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6월 25일 로동신문
60여년전 그날의 메아리-인민의
우리는 지금 60여년전의 사진들을 마주하고있다. 침략자들을 무찌르고 조국의 촌토를 목숨바쳐 지킬 불같은 맹세가 높이 추켜든 주먹들에서, 근엄한 표정들에서 력력히 어려온다. 사진속의 로동청년은 피끓는 가슴으로 적화점을 막아 부대의 진격로를 열어제낀 그 돌격용사가 아닌지.나어린 청년은 내 조국의 한치의 땅도 원쑤들에게 내주지 않을 결심을 품고 단신으로 조국의 고지를 사수한 불사신같은 그 영웅전사는 아닌지. 과연 그들의 가슴속에는 무엇이 간직되여있었는가.60여년전의 화폭은 무엇을 전하며 무엇을 새겨주는가. 《우리 인민은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의 시련속에서 자기가 세운 새 제도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바쳐 싸웠습니다.》 주체39(1950)년 6월 26일 《모든 힘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라는 6월 27일 이에 대하여 당시 7월 1일발 조선중앙통신은 《…김일성종합대학을 비롯한 각 대학, 전문학교, 고급중학교 남녀학생들을 선두로 북반부 각 공장, 광산, 기업소, 농촌들에서 많은 근로청년들이 전선으로 출동할것을 탄원하였다. 그들은 조선인민의 영명한 전선출동을 탄원한 애국청년들은 벌써 8만 1천 8백 58명에 달하고있다.》라고 전했다. 력사는 수많은 전쟁을 기록하고있지만 온 나라 인민이 원쑤와의 판가리결전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선 례는 그 어느 나라, 그 어느 시기에도 없었다. 이것은 오직 《아! 전설속에 들어오던 할아버진 범까지 때려잡은 힘장수였지만 지주놈의 등쌀에 제명을 못살고 돌아가셨지요.그리구 아버진 할아버지의 빚값에 팔리워 머슴살이를 하셨구요. 그런데 해방된 오늘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온 마을사람들이 다 활개를 펴고 사람답게 살고있어요.이런 세상 만난것은 이제는 어떤 놈들에게도 이 나라, 이 생활을 빼앗기지 말아야 해요.》 해방직후 고향마을에 해방후 5년, 참으로 꿈만 같이 흘러간 나날이였다. 토지개혁과 중요산업국유화로 온 나라에 기쁨넘쳐나고 흥겨운 춤가락으로 강산이 울고웃던 그 나날, 남녀평등권법령발포와 각급 학교에서 울리던 배움의 종소리에 눈굽을 훔치던 그날의 감격을 어찌 잊을수 있으랴. 지지리 천대받고 억압받던 인민들이 나라의 주인, 땅과 공장, 광산의 주인이 되여 자주적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누리고 아버지, 어머니들이 대학을 비롯한 각급 학교로 달려가는 자식들을 눈물속에 바라보던 해방후 5년… 그 나날에 우리 인민은 조국은 곧 위대하신 온 나라가 전선탄원열의로 끓어번지던 그무렵 원산의 애국청년들이 받아안은 하늘같은 사랑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가 전설처럼 사람들의 가슴을 울려주었다. 이 소식은 삽시에 온 나라 방방곡곡으로 퍼져 전국의 모든 청년들의 전선탄원열의를 더욱 북돋아주었다. 전쟁초기 우리 인민의 전선탄원열의에 대해 한 전쟁로병은 이렇게 추억하였다. 《정말 굉장했습니다.하루밤 자고나면 어느 공장지구에서 로동자들이 로동자련대를 조직하여가지고 전선으로 출동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다음날에는 어느 농촌에서 수많은 남녀청년들이 전선으로 나갈것을 탄원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만나면 전선탄원이 인사말로 되고 침략자들을 한놈도 남김없이 쓸어버리자고 서로서로 굳게 약속하던것이 그때의 생활이였습니다.》 이런 격류속에 전쟁이 일어나 보름이 좀 지난 1950년 7월 11일 전선탄원자수는 무려 74만여명이나 되였다. 이 땅에 전승의 축포가 오른 때로부터 60여년세월이 흘렀다.그러나 1950년대에 높이 발휘된 결사의 조국수호정신은 년대와 년대, 세대와 세대를 이어 자랑스럽게 계승되고있다. 조국앞에 엄중한 정세가 닥쳐올 때마다 이 땅의 이르는 곳마다에서는 전화의 그 나날처럼 인민군대입대를 탄원하는 모임이 엄숙히 열리였고 《조국보위의 노래》 높이 울리던 그때처럼 수많은 남녀청년들이 《전선에서 만나자!》고 웨치며 멸적의 기세높이 전선행렬차에 용약 몸을 실었다. 결코 수십년전 력사의 한순간을 담고있는 사진으로만 볼수 없다. 그것은 이 땅에 원쑤들이 있는 한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펼쳐질 산화폭이며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여도 변함이 없을 우리 인민의 모습이다. 본사기자 리경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