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8월 16일 로동신문

 

만리마시대 전형들의 모범을 따라배우자

뜨거운 인간애와 높은 의술을 지닌 우리 당의 참된 보건전사

황해북도인민병원 안과 책임의사 김명월동무에 대한 이야기

 

대학을 졸업하고 안과의사로 30여년,

너무나 평범한 한 보건일군의 삶을 우리 당은 어찌하여 시대의 전렬에 값높이 내세워준것인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보건일군은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고 돌보는것만큼 누구보다도 당에 충실하고 인민을 사랑하며 책임성과 기술실무적자질이 높아야 합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우리의 보건은 사회주의제도의 얼굴이라고 가르쳐주시였다.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인 황해북도인민병원 안과 책임의사 김명월동무의 삶은 이 영예로운 보건초소에서 흘러갔다.

그는 수십년세월 뜨거운 정성과 높은 의술로 실명되였거나 실명위기에 처한 수천명의 환자들에게 광명을 안겨주었고 그들의 심장속에서 사회주의만세소리, 로동당만세소리가 뜨겁게 울려나오게 하였다.

보건초소를 당이 맡겨준 성스러운 혁명초소로 여기고 지혜도 정력도 다 바쳐 책임적으로, 성실하게 일해온 김명월동무이기에 우리 당은 그의 삶을 그렇듯 시대의 단상에 높이 내세워준것이다.

 

절대로 흐려질수 없다

 

황해북도인민병원 안과를 찾는 환자들의 얼굴빛은 마치 정든 집에 들어서듯이 누구라없이 밝다.그들을 맞이하는 책임의사 김명월동무의 얼굴에도 늘 미소가 어려있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환자이기 전에 친부모, 친형제, 친자식으로 여기고 밝은 미소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살뜰히 대하는 김명월동무가 입고있는 하얀 위생복에는 정성이라는 두 글자가 또렷이 새겨져있다.

정성,

우리 당이 의료일군들에게 안겨준 이 두 글자에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우리 인민을 위해 멸사복무할것을 바라는 높은 뜻이 담겨져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찌기 정성은 사회주의보건의 속성이며 생명이라고 가르쳐주시면서 이 땅우에 가장 인민적인 보건제도를 마련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의료일군들이 환자들에게 정성을 다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그 높으신 뜻을 안다는것과 심장에 새기고 사업과 생활에 구현한다는것은 차이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7년전 5월 어느날 황해북도인민병원 안과로는 한쪽눈을 상한 봉산군의 한 소년이 후송되여왔다.그때 환자의 눈을 검진한 김명월동무는 생각이 깊었다.다시 회복시키기 어려울 정도로 눈을 심하게 다쳤던것이다.지금까지 숱한 사람들의 눈을 치료한 그였지만 이런 병상태는 처음이였다.

자식이 장난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눈을 상하게 된 경위를 눈물속에 이야기하며 정말 한눈을 잃게 되는가고 안타까이 묻는 부모의 정상이 가슴을 아프게 파고들었다.이제 겨우 7살, 아직 앞길이 구만리같은 소년이 한쪽눈을 영영 상실하게 된다니 부모의 마음인들 오죽하랴 하는 생각으로 김명월동무의 가슴은 미여지는듯 하였다.그도 두 자식의 어머니였다.

(만일 저 소년이 내 자식이라면…) 하는 생각이 갈마드는 순간 그의 귀전에는 어버이수령님께서 뜨겁게 하신 교시의 구절구절이 다시금 되새겨졌다.

주체49(1960)년 8월 전국천리마작업반운동선구자대회에 참석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토론에 참가한 한 청년작업반장이 앞을 보지 못하는 사실을 아시고 이 좋은 세상을 두고도 보지 못하는 맹인들의 마음이 얼마나 괴롭겠는가고 하시며 우리 나라에서는 맹인들이 없어야 하며 따라서 맹인동맹도 없어야 한다고 절절히 교시하시였다.

