면 그 무엇이 이러한 기적을 낳게 하였는가.

그에게 있어서 약물개발은 당의 명령이였고 조국과 인민의 간곡한 기대였다.명령받은 병사가 마지막 피한방울이 남을 때까지 고지를 지켜싸워야 하는것처럼 의학자도 심장이 고동치는 한 연구사업을 멈출수 없다는 억척의 지조가 가슴속에 든든히 자리잡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하늘처럼 여기신 우리 인민을 수령님들을 모시듯이 받들어나갈데 대한 경애하는 원수님의 높으신 뜻을 심장에 새겨안고 그는 생의 마감까지 과학탐구의 주로를 완강하게 달리였다.

 

끝나지 않은 로교수의 강의

 

아름다운 생의 메아리는 끝을 모른다.취재과정에 우리는 김태원선생이 과학연구사업만이 아니라 의학과학발전을 떠메고나갈 인재들을 키우는데서도 공적이 크다는데 대해 알게 되였다.

지난해 4월말 의식을 잃은채로 병원에 실려갔던 선생이 마지막숨을 몰아쉬고있었다.

《론문…실험…》

《예? 실험이라니요?…》

가족들은 아버지가 하는 말의 의미를 몰라 안타깝게 소리쳤다.자식들이 모두 모이는 날이면 반일애국렬사였던 할아버지처럼 한생을 살아야 한다고 늘 입버릇처럼 외운 선생의 마지막말은 자식들에게 너무도 뜻밖이였다.

이때 선생에게 다가서는 제자가 있었다.의학연구원 아래단위에서 일하고있는 최훈동무였다.혼미한 의식속에서도 무엇인가를 말하고싶어하는 선생의 심정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었다.

최훈동무의 눈앞에는 며칠전 김태원선생을 만나던 일이 생생히 떠올랐다.

선생의 병이 점점 심해지고있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달려갔던 그는 선생이 박사원생들의 학위론문준비때문에 지팽이를 짚고 대학으로 나갔다는 가족들의 말에 다시 발걸음을 돌리였다.

이 시각 응용미생물연구실의 어느 한 방에서는 여러명의 론문제출자들이 국가학위학직수여위원회 의학생물학학위론문분과심의위원회 위원장이였던 선생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고있었다.

《내가 늘 말하는데 론문의 가치는 페지수가 결정하는것이 아니요.》

《동무의 연구종자는 좋은데 이 부분에서는 방향을 잘못 정하였구만.》

오랜 시간을 바쳐가며 론문제출자들의 부피두터운 론문을 일일이 검토해주고난 선생이 문가에 서있는 최훈동무를 발견한것은 퇴근시간이 훨씬 지나서였다.

들어오지 않고 왜 복도에 있었는가고 나무라는 스승에게 제자는 인사말도 잊고 볼부은 소리부터 하였다.

《선생님, 몸상태도 이전같지 않은데 론문지도까지 꼭 해야 합니까?》

자기의 건강이 걱정스러워 달려왔을 제자의 마음을 읽은 선생의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피여올랐다.

그날 저녁 집까지 바래우겠다고 따라서는 제자와 함께 가로등불빛이 밝은 밤거리를 거닐며 선생은 말하였다.

인민들의 건강증진에 실지로 도움이 될 훌륭한 박사론문을 기다리겠으니 방조자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이 스승을 찾아오라고…

김태원선생은 생의 마지막힘을 모아 사랑하는 제자를 찾았다.두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애써 닦으며 최훈동무는 스승의 당부를 가슴에 새기였다.

《선생님, 제 꼭…》

누구에게나 인생의 목표가 있다.김태원선생에게 있어서 인생의 목표는 제자들을 훌륭히 키워 조국과 인민앞에 내세우는것이였다.

김일성종합대학 평양의학대학 도서관에서 일하고있는 정남진동무에게도 스승에 대한 소중한 추억이 있었다.

박사원생이였던 그가 학위론문을 쓸것을 결심하고 김태원선생이 있는 연구실에 찾아간것은 퍽 오래전의 일이였다.어렵고 힘든 기초의학부문에 뛰여든 젊은 제자를 대견스레 바라보며 시종 기쁨을 금치 못해하던 스승의 모습을 그는 지금도 기억하고있었다.

《잘 생각했소!인민들이 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것, 이것이 바로 우리 당의 뜻이요.》

당시 그가 론문의 종자로 내세운 세포융합기술은 미개척지나 같았기때문에 실험실의 조건은 충분하지 못하였다.세포융합에 필요한 비루스도 없었고 시약도 부족하였다.

실험이 몇달째 제자리걸음을 하게 되자 정남진동무는 자기의 선택을 두고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바로 이러한 때 대학에서는 김태원선생을 비롯한 몇몇 학자들을 다른 나라들과의 의학교류사업에 참가시키기로 하였다.

몇달이 지나 조국으로 돌아오는 선생의 짐속에는 기초의학발전에 필요한 선진문헌자료들과 제자들의 연구사업을 위해 마련한 물자들이 가득히 들어있었다.그의 방조를 받은 정남진동무는 마침내 세포융합실험에서 성공하였으며 인민보건실천에 의의가 있는 학위론문을 발표할수 있었다.

