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7월 29일 로동신문
유구한 력사와 절승경개로 자랑높은 내 조국 조종의 산 백두산을 찾아서(1)
이 땅의 천만산악을 품어안고 삼천리를 굽어보며 거연히 솟아 빛나는 조종의 산, 백두산에서부터 우리의 기행은 시작된다. 백두의 신선한 새벽공기를 한껏 들이키며 기행길에 오른 우리의 마음은 저으기 흥분되였다.눈앞에는 혁명시인 조기천선생이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창작하기 위해 백두대지에 편답의 발자국을 새기며 눈보라와 바위, 나무며 저녁안개에도 산악같은 무게를 실어 시상을 고르던 모습이 방불하게 떠올랐다. … 바위! 바위! 내 알리 없어라! 정녕코 그 바위일수도 있다 빨찌산초병이 원쑤를 노렸고 애국렬사 맹세의 칼 높이 들었던 그 바위 … 백두산기행, 가슴이 벅차오르고 심장이 높뛰였다. 백두산바위들의 기기묘묘함과 신성함이며 유정한 이깔숲의 설레임소리, 백두산정의 신비로움을 온몸으로 체험할수 있다는것은 정녕 얼마나 긍지높은 행운인가. 인민이 사랑하는 《백두산8경》이 눈앞에 금시라도 펼쳐지는것만 같았다. 백두산의 해돋이, 향도봉의 친필글발, 백두련봉의 웅장한 자태, 백두의 칼바람, 삼천리조국땅이 바라보이는 류달리 쾌청한 날씨가 우리의 마음을 흥그럽게 하여주었다.원래 백두산악의 진정한 매력을 알자면 겨울에 올라야 한다.백두의 칼바람을 맞고 눈보라길을 헤치며 백두산에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이 정말 컸다. 하지만 혁명의 성산의 아름다움을 먼저 전하고싶어 떠난 걸음인지라 발걸음에 나래를 달았다. 《가리라 백두산으로》의 노래구절이 절로 흘러나왔다.
봄날에도 가리라 겨울에도 가리라 백두산 백두산 내 마음의 고향에 … 부를수록 뜻이 깊은 노래였다. (어서 가자 백두산으로!) 걸음을 재촉할수록 백두산은 결코 마음만 내키면 아무때건 갈수 있는 곳이 아니였다고, 가고싶어도 마음대로 갈수 없다는 여기에 백두산이 가지는 참의미가 있었고 가지 못할수록 더 가고싶어진다는 여기에 바로 백두산이 가지는 참매력이 있었다고 하신 《조선을 알자면 백두산에 올라가보아야 하며 조선혁명을 하자면 백두산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간 걸었을 때였다. 맑게 개였던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대줄기같은 비가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시퍼런 불줄기가 먹장구름이 두텁게 드리운 하늘을 몇갈래로 쪼각냈다.연방 천둥이 울부짖었다. 다른 곳에서라면 이것이 순수 자연현상으로 보였을것이다. 허나 우리에게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다.내 나라의 지맥이 시작된 백두산이 자기의 위엄과 기상을 만천하에 과시하며 성지에 들어서는 우리의 의지를 시험해보는것만 같았다. 비발을 뚫고 백두산아래 첫 동네인 삼지연군 신무성로동자구에 이른 우리는 잠간 쉬였다.여기서 우리는 백두산이라는 지명에 대하여 더 깊은 리해를 가지게 되였다. 옛 기록들에 의하면 우리 선조들은 산체가 웅장하고 령역이 광범한 백두산을 신비로운 산으로 여기면서 불함산, 개마대산, 태백산 등으로 불러왔다. 그후에 하늘을 떠받들고 천하를 굽어보는 거인의 흰머리같다고 하여 백두산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과시 만고의 령봉들을 거느린 천하제일명산으로서의 위상에 걸맞는 이름이라 하지 않을수 없노라. 민족의 넋을 안고있는 조종의 산이라 부를만큼 그대는 웅건장중하더라. 조용히 이름만 불러보아도 절로 마음이 정화되는듯 한 이 감개무량함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할수 있으랴. 시인이 된듯 한 기분이였다. 주체혁명의 새시대와 더불어 백두산은 절세위인들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를 줄기줄기에 심오하게 담고있는 혁명의 성산으로 인민의 심장속에 뚜렷이 새겨졌다. 조금 걷느라니 눈앞에 울울창창한 백두밀림의 천리수해가 가슴벅차게 안겨왔다.아득한 밀림의 장관을 여기서가 아니면 그 어디에서도 볼수 없으리라. 가도가도 끝이 없을상싶은 태고연한 대원시림속에 들어서니 사위가 삽시에 어두워졌다.