그 이야기는 30여년전 평양의학대학(당시)을 졸업하고 안과의사로 갓 일을 시작한 김명월동무에게 천리마대고조시기부터 안과분야에서 일해온 로력영웅이며 박사인 로의사가 들려주었었다.

인간에 대한 육친의 사랑이 마디마디 흘러넘치는 어버이수령님의 그날의 간곡한 가르치심은 안과의사로 첫걸음을 내짚은 그때에나 오늘에나 변함없이 김명월동무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있어 그의 심장을 뜨거운 인간애로 불태워주었다.김명월동무는 그 아이를 품에 꼭 안았다.

《울지 말아.너는 꼭 눈을 고칠수 있어.앞으로 커서 인민군대도 되고 과학자도 되고 영웅도 돼야지.》

이렇게 환자치료에 달라붙은 그에게는 낮과 밤이 따로 없었다.치료에 겁을 먹은 어린 환자의 응석과 투정도 달게 여기며 때로는 따뜻이 애무도 해주고 꾸지람도 하며 온갖 심혈을 기울이는 그 모습은 친어머니의 다심한 모습이였다.

그가 집에 퇴근하는 날이 있다면 소년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였다.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성의껏 식사를 보장해주었지만 자기의 성의가 담긴 음식을 들게 하고싶어 제손으로 한가지한가지 찬을 만들었던것이다.이런 정성에 의해 소년이 눈을 고치고 퇴원하는 날이 왔다.

떨어지기 서운한듯 김명월동무의 손을 잡고 놓을줄 모르며 울먹울먹하던 소년이 《큰엄마!》라고 하며 와락 품에 안기는것이였다.

진정 김명월동무에게 있어서 환자는 친아들딸이고 한식솔이였다.의사를 바라보는 환자들의 맑은 눈동자에 세상에서 가장 인민적인 사회주의 우리 보건제도가 비끼기에 김명월동무는 필요하다면 자기의 눈을 바치는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안과의사 리상익동무에게는 김명월동무에 대한 하나의 감동깊은 이야기가 간직되여있다.그것은 의사가 의사를 《수술》한 이야기였다.

언제인가 안과분야에서 난치성질병으로 인정되고있는 비루스성각막염을 오래동안 경과해온 은파군의 한 녀성이 입원한적이 있었다.환자의 각막천공면이 넓어 봉합할수도 없었고 자칫하면 눈알을 보존하기도 어려운 상태였다.며칠동안 여러가지 치료들을 진행하였으나 병세는 점점 더 심해져 날자를 다투었다.방도는 오직 하나 환자의 체질적특이성으로 하여 피형이 같은 사람의 결막을 떼내여 동종결막이식수술을 진행하는것이였다.

어느날 협의회가 끝난 뒤 입원실로 향하는 리상익동무의 팔소매를 누군가가 슬며시 잡아당겼다.김명월동무였다.

《점심에 시간을 좀 내주세요.》

《?》

《수술준비를 해야겠어요.》

그러면서 김명월동무는 자기는 환자와 피형이 같다고, 그러니 선생이 집도를 해달라고 속삭이듯 말하였다.리상익동무는 대번에 거절하였다.그가 환자에게 자기 결막을 이식해주려는것이였다.다른 수술과 달리 각막천공범위가 넓어 이식편을 크게 떼내야 하는 위험한 수술이였다.눈에 칼을 대지 못하겠다고, 결막을 넓게 떼내면 앞으로 어떻게 된다는것을 너무나 잘 아는 명월선생이 왜 그러는가고 안타깝게 호소하자 그는 말하였다.

《환자들이 우리 의사들을 바라보고있어요.사회주의 우리 보건제도를 굳게 믿는단 말이예요.그런데 우리의 나약한 모습을 그들이 본다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설사 내눈이 흐려져도 우리 보건제도에서 그들의 맑은 눈은 절대로 흐려져서는 안돼요.》

그 말에 리상익동무는 머리를 숙이였다.리상익동무는 김명월동무가 그런 결심을 내리기에 앞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였는가를 후날 그의 고백을 통하여 알게 되였다고 한다.

