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9월 13일 로동신문

 

유구한 력사와 절승경개로 자랑높은 내 조국

기행

다양한 생태와 오랜 형성력사를
자랑하는 오가산자연보호구 (1)

 

우리가 오가산자연보호구에 대한 기행을 쓰려고 갔을 때에는 아쉽게도 며칠간이나 계속 비가 내리였다.다행히 변덕스러운 북부고산지대의 기후가 그 며칠간에 조금이나마 해빛이 구름사이로 비쳐들게 해주었을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가산기행길을 마친 우리에게 결코 유감으로 남지 않았다.내 나라의 자랑스러운 국보-오가산자연보호구가 안고있는 매력의 독특한 진미는 청명한 날씨의 조명이 없이도 우리 마음을 기쁨과 긍지, 감동과 사랑으로 끝없이 부풀게 하였다.


* *


머나먼 길을 달려 찾아온 우리를 제일먼저 반겨맞아준 사람은 오가산자연보호구관리소 소장인 장순선동무였다.

그는 지금 도와 군당위원회일군들의 적극적인 지도방조밑에 이곳 자연보호구관리소의 혁명사적교양실, 연혁소개실, 오가산식물전시관 등 건축물들에 대한 개건공사가 한창 진행되고있다고 하면서 먼저 우리를 종합수목원으로 이끌었다.

종합수목원은 10여년전 위대한 장군님께서 오가산자연보호구를 돌아보시면서 주신 과업을 높이 받들고 이곳 일군들과 종업원들이 오가산식물전시관과 함께 꾸려놓은 학술연구 및 과학지식보급기지였다.

이 종합수목원에 해발 1 200m 높이에까지 분포되여있는 오가산의 나무들이 종별로 다 심어져있다고 하면서 장순선소장은 이렇게 말끝을 흐리였다.

《10여년전 이른아침 위대한 장군님께서 높고 험한 오가산령에까지 오르시였습니다.불편한 몸으로 힘겹게 걸음을 옮기시는 어버이장군님을 우러르며 그때 우린 다 울었습니다.그후 어버이장군님을 다시는 험한 령에 모시지 않고도 오가산의 나무들을 다 보여드릴수 있게 하자고 정성다해 마련했던것인데…》

장순선소장은 원래 잣나무를 심으면 20~30년후에야 덕을 보는것으로 알려져있다고, 그러나 종합수목원을 꾸려놓은 때로부터 9년이 되는 지난해에 이곳에 옮겨심은 잣나무들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다고 축축히 젖어드는 눈굽을 찍으며 말하였다.

종합수목원에 들어선 우리는 하나하나의 나무들을 무심히 볼수 없었다.

주목, 잣나무, 전나무, 이깔나무, 황경피나무, 다릅나무…

오가산식물사전과도 같이 3정보나 되는 구역에 빼곡이 들어찬 그 나무들이 위대한 장군님을 끝없이 그리워하며 오늘도 깨끗한 충정을 바쳐가는 이곳 일군들과 종업원들의 얼굴처럼 안겨왔다.

그 뜨거운 충정이 어려 세월을 앞당겨 나무마다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희한한 광경도 펼쳐지게 된것이리라.

이윽고 우리는 행장을 든든히 차리고 오가산령을 향하여 떠났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오가산자연보호구는 형성력사가 오래고 여기에는 희귀한 여러가지 동식물들과 천연원시림이 있는것만큼 잘 보존관리하여 후대들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오가산령까지 굽이굽이 뻗은 도로는 무려 20여리나 되였다.

소장과 함께 령으로 오르면서 우리는 오가산과 관련한 가지가지의 사실들에 대하여 듣게 되였다.

오가산은 예로부터 다섯개의 아름다운 봉우리가 태고연한 밀림속에 솟아있다는데로부터 그 지명이 유래되였다.

세계적으로 보면 이름난 원시림들도 거의다 단순림을 이루고있는데 오가산처럼 아한대성식물분포구와 온대성식물분포구의 경계선상에 묘하게 자리잡은 침활혼성원시림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것으로 하여 6 500정보의 면적을 가진 오가산자연보호구에서는 수백종의 식물들이 사이좋게 이웃하여 자라고있는데 여러 나라의 식물학자들이 이 신비하고 독특한 생태를 직접 보고싶어 오래전부터 희망을 전해온다고 한다.