좀이깔나무, 가문비나무, 분비나무들이 그야말로 참빗처럼 빼곡이 들어차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솨-솨- 밀림의 설레임소리가 들려왔다.그 어느 악기로도 흉내낼수 없는 장쾌한 울림이 아득한 광야에도, 우리의 마음속에도 메아리쳤다. 듣던바 그대로 백두밀림은 어느 한순간도 고요하지 않았다.오랜 세월 여기서 풍찬로숙한 빨찌산들의 이야기를 전하는듯 끝없이 설레이였다. 생각이 깊어졌다.한줌 흙마저도 만단사연을 안고있는듯, 바람결조차 뜨거운 숨결이 되여 심장에 흘러드는듯, 한그루한그루의 나무들은 교대없는 백두의 초병들인듯… 백두밀림에는 이깔나무가 대단히 많았다.오랜 세월의 흔적이런듯 굵직한 가지마다에는 연기같은 송라들이 수염발처럼 드리워졌다.정수리는 하늘높이 아슬하게 올라가다가 지팽이처럼 휘우듬하게 구부러졌다.그것이 천고밀림의 풍치를 더해주고있었다.그런가 하면 사스레나무가 드문드문 바늘잎나무들속에 섞여 고개를 늘어뜨리고 자라는 모양도 경관이였다. 백두산의 식물상은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수림대, 고산떨기나무림대, 고산초원대, 지의대순위로 바뀌여진다.그러므로 백두산은 온대로부터 아한대를 거쳐 한대지방에 이르기까지의 식물들을 거의다 볼수 있는 대로천식물박물관이라고도 말할수 있었다. 걸음을 다그치는 우리의 눈앞에 백두산에서부터 16km 되는 지점이였다. 《밀림속을 지나 이렇게 백두산을 눈앞에 바라보며 걸으니 고향집대문을 열고 뜰안에 들어서는것만 같습니다. 백두산의 문주이런듯 천연화강석으로 무게있게 다듬어세운 명제비에 새겨진 불멸의 글발을 우러르느라니 마음은 뜨겁게 달아올랐다.머리를 높이 드니 백두산의 웅건장중한 모습과 함께 향도봉의 친필글발이 선명하게 안겨왔다. 조금 올라가니 세찬 바람이 한쪽방향으로만 내리불어 나무들의 모양이 특이하였다.백두산에서만 볼수 있는 류다른 정경이였다.이 고장 사람들이 기발나무숲이라고 부르는 곳을 지나 우리는 드디여 혁명의 성산 백두산에 이르렀다. 저으기 격동된 심정속에 우리는 서로서로 손을 잡고 백두산마루에 올랐다. 백두산! 조국산천의 최절정에 올라선 이 심정을 무엇으로 표현할수 있으랴. 끝없이 뻗어내린 조국의 산발들이 한눈에 어려오고 천지의 푸른 물결이 아름다움을 한껏 더해주는 여기 백두산정에서 우리는 다르게 감정을 터칠 길이 없었다. 답사자들과 함께 《만세!》를 목이 쉬도록 웨치고 또 웨쳤다. 타래쳐오르는 구름의 바다가 눈아래로 장쾌하게 펼쳐져 백두령봉의 신비함과 장엄함이 더욱 돋보였다. 창공을 치뚫을듯 한 기세찬 봉우리들을 쭉 거느리고 백전로장의 모습으로 우뚝 솟아오른 백두산의 최고봉인 향도봉에 정히 새겨진 《혁명의 성산 백두산 그이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귀전에 들려오는듯 싶었다. 우리는 백두산천지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성지에서 한생에 잊지 못할 하루밤을 보내게 되였다.이곳에서 백두산혁명전적지관리소 강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종의 산 백두산을 우리 인민들이 얼마나 숭배하고 받들어왔는가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되였다. 백두산마루에서 천지호반으로 내려가는 공중려객삭도역에서 천지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릉선에는 국보유적인 《룡신비각》이 세워져있다.《룡신비각》에는 어제날 백두산에서 나라와 민족의 무궁번영을 지켜줄 천출위인이 출현하기를 목마르게 갈망하여온 우리 민족의 념원이 깃들어있다. 《조종의 산 백두산에 대하여 조선사람들이 얼마나 우러러 보았는가 하는것은 백두산 1920년대 우리 나라의 한 력사가는 천하의 명산인 백두산을 편답하고나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였다고 한다. 《단군도 백두산에서 나왔고 동명도 백두산에서 나왔다.이처럼 어마어마한 인걸이 백두산에서 난것은 큰 사변이였다.그러나 이 조종의 산 백두산에서 앞으로 세계를 평정할 특출한 명인이 나올지 누가 알겠는가.이렇게 놓고보면 단군이나 동명이 백두산에서 난것은 〈구우일모〉에 불과하다.》 천하제일위인들을 민족의 태양으로 대를 이어 높이 모시여 혁명의 성지로 빛을 뿌리는 백두산의 오늘을 그때 벌써 예언한듯싶다.