수술장에는 두명의 의사가 있었다.아니 한명의 의사와 한명의 《환자》가.수술대우에 눕는 김명월동무를 보며 리상익동무는 한동안 수술칼을 든채 움직일줄 몰랐다.가슴이 뭉클 젖어들었다.

얼마후 김명월동무의 눈에서 떼낸 이식편이 환자의 눈에 옮겨졌다.수술은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

환자는 퇴원을 앞두었을 때에야 리상익동무로부터 이 사실을 알게 되였다.그날 김명월동무는 담당한 환자들이 퇴원할 때면 늘 그러하듯이 가정에서 마련한 새 신발과 새옷 그리고 당과류며 생활필수품을 환자에게 안겨주었다.

《그 귀한 눈을 앞으로 잘 관리해야 해요.》

친어머니의 정이 넘치는 그의 곡진한 당부에 환자는 《흑-》 하고 흐느끼며 목메인 소리로 대답하였다.

《선생님의 눈은 귀한 보배눈입니다.그런데…》

《별걱정을 다해요.난 안과의사예요.사람들의 눈을 고쳐주는 안과의사가 어떻게 눈을 앓을수 있겠어요?!》

김명월동무의 얼굴은 웃고있었지만 환자의 두볼로는 뜨거운것이 흘러내렸다.

인민의 기쁨을 자기의 기쁨으로 여기고 인민을 위해 자기를 바칠 때 더없는 긍지와 보람을 느끼는것이 김명월동무의 체질화된 인생관, 행복관이다.

그의 치료사업은 비단 병원에서만 진행되지 않았다.

인민을 위하는 우리 당의 사랑이 끝이 없듯이 환자들을 위하는 우리 보건일군들의 정성도 끝이 없어야 한다는것이 김명월동무의 지론이다.

그는 환자들의 눈을 수술한 후에도 그리고 그들이 퇴원한 후에도 그들의 건강관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병이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늘 마음을 썼다.

송림시의 한 전쟁로병의 눈을 수술한지 7년이 지났지만 오늘도 그의 담당의사가 되여 건강관리에 극성인 김명월동무이다.멀리 떨어져있지만 친자식된 심정으로 눈상태며 그 관리에 이르기까지 세세히 마음썼으며 이동수술치료를 나가면 성의껏 준비한 물자를 가지고 집에 꼭꼭 찾아갔다.그만이 아닌 도안의 시, 군들에서 사는 전쟁로병들의 눈치료에도 정성을 기울인 김명월동무였다.

이렇게 그가 오늘까지 혈육처럼 다심한 정을 기울이고있는 사람들은 한두명이 아니다.도는 물론 평안남도, 자강도를 비롯한 전국각지에 있었다.그들속에는 어린이도 있고 청년도 있으며 로인들도 있다.

김명월동무는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생일도 꼭꼭 수첩에 적어넣었다가 제손으로 성의껏 음식을 만들어 푸짐한 생일상을 차려주었고 가정에 별식이 생기면 환자들에게 가져다주고서야 마음이 편해하였다.

사회주의보건제도를 지켜선 우리 보건일군들의 자질과 풍모에서 가장 중요한것이 바로 인민에 대한 관점이며 멸사복무정신이다.

지금 당에서는 우리 인민의 지위를 위대한 수령님들을 받들어모시는 높이에까지 올려세우고 인민을 위하여서는 천만금도 아끼지 않고있다.당의 품속에서 성장하고 당의 뜻을 따르는 보건일군이라면 마땅히 한명한명의 환자를 자기의 살붙이처럼 여기고 친혈육의 정을 기울여야 한다.

이렇게 놓고볼 때 30여년을 인민과 함께 울고웃으며 인민을 위하여 아낌없이 기울여온 김명월동무의 불같은 정성과 인간애는 얼마나 고결한것인가.

 

의술을 생명처럼 여기고

 

보건일군들이 인민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진다는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아무리 뜨거운 정성과 인간애를 지녔다고 하여도 높은 의술이 없으면 환자치료에서 성과를 거둘수 없다.