제자의 자그마한 싹을 귀중히 여기고 진심으로 도와준 참된 스승, 이것이 제자들의 눈에 비낀 선생의 모습이였다.

어느날 선생의 강의를 받던 한 제자가 크리코셀에 대하여 질문한적이 있었다.고지혈증치료에 특효가 있는 그 약은 선생이 개발한것인데 국내외에서 커다란 인기를 모으고있었다.

많은 학생들이 호기심과 기대어린 눈빛을 선생에게 보내고있었다.

화학, 물리, 외국어 그 어느 분야도 막힘이 없던 선생이였지만 왜서인지 그에 대한 대답을 다음강의시간으로 미루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들어서는 김태원선생의 손에는 여러가지 남새와 함께 분쇄기가 들려있었다.

《고지혈증치료에 우리 나라의 남새가 어떻게 좋은지 동영상으로 찍어서 학생들에게 보여주자고 하오.다른 사람들의 실험에 방해가 될가봐 실험실에선 분쇄기를 못 돌리겠구려.》

밤깊도록 안해와 함께 집안이 좁다하게 남새들을 펼쳐놓고 하나씩 분쇄기에 넣으며 사진을 찍는다, 동영상자료를 만든다 분주히 돌아가는 선생의 얼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였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였다.자기의 과학연구과정에 이룩된 귀중한 경험들을 이야기하는 그의 강의는 항상 많은 학생들을 매혹시켰다.사람들의 건강에 셀렌이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설명해주는 그의 강의를 듣고 많은 박사원생들이 연구종자를 찾아쥐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제자들에게 도움이 될수 있다면 먼길도 서슴없이 걸은 김태원선생이였다.

주체99(2010)년 11월 23일 위대한 장군님을 모신 기쁨으로 온 대학이 감격과 기쁨으로 설레인 그 력사적인 날에 김태원선생은 어디에 있었던가.

김일성종합대학 평양의학대학은 나라의 의학과학기술인재양성의 원종장이라고 하시면서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고 대학에서 이룩한 성과들을 하나하나 보아주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김태원선생의 연구성과도 몸소 보아주시면서 뜻깊은 교시를 주시였다.그날 그이께서는 대학의 공로있는 교원들과 연구사들, 대학일군들을 한품에 안으시고 사랑의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그 시각 선생은 순천으로 향하는 뻐스에 몸을 싣고있었다.약물실험결과가 시원치 않다는 현장기사들의 말을 듣고 현지에 내려가는 길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대학을 찾아주시였다는 감격적인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대학으로 다시 돌아온 선생은 그이께서 다녀가신 연혁소개실부터 찾았다.

김태원선생은 오래도록 위대한 장군님께서 보아주신 연혁소개판을 바라보았다.뒤늦게 달려온 제자들이 그를 에워쌌다.

《로교수선생님들이 모두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말을 채 맺지 못하는 제자들을 껴안는 선생의 두볼로는 뜨거운것이 흘러내리고있었다.

그날 선생의 집으로는 제자들의 전화가 많이도 걸려왔다.그들은 선생이 순천으로 떠났던 길을 몹시도 후회하고있을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동무들, 고맙소.하지만 난 오늘 연혁소개판앞에서 얼굴이 뜨거워지는것을 느꼈소.장군님께 조금이나마 기쁨을 드렸다고 생각했던 나의 연구성과는 사실 오래전에 나온것이였소.…》

위대한 장군님께서 또다시 대학을 찾아주시는 그날에는 훌륭한 연구성과들을 더 많이 보여드리자고 절절히 말하는 그의 두볼로는 그리움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김태원선생은 다음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대학을 현지지도하신 소식이 실린 《로동신문》을 정히 간수하였다.

그후 그는 자주 그 신문을 펼쳐들고 위대한 장군님의 영상사진을 보고 또 보군 하였다.

영광의 절정에 오른 로교수들곁에 자신을 세워보면서 조용히 눈시울 적시군 하던 김태원선생의 가슴속에 고패친것은 무엇이였던가.

인민들의 건강을 확고히 담보할수 있는 유능한 의학과학자, 기술자들을 더 많이 키워내라고 하신 그이의 믿음어린 당부였다.

한생의 제일 큰 아쉬움을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두며 그 당부를 운명의 피줄기처럼 새겨안은 김태원선생은 초인간적인 힘으로 자신을 지탱하며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인재육성사업에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바쳐왔던것이다.

나라의 의학발전을 위하여 줄기차게 고동치던 로교수의 심장은 비록 멎었지만 그의 헌신적인 삶은 여전히 제자들과 후대들을 가르치고있다.

* *

위대한 수령님들과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품속에서 조선의 지식인으로서의 행복과 영광의 절정에 올라선 김태원선생,

우리 당이 키워낸 이런 미더운 의학자들이 이 땅우에 있고 그들이 이어가는 삶이 더없이 아름답기에 우리의 사회주의영상은 대를 이어 빛나는것이며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우리의 사회주의제도는 그 존엄과 위용을 높이 떨치고있는것이다.

본사기자 김옥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