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8월 21일 로동신문
천만년 길이 전할 사랑의 장정
지금으로부터 12년전 4월 조선인민혁명군창건 75돐을 며칠 앞둔 날이였다.뜻깊은 이날 류례없는 엄혹한 정세와 준엄한 시련속에서 우리 인민과 인민군장병들이 영웅적투쟁을 벌려 혁명과 건설에서 력사적인 승리와 대변혁을 이룩하게 한 조국청사에 무궁토록 길이 빛날 병사들에 대한 그리움, 사랑, 믿음… 부디 전선지대에만은 나가지 말아주시기를 간절히 아뢰이는 일군들에게 지금 전연초소에서는 나의 수많은 아들딸들이 조국의 방선을 지키고있다고, 나는 전선경계근무를 수행하고있는 아들딸들의 군무생활을 료해하고 그들을 고무해주어야 하며 그러자면 전선지대에 찾아가야 한다고 하시며 늘 최전연초소의 병사들을 그리워하고 찾아가신 사랑하는 자식들을 찾아 떠나는 어버이의 앞길을 과연 누가 막을수 있었을것인가. 성스러운 력사의 체험자, 목격자들인 우리 인민과 인민군장병들의 가슴에 소중히 간직된 철령산줄기의 중부에 최전선의 관문인양 솟아있는 철령, 오르면서 40리, 내리면서 40리인 험준한 령길은 오늘도 병사들에 대한 우리 어느해인가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신 나도 그 령이 사납고 험한 령이라는것을 잘 안다.령을 톺아오르다가 아차 실수하면 천길 낭떠러지에 굴러떨어진다는것도 모르는바가 아니다.그런데도 자꾸 철령을 넘나드는것은 철령너머에 사랑하는 나의 전사들이 그들이 언땅에 배를 대고 적진을 지켜보며 밤을 지샐 때 무엇을 생각하는지 아는가.그들은 이 그러니 내가 어찌 그들을 자주 찾아가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을수 있겠는가.결코 그럴수 없다.… 오직 병사들에게로만 마음달리시는 억제할수 없는 사랑이였다. 언제인가 그 가슴뜨거운 나날에 추억을 얹으신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날부터 조선혁명을 책임진 주인이 되겠다는 굳은 결심을 품으신 전선행, 전선행… 매일같이 달리시는 길이였지만 그 길이 바로 사랑하는 자신의 병사들과 혈연의 정을 두터이하시는 길이기에 쉬임없이 이어가신 우리 주체91(2002)년 3월 2일 《로동신문》에는 어느 한 녀성중대를 찾으신 평안남도 양덕군의 어느 한 산골마을이 고향인 그들, 부모들은 자기 고장에 새겨진 사연을 소중히 안고 길이 빛내이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자식들의 이름을 가운데글자를 합치면 《황금산》이 되게 지어주었다. 세쌍둥이이름의 가운데글자를 합치면 《황금산》이 되는데 이름을 뜻이 깊게 지었습니다. 군대에는 언제 입대하였는가.고향은 어디인가.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는가.어머니는 무슨 일을 하는가.… 어느새 세쌍둥이는 친아버지앞에서처럼 마음이 스스럼없어졌다.그러한 그들을 사랑의 넓은 품에 안으신 셋은 꼭같이 그렇다고 힘있게 대답올리였다. 온 나라 세쌍둥이들이 다 그러하듯 그들 역시 하늘같은 그이의 은정속에 태여난 행복동이들이였다.사랑의 비행기도 띄워주시고 보약은 물론 출생기념으로 금반지까지 안겨주신 은혜로운 품에 안겨 어느덧 어엿한 병사로 성장하여 초소에 섰던것이다. 세쌍둥이가 키도 같고 생긴것도 비슷하다.모두 곱게 생겼다.부모들이 군대에 나와 름름하게 자라난 세쌍둥이모습을 보면 대단히 좋아할것이다.… 시종 환하게 웃으시며 그들을 대견히 바라보시는 군사복무가 힘들지 않은가고 물으시는 아직은 홍조피는 얼굴에 학생티가 다분한 애어린 병사들이였지만 가슴속에 안고있는 각오는 얼마나 땅땅 영글었는가. 하지만 세쌍둥이를 위해주고싶으신 심정으로 그래 세쌍둥이는 누구를 닮았습니까? 둘째는 어머니, 셋째는 아버지 그리고 자기는 아버지, 어머니를 절반씩 닮았다고 맏이가 말씀올리였다. 