김명월동무는 높은 의학과학기술과 풍부한 림상경험을 소유하기 위해 피타는 노력을 기울이였다.

언제인가 어느 한 나라의 의학기술대표들이 황해북도인민병원에 찾아온적이 있었다.김명월동무는 그들과 함께 치료활동을 벌리는 과정에 생각이 깊어졌다.그들은 백내장수술을 하면서도 자기들만이 이런 높은 수준의 수술을 할수 있다고 자처하였다.더우기 현대적인 의료기구가 없이는 어림도 없다고 팔을 내저었다.

김명월동무는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비록 지방병원이지만 인공수정체이식수술을 자체로 진행해야 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김명월동무에게는 불현듯 시아버지의 말이 되새겨졌다.

시아버지는 지금 조건이 조국해방전쟁시기에 비하겠느냐고, 자기의 피와 땀으로 숱한 전우들을 구원하고 조국을 수호하는데 이바지한 군의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잠을 이룰수 없다고 추억을 더듬군 하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시아버지는 안영애영웅이 복무하던 사단군의소의 군의였다.그가 들려주는 1950년대의 가지가지의 이야기들은 생소한 탐구의 길에 나선 김명월동무에게 백배의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우리의 힘, 우리의 의학기술로 사회주의보건제도를 더욱 빛내이려는 결심이 그의 가슴속에 바위처럼 들어앉았다.

김명월동무는 스스로 높은 목표를 내세웠다.그는 다년간 고심참담한 노력으로 축적한 의학지식과 경험에 기초하여 안과분야에서 실명률과 발병률이 가장 높은 질병인 백내장에 대한 치료에 인공수정체이식수술을 도입하기 위한 그야말로 치렬한 창조전, 두뇌전을 벌리였다.병원에서 살다싶이 하며 치료사업을 벌리는 속에서도 사색과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

두눈이 충혈되고 입술은 부르텄지만 사회주의보건제도를 지켜선 전초병이라는 자각이 있었기에 그는 조금도 긴장성을 늦추지 않았다.낮에는 환자치료사업을 하고 밤늦도록 의학도서들을 파고들었다.그리고 안과치료에서 기본인 수술치료수준을 높이는데 힘을 넣었다.최고의 미세수술인 안과수술은 높은 의학지식에 기초한 섬세한 수술수기를 요구했다.

그는 치료경험을 보다 풍부히 하기 위해 중앙병원의 이름있는 안과의사들을 찾아갔다.그들의 적극적인 방조밑에 수술수기를 부단히 련마해나갔다.피타는 노력이 있어 그는 끝내 인공수정체이식수술의 핵심기술을 터득하게 되였다.

하지만 림상실천은 높은 책임감과 강의한 투지와 용기를 필요로 하였다.

김명월동무는 12년전 8월의 일을 오늘도 잊지 못하고있다.그때 한 녀성농장원이 병원에 입원하였다.환자의 치료대책을 놓고 여러차례 의사협의회가 진행되였다.협의회에서는 환자를 수도의 중앙병원으로 파송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현대적인 의료기구도 부족하고 수술경험도 없는 병원에서는 백내장수술이 불가능하다는것이 참가자들의 한결같은 생각이였던것이다.협의회가 마감에 이르렀을 때 김명월동무의 목소리가 울리였다.

《환자는 백내장에 합병증까지 있습니다.시간을 지체하면 실명을 면치 못합니다.저는 결코 파송이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집도를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사실 환자를 담당한 때부터 김명월동무는 병상태에 따르는 각이한 치료방법을 모색하였었다.하지만 정작 수술을 앞두었을 때 긴장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한 인간의 운명과 관련된 말그대로 사활적인 문제가 아닌가.

수술을 앞두고 김명월동무는 밤깊도록 잠들지 못하였다.안해의 긴장된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남편인 현성린동무가 조용히 다가왔다.그는 안해와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일군이였다.

