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6월 22일 로동신문

 

우리 원수님과 삼지연의 세쌍둥이자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청년중시는 우리 당과 혁명의 영원한 전략적로선입니다.》

삼지연!

혁명의 성산에 시원을 두어 그리도 정갈한가, 백두산기슭의 아름다운 호수!

맑고 푸른 그 물결 쉬임없이 출렁인다.호수가에 만발하는 진달래에 깃든 빨찌산이야기며 웅건장중히 솟은 백두산의 2월이야기, 성스러운 혁명의 성지와 더불어 새겨진 잊지 못할 하많은 사연 담아싣고.

오늘은 그 물결우에 세쌍둥이자매의 감격넘친 목소리가 가득히 실려 삼지연은 밤낮으로 출렁인다.

온 나라에 알려진 장은혜, 장충실, 장보답 세쌍둥이자매,

그들이 받아안은 은혜로운 사랑과 은정에 대한 이야기는 삼지연의 맑은 물에 실려 만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적셔주리라.

* *

삼지연군에 있는 베개봉다리앞에는 지나는 사람마다 버릇처럼 쳐다보는 아빠트가 있다.새로 지은 현대적인 살림집이다.

첫번째 현관에 들어서서 2층에 올라가면 1호집 출입문우에 이런 현판이 걸려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주체108(2019)년 4월 3일 다녀가신 살림집》

그것을 보는 순간 우리는 가슴이 뭉클 젖어들었다.

삼지연군 읍지구에 새로 건설된 살림집들이 그 얼마이랴만 수도 평양을 떠나 삼지연군에 달려온 세쌍둥이자매의 소행이 얼마나 기특하시였으면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그처럼 바쁘신 현지지도의 길에서 그들의 집을 찾아주시였겠는가.

문을 두드리니 예쁘장하게 생긴 처녀가 나왔다.

언니는 평양에 있는 아버지네 집에 갔다고 하면서 우리를 방으로 이끈 그가 바로 이제 우리가 하려는 이야기를 들려준 세쌍둥이의 둘째인 장충실동무였다.

해빛이 따뜻하게 비쳐드는 방안에 우리가 들어서자 그는 무릎을 꿇고 앉으며 방바닥을 정히 쓰다듬었다.

《여기가 바로…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앉으시였던 자리입니다.글쎄 원수님께서 여기 맨 방바닥에 그냥 앉으실줄은…》

처녀의 갈린 목소리,

그는 방바닥에 방울방울 눈물을 떨구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4월이였지만 그날은 북부지방특유의 찬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아 날씨가 몹시 쌀쌀하였다.창가에서는 바람소리마저 울리였다.

출근길에 오르려던 세쌍둥이자매는 몸을 옹송그리며 창밖을 내다보았다.아무래도 덧옷을 껴입어야 할것 같았다.그들은 주섬주섬 덧옷을 입기 시작하였다.

그때였다.뜻밖의 소식이 문을 두드리였다.

《예?!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우리 집에요? 뭐라구요? 지금 오고계신다구요?!》

삼지연군을 찾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자기들이 사는 집으로 오신다는 말에 세쌍둥이는 와뜰 놀랐다.

꿈결에도 그립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우리 집에?!… 그들은 허둥지둥 현관으로 달음박질하여 내려갔다.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생활을 거쳐 삼지연에서 생활하기까지 6년세월 정든 부모와 평양을 떠나있은 그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그리운것이 육친의 정이였다.새 살림집을 받아안고 아버지, 어머니에게 보여드리며 자랑하고싶은 마음도 간절하였었다.

그런데 부모보다 먼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집을 찾으시는것이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현관앞에서 삼가 인사를 드리는 세쌍둥이자매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였다.이어 그들과 함께 계단을 오르시면서 평양 어디에서 살았는가 다정히 물어주시였다.집에 들어서시여서는 부엌세간도 하나하나 보아주시고 살림살이를 구석구석 보살펴주시였다.그러시고는 세쌍둥이자매가 새집들이를 한 집이 정말 좋다고 하니 자신의 마음도 기쁘다고, 자신께서 보기에도 집이 괜찮다고 하시며 못내 만족해하시였다.

화기애애한 가정적분위기가 방안에 가득히 흘러넘치였다.한없이 인자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을 우러르며 세쌍둥이자매는 행복에 한껏 취하였다.

