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5월 21일 로동신문
수기 우리
조국의 번영과 인민의 행복, 인류의 평화를 위해 끝없는 로고를 바쳐가시는 이 세상 제일 위대하신분을 모시고 살며 혁명하는 크나큰 긍지와 영광이 넘쳐날수록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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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때없이 펼쳐보군 하는 소중한 책이 있습니다. 지금도 책을 펼쳐보느라면 꿈처럼 흘러간 라선시피해복구의 나날들이 어제런듯 생생히 안겨오고 흘러간 분분초초에 새겨진 우리 주체104(2015)년 8월 22일 밤 난생처음 보고 겪는 상상할수도 없었던 재난을 당한 그 순간부터 여기 라선땅에는 8월 22일, 23일, 24일… 어느 하루도 번진 날이 없었습니다. 나라의 정세가 벼랑끝으로 치닫고 전선지대에 준전시상태가 흐르던 엄혹한 때 최고사령부의 작전대곁에서 밤을 지새우시는 속에서도 우리 한장두장 번져갈수록 피해복구를 자신께서 직접 지휘하시겠다고 만짐을 스스로 걸머지신 우리 한초가 새로워 뛰고 또 뛰던 때였지만 영원히 잊지 말고 심장에 새기자고 끓어오르는 격정을 길을 걸으면서도 한자두자 적어두었습니다. 《8월 28일 우리 라선시는 나라의 넓이에 비해볼 때? 또 주민수로 보면?…》 글줄을 따르느라면 라선시피해복구련합지휘부조직에 이어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소식에 접했던 그날의 격정이 가슴속에서 솟구쳐오릅니다. 나라의 최고중대사인 국방사업과 관련한 전략적문제들을 토의하는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라선시큰물피해복구대책문제를 토의한것은 우리 조국땅 한끝에 있는 우리 라선시는 크지 않습니다. 하건만 우리 수천세대의 살림집들과 공공건물들을 새로 짓거나 보수하며 체신, 전력망들과 철도, 도로, 다리들을 복구해야 하는 이 방대한 공사를 남들같으면 몇해를 두고도 못하였을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라선땅은 불과 30여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피해복구가 아니라 천지개벽되였습니다. 진정 그이의 사랑의 손길은 살림집건설만이 아니라 피해자들의 생활의 구석구석에 속속들이 가닿았습니다. 부모, 형제, 친척들도 피해입은 혈육들에 대해 걱정만 하고있을 때 몇달후에 오게 될 추위까지 념려하여 보내주신 포근한 솜옷이며 인민군대의 수산부문에서 잡은 물고기며 숟가락, 저가락에 이르기까지의 생활필수품들이 그들에게 가슴가득 안겨졌습니다. 중앙의 이름있는 예술단체들을 보내주시여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아주신 이야기며 재해뒤끝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전염병을 모른 이야기 등 큰물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고 어느것 하나 놓치지 않으시고 헤아려주신 우리 저는 여기서 오늘도 눈물겹게 되새겨보군 하는 아직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사실만은 꼭 전하려고 합니다. 행불자들을 찾기 위한 사업이 본격적으로 벌어졌지만 대홍수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모든것을 깡그리 밀어버린 곳에서는 도저히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혈육을 잃은 가족들도 자연재해는 피할수 없는것이라고 하면서 바다로 떠내려간 그들을 더는 찾을수 없다고 저희들을 만류하였습니다. 그러나 조국수호전의 낮과 밤을 이어가시는 속에서도 수재민들이 걱정되시여 한밤중에 라선시당위원회 책임일군을 전화로 찾으신 하루아침에 집도 가산도 지어 혈육까지도 깡그리 앗아가는것이 바로 자연의 광란인것으로 해서 행불자는 재해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하여 우리 라선시에는 큰물피해로 인한 행불자가 단 한명도 없었으며 모두가 가족들의 품에 안겼습니다. 사람들은 다시는 볼수 없을것이라고 단정했던 혈육들을 붙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누구라 할것없이 한목소리로 저에게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어버이사랑은 이렇게 혈육들을 잃은 인민의 마음을 따스히 감싸안았고 인민은 사랑의 그 힘에 받들려 산악같이 일떠서 복구건설을 다그쳤습니다. 