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9월 14일 로동신문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제힘으로 흥하는 길을 열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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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하던 두메산골에 염소떼, 젖소떼 흐른다

강동군 구빈축산전문협동농장을 돌아보고

 

사람들은 강동군 구빈리라고 하면 염소기르기를 잘하여 덕을 보는 고장으로 생각한다.척박하던 두메산골에서 오늘은 염소떼, 젖소떼가 흐르고 갖가지 젖가공품을 생산하여 수도의 봉사단위들에 보내주는 현실이 펼쳐지고있다.

취재차를 타고 읍에서 동쪽으로 근 100리정도 달리니 구빈리소재지가 나타났다.아름드리나무가 꽉 들어찬 산발들, 산기슭을 따라 규모있게 들어앉은 농촌문화주택들, 맑은 시내물이 감돌아흐르고 염소떼가 흰구름마냥 흘러가는 한폭의 그림같은 산촌의 풍경이 눈앞에 안겨왔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산을 낀 곳에서는 산을 잘 리용하여야 합니다.》

구빈리는 주변이 온통 산이고 경사진 돌밭만 듬성듬성 있는 두메산골이다.

이런 고장이 어떻게 오늘처럼 흥하는 삶의 터전으로 전변되였을가 하는 생각이 줄곧 머리속에서 맴돌았다.

소재지입구에서 만난 구빈축산전문협동농장 관리위원장은 우리의 취재목적을 듣더니 단마디로 대답하였다.

《산을 낀 곳에서는 산을 잘 리용할데 대한 당의 뜻대로 우리는 염소, 젖소기르기를 꾸준히 하여 오늘은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농장이 되였습니다.》

시원스러운 그의 목소리는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하게 하였다.산기슭을 끼고 굽이굽이 흐르는 하천을 따라 산언덕에 올라서니 축산제1작업반의 염소우리가 나졌다.

생각했던것보다 그 규모가 작아 실망하는 우리의 마음을 엿본듯 작업반장은 이런 염소우리들이 곳곳에 널려져있는데 농장적으로 근 100개나 있다고 말하는것이다.

《그렇다면 분산사육을?》

그러자 그는 바로 맞혔다고, 큰 우리에서 많은 염소를 기를 때에는 병이 전염되여 무리로 페사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분산사육방법을 도입한 후부터 이런 현상이 없어졌다고 하면서 자기 고장의 지형상특성에도 꼭 맞는 무리별담당관리에 대해 이야기를 펼쳐나갔다.

농장주변의 산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급한 경사지로 되여있다.골짜기들도 좁아 무연하게 펼쳐진 풀판은 찾아보기 힘들다.이런 조건에서 일군들은 관리공 두명이 30마리정도 되는 염소무리를 하나씩 책임지고 관리하도록 하였다.이와 함께 풀판조건에 맞게 작은 염소우리들을 건설하였다고 한다.

그뿐이 아니였다.포전담당책임제를 하듯이 염소도 관리공들이 무리별로 담당하고 관리하니 먹이원천과 로력예비를 합리적으로 리용할수 있게 된것은 물론 전염병을 막는데도 좋았다고, 특히 관리공들의 책임성을 높여 새끼밴 어미염소에 대한 영양관리를 개선함으로써 한배에 2마리이상의 새끼염소를 생산할수 있었다고 하였다.이렇게 무리별담당관리를 하여 해마다 염소마리수는 계속 늘어나 이제는 농장의 년간 젖생산량은 수백t에 이르고 관리공 한명당 한해에 5t이상의 젖을 짠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농장에서는 염소우리 하나를 건설해도 멋따기식으로 한곳에 집중하여 크게 짓지 않았다고 한다.축산을 해도 제땅에 발을 든든히 붙이고 자기식으로 해나가려는 구빈리사람들의 일본새를 엿볼수 있게 하는 작업반장의 이야기는 들을수록 흥미진진하였다.

흰구름이 내려앉았는가 풀판을 하얗게 뒤덮은 염소떼를 보며 걷느라니 《즐거운 방목길》의 경쾌한 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흥이 나서 방목길을 따라걷던 우리는 염소떼를 몰고가는 관리공들을 만났다.

《우리가 염소를 처음 기를 때만 해도 오늘처럼 이렇게 산마다 염소떼가 흐르리라고 믿었던 사람은 얼마 없었습니다.》

웃음발을 날리며 말머리를 뗀 나이많은 관리공의 이야기는 20여년전으로 거슬러올라갔다.

사실 처음에는 염소기르기가 잘되지 않아 애도 많이 태웠다고 한다.사양관리도 서툴어서 허리띠를 조이며 아글타글 마련한 종자염소들이 때로는 벼랑에서 떨어져죽고 새끼낳이를 하다가 죽고 발쪽병, 페염, 설사증 등으로 죽어가군 하였다.억대우같은 장정들까지도 너무 안타까와 눈굽을 문대며 돌아앉았다.

