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8월 17일 로동신문

 

유구한 력사와 절승경개로 자랑높은 내 조국

동해명승 칠보산을 찾아서(2)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참으로 일만경치를 이루고있는 칠보산은 자기의 독특한 자연미로 하여 세상에 자랑할만 한 명산입니다.》

천불봉의 오른쪽옆에 마치 룡대가리가 달린 큰 종을 허공에 매달아놓은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종각봉이라고 부르는 봉우리가 절묘한 자태를 드러내놓고있었다.그뒤에 솟아있는 봉우리마다에는 뾰족뾰족하게 《송이버섯》들이 쌍을 지어 자라고있었다.

칠보산의 유명한 특산인 송이버섯이 무수히 돋았는가 바위로 굳어진 《송이버섯》들은 보면 볼수록 섬세하고 생동했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시원한 한들바람에 독특한 송이버섯향기가 금시라도 풍겨오는듯 하니 아서라, 그 어찌 칠보산송이버섯철을 한철이라고만 하랴.여기 승선대에 오르면 사시장철 송이버섯을 볼수 있으리.

쉬이 걸음을 옮기지 못하는데 송이버섯바위앞에 서있는 부부바위는 또 우리모두를 칠보산의 젊은 부부가 감격적으로 상봉했다던 수천년전 그날에로 이끌어가는것이 아닌가.

먼 옛날 칠보산에 백년가약을 맺고 살아오던 젊은 부부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외적이 침입해오자 남편은 사랑하는 안해와 작별을 하고 전장으로 떠났다.

안해는 하루를 십년맞잡이로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삼년 석달이 지나서 드디여 남편이 장수가 되여 돌아온다는 꿈같은 소식이 마을에 전해졌다.

안해는 시집오던 그날처럼 단장을 하고 이곳까지 달려나와 준비했던 인사말도 미처 하지 못한채 남편의 품에 와락 안겼고 이들부부는 오늘까지도 상봉의 기쁨을 끝없이 속삭이고있다.…

해마다 봄이 오면 부부바위우에는 진달래꽃이 어김없이 피여나는데 이것이 바로 유명한 칠보산절경중의 하나였다.

한 시인은 부부바위를 보며 이렇게 노래했다.

 

오는이 가는이 정을 주며 바라보네

내칠보바위동네 동구길에서 얼싸안은 부부바위

례문암 지나지나 백년해로 축복받고

멀리 전장으로 떠나갔던 정든 님이란다

고향땅을 지키며 님을 그리던 새각시란다

가까이 가지 말아 가까이 가지 말아

삼년 석달 기다려 만난 저 부부 점직해 떨어질라

 

참으로 보는것마다 기암이요, 걸음마다 명소들이여서 보면 볼수록 새겨두고싶은 명산의 아름다움이였다.

《제일명산》이라는 글발이 새겨져있는 금강봉을 지나 가마바위와 례문암앞에 이르니 여기서는 와- 하고 등산객들이 웃음보를 터치고있었다.

칠보산에 와서 이 례문암을 통과하지 못하면 누구든 두고두고 후회한다고 한다.

산이 하도 보배로우니 기암마다 깃들어있는 전설 또한 흥미로와 서로서로 짝질세라 례문암을 통과하는데 젊은이, 늙은이 할것없이 모두가 신랑, 신부가 되였다.

유명한 피아노바위가 가까이에서 바라보인다는 탄금대, 기막힌 절경이 또 우리를 기다리고있었다.

백년이상 묵은 비슬나무뿌리를 다듬어세운 표식비가 칠보산의 유구한 력사를 말해주고있는데 사람이 등받이의자에 앉아 피아노를 치는 모양을 한 피아노바위가 정말 신통했다.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피아노반주에 맞추어 가수가 노래를 하는듯 가수바위가 우뚝 서있고 만가지 책을 무드기 쌓아놓은듯 한 만서암도 있었다.