그들은 경애하는 원수님께 벽면에 모셔진 영광의 기념사진들과 대표증들, 선물명세, 증서들을 가리켜드리며 네 벽면을 꽉 채우고있다고 자랑까지 터놓았다.그것은 그대로 절세위인의 슬하에서 세쌍둥이자매뿐이 아닌 우리 시대 청년들이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자들로 어떻게 억세게 자라는가를 보여주고있었다.

방안을 둘러보시면서 우리 청년들이 걸어온 자랑스러운 행로를 더듬으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떠나기 아쉬우신듯 허물없이 방바닥에 앉으시며 쉬였다가자고 하시였다.

일군들은 물론 세쌍둥이자매도 뜻밖의 일에 어쩔바를 몰라하였다.방바닥이 싸늘하였던것이다.게다가 방석도 없었다.

그들의 심정을 헤아려보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마음을 진정시켜주시며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평양에서 살던 동무들이 여기 삼지연땅에 김일성, 김정일화를 만발하게 피워갈 결심을 품고 영원히 뿌리내린것은 당과 조국에 대한 불타는 애국충정심을 간직한 우리 청년들만이 발휘할수 있는 아름다운 소행입니다.

어린 나이에 당의 리상과 투쟁목표를 자기의것으로 받아안고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건설장에 탄원하여 애국충정의 구슬땀을 바쳤으며 오늘은 또 여기 삼지연군에 자원진출하여 이 땅을 훌륭하게 꾸리는데 꽃나이청춘을 바쳐가고있는 동무들은 우리 시대 청년들의 훌륭한 미덕, 미풍을 보여주었습니다.정말 그 마음이 가상하고 갸륵합니다.》

가슴속에서 격정이 세차게 소용돌이쳐 세쌍둥이자매는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한채 눈물만 떨구었다.지금껏 집을 떠나 오래동안 생활하면서 누구에게도 내비치지 않았던 속마음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다 헤아려주시며 높이 내세워주시니 그 고마움과 행복감을 어떻게 형언할수 있으랴.

그들의 눈앞으로 삼지연군으로 오기까지의 나날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26년전 4월 평양산원에서 153번째 세쌍둥이로 태여난 그들은 부모가 지어주는 이름보다 먼저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안겨주신 사랑의 금반지와 은정어린 선물들을 한가득 받아안은 복동이들이였다.아버지, 어머니는 당의 은혜에 충실히 보답하라는 의미를 담아 딸들의 이름을 장은혜, 장충실, 장보답이라고 지었다.부모는 앞으로 세쌍둥이가 충정과 보답의 길에서 한생을 사랑의 금반지와 같이 빛내일것을 바랐건만 오히려 그들의 인생을 금반지처럼 빛내여준것은 당의 손길이였다.

피눈물의 12월에 평범한 로동자의 자식들인 자기들이 어떤 행복속에 세상에 부러움없이 자랐는가를 뼈절게 새긴 그들은 2012년 6월 7일 한날한시에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에 입대하였다.그때로부터 3년후 경애하는 원수님의 비범한 령도의 손길과 하늘같은 믿음과 은정에 받들려 불과 몇달사이에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언제가 우뚝 일떠서는 신화가 창조되였으며 그후 삼지연군을 잘 꾸려 백두산아래 첫 동네에서부터 로동당만세소리, 사회주의만세소리가 울려퍼지게 할데 대한 당의 뜻을 높이 받들고 세쌍둥이자매는 김일성, 김정일화온실건설에 참가하였다.

온실건설이 끝난 후에는 영광의 땅에 태양의 꽃을 피우는 일에 한생을 바칠 결심을 안고 삼지연군에 삶의 뿌리를 내리였다.

평양에 가서 여러달동안 꽃기르기와 관련한 강습을 받고 돌아와 조용히 삼지연땅에 자리를 잡은 그들을 군에는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런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응당 할 일을 한 자기들의 소행을 그리도 가상하고 갸륵하게 여기시며 그토록 정과 믿음을 부어주시는것이였다.

