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8월 27일 로동신문

 

참된 삶의 메아리-우리 당세포위원장

단천시 답동협동농장 기계화분조
당세포위원장이였던 김명엽동무에 대한 이야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모든 세포위원장들이 김일성-김정일주의당의 초급정치일군으로서의 사명과 본분을 자각하고 분발하여 떨쳐나설 때 당세포는 강화될것이며 우리 당의 전투력은 더욱 높아지고 우리 혁명은 더 빨리 전진하게 될것입니다.》

우리 당이 바라는 참된 당세포위원장은 어떤 사람인가.

불치의 병으로 앓는 몸이지만 생의 마지막날까지 자기의 초소를 굳건히 지킨 단천시 답동협동농장 기계화분조 당세포위원장이였던 김명엽동무의 한생이 그에 대답을 준다.

 

분조장이 들려준 이야기

 

《한마디로 그는 분조의 기수였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감이 나서도 당세포위원장이 있기에 마음이 든든했다면서 분조장 심철만동무는 세해전 가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선반실과 목공실, 단야실, 농기계보관고건설을 끝내기로 충정의 200일전투목표에 쪼아박았는데 목재가 문제였다.이때 김명엽동무가 나섰다.그가 심장병이 도진데다 위병까지 겹쳐 고생하는줄을 잘 알고있던 분조장은 만류했다.

취사원노릇만은 자신있다면서 짐을 꾸린 당세포위원장은 앞장에서 가응리 덕주골로 향했다.십여일만에 많은 목재를 해결해가지고 돌아오는 분조원들의 뒤에는 병색짙은 얼굴에 웃음을 담은 당세포위원장이 있었다.

지난해 4월말 편대를 지어 논갈이를 하던 뜨락또르들중 한대가 멈춰섰다.운전수, 수리공들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했으나 고장원인을 찾지 못했다.식사시간이 지나도록 퇴근하지 못한 운전수들을 생각하여 저녁식사까지 준비해가지고나온 당세포위원장은 그들이 식사하는 동안 어렵지 않게 고장원인을 찾아냈다.운전수들은 물었다.어떻게 그렇게 막히는것이 없는가고.

《비결이 뭐 따로 있겠소.자기 맡은 일에 정통하겠다는 각오만 높으면 늘 책을 보고 사색하게 되는거요.》

실력으로 대중을 이끄는 기수, 이것이 김명엽동무의 참모습이였다.

분사구압시험기를 만들던 때의 일이다.

자그마한 분사구였지만 압시험을 하러 농기계작업소에 갔다오느라면 하루품이 걸리군 하였다.분사구압시험기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당세포위원장은 선반공과 함께 농기계작업소에 나가 분사구압시험기의 구조와 원리를 구체적으로 파악하였다.그 과정에 기계식으로가 아니라 농장의 실정에 맞게 수동식으로 만들것을 결심한 그는 며칠밤을 새운 끝에 설계를 완성했다.압력계가 난문제로 나섰을 때는 안해가 요긴하게 쓰려고 마련해두었던 자금을 가지고 함흥으로 달려가기도 하였다.그렇게 창안제작한 분사구압시험기의 덕을 농장이 단단히 보게 되였다.

착통뽑는지구와 박는지구, 크랑크축치차뽑는지구 역시 기술혁신의 명수인 김명엽동무의 피타는 사색과 정열이 낳은 열매라고 하면서 심철만분조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늘 자기가 앞장에 서야 분조가 전진한다고 말하군 했습니다.몇해전 초봄에는 대수술을 받고 채 완쾌되지 않은 몸으로 뜨락또르운전대를 틀어잡고 만가동하면서 거름실어내기일정을 보장했지요.정말 쉽지 않은 사람이였습니다.》

혁명의 기수, 투쟁의 기수,

우리 당이 안겨준 이 부름을 최상의 영광으로 간직하고 순간순간 불같이 살아온 이런 참된 당세포위원장의 생이 어떻게 끝났다고 하랴.

 

뜨락또르운전수가 흘린 눈물

 

《세포위원장동지가 우리곁을 떠났다는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김명엽동무에 대한 말을 꺼내기 바쁘게 눈물이 글썽해진 농산제1작업반 뜨락또르운전수 강성광동무는 10년전 당세포위원장에게서 되게 꾸중을 듣던 이야기부터 꺼냈다.