허나 인민을 위하시는 우리 어린것을 대신하여 살림집리용허가증을 수여받으며 한 그애 이모의 심장의 웨침도 저는 눈물을 머금으며 책에 그대로 적었습니다. 《큰물에 집과 함께 떠내려간 동생네 부부의 시신을 찾았을 때 저는 부모의 얼굴조차 기억 못하는 어린것이 고아가 되였다는 생각에 너무 기가 막혀 조카를 붙안고 울었습니다.그런데 이것은 그만이 아닌 우리 라선시인민들의 심장마다에서 터져나온 진정이였습니다. 저는 무럭무럭 자라는 그애를 보며 만약 사회주의 내 조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태여나 불행을 당하였다면 과연 그애의 운명이 어떻게 되였을가 하고 종종 생각해보군 합니다. 우리 저의 책에는 이런 문구도 있습니다. 《선봉고급중학교 졸업반 홍영원학생 정말 기적이다. 육체의 절반이상이 험창하게 짓이겨지고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병원에 실려온 그를 본 사람들은 누구도 그가 살아나리라고 믿지 않았다.…》 응급치료로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그를 또다시 쓰러뜨린것은 뼈가 다 드러난 한쪽다리에 시간을 다투며 침습하는 가스괴저로 다리를 잘라야 한다는 현대의학이 내린 선고였습니다. 공부 잘하고 조직생활에서 모범이라고 아버지없는 그를 소년단위원장으로 내세워주고 조선소년단창립 66돐 경축행사 대표로 불러주신 그가 큰물로 가족을 잃은 슬픔과 함께 한쪽다리를 잘라야 하는 괴로움으로 모대길 때 그의 운명을 두고 그보다 더 마음을 쓴 은혜로운 품이 있었습니다. 그를 위한 수십차례의 협의회가 열렸고 대담하고 새로운 치료방안들이 세워졌으며 수차에 달하는 힘겨운 수술이 진행되였습니다. 라선땅의 이름모를 많은 사람들이 그의 부모가 되여주었고 형님, 누나가 되여 그가 하루빨리 완쾌되기를 바라며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작은 가슴으로 받아안기에는 너무도 크나큰 사랑이 그를 기다리고있는줄 어찌 알수 있었겠습니까. 병원침대에서 그는 새로 지은 살림집을 받아안았습니다. 《저는 고아가 아닙니다.저는 외롭지 않습니다.저에게도 저를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친아버지가 계십니다.》라고 웨치며 목놓아울던 그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우리 제발로 걸어 자기가 받은 살림집에 들어선 그가 아무말없이 이방저방 돌아보며 마음속으로 어떤 말을 했겠는가 하는것은 누구나 다 알것입니다.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불행을 당한 소년의 가슴에 한점의 그늘이 질세라 끝까지 품어안아 재생의 기쁨을 안겨주시고 부모없는 설음 가셔주시려 그의 아버지가 되여주시고 부모있는 아이들과 꼭같이 보금자리도 안겨주신 우리 대지를 활보한 날 영원이는 저는 때없이 만복동을 찾군 하는데 우리 그의 집은 현재 집주인은 이곳에서 살고있지 않습니다. 그는 지금 한없이 소중한 내 조국을 지켜 혁명의 총을 잡고 조국보위초소에 서있습니다. 병사는 비록 자기 집과 멀리 떨어져있어도 그의 가슴속에는 우리 저는 군사복무를 성실히 하고있는 그의 소식을 전해들을 때면 오늘은 영원이가 고마운 품을 지켜 조국보위초소에 섰다면 래일은 또 두살잡이로부터 올해 6살이 된 예송이가 내 조국을 받들어나가는 믿음직한 역군으로 훌륭히 자랄것이라는 생각에 가슴후더워집니다. 진정 이 땅의 천만자식 차별없이 품어안아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고 운명도 미래도 지켜주고 보살펴주며 꽃피워주시는 우리 저는 오늘도 보고 또 봅니다. 피해복구의 30여일에 무수히 새겨진 인민, 그이의 마음속에 꽉 차있는 소중한 인민위한 우리 그리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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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면 우리 저는 이것을 라선시피해복구의 나날 실지 체험을 통하여 심장으로 터득하였습니다. 살림집건설이 거의 끝나갈무렵이였습니다. 인민군군인들은 자기들이 지은 살림집들에 대한 인민들의 평을 종합하였습니다.모든것이 대만족이였으나 부엌의 부뚜막만은 바람이 세찬 지대의 특성에 적합하지 않아 불이 잘 들것 같지 않다는 의견을 받게 되였습니다. 살림집건설을 끝낸것이나 다름없는데 인민의 요구대로 뜯어고치면 새집들이날이 늦어질텐데? 또 부뚜막개조에 쓸 그 많은 자재는 당장 어디서 가져오겠는가?… 허나 그것은 한순간이였습니다.다음순간 그들은 인민의 요구라면 대담하게 뜯어고치자, 인민이 바란다면 하늘의 별도 따오시려는 그래서 시의 설계일군들과 함께 고심한 끝에 마침내 현재의 자연식부뚜막을 지대적특성에 맞는 가열식부뚜막으로 개조하기로 하였습니다.