그때 농장일군은 맥놓고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산을 낀 곳에서는 산을 잘 리용하고 바다를 낀 곳에서는 바다를 잘 리용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지 않았는가.우리는 이 길에서 한걸음도 물러설수 없다.…

이 땅에 발붙이고 제힘으로 염소떼가 흐르고 고기와 젖이 쏟아져나오는 살기 좋은 고장으로 전변시키자.

농장의 일군들과 농장원들은 이렇게 결심하고 염소기르기에 다시금 달라붙었다고 한다.먼저 자기 지방의 지대적특성에 맞으면서도 생활력이 강하고 생산성이 높은 우량품종을 적극 도입하는데서 방도를 찾고 우량한 염소의 마리수를 늘이는데 힘을 넣었다고 한다.

바로 그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량품종의 염소종자를 구빈땅에도 보내줄데 대한 조치를 취해주시였다.그 염소들을 그러안고 평양의 하늘가를 우러르는 일군들과 농장원들의 눈굽은 뜨겁게 젖어들었다.

우리의 가슴도 뭉클하였다.그날의 광경을 그려보느라니 한마리한마리의 염소를 무심히 대할수 없었다.당의 사랑과 믿음에 보답하자고 인공수정방법을 끝끝내 완성하여 우량품종의 염소를 수천마리로 늘이고 축산기술을 꾸준히 배워 앞선 사양관리방법을 받아들인 농장일군들과 관리공들에 대한 가지가지의 이야기들은 감동없이는 들을수 없었다.

문득 이 고장 토배기로인이 들려준 이야기가 되새겨졌다.

예로부터 구빈리사람들은 땅이 너무도 척박하여 산속의 부대기밭에 명줄을 걸고 무등 애를 써왔다고 한다.하지만 초근목피로 겨우 연명해가지 않으면 안되였다.그래서 산을 원망하며 눈물속에 다른 지방으로 떠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러했던 고장에 염소떼, 젖소떼가 흐르면서부터 농장과 집집의 살림살이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제힘으로 부흥의 길을 열어나가려는 구빈리사람들의 꿈과 포부가 열매를 맺는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흥분을 안고 젖소종축작업반에 들리였다.

염소기르기에 재미를 붙인 구빈리에서는 젖소도 기르고있었다.저녁해를 등지고 산판을 내리는 젖소떼의 풍경은 마치 한폭의 그림같았다.흐뭇한 광경에 심취되여있는 우리에게 농장일군은 문득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구빈리에서는 염소기르기를 〈경공업〉, 젖소기르기를 〈중공업〉이라고 한답니다.》

그러면서 하루에 셀수 없이 새김질을 하고 또 그만큼 배설하는 젖소 한마리의 하루 먹는 풀량은 무려 70~100㎏에 달한다고, 처음 시작했을 때 이 《대식가》들의 배집을 채워주기가 아름찼다고 하면서 이런 사연을 더듬는것이였다.

지난 시기 관리공들은 젖소들이 배를 채우게 하느라 방목지에 나가 살다싶이 하였다고 한다.방목하는 짬시간마저 먹이기지조성에 바치였다.그랬으나 산판에 많은 가둑나무잎 등은 젖소먹이로 리용하기 어려웠다.이런 방법으로는 먹이보장은 물론 젖생산량도 늘일수 없었다.방도는 배합먹이를 만들어 리용하는데 있었다.농장의 기술자들은 이악하게 달라붙어 고심어린 탐구를 거듭하던 끝에 영양복합덩이먹이와 배합먹이에 대한 연구를 완성하여 도입하였다.

이 먹이를 리용하면서부터 로력과 먹이를 절약하고 병도 예방하게 된것은 물론 젖생산량이 그전보다 10%나 더 올라갔다고 한다.

그의 자랑은 끝이 없을상싶었다.농장에서는 수의방역체계를 철저히 세워놓고 여러가지 수의약을 자체로 생산하고있었다.인공수정방법으로 젖소마리수를 계속 늘여나가는것은 물론 스피룰리나생산기지를 번듯하게 꾸려놓고 여기서 나오는것으로 겨울철에 집짐승먹이의 질도 높이고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리에서는 토끼기르기도 본때있게 하고있었다.농장원들은 풀이 이렇게 많은데 토끼기르기는 왜 못하겠는가 하는 배심을 가지고 10여년전부터 이 일에 달라붙었다고 한다.번듯하게 꾸려놓은 종축기지에 자주꽃자리풀, 토끼풀 등 5정보의 먹이풀판을 조성해놓고 해마다 수천마리의 우량품종토끼를 길러 많은 고기를 생산하고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양어못에 가면 퍼들쩍거리는 메기풍경 또한 볼만 하다고, 지난해에도 불과 몇달 남짓한 기간에 지렁이를 비롯한 자연먹이와 함께 자체로 만든 인공먹이를 배합하여 기른 근 2t의 메기를 수확하였다고, 태양열온실들에서는 오이, 고추, 도마도, 부루, 배추를 비롯한 열매남새, 잎남새들이 푸르싱싱 잘 자라 사철 신선한 남새를 먹는다고 하니 성수가 날만도 하였다.

