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5월 25일 로동신문

 

어버이사랑 전하는 협동벌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에는 수령님의 거룩한 발자욱이 닿지 않은 곳이 없으며 불멸의 자욱이 새겨진 곳마다에서 인민들의 세기적숙망이 실현되고 천지개벽이 이루어졌습니다.》

물에 대한 농민들의 세기적숙망, 기계로 농사를 지었으면 하는 세기적인 념원을 풀어주시기 위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걸으신 사랑과 헌신의 자욱자욱이 이 땅에 얼마나 뜨겁게 아로새겨져있던가.

농사에서 물은 금과 같이 귀중하다.

어느해 봄날에 있은 일이다.그해 봄날씨는 례년에 없이 가물었다.

계속되는 가물을 못내 걱정하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평안남도일대를 돌아보시였다.

차창밖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어느 한 곳에서 급히 차를 세우게 하시였다.물동이를 이고 오가는 농촌녀인들과 함께 논판에 웅크리고앉아서 꼬챙이로 구멍을 뚫고 물을 부어가며 모를 내는 농민들, 아직도 모를 내지 못한 메마른 논벌들이 시야에 안겨들었기때문이였다.

꼬창모를 내고있는 한 로인곁으로 다가가신 어버이수령님께서 이렇게 힘들게 농사를 지어서야 되겠는가고 젖은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뒤미처 어버이수령님을 알아뵙고 당황해하는 로인의 거친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며 수령님께서는 물동이를 이고 물을 나르는 녀인들도 가까이로 부르시였다.

물있는데는 얼마나 먼가, 하루에 몇동이씩이나 길어오며 점심식사는 제때에 하는가.…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문득 사람들뒤에 앉아있는 한 녀인의 정수리가 헐어있는것을 띄여보시였다.물긷기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머리가 다 헐겠는가고 하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음성에는 형언할수 없는 심려가 어려있었다.

녀인은 어버이수령님께서 그처럼 심려하시는것을 보고 저으기 죄송스러워 일없다고, 모내기만 끝나면 곧 낫는다고, 전에도 늘 그랬다고 말씀올리였다.

그럴수록 어버이수령님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지시였다.너무 심려하지 마시라고, 그저 일없다고만 하는 이들, 근면하고 순박한 녀인들에게 이제부터는 물동이를 이지 않아도 된다고 당장 말씀해주실수 없는것이 못내 안타까우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곧 일군들을 부르시였다.그간 가물과의 투쟁정형을 료해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물이 바른 지대의 농민들은 말라터진 논바닥에 동이로 물을 길어다 한포기, 한포기 꼬창모를 내고있는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가져오신 노랗게 병든 모를 탁상우에 내놓으시였다.

인민정권기관에서 일하는 일군들은 인민의 충복이 되여야 한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신 어버이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다시금 되새기면서 일군들은 머리를 들지 못하였다.

그후 관개공사는 빠른 속도로 진척되였으며 은혜로운 사랑이 그대로 생명수가 되여 대지를 적시였던것이다.

어느해 가을 열두삼천리벌을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밤을 지새우시면서 평남관개의 원대한 구상을 무르익히시던 어버이수령님의 체취가 어려있는 초가집을 돌아보시면서 추억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그때 한 일군이 수령님께 새날이 밝는데 좀 쉬셔야 하지 않겠는가고 여러번 말씀드리였지만 수령님께서는 물이 없어 손끝이 닳도록 꼬창모를 내면서 농사를 지어온 이 고장 농민들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물에 대한 농민들의 세기적숙망을 풀어준 다음에 푹 쉬겠다고 하시며 등잔불밑에서 5 000여리 물길건설을 구상하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농민들과 약속한 물문제를 풀어주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농민들을 만나보겠는가고 하시면서 푼전을 쪼개써야 하였던 전후의 그 어려운 시기에 막대한 자금을 들여 평남관개공사를 완공하도록 해주시였습니다.…

우리 수령님은 바로 이런분이시였다.

농사를 기계로 지으려는것은 우리 농민들의 세기적인 념원이였다.

모내는기계와 더불어 전해지는 사랑과 헌신의 이야기가 오늘도 만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적셔주고있다.

