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8월 25일 로동신문
혁명의 붉은기를 높이 휘날리며
사나운 눈보라, 그를 맞받아 굴함없이 전진하는 대오, 그앞에 펄펄 휘날리는 붉은기. 이것이 바로 우리 혁명의 가장 준엄했던 시기에 귀기울이면 들려온다. 고난의 행군과 더불어 이 땅 어디서나 90년대 《적기가》로 높이 울려퍼졌던 노래 《높이 들자 붉은기》. 안변청년발전소건설장에서도, 공장과 마을들에서도 이 노래는 신념의 메아리되여 울렸다. 《우리 당과 인민은 혁명의 붉은기를 높이 들고 고난의 행군을 벌려 겹쌓이는 난관과 시련을 뚫고 우리 식 사회주의를 영예롭게 수호하였습니다.》 우리는 왜 붉은기를 들었는가.고난의 시기 붉은기를 내리우면 살길을 열어주겠다는 끈질긴 유혹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인민은 허리띠를 조이면서도 붉은기아래로 모여들었고 쓰러지면서도 붉은기를 놓지 않았다.어째서인가. 그에 대한 대답을 어려운 시기에 녕원발전소를 기념비적창조물로 일떠세운 군인건설자들의 투쟁에서 찾는다. 고난의 시기 세멘트 한포대, 강재 한t도 국가로부터 받기가 어려웠다.연유도 부족하고 지어 식량도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였다. 건설을 계속하느냐 아니면 주저앉느냐.군인건설자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여기가 어떤 곳인가.대동강을 길들여 평양시를 큰물피해로부터 보호하고 전기문제를 풀기 위해 승리의 언제우에 붉은기를 날려 병사들의 맹세의 분출인양 《높이 들자 붉은기》의 노래소리가 높이 울려퍼지는 속에 녕원땅의 이름없는 산기슭들에 철근을 비롯한 자재와 각종 설비부속품들까지도 자체로 해결하기 위한 자력갱생기지들이 일떠섰고 언제는 한치한치 솟구쳤다. 녕원발전소의 언제에는 이렇듯 군인건설자들이 충정의 날과 달을 이으며 바친 피와 땀 그리고 열정이 그대로 슴배여있다. 붉은기는 신념의 강자들만이 추켜들수 있다. 민족의 대국상이후 련이어 들이닥친 자연재해는 은파땅에도 혹심한 피해를 주었다. 여기에 은파군의 한 로인이 가정방문을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겠는가고 묻는 국제기구의 외국인에게 한 대답이 있다. 《우리 어찌 알았으랴.우리 은파군 양동협동농장 제7작업반원들은 수확한 곡식을 앞에 놓고 모여앉았다. 그리고 자기들의 지성어린 애국미를 나라에 바칠 결심을 담아 한자한자 적은 편지를 주체87(1998)년 1월 평양에서 진행된 전국자력갱생모범일군대회를 계기로 4.25문화회관에는 자력갱생전시장이 꾸려졌었다. 전시장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가장 많이 끈것은 자강도에서 전시한 여러가지 형식의 중소형발전소들에 대한 직관물이였다. 전시장은 그대로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해나갈 때 아무리 어려운 난관이 앞을 가로막아도 점령 못할 요새가 없다는 투쟁의 진리를 깊이 체득하게 하는 거대한 교양장소나 같았다. 제일 어려운 시련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던 자강도인민들이 선참으로 락원의 행군을 할수 있은것은 붉은기정신으로 투쟁하였기때문이다. 죽어도 붉은기를 버리지 말라, 우리 인민은 김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