벼단실어들이기가 끝난 저녁이였다.교대운전수로 일을 갓 시작한 때인지라 운전대를 제 맘대로 잡지 못하는것이 늘 불만이던 그는 책임운전수가 자리를 뜬 사이에 뜨락또르를 몰고나갔다가 그만 길옆 벼단더미에 구겨박았다.지나가던 뜨락또르운전수의 도움을 받아 탈곡장으로 향하는 그의 속은 한줌만 해졌다.아니나다를가 당세포위원장의 얼굴에는 노기가 서려있었다.

《책임운전수의 승인도 안받고 마음대로 뜨락또르를 몰고나가는 법이 어디 있소?》

《기술을 빨리 높여야 나도 운전수구실을 할게 아닙니까.》

《초보적인 규률도 지킬줄 몰라가지고 기능을 높일것 같소? 동무는 운전수가 될 자격이 없소.》

분김에 와락 뛰쳐나온 그는 다음날 출근하지 않았다.생각할수록 속에서 불뭉치가 불끈했다.자기의 마음을 몰라주는 당세포위원장이 야속하기만 하였다.

고까운 마음을 풀길없어 모대기다가 솔곳이 잠에 들었던 그는 아래방에서 두런두런 울리는 말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어머니, 제 어제 성광이에게 모질게 욕했는데 용서해주십시오.좋은 말로 타이를수도 있었는데…》

《그런걸 난 우리 성광이가 옛날버릇이 또 살아났는가 걱정했댔수다.세포위원장만 믿겠수다.사람될 때까지 계속 아픈 매를 들어주시우.》

가슴속응어리가 스르르 사라지는감을 느꼈다.사실 성격이 거칠고 고집이 세서 말썽많던 자기를 이날이때까지 키워준 사람은 당세포위원장이 아니였던가.곰곰히 생각해보니 확실히 자기가 잘못했었다.도리여 사죄하는 당세포위원장의 말을 들으니 바늘방석에 앉은듯 했다.아래방에 내려온 그는 어머니와 당세포위원장앞에 무릎꿇고 앉았다.

《절 용서해주십시오.》

지난해 봄 그는 농산제1작업반 책임뜨락또르운전수로 배치받게 되였다.10여년간 정든 분조를 떠나려니 발걸음이 선뜻 떨어지지 않았다.

《성광이, 가서 일 잘하라구.어려운 일이 있으면 아무때나 찾아오구.》

따뜻이 잡아주는 당세포위원장의 손을 부여잡은 그는 눈시울을 적시였다.

올해 4월 당원의 영예를 지닌 그가 리당위원회를 나서는 길로 찾아간 곳은 김명엽동무의 집이였다.

《세포위원장동지덕분에 제가 사람구실하게 됐습니다.》

몰라보게 성장한 또 한명의 당원을 축하해주는 김명엽동무의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어렸다.어제날 애꾸러기의 얼굴로는 눈물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선동원이 배운 묘술

 

《쓸 사람, 못쓸 사람이 따로 없다.이것이 우리 세포위원장동지가 늘 외우던 말입니다.》

분조선동원인 선반공 심철준동무는 이런 말로 서두를 뗐다.

초급일군협의회는 끝났으나 누구도 일어설념을 못했다.김동무를 더는 교양하지 못하겠으니 다른데 보내자고 말했다가 퉁을 맞은 청년동맹초급단체위원장은 방바닥만 내려다보고있었다.

《아픈 매를 들줄만 알았지 친아버지, 친형이 된 심정으로 고충을 헤아려보지 못한 내 잘못이 큽니다.어제 원철동무의 집에 가보니 고민이 많더군요.》

당세포위원장의 자책어린 목소리에 모두의 가슴이 찌르르해졌다.생활상애로에 포로되여 쩍하면 일하러 나오지 않는 김동무를 위해 당세포위원장이 얼마나 많은 걸음을 걸었던가.

그날 밤 김명엽동무는 수십리 떨어진 두연리로 부지런히 자전거를 몰아갔다.김동무의 안해와 가시어머니를 만나 설복했다.가정생활에 난관이 있으면 부부가 서로 맞잡고 헤쳐나가야 하지 않겠는가고, 김동무를 곁에서 잘 돕자고.