피아노바위는 력사적시기마다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워왔다고 한다.고려시기에는 책걸상과 같다고 해서 교의암, 조선봉건왕조시기에는 사람이 걸상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탁자암, 해방전에는 풍금바위로 불리우다가 오늘은 피아노바위로 되였다고 한다.

피아노연주회에 참가하러 오는지 아니면 칠보산경치를 보러 떨쳐나섰는지 남녀로소가 줄지어 오는듯 한 행렬바위가 솟아있고 아래로는 거북무리바위, 조개무리바위들이 경관을 펼치고있었다.

멀리로는 천연기념물인 금강굴도 한눈에 바라보였다.

내경대구역으로 가는 탐승길우에 세워진 부감대에 서니 또 다른 황홀경이 펼쳐졌다.

승선대에서 보았던 부부바위가 여기서는 더 크고 생동하게 안겨오는데 기가 딱 막힐 정도로 신통했다.

부부바위 왼쪽에 할아버지, 할머니바위가 솟아있었다.

아들이 장수가 되여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맨발로 달려나온 로인내외였지만 며느리보다 한발 늦었던것이다.

아들, 며느리가 뜨겁게 포옹하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며 할아버지는 《허허, 로친네, 우리도 저런 때가 있었던가?》하고 껄껄 웃는것만 같았다.

하늘을 찌를듯 우뚝 솟아 그 모습이 우렁찬 타종암과 유람선바위, 대모암, 보살바위를 구경하고나서 우리는 내경대로 올랐다.

기암명소들이 둘러선 한가운데서 경치구경을 하기 좋은 곳이라고 하여 내경대라고 한다고 한다.

이곳에 올라서니 승선대의 위용이 이채롭게 안겨오고 약태봉과 옥태봉, 늘 구름이 산허리를 감돌고있다고 해서 운주산이라고도 부르는 상매봉도 한눈에 바라보였다.

울창한 수림 또한 기암절벽들과 조화를 이루며 명산의 품위를 유감없이 돋구어주는데 어디선가 딱따구리의 나무두드리는 소리가 경쾌한 메아리를 남기며 울려퍼져 더더욱 신비경을 자아냈다.

칠보산지구는 동식물자원도 풍부하여 세계생물권보호구로 등록되여있는 명산중의 명산이다.

칠보산에는 개심사약밤나무, 신의대를 비롯한 특산식물들과 약용식물들을 포함하여 풍부한 식물자원이 있다고 한다.뿐만아니라 곰, 메돼지 등 포유류와 새류, 물고기류를 포함하여 동물자원도 매우 풍부하다는것이다.들을수록 흐뭇하였다.

숙소인 외칠보려관으로 향하는 길에서 우리는 관광도로기슭에 솟아있는 토끼바위와 범바위앞에서도 걸음을 멈추었다.

금수봉을 지나서 한굽이를 돌아 길목의 왼쪽에 서있는 토끼바위는 신통히도 언제 맹수가 나타날지 몰라 주위를 긴장하게 살피며 내려가는 토끼를 방불케 했다.토끼바위가 얼마나 신통했는지 언제인가 이곳을 찾았던 한 외국인이 안내원에게 저 토끼종자를 구해가지고 갈수 없는가고 묻는 바람에 웃음보가 터진 일이 다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종자가 좋다고 한들 칠보산의 맑은 물과 신선한 공기를 떠나서야 어찌 살찐 토끼를 기대할수 있을것인가.

그로부터 얼마쯤 떨어진 곳에 호구암이라고도 부르는 범바위가 있었다.

범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 따웅- 하고 울부짖는 모양그대로였다.

외칠보려관에 려장을 푼 다음에도 우리는 밤을 새워가며 칠보산의 명소와 기암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미처 다 보지 못한 내칠보의 명소들과 그와 더불어 전해져내려오는 가지가지의 전설들은 몇밤을 지새우며 들어도 모자랄 정도로 끝이 없었다.