《인민들의 눈을 다름아닌 자기가 책임졌다는 자각을 가지면 힘이 날거요.당신이야 마음만 먹으면 무조건 해내는 성미가 아니요.》

언제나 자기를 리해해주고 말없이 떠밀어준 남편의 그 말이 김명월동무에게는 더없이 고마왔다.

첫 인공수정체이식수술은 성공이였다.그후 김명월동무는 림상실천을 통하여 인공수정체이식수술수기를 공고히 하였다.

정력적이며 꾸준한 학습과 탐구는 그에게서 생활의 뗄래야 뗄수 없는 한부분이다.

언제인가 퇴근시간이 지나도록 책에 묻혀있는 그에게 과의 젊은 의사가 찾아왔다.그때 김명월동무는 다음날 병원에서 진행되는 의학과학토론회에 출연할 준비를 하고있었다.의사가 김명월동무에게 보건성적으로도 실력있는 안과의사가 왜 토론회를 앞두고 안절부절 못하는가고 묻자 그는 나직이 말하였다.

《의사가 단 한번이라도 실수하면 사람의 생사가 결정되게 돼요.그래서 당에서는 우리에게 인간생명의 기사라는 값높은 칭호를 안겨준것이 아니겠어요.그것은 영예이기 전에 의무이고 책임감이예요.》

그러면서 한번 더 검토해보아야 한다며 다시 책에 시선을 주는것이였다.

김명월동무에게 늘 모자라는것은 시간이였다.가정을 돌보면서 남편의 뒤바라지도 하고 환자치료도 하느라 늘 바쁜 그였지만 언제 한번 실력을 높이기 위한 사업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받은 수십개의 발명증서, 창의고안증서, 과학기술성과도입증이 그대로 말해주고있다.

안과수술용건전지소작기, 안과수술용사시각측정기…

《소절개무봉합에 의한 인공수정체이식수술》이라는 과학기술성과도입증은 김명월동무가 56살에 받은것이다.

지난해말 황해북도인민병원 안과 책임의사 석사 김명월동무는 주체107(2018)년 황해북도최우수과학자, 기술자증서를 수여받았다.수여식에서 김명월동무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보건일군들에게 정성이 명약이라면 그 명약이 최대의 효험을 나타내게 하는 길은 높은 의술과 실력을 소유하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에서는 우리 보건일군들을 믿고 인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맡기였습니다.저는 당에서 그토록 아끼는 우리 인민을 위해, 사회주의제도의 얼굴인 우리의 보건을 더 굳건히 지키기 위해 앞으로도 과학기술의 주인이 되겠습니다.》

 

우리 과, 우리 병원

 

우리 과, 우리 병원,

이것은 황해북도인민병원 안과의 오랜 의사들로부터 대학을 졸업하고 갓 배치된 성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스스럼없이 터놓는 말이다.여기에는 개인의 명예보다 집단의 영예를 더 소중히 여기고 모두가 한마음한뜻이 되여 사회주의보건제도의 우월성을 더욱 높이 발양시키려는 하나의 지향이 맥박치고있다.

10여년전부터 이곳 의료일군들이 황해북도안의 시, 군들을 찾아 진행하는 이동수술치료는 이런 집단주의정신을 더 깊이 심어주는 의의깊은 계기라고 말할수 있다.

김명월동무가 인공수정체이식수술에서 성공하고 림상실천에서 그 수기를 공고히 하던 10여년전이였다.어느날 과의 의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뜻밖에도 그가 우리모두 인공수정체이식수술을 배우는것이 어떤가고 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수술은 시작해서 20분이면 끝납니다.그런데 도안의 시, 군들에서 환자들이 우리 병원을 찾아오자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립니까.우리가 그들을 찾아갑시다.힘은 들어도 그만큼 보람은 클거예요.》

그러자 한 의사가 처음 해보는 일인데 혹시 수술결과가 좋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는가고, 환자를 중앙병원에 파송하면 그래도 안전하지 않겠는가고 하는것이였다.

김명월동무는 그의 심정이 십분 리해되였다.그러나 그는 머리를 저었다.