그리고 내부예비를 총동원하고 지어 감탕속에 묻힌 설비와 자재들을 파내여 원상복구해가지고 밤을 꼬박 밝히면서 불과 30여시간만에 가열식연통관전량을 만들어냈으며 군인건설자들은 며칠사이에 인민의 요구대로 부뚜막개조공사를 끝냈습니다. 이것이 우리 새로 지은 살림집들을 돌아보시던 정녕 천만가지 국사를 돌보시는 우리 그뿐이 아닙니다. 화약에 불이 달린것처럼 살림집건설을 해나가는 군인건설자들의 투쟁기세에 발맞추어 저희들은 살림집들에 수도를 놓는 일을 맡아하였습니다. 큰물로 파괴된 수원지대신 새로 수원지를 건설하고 살림집구획까지 자연흐름식물길공사를 하고 수천m의 수도관공사를 다그쳐 매 세대들에 수도를 놓았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그저 실무적으로 살림집건설공법의 요구로 또 사람들의 생활에 절실한 부분으로만 여겼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엌에 이어 세면장에 들어서신 이처럼 우리 지금도 저의 귀전에는 새로 지은 살림집들을 돌아보시며 인민들이 좋아한다니 마음이 놓인다고, 인민들이 좋아한다니 자신께서도 정말 기쁘다고, 바로 이런 멋에 혁명을 한다고 하신 우리 그것은 진정으로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시는 우리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재난을 당하면 부자들은 살지만 절대다수 인민들은 삶의 희망을 잃게 됩니다. 더구나 자본주의나라에서는 일반로동자가 한칸짜리 살림방을 마련하는데 드는 너무도 엄청난 집값때문에 《제 집마련이 평생소원》이라는 말까지 나돌고있습니다. 허나 나라위해 큰 공을 세운것도 아니고 자연의 광란으로 피해를 입은것뿐인 우리 라선시수재민들에게 사회주의 내 조국에서는 돈 한푼 받지 않고 이미 살던 집보다 더 훌륭하게, 생활에 필요한 모든것들을 다 갖추어주고 단 한세대도, 단 한명도 빠짐없이 모두를 행복의 보금자리에 앉혀주었습니다. 지어 당에서 새 집을 지어준다는것을 알고 보수하면 쓸수 있는 집을 제손으로 헐어버린 주민들에게까지 수재민들과 같이 사랑의 선물과 함께 살림집이 차례졌습니다. 수천리길을 달려 라선시피해복구전투장을 찾으신 그날 우리 재부라는 말이 생겨난 때로부터 수수천년이 흘러왔지만 그 어느 위인전서나 력사의 갈피에도 우리 우리 라선땅에서 꽃펴난 인민사랑의 전설에는 모든 사업의 기준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다시 라선땅을 찾으신 그날 인민의 요구가 바로 모든 사업의 기준이다.이것이 우리 하지만 저는 그이의 숭고한 뜻을 천만분의 일도 받들지 못하였습니다. 주체104(2015)년 10월 7일은 우리 당창건 70돐 경축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그날 아침 출발한 저희들의 일이 새집들이경사의 날을 기다리며 기쁨으로 설레이던 라선시를 찾으신 긴급련락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와 내가 늘 강조하지만 인민들을 위한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라고 하신 인민을 위한 일은 우리 만복동을 찾을 때면 언제나 저의 눈앞에는 백학산의 양지바른 기슭에 멋들어지게 들어앉은 살림집들과 엇바뀌며 안겨오는것이 있습니다. 저슬령기슭에 옛적에는 영저마을로, 그후에는 밍크마을로 불리우며 오붓이 들어앉았던 살림집들이 있었습니다. 자연의 광란은 오랜 세월 다져온 이 삶의 터전을 지도에서 영영 없애버렸지만 우리 불행의 주인공들을 만복의 주인공들로 되게 하여주신 만복동이야말로 우리 태양의 열도에도 비길수 없는 사랑과 정은 천만의 심장을 하나로 굳게 결합시켜 수학적계산만으로는 도저히 가늠할수 없는 무궁무진한 힘이 되여 자연의 혹독한 전횡도 맥을 추지 못하게 했고 전대미문의 피해도 단숨에 가실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 힘은 불가능을 모르는 정신력의 폭발이였고 오직 우리의 힘으로 보란듯이 우리의것을 창조해나가는 자강력의 거세찬 분출이였습니다. 당시의 험악했던 피해상황을 직접 보고 세상에 기적이라는 말은 있어도 기적의 실체는 없다고 하면서 피해복구를 한달동안에 해내면 손바닥에 장을 지지겠다고 하던 다른 나라 사람들도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힘으로 가장 훌륭하게 인민의 행복을 창조하는것이 우리 그래서 저희들은 어버이사랑어린 만복동들이 늘어날수록 저희들의 가슴속에서는 한없는 그리움이 더해갈수록 저희들의 가슴마다에는 저는 우리 당의 인민사랑의 참뜻을 심장에 쪼아박고 우리의 손으로 인민의 행복의 화원을 더 훌륭히 가꿔감으로써 라선땅에 새겨진 라선시인민위원회 위원장 조정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