경애하는 원수님을 우러르는 일군들의 가슴은 뜨겁게 젖어들었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은혜로운 사랑과 믿음속에서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시대의 선구자로 삶을 빛내이는것인가.송남의 김진청년돌격대 대장이며 룡암포의 《조선로동당의 딸 청년녀성영웅》호 처녀선장, 강선의《처녀어머니》 …

오늘은 삼지연의 세쌍둥이자매도 우리 원수님 손길에 받들려 우리 시대 청년들의 전렬에 빛나는 자욱을 아로새기는것이다.

일군들이 이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경애하는 원수님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방안에 쩡쩡 울리였다.

《세쌍둥이자매가 보여준 훌륭한 미덕과 미풍은 우리 청년들, 우리 인민들속에서만 꽃펴날수 있습니다.우리 청년들, 우리 인민들속에서 발양되는 미덕과 미풍들을 잘 키워주어야 합니다.그렇게 하여 그런 훌륭한 미덕과 미풍이 온 나라의 가풍으로, 국풍으로 되게 하여야 합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조용히 벽면에 눈길을 돌리시였다.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원들과 함께 찍으신 기념사진에서 시선을 멈추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한동안 사진을 바라보시였다.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언제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에서 사랑하는 청년돌격대원들의 영웅적위훈의 자욱을 더듬으시듯 깊은 감회에 잠겨계시던 그이께서는 세쌍둥이자매를 돌아보시며 이 사진에서 동무들이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짚어보라고 하시였다.

아버지앞에 자랑을 터놓는 딸의 심정이 된 그들은 저마다 일어나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자랑삼아 말씀드리였다.

19살 꽃나이에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에 탄원하여 처녀시절의 기쁨과 웃음, 희망과 포부를 언제밑에 고스란히 묻은 그들의 모습에서 백두산영웅청년신화를 창조한 청년돌격대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그려보시듯 기념사진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언제에 새겨진 《영웅청년》이라는 글발을 가리키시며 《영웅청년》, 저 글발을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언제에 새기기 잘하였다고, 저 언제는 우리 청년들의 신념과 의지의 창조물이라고, 언제의 높이와 폭이 곧 우리 청년들의 신념과 의지의 높이이고 폭이 아니겠는가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한생에 잊지 못할 청년돌격대시절을 값높이 내세워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께 온넋을 통채로 맡긴 세쌍둥이자매는 어려움도 잊고 그 나날에 있은 가지가지의 일들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씀드리였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그이께서 떠나셔야 할 때가 가까와오고있었다.

그런데 친어버이의 정에 끌려 세쌍둥이자매는 어려움도 잊고 생활의 사말사까지 다 말씀드리며 응석을 부리였다.그러다나니 혼사문제도 말씀드리게 되였다.

세쌍둥이자매의 생활의 사연도 들어주시고 그들의 앞날도 따뜻이 축복해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앞으로 동무들 세자매가 모두 시집을 가면 자신께 편지를 쓰라고 은정어린 당부를 남기시였다.

그러시고는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시며 그들모두를 가까이로 부르시였다.

이렇게 되여 세쌍둥이자매는 새 살림집을 배정받은 후 아직 찍어보지 못한 가족사진을 경애하는 원수님을 친어버이로 모시고 찍는 크나큰 영광을 받아안게 되였다.

그이께서는 떠나가셨지만 자애로운 어버이의 인자하신 모습은 그들의 가슴에서 떠날줄 몰랐다.…

장충실동무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하지만 우리는 선뜻 자리를 뜰수 없었다.

방안에서는 인생의 목표를 그렇게 설정한 이상 한번 다진 결심을 끝까지 변치 말고 지켜나가며 삼지연군인민들과 함께 내 나라, 내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하여 애국충정의 구슬땀을 바쳐야 한다고, 자신께서는 동무들이 꼭 그렇게 하리라고 믿는다고 세쌍둥이자매에게 하신 우리 원수님의 말씀이 아직 울리는듯 하였다.

어찌 삼지연땅의 세쌍둥이자매에게만 하신 말씀이랴.온 나라 청년들에게 하신 믿음의 말씀이고 우리 청년들에게 안겨주신 사랑의 축복이였다.

그 말씀을 생의 좌우명으로 간직한 장은혜, 장충실, 장보답동무들은 백두대지의 세송이 꽃으로 더욱 아름답게 피여날것이다.

본사기자 김준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