호탕하게 웃으신 노상 기쁨에 겨워있던 세쌍둥이의 눈굽이 뜨거워졌다. 사실 입대하기 전까지만 하여도 그들의 키는 작은 편이였다.고향을 떠날 때 부모들도 저애들이 제구실을 해낼가 하는 걱정을 감추지 못하였었다.하지만 군사복무의 나날속에 그들의 키도 모습도 몰라보게 달라졌다.하여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자기들의 모습을 날마다 거울에 비추어볼 때면 아버지, 어머니가 우리를 보면 얼마나 기뻐하실가 하는 생각에 가슴을 들먹이군 한 그들이였다.그런데도 세쌍둥이와 헤여지기에 앞서 세쌍둥이는 끝내 어버이의 품에 와락 안겨들며 흐느끼였다. 이렇게 되여 녀병사들의 육체적성장에 관한 자료가 매해 최고사령부에 보고되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태여나게 되였던것이다. 병사들을 사랑하라! 찾으시는 초소마다 언제인가 최전연에 위치하고있는 어느 한 부대를 시찰하신 녀병사들의 훈련모습을 정겨운 눈길로 지켜보시던 오랜만에 만난 사랑하는 딸자식들을 대하는 친부모의 심정으로 군인들의 이름이며 고향, 부모들에 대하여서와 키는 얼마인가에 대해서까지도 하나하나 물으신 1998년 봄 평양에서 입대하였다는 대답을 들으신 참으로 준엄했던 지난날들을 돌이켜보시는듯 오래도록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던 너무도 속속들이, 마치 한지붕아래서 한가마밥을 들며 살아온 혈육처럼 겪어온 곤난을 헤아려주시는 그이를 우러르며 부분대장은 그때 저희보다 하건만 동무들이 나의 뜻을 잘 알고 군인들의 생활을 친부모의 심정으로 잘 돌봐주어야 합니다. …군인들의 생활을 잘 돌봐주는것은 일군들의 응당한 본분이며 의리입니다. 내가 늘 강조하는 문제이지만 우리 지휘관들은 자기들이 덥고 배부를 때에도 전사들은 춥고 배고플수 있다는것을 항상 명심하고 전사들의 생활을 잘 돌봐주어야 합니다.… 병실에 뭘 때는가.나무를 때면 춥지 않은가.저 담요를 덮고 추워하지 않는가. 이렇게 병사들의 생활을 따뜻이 보살펴주시던 그러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이 나의 걱정을 덜어준다고 하면서 군인들의 생활에서 애로되는 문제들을 다 말하지 않고 좋다고만 하는데 그러면 안됩니다.내가 군인들의 생활에서 제기되는것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문제를 세우고 걸린 문제를 풀어줄수 있습니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중대를 다녀가신 후 마안산담요와 비누 등 많은 생활필수품을 중대군인들에게 보내주시였다. 식당, 세목장, 부식물창고… 아무리 외진 섬초소라 할지라도 군인들의 식탁과 잠자리, 일일창고 등은 다 하여 이 땅에 선군혁명의 폭풍이 세차게 휘몰아치던 나날 우리 나라를 방문하여 우리 병사들의 보람차고 행복한 생활을 목격체험한 로씨야련방 원동군관구 《나는 한생 군복을 입고있었지만 한 나라의 조선인민군의 총폭탄정신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가를 이제야 잘 알게 되였다.》 언제인가 그가 다녀간 어느 한 구분대를 찾으시여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적지 않은 나라들이 무기만능론을 제창하며 주되는 경쟁자들과의 군사전략적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군비경쟁에만 열을 올릴 때, 어떤 나라들은 외부의 군사적《보호》에 기대를 걸고 《평화》에 도취되여 군인들을 도외시할 때 병사들에 대한 사랑, 우리 식 무력관으로 주체의 건군사를 빛내이신 참으로 사랑과 믿음으로 불타는 본사기자 량 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