여기 오가산은 사시절이 모두 절승이라고 장순선소장은 자랑하였다.

오가산의 봄은 산전체가 아름다운 꽃바다로 단장되여 절경이고 여름은 끝간데없는 밀림의 바다를 펼쳐 명승이며 가을의 단풍천지와 총대처럼 우뚝우뚝 솟은 나무들에 하얀 눈이 쌓이는 겨울 또한 못 보면 한이 될 일대 경관을 이룬다고 한다.

손가락을 꼽아가며 하는 그의 자랑이 모두 옳다고 고개를 주억거리는듯 길길이 높이 솟은 나무들이 가지를 흐느적이며 령으로 오르는 우리를 맞이하였다.

고층아빠트에 견줄만큼 높이도 자란 나무들의 평균나이는 도대체 얼마나 되는가고 묻는 우리에게 소장은 여기서는 수십년 자란 나무들은 애기라고 불리운다고, 오가산자연보호구에 천연기념물로 등록된 특정한 나무들이 있지만 사실 수백년씩 나이먹은 원시림구역안의 나무들은 거의다 천연기념물로 부를만 하다고 흐뭇한 어조로 이야기하였다.

때없이 내리는 보슬비를 맞으며 우리는 마침내 오가산령에 올랐다.

앞에도 뒤에도 아득한 천리수해가 펼쳐진 오가산령마루에 서니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현지교시판이 우리의 눈앞에 안겨왔다.

현지교시판에는 주체53(1964)년 9월 21일 외국방문의 길에서 돌아오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사연깊은 이 령을 넘으신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하신 교시가 정히 새겨져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얼마나 험난하고 시련에 찬 혁명의 길을 걸으시면서 조국을 찾아주시였는가를 우리 후대들이 실지 체험을 통하여 알게 하시려는 그이의 거룩한 뜻이 자자구구 어려오는 현지교시판을 우러르느라니 오가산령은 나의 어린 가슴에 혁명의 불씨를 안겨준 잊지 못할 곳이라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가 뜨겁게 되새겨졌다.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를 찾자면 조선을 알아야 한다고 하신 아버님의 뜻을 받들어 배움의 천리길을 걸으시던 때를 추억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이렇게 쓰시였다.

《오가산령은 하루종일 넘었다.아무리 걸어도 고개가 끝이 나지 않고 새 고개가 연방 나타나군 하였다.

오가산령을 넘고나니 발이 다 부르텄다.다행히도 그 령밑에서 어떤 로인이 나를 붙들고앉아 발바닥에 성냥으로 딱총을 놔주었다.》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나라찾을 큰뜻을 품으시고 대낮에도 맹수들이 어슬렁거리는 높고 험한 령길을 홀로 걸어가시였을 위대한 수령님의 발자취가 금시라도 눈앞에 어려오는것 같아 우리는 숭엄해지는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오가산령에는 천연기념물로 등록된 여러종의 희귀한 나무들이 자라고있었다.

우리는 먼저 500년이상 자란 가산령잣나무앞에 섰다.원래 잣나무는 원산지가 우리 나라인데 이 잣나무는 우리 나라에서도 가장 크고 오래 자란것들중의 하나이라고 한다.

높이가 30여m나 되는 잣나무가 짙은 안개에 싸이다보니 우듬지가 어디에 있는지 알수 없었다.

땅에서 솟았나, 하늘에서 뻗어내렸나 하는 탄성이 저도모르게 시구절처럼 터져나오는데 령길을 가로질러 조금 올라가니 200년이상 자란 오가산전나무, 300년이상 자란 가산령신갈나무 등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들이 련이어 그 멋들어진 자태를 드러냈다.

하나같이 훤칠하게 자란 아름드리거목들의 줄기며 하늘끝에라도 오를듯 소소리높은 그 장대함의 풍미를 어찌 금은보석의 광채만 못하다고 할수 있으랴.