우리는 나날이 생활이 향상되고있는 농촌마을에도 찾아가보았다.

어느 한 가정에 들어서니 시퍼런 불길이 타오르는 가스곤로에 올려놓은 가마안에서 구수한 음식냄새가 풍겨나오고있었다.집주인은 자기 집에서 생산한 메탄가스로 이렇게 식사준비는 물론 집짐승먹이까지 끓이고있다고, 자연흐름식수도화가 실현되여 수질이 좋은 물이 집집마다 흘러든다고 기쁨에 넘쳐 이야기하는것이였다.

우리는 흥그러운 마음으로 집안팎을 둘러보았다.정갈한 부엌이며 전자제품과 가구들이 그쯘하게 갖추어져 윤기가 도는 살림방, 메탄가스탕크가 들어앉은 온실이며 돼지, 염소, 토끼, 닭우리가 있고 사과나무, 대추나무 등 갖가지 과일나무들이 우거지고 군침이 도는 벌통들이 주런이 놓여있는 뜨락…

불룩한 현금분배봉투를 받아안고 이 많은 분배를 어디에 다 쓸가 배나무집령감 배나무집로친 밤새껏 토론하네라는 노래가 집집마다에서 울려나오고있다고, 풀먹는집짐승기르기를 근기있게 내민 결과 10년전에 비해 농장원 1인당 현금분배는 50배이상 늘어났다고 대추나무집로인은 흥이 나서 말했다.

생각같아서는 집주인과 밤깊도록 이야기를 나누고싶었지만 더 큰 자랑이 있다는 젖가공장을 향해 아쉬운대로 그 집을 나섰다.걸음을 옮기는 우리의 귀전에서는 그저 당에서 하라는대로만 하면 잘살게 되더라는 집주인의 목소리가 떠날줄 몰랐다.

당에서 하라는대로만 하면 반드시 잘살게 된다!

바로 이 철의 진리를 실체험을 통하여 심장깊이 새겨안은 일군들과 농장원들이기에 구빈리는 산골이지만 축산을 하여 잘사는 고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유훈을 결사관철하여 전국의 앞장에 섰으며 오늘은 더 높은 목표를 향해 힘차게 내달리고있는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가슴들먹이며 우리는 젖가공장에 들어섰다.한 녀성이 맛을 보라며 고뿌들에 담은 걸죽한 신젖을 권하는것이였다.소문그대로 구빈리의 신젖은 맛이 좋았다.상쾌한 기분으로 여러곳을 돌아보았다.

당의 은정이 뜨겁게 어려있는 치즈생산설비, 원심분리기를 비롯한 젖가공설비들, 갱도식저장고에 있는 젖가공품들…

구빈리사람들의 이악한 일본새에 감동되여 선듯 자리를 뜨지 못하는 우리에게 작업반장은 여기서 해마다 수백t의 신젖과 빠다, 치즈가 생산된다고, 농장에서 자체로 만든 가마를 걸고 젖가공품을 뽑던것이 이제는 옛말로 되여버렸다고 말하였다.

우리는 이어 젖분석실을 거쳐 젖산균배양실도 돌아보았다.전자분석천평기, 랭동원심분리기, 액체배양탕크, 동결건조기, 초저온랭동기…

농장에서는 새로운 가루종균인 동결건조발효균을 생산할수 있는 종합적인 젖산균생산기지를 꾸려놓고 여러가지 젖가공품의 질을 높이기 위한 투쟁을 벌려 성과를 거두고있었다.농장의 기술자들은 젖가공품생산에 필요한 발효균들을 연구완성하여 국가균주로 등록하고 치즈와 빠다, 신젖을 비롯한 젖가공품의 질을 높은 수준에서 보장하고있었다.이 젖산균배양실에서 만들어낸 여러가지 발효균을 다른 지역의 목장들에도 보내주고있다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밖에 나서니 평양시의 여러 봉사단위에 보내줄 젖가공품을 실으러 온 차가 경적소리를 울리며 들어서고있었다.

우리와 헤여지며 농장일군인 림기남동무는 풀먹는집짐승기르기를 시작할 때 오늘과 같이 염소떼, 젖소떼가 흐르는 광경이 펼쳐지리라고 믿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해냈다고 하면서 이렇게 그루를 박았다.

《비결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당정책의 정당성을 확신하고 중도반단함이 없이 끝장을 볼 때까지 근기있게 관철해나가면 반드시 알찬 열매를 거둘수 있다는것입니다.》

염소기르기의 첫걸음을 뗀 그때로부터 구빈리사람들이 헤쳐온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그러나 고생한 보람은 컸다.자기들이 그토록 갈망해온 행복의 열매를 맛보기 시작한것이다.

우리에게는 쟁쟁히 들려오는듯싶었다.

고난의 천리를 가면 행복의 만리가 온다, 부흥의 길은 바로 자기 땅에서 자신의 손으로 열어나가야 한다는 구빈리사람들의 긍지높은 심장의 웨침이.

글 본사기자 전명일
사진 본사기자 김진명