고양이손도 빌려쓰고 부지깽이도 뛴다는 모내기철,

손끝이 모지라지고 허리가 굽도록 모를 꽂아온 이 나라 농민들의 세기적숙망을 가슴에 안으시고 깊이 마음쓰신분은 어버이수령님이시다.

어떻게 하면 농민들을 어렵고 힘든 일에서 해방시켜줄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늘 심려해오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처음에 제초기처럼 사람이 손으로 밀게 된 간단한 모내는기계를, 그다음에는 소로 끄는 모내는기계를 만들도록 하시여 농민들에게 보내주시였다.

그후에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모내는기계의 완성을 위하여 늘 심혈을 기울이시였다.한때 일부 과학자들은 다른 나라의 밀파종기를 개량하여 모내는 작업을 기계화하려고 시도한적이 있었다.

그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 실정에 그런 큰 기계는 맞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소형원동기를 리용하여 간단하면서도 능률적인 모내는기계를 만들도록 과학자들의 눈을 틔워주시였다.

깊은 밤, 이른새벽에 전화를 거시여 우리 식의 모내는기계연구정형을 료해하시고 때로는 설계가들을 저택에 부르시여 의논도 해주시였으며 어느날엔가는 질벅한 논두렁길을 걸으시며 기계에 칠할 색갈도 선정해주신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모내는기계 첫 시제품이 나왔을 때였다.보슬비내리는 궂은 날씨였다.하지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몸소 포전에 나오시여 아직은 부족점이 많지만 모내는 작업을 기계화할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기뻐하시면서 그 시정방도를 하나하나 일깨워주시였다.이렇게 되여 완성된 모내는기계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또다시 포전에 나오시였다.일시에 발동을 건 모내는기계들이 청산벌에 푸른 주단을 펼쳐나갔다.미풍에 옷자락을 날리시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제는 우리 농민들의 굽은 허리를 펴주게 되였다고 하시면서 시종 기쁨을 금치 못해하시였다.

어느새 하늘에는 뭇별들이 반짝이였고 날씨는 차졌다.일군들은 그만 돌아가시자고 몇번이고 아뢰였다.하건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농민들을 힘든 일에서 해방하는 일이 그리 쉬운가고 하시면서 좀더 보겠으니 자동차전조등으로 논판을 비쳐주자고 하시는것이였다.

한지에 오래도록 서계시는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를수록 운전공들은 흐르는 눈물을 금치 못하였으며 끝내는 기계를 멈추고야말았다.그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내 걱정은 말고 좀더 해보라고 이르시였다.

하지만 끓어오르는 격정으로 운전공들은 입술만 깨물뿐 기계를 움직일념을 못하고있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번에는 마지막이라고, 저기까지 한번 더 갔다와보라고 다정한 어조로 재촉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또다시 움직이는 기계들을 바라보시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저렇게 기계로 모를 내는것을 보니 피곤이 일시에 다 풀리는것 같다고, 이제는 우리 농민들을 모내기의 힘든 일에서 해방하게 되였다고 더없이 만족해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이처럼 크나큰 심혈을 기울여 완성시켜주신 모내는기계이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농민들이 세세년년 그 덕을 누려가도록 깊이 마음쓰시였다.

어느해 청산리를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모내는기계를 처음 만들었을 때 수령님께서 이제는 농민들이 허리를 펴게 되였다고 기뻐하시면서 그 기계를 청산협동농장에 먼저 보내주신 사랑의 력사를 뜨겁게 회억하시였다.그러시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모내는기계로 모를 내야 한다고, 모내는기계가 열번 고장나면 열번 고치고 백번 고장나면 백번 고쳐서라도 기계로 모를 내야 한다고 간곡히 교시하시였다.

인민들의 먹는 문제, 식량문제를 푸는데 전당적, 전국가적인 힘을 총집중할데 대한 당의 뜻을 피끓는 심장에 새기고 한사람같이 떨쳐나선 우리 농업근로자들과 온 나라 인민들이 이런 감동깊은 사랑과 헌신의 력사를 어이 순간인들 잊을수 있으랴.

본사기자 량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