이제 외칠보와 해칠보는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할것인가.

잠들수 없는 명산에서의 밤은 바닥없이 깊어가는데 우리의 마음은 쉼없이 기행길을 이어가고있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가 외칠보를 향해 서둘러 길을 떠나려는데 김갑성학술연구사가 걸음을 멈춰세웠다.

《저 바위를 보십시오.커다란 매가 산봉우리에 앉아 우리를 내려다보는것만 같지 않습니까?》

그가 가리키는쪽을 바라보니 큰 매를 방불케 하는 바위가 아래를 굽어보는것이 장관이였다.본래 이 바위는 학이 춤을 추는것 같다고 하여 학무대라고 불리워왔다.

칠보산을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외칠보의 학무대는 학이 날개를 펼치고 춤을 추는것 같다고 하여 학무대라고 한다는데 바위가 학보다는 매 같아보인다고, 앞코숭이가 신통히 매같이 생겼다고 하시며 학무대를 매바위라고 하는것이 좋겠다고 친히 바위이름을 고쳐주시였다.

이렇게 되여 자기의 진짜이름을 찾은 매바위였다.

알고보니 려관이 자리잡은 곳도 하나하나가 깊은 의미를 담은 명소와 기암들로 이루어져있었다.

봉황새무리가 두세층으로 빼곡이 무리져 내려앉은것 같은 봉서암, 류다른 생김새로 누구나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수 없게 하는 웃음바위, 순박하고 근면한 청춘남녀들의 사랑이야기가 전설로 된 처녀바위, 총각바위, 고양이바위…

간밤에 내린 비로 어지간히 물량이 많아진 보촌천을 따라 뻗어나간 관광도로로 가느라니 한굽이 돌면 기암절벽, 두굽이 지나면 담소들이여서 시종 우리의 마음은 즐거웠다.

우리를 안내하는 학술연구사는 외칠보는 생김새와 갖춤새가 수려하기 그지없다고, 조약대정각에 올라 기암절벽들을 감도는 보촌천과 무쌍하게 솟아있는 만물상을 굽어보는 쾌감은 정말 이를데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원형적이며 아기자기한 갖춤새로 하여 녀성적인 미를 자랑하는 내칠보와는 달리 큼직큼직한 형태를 이루고 웅장하고 기세찬 기상을 드러내고있는 외칠보는 활달하고 개방적인 남성미를 나타내는 절승경개라고 덧붙였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굽이굽이 아스라하게 뻗어나간 탐승도로를 따라 만물상조약대정점에 이르렀다.

먼 옛날 한 젊은이가 장수가 될 결심을 안고 열심히 훈련하여 봉우리정점에서 눈뿌리 아득한 하천까지 단숨에 뛰여내렸다는 만물상조약대,

짙게 서린 운무속에서도 초록색띠를 두르며 기세차게 흘러가는 보촌천과 계곡을 따라 구불구불 뻗어나간 관광도로가 한눈에 안겨왔다.삼삼오오 떼를 뭇고 칠보산관광의 멋을 즐기는 인민들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였다.

천연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푸르싱싱 자라는 소나무의 아지마다 구슬같이 맺힌 맑은 이슬은 천하명승 칠보산의 유구한 전설을 속삭이는가 조약대의 운치를 더해주며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우리가 조약대에 올라섰을 때에는 아쉽게도 짙은안개로 하여 외칠보 만물상의 전경을 볼수 없었다.

만물상의 경치를 사진에 담지 못하고 조약대를 내리지 않을가 하는 위구심으로 마음이 조급해났다.우리의 속마음을 알아차린듯 학술연구사는 구수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보따리를 또다시 펼쳐놓았다.

먼 옛날 황진마을의 정상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로인이 발구채감을 하려고 소를 끌고 이 만물상구역 뒤산에 올랐다.그런데 로인은 나무를 하던 정신에 그만 소를 잃게 되였다.한참만에야 로인이 소발자국을 발견하고 따라가보니 황소는 길이 없는 벼랑을 묘하게 에돌면서 암소가 있는 가전동까지 와있었다.