그는 의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 나라에서 전반적무상치료제가 실시된 때로부터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다.오늘 도시로부터 농촌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방방곡곡에 정연한 의료봉사체계가 세워지고 현대적인 설비를 갖춘 종합적인 의료봉사기지와 전문화된 치료예방기관이 튼튼히 꾸려져있어 인민들은 국가의 의료상혜택을 받고있다.당의 인민적인 보건정책의 우월성이 더 높이 발양되게 하려면 보건일군인 우리가 마음의 신들메를 더 바싹 조여야 한다.천리마시대에 한 중앙병원의 안과집단은 대다수가 애기어머니들이였지만 애기를 업고 환자들을 찾아 전국각지로 내려갔다.환자가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든 우리 보건일군들이 찾아가야 하고 당의 보건정책을 실천으로 받들어야 한다.

그의 절절한 호소는 의료일군들을 분발시켰다.인공수정체이식수술방법을 배우기 위해 누구나 노력하였다.의료일군들의 열의도 높았지만 교사인 김명월동무의 열정은 비할바없이 높았다.치료사업으로 바쁜 김명월동무였으나 수술방법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알려주고 참고할 책들도 안겨주었으며 수술과정을 통하여 숙련하도록 이끌어주었다.수술이 끝나면 론쟁과 토론도 실속있게 조직하여 누구나 수술수기를 자기의것으로 만들도록 하였다.한가지 수술수기를 익히기 위해 수백번의 반복동작을 해야 하였다.손에 자개바람이 일고 손목아픔으로 숟가락도 들지 못하는 때도 있었다.

그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김명월동무의 이런 목소리가 의료일군들을 고무해주었다.

보건사업은 실무적인 사업이 아니다.우리 당의 인민사랑, 우리 나라 사회주의보건제도의 혜택이 인민들에게 가닿게 하는데서 우리 보건일군들은 전초선에 서있다고 말할수 있다.

모두가 높은 수술수기를 소유하고 환자치료에서 제기되는 기술적문제들을 제힘으로 척척 풀어나가게 된 오늘에 와서도 의료일군들은 그때 김명월동무가 하던 말을 되새겨보군 한다.그런 마음으로 의료일군들은 환자들을 찾아 끊임없이 걸었다.

송림시, 금천군, 신계군…

이동수술치료의 나날 때식을 건느며 하루에도 수십명의 환자를 수술하느라면 육체적부담이 간단치 않았다.하지만 긍지와 보람은 컸다.

환자들이 이렇게 현지에까지 찾아와 치료해주어 고맙다고 말할 때, 수술후 광명을 받아안고 위대한 수령님들의 태양상모자이크벽화에 꽃다발을 드리며 고마움의 눈물로 두볼을 적실 때면 그들은 온몸에 새 힘이 솟구쳐올라 발걸음을 더욱 힘있게 내짚군 하였다.

우리의 사회주의보건제도가 제일입니다!

격정에 젖은 그 목소리와 더불어 황해북도인민병원 안과는 도안의 시, 군주민들속에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우리 과, 우리 병원, 우리 보건제도.

이 말과 더불어 오늘 안과는 도인민병원적인 본보기단위로 되고있다.

깨끗한 치료실과 입원실, 높은 치료실적…

이것만이 아니다.서로 돕고 위하는 집단주의인생관이 꽉 차넘치는 안과에서는 가지가지 아름다운 소행들이 수없이 꽃펴나고있다.

과의 의사인 영예군인 오금주동무가 잊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가 안과에 배치되여 첫 집도를 앞둔 날 저녁이였다.

그의 긴장된 표정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던 김명월동무는 웃음을 지으며 함께 퇴근하자고 말하였다.

그들이 병원을 나섰을 때였다.불편한 다리로 걷는 오금주동무의 팔을 다정히 잡아주는 김명월동무에게 그의 눈길이 와닿았다.

그의 눈빛은 (제가 꽤 첫 수술을 해낼가요?) 라고 말하는듯싶었다.