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이처럼 백두산에 대한 숭상은 곧 조선의 밝은 앞날에 대한 기원이였고 조국에 대한 사랑이였다는것을 잘 알수 있었다. 반만년세월 오매불망 갈망하던 민족의 숙원은 빛나게 실현되였다. 우리는 선조들이 나라와 겨레의 운명을 책임져줄 민족의 영웅을 만나지 못해 몸부림치던 가슴아픈 력사를 비롯하여 수난많던 우리 민족사에 새겨진 백두산의 옛이야기들을 더듬으며 밤을 지새웠다. 절세의 위인을 모셔야 조종의 산도 승리와 영광, 존엄의 상징으로 끝없이 빛난다. 이 력사의 진리를 가슴에 바위처럼 들어앉게 하여준 백두산정에서의 밤을 영원히 잊지 못할것이다. 다음날 우리는 또다시 총총하던 별들이 하나둘 사라져가는 어뜩새벽이였다.온 세상에 유명한 백두산의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였다.마음이 너무 앞서서인지 시간의 흐름이 더디게만 생각되였다. 언제나 마음속으로 그려보던 백두산의 해돋이순간을 바야흐로 맞이하게 될 우리의 마음은 마냥 후더워올랐다. 백두산의 해돋이를 선명하게 보기가 쉽지 않다던데 과연 우리가 그런 명화폭을 생동하게 지면에 담아낼수 있을가.걱정도 없지 않았다. 가슴을 조이며 백두광야를 부감하는 우리의 눈길이 려명이 깃들기 시작한 백두의 하늘가에서 멎었다. 드디여 백두산의 천지조화가 시작되였다고 할가, 내 나라에 또 하루 새 아침이 밝아온다고 할가. 아득한 지평선의 한끝이 감빛으로 물들기 시작하였다.대교향곡의 전주곡이런듯 찬란히 밝아오는 려명속에 백두대지가 서서히 자태를 드러내놓았다.아름답다는 말로는 다 형언하기 어려운 그런 황홀한 순간이 눈앞에 펼쳐지고있는것이다.어느 사이에 우리의 몸도 노을빛을 받아 붉어져갔다.백두광야가 온통 금빛이다.향도봉마루도 어느 사이에 붉어졌다. 승리의 군기를 앞세우고 천만군사를 거느리고 개선하는 하늘도 땅도 열광하는 격동의 순간이였다. 《해돋이다!》 《백두산의 해돋이다!》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올랐다.심장이 가슴을 쿵쿵 울리는, 온몸이 창공에 붕 뜨는것만 같은 감개무량한 시각이였다. 동녘에서 서쪽하늘로 파도치듯 뻗어나가는 붉은 노을은 마치 거대한 붉은 기폭이 우주의 한끝에서 한끝까지 나붓기는듯싶었다.하늘과 땅이 모두 붉게 물드니 백두산은 그야말로 세상천지를 꽉 덮은 붉은 기폭에 휩싸여있는것만 같았다. (정녕코 아름답다! 황홀하다, 눈부시다.아니, 위대하다!) 소소리높은 기암절벽들과 천지의 푸른 물면, 아득한 천리수해를 온통 하나의 진홍빛으로 물들이는 일출장관-백두산의 해돋이! 과연 천하제일명산 백두산의 하많은 경치중에 으뜸가는 장관이라 하지 않을수 없는 내 조국의 자랑중의 자랑이였다. 어느해인가 백두산에 오르신 우리는 그날 백두산은 삽시에 세찬 눈보라, 돌풍을 일으키며 천지조화를 부렸다.백두산칼바람은 초당 25m로 강하게 불어쳤다고 한다. 백두산정에 거연히 서시여 해돋이를 바라보시며 혁명의 멀고 험한 길을 끝까지 가자면 우리의 신념은 백두산해돋이처럼 붉고 강렬해야 한다고 하신 간곡한 가르치심이 심장을 두드린다. 그날의 맵짠 백두산바람이 우리의 혁명적신념을 벼려주고 백두의 넋으로 마음을 순결하게 정화시키는 따스한 바람이 되여 흘러드는것만 같았다. 그렇다.우리는 화판에 남들이 못 본 명장면을 담기 위해 붓을 든 화가도 아니고 시어를 골라 명승의 아름다움을 력사에 남기고저 백두산에 오른 문인도 아니다. 어딜 가나 아름다운 조국산천의 뿌리가 어디에 있고 이 나라 절승경개의 시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온넋으로 체험하고싶어 백두산에 오르지 않았던가. 크나큰 소원을 성취한 격정에 우리는 선듯 발걸음을 옮길수 없었다. 그럴수록 눈보라 휘몰아치는 맵짠 겨울에 백두산에 올라 해돋이순간을 맞이하지 못한 아쉬움이 다시 갈마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이해의 겨울에는 백두산정에 또다시 올라 백두산의 진짜매력을 온넋으로 체험하리라.) 우리는 이렇게 마음다지며 백두산천지에로 향하였다. 백두산에서의 또 하나의 희한한 경관을 이루는 천지호반이 《이젠 내 차례입니다.》라고 하면서 어서 오라 손저어 반기는것만 같았다. 글 본사기자 김성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