이것을 본 로인은 무릎을 탁 쳤다.

《네가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참 용쿠나.여기에 길을 내면 바다가를 따라 60리를 에돌던것을 40리나 질러갈수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한 로인은 그날부터 길을 내기 시작했는데 이것을 알게 된 마을사람들이 달려나와 힘을 합쳐 새 령길을 완성하였다.

그후 사람들은 정상인로인을 찬양하여 령마루정점에 대리석으로 비문을 해세웠고 그 령을 새길령이라고 부르게 되였다.…

오늘도 서있는 비문에는 《정공상인개신로기적비》라는 글과 함께 로인의 공적을 찬양한 내용의 글이 씌여져있다고 한다.착하고 근면한 우리 인민들의 생활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력사이야기였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시간이 얼마쯤 흘렀는데 드디여 안개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만물상구역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인 궐문봉이 정점에서부터 신비스러운 자기 모습을 천천히 드러냈다.

마치 만물상구역으로 들어가는 대문이런듯 빗장을 든든히 지른채로 듬직하게 솟아있는 궐문봉의 장쾌한 모습이 뽀얀 운무로 하여 더욱 돋보이는데 대문을 지키는 파수와도 같은 문수봉이 뒤따라 봉긋한 자기 자태를 살며시 드러내는것이 아닌가.

감탄이 절로 나왔다.아니, 숨이 꺽 막히는것만 같았다.

깎아지른듯 한 절벽을 두르고 하늘을 치뚫을듯 천길만길 높이 솟은 만장봉과 장군봉, 먼 옛날 선녀들이 하늘로 오르군 했다던 승천봉도 구름우에 솟았으니 그야말로 구름을 타고 천하를 굽어보는 심정이랄가, 하늘중천에 올라 구름을 헤가르는 기분이랄가 보고 대하는 모든것이 신비스럽고 황홀하기만 했다.

동해에서 솟아오른 달이 월출문을 빠져나와 만물상의 야경을 독차지하며 즐기군 했다는 월락봉도 한눈에 굽어보이고 수닭바위, 부엉이바위, 백호대, 촉혈암 등 형형색색의 기암들도 별천지를 펼쳤으니 사람들이여! 이 세상 절경에 대하여 쉽게 말하지 마시라, 외칠보 만물상의 조약대에 올라와보기 전에는.

그대가 만약 시인이라면 이곳에서 주옥같은 시상을 고르시라.그대가 촬영가라면 부디 다른 곳에서 명화면을 찾지 마시라.그대가 만약 음악가라면 세상만물을 다 가져다놓았다는 여기서 애타게 찾고찾던 선률을 고르시라.

가슴부푸는 환희로 하여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었다.

칠보산을 찾으시였던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곳에 오르시여 만물상지구의 조약대정각이 멋있다고, 정각에서 바라보니 칠보산의 전경이 그야말로 황홀경이라고 못내 만족해하시였다.그러시면서 칠보산은 명소들이 있는 곳으로 올라갈수록 시원한것이 특징이라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조약대정각에 오르시였던 그때는 칠보산의 단풍도 락엽이 되여 떨어지던 늦은가을이였다.

그런데 뜻깊은 이날 조약대정각주변에서 자라고있는 진달래나무에서는 아지마다 진분홍색 진달래꽃들이 활짝 피여나 신비경을 펼쳐놓았다고 한다.

그후 이런 신기한 현상은 여러번이나 계속되였다.

진달래나무에서 꽃이 필 때면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였던 그날이 못 견디게 그리워 마음속으로 눈물짓군 한다는 학술연구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푸른 잎새를 한껏 펼친 사연깊은 진달래나무를 오래도록 보고 또 보았다.

글 본사기자 김성민
사진 본사기자 김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