김명월동무는 말없이 다시 그를 이끌었다.그들이 닿은 곳은 위대한 장군님의 태양상모자이크벽화앞이였다.

《금주동무야 병사시절 위대한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을 받아안은 녀병사가 아니예요.》

1997년 가을 구분대의 군인들과 함께 군사임무수행중에 있던 오금주동무는 뜻밖의 일로 한쪽다리를 잃게 되였다.주변사람들과 전우들이 급히 달려와 지혈을 시키고 그를 담가에 눕히였다.오금주동무는 자기를 둘러싼 사람들을 바라보았다.눈물에 젖은 전우들, 가슴아파하는 사람들…

오금주동무는 그들을 안심시키고싶었다.그는 담가채를 지그시 그러쥔채 노래 《적기가》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때 오금주동무는 19살의 평범한 병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의 소행자료를 보고받으시고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오늘도 금주동무가 혁명의 꽃을 변함없이 피워가기를 바라고계신다고 생각하면 어떤 어려운 임무도 능히 해낼거예요.》

눈굽이 젖어들었다.과에 새로 들어온 자기가 하루빨리 맡은 임무에 정통하도록 림상경험도 알려주고 기술실무수준을 높일수 있게 함께 수술에 참가하여 차근차근 배워주던 일, 고향을 멀리 떠나 외지에서 애로가 있을세라 가정에도 자주 찾아와 생활의 구석구석을 친부모의 심정으로 살펴주던 살뜰한 모습…

《고맙습니다.당세포위원장동지!》

당세포위원장, 그는 진정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가르쳐주신것처럼 대중의 요구에 무한히 성실하고 대중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일하는 참된 복무자였고 자기 집보다 동지와 집단을 먼저 생각하며 심신을 바치는 어머니였다.

김명월동무는 과의 의사들뿐아니라 간호원들의 생활에도 언제나 세밀한 주의를 돌려 그들모두가 우리의 사회주의보건제도를 받드는 길에서 값높은 삶을 빛내이도록 이끌어주었다.

어느 한 자본주의나라에 갔던 과의 한 의료일군이 돌아왔을 때였다.김명월동무는 과성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가 보고 느낀 그 나라의 의료부문 실태에 대하여 이야기하도록 하였다.눈수술비며 치료비, 약값이 얼마라는 등 실례를 들어가며 하는 그의 말을 들으며 의료일군들이 받은 충격은 컸다.그의 말이 끝나자 김명월동무는 최근시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크나큰 은정속에 훌륭히 일떠선 류경안과종합병원에서 돈 한푼 내지 않고 치료를 받고있는 우리 인민들과 어린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목격한 사실에 대하여 감동에 젖어 말하고나서 이렇게 뒤를 달았다.

《의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우리 보건일군들에게는 순간도 떨어져선 살수 없는 어머니당의 품이 있습니다.그 품을 지키는것이 우리 보건일군의 책임이고 영예이며 긍지입니다.우리모두 당의 참된 보건전사가 됩시다.》

이런 참된 보건일군들이 있어 사회주의 우리 보건제도의 우월성이 더욱 높이 발양되며 인민들이 터치는 사회주의만세소리, 로동당만세소리가 끝없이 울리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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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여년간 의료일군으로 일하는 나날 김명월동무에게는 호칭이 많이 늘어났다.

우리 어머니, 우리 안과선생님, 우리 당세포위원장…

집단과 인민의 사랑과 존경이 비낀 그 부름에 그의 한생이 집약되여있다.

김명월동무의 값높은 삶은 우리에게 말해주고있다.

만리마속도창조운동이 힘있게 벌어지고있는 오늘 그가 누구이든 자기 일터를 사회주의수호전의 최전방으로 여기고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지혜도 열정도 깡그리 바치는 사람이 바로 우리 시대의 참된 애국자라는것을.그리고 이런 애국자들이 지켜선 일터마다에서 만리마시대를 대표할수 있는 자랑찬 기적과 위훈이 창조된다는것을.

글 본사기자 현경철
본사기자 김진욱
사진 본사기자 최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