안해가 돌아온 다음 몰라보게 달라진 김동무를 보며 초급일군들은 생각했다.뜨거운 심장을 지니고 혈육의 정을 기울일 때 교양 못할 사람이 없다는것을.

몇해전 어느 한 작업반 초급일군들이 더는 교양하지 못하겠다는 양수기운전공을 리당위원회에서는 기계화분조에 배속시켜주었다.김명엽동무의 인간됨과 사람과의 사업능력을 믿었기때문이였다.

가정방문을 통해 안해가 오래동안 앓다나니 생활이 어려워 제대로 출근하지 못했다는것을 알게 된 당세포위원장은 어머니의 정을 기울였다.

양수기운전공이 혁신자로 되였을 때 사람들은 말했다.기계화분조 당세포위원장에게 가면 막돌도 보석으로 된다고, 그에게 사람들을 교양개조하는 무슨 묘술이 있는것 같다고.

그 비결은 다른데 있는것이 아니였다.사람들의 마음속깊이에로 침투하는 통행증은 다름아닌 진심이라는 진리를 심장에 새긴데 있었다.

 

자동차운전사의 추억

 

《우리 세포위원장동진 청년들을 남달리 사랑했습니다.》

자동차운전사인 청년동맹원 홍정혁동무의 말이였다.

자체로 힘겹게 건설하던 차고가 밤새 내린 비에 무너져버린 지난해 9월이였다.

깊은 밤 무너진 차고앞에 주저앉아 가슴을 치던 김명엽동무는 이른새벽 출근한 분조원들에게 흔연히 말했다.시련이 없이 어떻게 혁명과 건설이라 할수 있겠는가.다시 시작하자.

하지만 일은 힘겨웠다.특히 청년들이 의기소침해있는것이 문제였다.오후작업이 시작되여 몇시간 지났을 때 당세포위원장이 청년들에게 말했다.

《쉴참에 우리 배구경기를 하는게 어떻소?》

청년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종전처럼 웃마을 대 아래마을로 가르니 자연히 청년들은 당세포위원장과 한편이 되였다.앓는 몸이지만 앞장에서 뽈을 쳐넘기는 당세포위원장을 바라보며 청년들 아니 분조원모두가 힘을 얻었다.

《우리가 너무 철이 없었습니다.허물없이 어울려 우스개소리도 하고 일도 하니 병이 그처럼 심한지도 모르고 떠나가는 마지막날까지 혹사시켰단 말입니다.》

지난 5월 13일 차고건설에 쓸 자갈채취를 당세포위원장에게 맡기고 분조장은 목재를 실으러 떠났다.

사실 몸도 가누기 어려운 형편이였지만 이를 악물며 출근한 김명엽동무는 청년들을 이끌고 북천기슭에 나왔다.저 먼저 일손을 잡는 그를 청년들이 말렸다.

《세포위원장동지가 곁에만 있어도 힘이 나니 가만 앉아계십시오.일은 우리가 하겠습니다.》

그날이 당세포위원장과 함께 일한 마지막날로 될줄 어찌 알았으랴.

리당위원회에 가면서 인차 다시 오마고 약속한 당세포위원장이 곁을 떠났다는 소리에 청년들은 눈앞이 캄캄해졌다.너무 억이 막혀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힘들어 오후엔 못 나오겠다고 투정질하는 자기에게 꿀빵을 해내오려는데 그래도 안나오겠는가고 하던 당세포위원장의 웃음어린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고, 오후작업휴식시간에 정말로 내온 빵을 먹으며 좋아하는 자기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당세포위원장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면서 홍정혁동무는 가지가지 추억을 더듬었다.지난해 12월 도로공사장에 나간 청년들을 찾아 앓는 몸에 부식물을 가지고 100여리 먼길을 자전거로 달려온 당세포위원장이 밤깊도록 오락회도 하고 다음날에는 공사장에서 한발파 하고야 떠났다는 이야기, 청년들을 휘동하여 밤새 연유탕크기초를 파던 이야기…

《우리 정혁인 이 아버지보다 세포위원장을 더 따랐습니다.》

홍치률(현재 당세포위원장)동무의 진정어린 목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생각했다.

누구나 좋아하고 따르는 당세포위원장의 친화력, 그것은 걸음걸음 령도자의 사상과 뜻, 풍모를 따르려는 불같은 충정과 헌신적인 노력에 뿌리를 두고있다고.