우리는 여기에서 년륜을 세지 않고 나무의 나이를 계산하는 방법에 대하여서도 알게 되였다.

오래 자란 나무는 보통 사람의 가슴높이만 한 부분에서 그 직경을 구하면 나이를 알수 있는데 실례로 그만한 높이에서 분비나무의 직경이 19cm일 때 추산되는 나이는 100년정도라고 한다.잣나무와 피나무, 전나무 등 식물의 종에 따라 같은 직경이라고 하여도 추산되는 나이는 차이난다고 한다.

우리는 이곳 자연보호구의 좌상나무라고 할수 있는 1 100년이상 자란 오가산주목앞에 이르렀다.

오늘도 푸른 잎새를 펼치고 생기에 넘쳐있는 나무이건만 백발을 날리는 력사의 한 증견자앞에 선듯 우리는 감개무량함을 금할수 없었다.벌그스름한 색갈을 띠고 우를 향해 약간 타래져올라간 줄기에선 폭설광풍에도 끄떡을 모르는 강단이 느껴지고 층층이 사방으로 휘여뻗친 가지들에선 금시라도 땅을 차고 그 무엇을 향해 맞받아나갈듯 도도한 기상이 어려왔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정말 볼만 하다고, 이 주목은 억센 조선의 기상을 그대로 보여주는것 같다고 그리도 기쁨에 넘쳐 교시하신 오가산주목!

이 나무도 어느때인가는 연하고 파아란 잎새를 금방 펼치였던 애어린 나무였을것이다.허나 이 나라 기나긴 력사를 돌기돌기 년륜에 고이 간직하고싶어 너 그리도 억세게 뿌리내리고 오가는 눈비바람 다 맞으며 높은 령우에 장엄히 서있는것이냐.

너는 낱낱이 보았으리라.사대와 망국으로 치욕도 많던 땅에 빛나는 새 아침을 안겨주시려 만경대일가분들께서 력사의 새벽길, 혁명의 천리길을 어떻게 헤쳐가시였는가를.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비장한 맹세를 다지시며 조국땅을 뒤돌아보고 또 보시던 10대의 우리 수령님을 오가산주목도 눈물같은 이슬을 함뿍 머금고 바래워드리였으리라.

형언할수 없는 격정에 잠겨 우리는 오가산주목앞을 쉬이 떠날수 없었다.이 한그루의 나무만으로도 오가산은 명실공히 민족의 자랑, 조선의 국보라고 당당히 말할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슴은 쩌릿이 환희로 부풀었다.

우리는 수십년간 오가산자연보호구의 생태계를 연구해온 렴철훈동무와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수백종이나 되는 오가산자연보호구의 식물가운데서 산삼, 만삼, 삼지구엽초를 비롯하여 약용식물만도 120여종, 주목, 전나무, 분비나무, 들메나무, 피나무 등 용재가치가 있는 식물은 50여종, 고사리, 고비, 참취와 같이 식용으로 흔히 쓰는 식물만도 50여종 된다고 한다.

오가산에 이처럼 많은 식물들이 분포되여 자라고있는것은 자연지리적위치의 절묘함에도 원인이 있지만 독특한 토양조건이 리상적인 환경을 이루고있는데도 중요한 비결이 있다고 한다.

오가산의 토양은 토심이 깊고 부식층이 두터워 거목들이 자랄수 있는 훌륭한 조건을 지어주고있는데 거기에다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원시림구역을 끼고있는것으로 하여 산삼을 비롯한 희귀한 약용식물들도 수많이 자란다고 한다.

오가산식물상에 대한 이채로운 현지강의를 되새기며 우리는 모포골로 향하였다.

새로 우리를 안내하게 될 사람은 이곳 자연보호구관리소의 보호작업반 반장 최영복동무였다.

나라의 귀중한 재부인 오가산자연보호구의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라도 상할세라 묵묵히 본분과 사명을 다해가고있는 그는 전문연구사 못지 않게 이곳의 지형과 동식물분포상태에 대하여 손금보듯 알고있었다.이제 오가산이 어떤 신비한 모습들을 또 보여주게 될지 우리는 무척 호기심을 금할수 없었다.

글 본사기자 리  건
사진 주예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