 

단야공이 잊지 못하는 모습

 

《참으로 뜨거운 인정미를 지닌 분조의 어머니였습니다.》

단야공이며 용접공인 김만식동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뜨거웠다.

교통안전교양실골조공사가 끝나고 련이어 생산건물건설이 시작되였을 때였다.

가뜩이나 몸이 약한 그는 아프다고 출근을 하지 않았었다.그날 저녁 집에 찾아온 당세포위원장을 보는 그의 가슴은 뜨끔해졌다.심장병을 오래동안 앓아온 당세포위원장의 정상이 말이 아니였던것이다.

보약재를 손에 들려주며 당세포위원장은 다심하게 일러주었다.

《만식동무, 몸조리를 잘하오.동무일은 누구도 대신 못해.》

차라리 나약하다고 욕을 해주면 마음이 후련할것만 같았다.분조의 기둥구실을 제대로 못해 미안하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올랐지만 차마 꺼낼수가 없었다.

다음날 점심무렵 분조원이 집에 찾아왔다.갑자기 용접할 일감이 생겼다는것이였다.강심을 먹고 일어나 분조에 이른 그는 반겨맞아주는 당세포위원장의 손길에 이끌려 음식상에 마주앉게 되였다.알고보니 분조원들을 위해 당세포위원장이 안해와 함께 집에서 음식을 해내온것이였다.사실대로 말하면 자기가 면구스러워 안나올것 같아 마음을 쓴 당세포위원장의 웅심깊은 심정이 헤아려져 눈물이 핑 돌았다.음식을 먹는지 눈물을 씹어삼키는지 의식할수 없는 속에서도 그는 뜨겁게 느꼈다.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단야공만이 아니였다.나이많은 뜨락또르운전수 윤동무가 위천공으로 대수술을 받았을 때 억수로 퍼붓는 비속을 뚫고 수십리 먼길을 매일이다싶이 오가며 보약재도 마련해주고 치료대책을 세워준 사람도 바로 당세포위원장이였다.

분조원모두를 친혈육처럼 언제나 품에 끼고 정을 쏟아붓는 당세포위원장의 심장속깊은 곳에는 좌우명으로 간직되여있었다.어머니당의 사랑과 믿음의 목소리가 온 나라에 울려퍼지게 하여야 할 사람들은 바로 세포비서들이라고 하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말씀이.

* *

그의 집에 가서 신문에 낼 사진을 찾아보았으나 별로 고를만 한 사진이 없었다.

《우리 영민이 아버지는 사진찍기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남들처럼 가족사진을 찍어 벽에 걸자고 여러번 말했으나 매번 만류했습니다.무슨 자랑이 있어 사진을 찍겠는가, 온 가족이 나라에 보탬되는 일을 많이 하여 당에 기쁨드리는 날 찍자면서 말입니다.》

정말로 벽에는 인민군대에 입대하는 날 찍은 아들의 사진이 조선인민군입대증과 나란히 걸려있을뿐이였다.

가정살림에는 관심이 없으면서도 오늘은 누구의 생일인데 기념으로 줄만 한게 뭐 없을가 하는 말에 새 양말이라도 한컬레 들려주면 왜 그리도 기뻐했는지, 누구네 집 살림이 어렵다는데 하는 말에 집에 얼마 안되는 감자라도 꺼내놓으면 왜 그리도 좋아했는지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더 잘 알게 되였다는 안해 전성희동무의 눈물젖은 말이 우리의 귀전에 오래도록 맴돌았다.

당의 핵심, 미더운 초급정치일군!

고귀한 이 믿음을 가슴에 새기고 20년간 불같이 살아온 김명엽동무를 우리 당은 영생의 언덕에 세워주었다.

한달전 단천시당위원회가 조직한 당세포위원장모임에서 그의 한생을 반영한 대화시 《우리 당세포위원장이라는 부름속에 그는 오늘도 살아있다》가 참가자들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주었다.얼마전에는 사회주의애국희생증이 사람들의 열렬한 박수갈채속에 그의 가족에게 전달되였다.

그의 한생은 말해준다.백옥같은 충정과 헌신으로 온몸을 불태운 참된 당초급일군의 삶은 사람들의 심장속에, 우리 당의 기억속에 영생한다는것을.

본사기자 김향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